2004년 그 여파로 유럽에서 핵에너지에 대한 논란이 일기 시작했을 때 원자력 산업계에 구원투수로 등판한 사람이 가이아 이론으로 유명한 제임스 러브록이었다. 3년 전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가이아의 복수>(이한음 옮김, 세종서적 펴냄)에도 요약돼 있지만 러브록은 그때 "온난화가 워낙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어 대처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며 원자력만이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대안"이라고 설파했다. 업계 이해와 무관해 보이는 권위 있는 생태학자 러브록의 지지는 핵 발전소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기업 감시(corporatewatch.org)' 창립 회원인 반세계화 운동가 크리스 크림쇼는 <스핀 닥터, 민주주의를 전복하는 기업 권력의 언론 플레이>(노승영 옮김, 시대의창 펴냄)에서 "러브록의 견해는 의심할 여지없이 정직한 것이겠지만, 그가 미디어에 한껏 노출될 수 있었던 것은 틀림없이 원자력 산업계의 홍보와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러브록은 원자력 산업계의 위장 단체인 '핵에너지 지지자들(Supporters of Nuclear Energy·SONE)'의 후원자였다. 이 단체 설립자는 신자유주의의 기수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의 언론비서관 출신 버나드 잉엄이었다. 잉엄은 대형 홍보 회사 힐 앤드 놀턴의 이사이자 핵연료공사의 유급 로비스트였으며, 풍력 발전에 반대하는 운동 단체 컨트리 가디언의 부회장으로도 활약할 만큼 환경 단체에 적대적인 인물이었다.
▲ <스핀 닥터>(크리스 크림쇼 지음, 노승영 옮김, 시대의창 펴냄). ⓒ시대의창 |
이처럼 업계 이해와 무관해 보이는 유력 '제3자' 지원 세력 또는 지지자와 위장 단체를 내세워 주요 현안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장기간에 걸쳐 바꿔놓음으로써 그 현안들을 업계의 수지맞는 주요 사업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 이것이 오늘날 업계 및 권력과 밀착한 거대 홍보 산업의 '이슈 관리' 또는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크림쇼는 얘기한다.
러브록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청정에너지 원자력' 광고에 등장한 꽤나 권위 있는 제3자들과 훈훈한 이름의 위장 단체들이 텔레비전이나 지하철 광고판 등에 종종 등장하는 것을 우리도 목격하고 있지 않은가.
일본 후쿠시마 핵 발전소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핵 발전 사업은 한국에서도 앞길이 창창한 듯했다. 나중에야 그 실체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계약 규모와 이행 방식, 실익 여부마저도 의심을 사게 됐지만, 수백억 달러에 달한다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의 핵 발전소 건설 계약에 대통령이 직접 뛰어들었다는 얘기가 엄청난 영웅담처럼 회자됐다.
더불어 이른바 '원자력 르네상스'에 대한 기대도 한껏 부풀었다. 한국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일본 원자력 산업계가 서둘러 베트남과 핵 발전소 건설 계약을 맺었다는 그럴싸한 무용담도 떠돌았고, 그 뒤엔 웨스팅하우스, 제너럴일렉트릭 등 미국 원자력 사업체들이 버티고 있다고도 했다. 그리고 러시아도 중국과 인도 등 신흥 경제 대국의 수천 억 달러 규모 핵 발전소 건설 사업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따위의, 언론들이 유포한 통쾌 무비의 흥미진진한 세계 원자력 전쟁 삼국지는 이명박 정권의 핵 발전 드라이브 '성공'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 뒤에는 어떤 '이슈 관리'가 포진하고 있을지. 재생 가능 에너지 분야 광고에는 단 한 푼도 쓴 적 없다는 전력 업체들이 수백 억 원의 광고비를 '무공해 청정에너지 원자력' 이미지 창출에 쏟아 부은 것도 핵에 대한 한국인들의 사고 정지를 부추겼다.
2004년 1월 9일 가장 권위 있다는 학술지 <사이언스>에 양식 연어에 들어 있는 폴리염화비페닐(PCB), 다이옥신, 살충제로 쓰이는 톡사펜, 디엘드린 등의 독성 화학 물질들 양이 자연산 연어보다 많고 미국 환경보호국 권장 기준치를 초과한다는 내용의 논문이 실렸다. '인체에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증거가 발견됐다는 그 논문은 일거에 세계 3위의 연어 양식·생산지인 스코틀랜드 연어 산업을 위기에 빠뜨렸다. 그러나 그 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곧 거짓말 지어내기와 물 타기가 시작됐다. 영국과 미국 연어 업계를 대표해 로비 그룹 스코티시 퀄리티 새먼(SQS)이 앞장을 섰다. 논문 발표 직후 "양식 연어 섭취가 암 발생 늘린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던 스코틀랜드 2대 유력지 중 하나인 <스코츠먼>은 바로 그 다음날 기사에선 "어류의 화학물질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제목을 달았다. 엘바 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이 파리에 입성하기까지 단기간에 식인귀에서 황제 폐하로 시시각각 그의 이미지를 변조해낸 당시 프랑스 유력지처럼, 그 신문 제목은 매일 극적으로 변해갔다.
"미국 식품 전문가, 연어는 안전하다고 밝혀", "환경 단체에서 연어 연구에 자금 지원", "연어를 위협하는 보고서에 결함과 편향 있다"로 바뀌어 가더니 마침내 '과학자들, 어류가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은 사실과 반대"로 귀착됐다. 그리하여 5개월 만인 그해 6월 양식 연어는 맛 좋고 영양 풍부한 안전 식품으로 되돌아갔다.
<야만의 주식회사 G8을 말하다(Argumnents Against G8)>라는 책을 엮어내기도 한 '스핀워치(spinwatch.org) 공동 설립자 스트래스클라이드 대학 교수(사회학) 데이비드 밀러에 따르면, 이 반전을 위해 SQS는 먼저 데이터를 무시하고 안전 기준을 지나치게 낮춰 잡았다거나 미국 환경보호국 위험 모델을 잘못 적용했다는 따위의 근거도 없는 '방법론적 오류'를 문제 삼고 나섰다.
그리고 정부를 압박해 식품표준국 국장을 반격의 최전선에 내세웠다. 그 다음 논문을 작성한 올버니 뉴욕주립대학 보건환경연구소를 지원한 '퓨 자선 기금'을 겨냥했다. 그들은 퓨 자선 기금을 "공격적이고 반기업적인 미국 환경 단체"로 매도했고 <뉴욕타임스>와 <옵서버> 등이 그들의 보도 자료를 받아 이 비 정파 자선 단체를 "호주머니 두둑하고 공격적으로 정치적 주장을 펼치는 기관"으로 몰아갔다. SQS 곁에는 미국연어협회(SOTA),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양식업인식증진협회(SPAA) 등이 있었고 그들은 이런 본질을 빗겨간 헐뜯기로 논문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하고 흠집을 내 사건을 축소하고 더는 이슈화하지 못하도록 차단했다.
지난 4·27 재·보궐 선거에서도 우리는 그런 수법의 고전적인 사례들을 날것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불법 전화 부대들이 조직적으로 동원되고 중앙 공무원이 선거에 직접 개입한 비리들이 명백히 드러났는데도 무시하거나 상대방의 사소한 잘못을 부풀려 맞불을 놓고 물 타기를 해서 초점을 흐리고 이슈화를 가로막는 데 앞장선 유력 언론들.
연어 문제가 진행되는 동안 전 세계 유명 언론들이 받아 적은 수많은 논평을 쏟아낸 과학자들 중 한 명인 찰스 산테르. 언론은 그를 퍼듀 대학 식품영양학과 겸임교수이자 PCB 검출 전문가로 소개했을 뿐, 그가 미국연어협회 유급 컨설턴트라는 사실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생태 환경 분야의 고전, 테오 콜본의 <도둑 맞은 미래>(권복규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가 출간되자 이에 대적했던 미국곡물보호연합, 미국플라스틱협회가 배포한 소속 전문가 명부에도 이름이 올라 있었다. PCB가 암을 일으킨다는 게 근거 없다고 주장한 스티븐 세이프, 필립 구젤리언 등 많은 반환경·친기업 포럼 과학 전문가들도 거기에 들어 있다. 산테르와 함께 이들이 과학 자문역을 맡고 있는 미국과학보건협회에는 네슬레, 맥도날드, 코카콜라, 몬샌토, 엑손모빌, 화이자 같은 대기업들이 후원금을 내고 있다.
양식 연어가 안전하다는 글을 <스코츠먼>에 실은 고든 벨과 더글러스 타커는 스코틀랜드 스털링 대학 연구소 재직자들인데 스털링 대학 연구는 자연환경연구위원회(NERC)의 LINK양식업계획에서 연구비를 받았고 그 비용의 50%는 양식 업계가 직접 지원했다. 양식업인식증진협회가 동원한 풀뿌리 시민단체 '퍼스트 달러'의 설립자 린 브런트는 협회 설립자 겸 부회장이고 함께 동원된 홍보 회사 그린스피리트 스트래티지의 직원이며, 세계 최대의 초국적 어류 양식 회사인 팬피시 캐나다의 사내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다. 따라서 제3자로 활용한 퍼스트 달러도 풀뿌리를 가장한 업계 위장 단체다. 업계는 또 'www.pcbfarmedsalmon.com'와 같은 가짜 웹사이트를 여러 개 만들어 연어와 PCB에 관한 허구를 퍼뜨렸는데, 예컨대 이런 식이다.
"PCB와 유사 화합물은 환경에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숨 쉬는 공기에도, 마시는 물에도, 먹는 음식에도 들어 있다. (…) 이것들을 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별 것 아니다, 이런 정도로는 이제까지도 무사했고 앞으로도 무사할 것이니 안심해도 된다는 얘기다. 후쿠시마 사고 뒤 사고 핵 발전소 주변은 물론 한반도 전역에서도 검출된 요오드와 세슘 등 방사능 물질이 원래 자연 속에도 들어 있는 것이고 안전 기준치를 밑도는 것이어서 걱정할 것 없다고 일본 정부는 계속 거짓말을 했고, 한국 정부는 거기에다 편서풍까지 불 것이니 더욱 안심해도 된다는 거짓말을 보탰다.
어쨌든 권위 있는 학술지 논문이 장기적으로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건강한 삶을 위협할지도 모른다고 지적한 스코틀랜드 양식 연어는 공공 보건보다는 기업과 지역경제 요구를 우선한 업계와 홍보 업체와 정부 기관과 언론과 과학자들의 십자포화 지원 속에 제대로 사실 규명도 없이 5개월 만에 훌륭한 안전 식품으로 복귀했다. 선두 주자 SQS의 거짓 정보 퍼뜨리기 캠페인을 떠받쳐준 크롬 컨설팅에겐 국제 홍보 협회가 주는 국제 홍보상까지 주어졌다.
기업이나 권력이 기득권을 보호·확장하기 위해 주로 언론 매체를 동원해 자행하는 이런 정보 조작이 '스핀(spin)'이다.
책 제목의 <스핀 닥터>는 이 스핀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 언론·홍보 비서관이나 담당자를 가리킨다. 책의 원제 "Thinker, Faker, Spinner, Spy-Corporate PR and the Assault on Democracy"에는 스핀 닥터라는 말이 없지만 이 책 기획자들은 스핀 닥터, 특히 기업의 스핀 닥터가 하는 역할에 주목했다.
그것은 기획자들이 얘기하는 이 책의 출간 목적-"우리는 권력 집단이 지각과 믿음, 궁극적으로는 행동을 조작하는 정보 조작에 뼛속 깊숙이 중독되어 있으며, 그 때문에 우리 모두가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할 것이다"-을 달성하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키워드다. 부연하자면, 기획자들은 부도덕하고 비참하고 지리멸렬한 지금 세상을 해체하고 제대로 된 세상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경제적 민주주의도 이룩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업 권력을 격퇴하고 정부 기관과 공공 서비스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기업의 영향력을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류 언론들은 이런 일에 관심이 없다. 감시하고 고발해야 할 대상과 공생하는 그들에겐 그게 곧 자신들에 대한 감시와 고발이 될 테니까.
그 싸움은 "쉽진 않지만 가능하다"고 본다. 그들은 이 싸움의 핵심을 '사상 투쟁'이라 부른다. 기업 권력의 첨병이자 신자유주의 혁명을 가능케 한 홍보 산업, 즉 책 제목에 들어 있는 모사꾼, 사기꾼, 스핀 담당자, 스파이(기업 권력이 시민단체를 분쇄하기 위해 침투시킨 스파이)들이 권력과 자원을 독차지하려는 사회적 투쟁에 동원한 사고·사상을, 이번엔 거꾸로 그들과 신자유주의 혁명을 분쇄하기 위해 동원하는 것. 방법은 먼저 그들의 정체와 속임수, 날조, 정보 조작을 인식하고, 그 다음엔 폭로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그들의 비리를 폭로했으면 그것을 불법화하고 근절하기 위한 실천적 행동에 나서야 한다.
<스핀 닥터>는 바로 그걸 위해 만든 책이다. 데이비드 밀러와 같은 대학 동료 교수 윌리엄 디난 등이 이 싸움을 구체화한 첫 작업이 2004년에 만든 기업 홍보와 정보 조작 감시 비영리 웹사이트 스핀워치였다. 그해 11월 그들은 글래스고에서 '기업 정보 조작 학술 대회'를 열었고 그때 참여한 활동가들의 발제문을 묶은 것이 이 책이다. 스핀워치가 낸 첫 책이다.
'제3의 길'이라는 말의 유행과 더불어 한때 시대의 총아가 됐던 영국의 전 총리 토니 블레어의 영국 노동당이 그 이름과는 달리 노동자가 아니라 거대 기업을 위한 정당으로 어떻게 탈바꿈했는지, 그리고 신노동당의 기수 블레어가 왜 '조지 부시의 푸들'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됐는지를 추적해 들어가면 거기에도 역시 기업과 홍보, 거기에 동원되거나 그것을 이용한 정치권력과 전문가들이 도사리고 있다.
1980년대 대처의 보수당 우파 정부는 이른바 '영국병'을 노동당 등 좌파 세력 탓으로 돌리면서, 역시 영국 좌파 세력이 미국 자본의 이익과 미군 기지의 안전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고 본 미국 레이건 공화당 보수 정권과 공모해 노골적인 좌파 전복 작전을 감행한다. 신자유주의 전쟁과 '보수주의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 영국 정보기관 MI6와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깊숙이 개입해 제임스 골드스미스, 루퍼트 머독, 조지 갤럽, 대니얼 벨, 앤서니 기든스, 어빙 크리스톨, 필립 보빗, 이언 하그리브스, 찰스 윅 등의 유명한 신자유주의자들과 냉전주의자들, '계승자 세대를 위한 영미 프로젝트(BAP)' 등 범 대서양주의 이데올로그들을 엮어 대처주의를 옹호하는 영국·미국 우익 네트워크 곧 반좌파 연대를 결성한다. 그때 핵심 역할을 한 영국 싱크탱크가 데모스와 메저닌인데 최대 후원사 셸과 코카콜라, 영국핵연료공사, 모건 스탠리, 마이크로소프트, <파이낸셜 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를 소유한 미디어 그룹 피어슨, 홍보회사 힐 앤 놀턴과 버슨 마스텔러, 해리티지 재단, 포드 재단, 록펠러 재단, 카네기 재단 등이 거기에 연결돼 있다.
독일에서 시작된 노동 시장 규제 완화, 대학 교육 유상화, 세금과 복지 프로그램 축소, 사회보장제도의 민영화 등 한국 보수 언론들이 뻔질나게 선전해온 신자유주의적 개혁 시도, 그것을 추동하고 있는 시민단체 '신사회적 시장경제', '시민대회' 등에도 경제사회연구소 따위의 싱크탱크나 컨설팅회사, 베텔스만 재단, 민간 은행과 보험 회사에 엄청난 이익을 안겨줄 연금제도 민영화를 지지하는 독일연금연구소 등이 버티고 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등의 신문과 텔레비전이 거기에 가담한다.
브뤼셀에 있는 유럽위원회와 유럽이사회, 유럽의회 복도에는 수만 명의 기업 로비스트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유럽 정책 입안 및 집행자들과 라운드테이블에 함께 앉기도 하는 그들은 '로비크라시'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유럽의 정책 전환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변호사 김용철이 폭로한, 굳이 대행사나 로비스트를 동원할 필요조차 없는 직접적 매수 행위가 판치는 대한민국과 달리 그래도 유럽에는 죽여 없애야 할 민주주의가 남아 있는 모양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재앙을 경고하는 '북극 기후 영향 평가단' 주장에 오류가 있다고 딴죽을 건, 진보적 신문으로 알려진 <가디언>의 과학 담당 편집장이자 기후 변화 전문 기자 팀 래드퍼드가 인용한 반대 보고서는 초당파 비정부단체를 표방하는 '국제 정책 네트워크' 작품이다. 하지만 래드퍼드는 중립적으로 보이는 그럴싸한 이름의 그 네트워크가 기후 변화를 믿지 않는 전문가들의 집결지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으며, 그 재정 후원자가 기후 변화를 억제하기 위한 국제적 움직임이 본격화할 경우 가장 큰 손해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농후한 거대 석유 업체 엑손이라는 사실도 밝히지 않았다.
엑손은 화학 업계의 위장 단체 '아프리카 말라리아 퇴치 연합'도 후원하고 있다. 인도와 아프리카의 굶주린 대중들이 "우리도 신기술, 특히 생명공학 기술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며 유전자 변형 곡물과 살충제 사용을 부르짖게 만들고, 거기에 반대하는 생태·환경 운동가들을 오히려 "치명적인 생태 제국주의자들"이라 매도하게 만든 거대 홍보 대행사 버슨 마스텔러 뒤에는 몬샌토와 다우 등 초국적 생명공학 산업체들이 버티고 있다.
그들은 유전자 변형 산업을 지지하는 것이 영국 과학과 경제를 지지하고 살리는 것이라는 등식을 만들었다. 황우석의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는 것이 한국 과학과 경제를 지지하고 살리는 것이라고 했던 미친 애국 열풍 뒤에는 누가 버티고 있었을까. 그들을 대행한 스핀 닥터는 누구였나. 중남미 준 군사 패거리들을 매수해 현지 공장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죽이는 야만을 자행하면서도 착취자가 아니라 구세주로 군림하는 코카콜라, 엄청난 돈벌이에 방해가 되는 무기 거래 반대 시민단체를 감시하고 파괴하기 위해 스파이들을 침투시키는 군수 업체들, 이를 측면 지원하는 영국과 미국 정보기관들, 타국 경제 개혁과 선거에 개입해 영미식 신자유주의 아류 체제들을 양산해온 CIA의 역할을 대체해가고 있는 '민주주의를 위한 국가원조기금 NED'.
<스핀 닥터>의 추적은 구체적이고 다양하면서도 얄팍하지 않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