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안정 대책 수립을 목적으로 운영된 만큼 서민들의 관심이 높았다. 때맞춰 7일부터 정유 4사가 기름 값을 리터당 100원씩 낮춘다는 '희소식'을 발표했다. 그러나 곧바로 국민들, 특히 자가용 이용자들은 정유사와 주유소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예정된 수순을 밟고 있다. TFT가 애초에 배제했던, 유류세 문제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유류세 인하는 많은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소비자시민모임의 '석유 시장 감시단'이 앞장서고 있다. 물론 정유사들과 산업계 역시 석유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는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정부와 정유 업계는 기름 값 문제가 터질 때마나 핑퐁게임을 하면서 우리 사회의 '석유 중독'을 심화시켰다. 이명박 정부는 불행하게도 고유가에 발목이 잡혔다. 물론 고환율 기조로 이를 자초하기도 했다.
레임덕을 돌파할 요량인지, 아니면 물가 상승을 억제할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올해 1월 "기름 값이 묘하다"는 대통령의 묘한 말을 시작으로 정부는 '사회주의적' 또는 '관치' 기조를 강하게 내비쳤다.
"세전 휘발유 가격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다." "정유사 영업이익률 3%는 절대 낮은 편 아니다." "정유사 가격 적정선에 대한 결론을 내겠다." 실세 장관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TFT 발표 즈음해서 정유사는 정부에 '성의 표시'를 하고 정부에 공을 넘겼다.
정부 발표와 업계의 대응을 보고 있자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 같다. 대부분 별 실효성이 없는 대책들이다. 2009년에 석유 시장에 불개입 원칙을 밝힌 것에 비하면 진전됐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변죽만 울린 셈이다. 정유사 폭리로 연결되는 '비대칭성'을 확인했고, 그 원인으로 석유 시장의 과점 구조, 수직적인 유통 구조로 인한 가격 경쟁 제한을 지적했다. 그럼에도 기업들에게는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서민 대책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다.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 듯한 정유 업계의 대응도 그렇지만,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제시하지 않았다. 굳이 찾자면, 유가 추이를 고려해 유류세 인하를 검토하겠다는 정도이다.
유류세는 대선의 주요 공약으로 나올 정도로, 꽤나 중요한 이슈다. 2007년으로 거슬러 가면, 이명박, 정동영 후보가 앞 다퉈 유류세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환경 후보'라는 문국현 씨는 심지어 30% 인하를 주장했다가 수습이 불가능해지자 바로 철회했다.
이번 고유가 국면에서도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소극적 입장이지만(동남권 신공항 공약처럼 지키지 않길 바란다), 야당은 서민 살리기 차원에서 적극적이다. 민주당은 정부의 탄력세율(시행령) 인하 대신에 기본세율(법률)을 내리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여기에 소비자 단체와 경제계도 합세하니 정부가 벼랑 끝에 몰린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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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유류세 자체는 종량세로 가격과 상관없이 리터당 일정으로 책정되므로 유가 상승과는 관계없이 일정하다. 시세에 따라 세금 변동이 나타나는 것은 부가세 같은 종가세 때문이다(주요 국가들 역시 종량세가 기본이고 종가세를 추가한다). 물론 유가 상승의 폭에 따라 최종 판매가가에 대한 소비자의 체감도는 더 커질 수 있다.
세금 부담에 대한 국가 간 비교를 위해서는 국민소득, 경제 구조, 세목 간 구성 비율, 조세부담률, 환경세적 속성 등 복합적인 항목을 검토해야 한다. 조세연구원 등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비교적 낮은 수준이다. 상이한 기준과 계산으로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간다 하더라도, 에너지 저감과 환경 비용 내부화를 위한 가격 조정의 필요성이 사라지지 않는다. 복지예산이 낮아 선진국 수준으로 올릴 것을 주장하는 판에, 선진국 수준(?)인 유류세를 낮출 이유는 없다.
같은 고유가에도 불구하고 주요 국가들은 유류세를 인하하기 보다는 이를 개편해 환경 개선, 기후 변화, 고유가 지속 등을 염두에 두고 에너지 복지와 생태적 전환을 위한 재원으로 쓰는 추세이다. 정부의 '저탄소 녹색 성장'이 물을 흐려놓긴 했으나, 이러한 녹색 전환 흐름에 한국 역시 동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08년 유류세 10% 인하의 경험도 썩 좋지 않았다. 유가가 계속 상승하면서 실제 소비자가 체감한 가격 인하 효과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소득 순위 하위 10%는 가구당 8000원, 상위 10%는 5만1000원의 혜택을 얻었다는 조세연구원 평가와 같이, 사회 양극화를 부채질 한 꼴이 돼 버렸다. 물론 정유사와 주유소의 이익이 증가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전 국민 감세인거 같지만, 실제로는 가진 자들을 위한 감세로 기능했다. '서민 감세'가 아닌 '부자 감세'인 것이다.
고유가는 이제 일상이다. 그럼에도 자동차 판매는 늘고 있고, 대형차 소비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 고유가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에너진 전환과 교통 전환밖에 없다. 그런데도 유류세만 가지고 늘어지다가 나중에는 유류세 폐지까지 주장할 건가? 우리는 8000원이 아닌 더 큰 것을 요구해야 한다.
유가 환급 방식 역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지원 대상과 지원 규모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류세 인하보다야 낫지만 이러한 소득 보전 경험이 좋지만은 않았다. 정작 환급 받아야 할 저소득층이 배제된 것도 문제지만, 막대한 재원(2008년 당시 3~4조 원)이 일회적인 이벤트에 그쳤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때 (저소득층과 영세 자영업자) 소득 보전과 에너지 전환에 대해 중장기적인 비전과 로드맵을 세우고 충분한 재원을 마련했다면, 지금과 같은 불필요한 논란과 사회적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교통·에너지·환경세의 80% 가량은 도로 건설, 4대강, 민원성 사업을 비롯한 대형 토건 공사를 떠받치고 있다. 국세의 10%가 넘고 '가장 편하게 걷는 세금'이라는 유류세의 세출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한다. 각국이 환경세, 에너지세, 탄소세를 강화하는 배경을 이해하고, 우리 사회도 기후 변화 대응, 대중교통 활성화, 에너지 복지 증진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끝으로 두 가지를 제안해 본다. 2007년 민주노총 화물연대와 전국건설노조는 정유사들을 상대로 가격 담합에 따른 손해 배상 소송을 했다. 소비자 운동도 정유사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싸우길 기대해 본다.
정유사들의 폭리 시비는 다른 국가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노르웨이 등에서 제도화되었거나 논의 중인 에너지 기업에 대한 횡재세(windfall tax)나 로빈 후드 세(robin hood tax)를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헝가리는 2009년~2010년에 저소득 가구의 에너지 비용 상승 대책으로 에너지 공급 및 거래 회사에 이 같은 세금을 도입했다. 국내 '에너지 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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