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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이건희가 당신의 몫을 훔쳤다!

[프레시안 books] 알페로비츠·데일리의 <독식 비판>

지식 기반 사회는 독식 사회?

우리는 불공정한 사회에 살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공정 사회'의 달성을 국정 목표로 제시하였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정운찬 전 총리는 재벌계 대기업의 이익 독식을 막고 협력 중소기업들과 이익을 공유하자는 제안을 하여 뜨거운 논란을 벌이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진보 진영이 '복지 국가'의 달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그 실현을 위해 부유세와 사회보장세 그리고 소득세 및 법인세의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또 어떤 이들은 '공정 국가'의 실현이 가장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토지 소유자 및 건설족들 같은 불로소득자들에게 중과세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듯 부와 소득의 공정한 분배는 우리 사회의 초미의 관심사이다. 그리고 미국의 진보적 연구자들인 가 알페로비츠와 루 데일리의 <독식 비판>(원용찬 옮김, 민음사 펴냄)이 다루는 주제 역시 바로 오늘날 미국 사회에-그리고 한국 사회에-만연한 부와 소득의 엄청난 불평등이 다.

▲<독식 비판>(가 알레로비츠·루 데일리 지음, 원용찬 옮김, 민음사 펴냄). ⓒ민음사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른바 지식 기반 사회이다. 즉 우리는 다니엘 벨과 앨빈 토플러 그리고 피터 드러커가 약속한 지식 기반 사회에 살고 있다. 그들은 분명 이제는 소유(자본)와 노동이 아니라 지식이 부의 원천이며, 지식과 정보가 부의 원천이 되는 지식 기반 경제에서는 노동과 자본, 부자와 빈자 간의 대립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물론 장하준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김희 정·안세민 옮김, 부키 펴냄)에서 이미, "우리는 탈산업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세탁기가 인터넷보다 세상을 더 많이 바꾸었다"는 등의 테제를 통해, 앨빈 토플러와 피터 드러커 등의 지식 기반 경제론의 비현실성을 비판한 바 있다.

아무튼, 우리가 현재 보다시피 지식 경제론자들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세상이 더 지식 기반 경제에 가까워 갈수록 소득과 부의 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세상은 더욱 더 불공정해지고 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 일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이 책은 바로 그와 같은 의문을 가진 독자들의 궁금증을 조금 풀어준다. 특히 한 때 '탈산업 사회'와 '신경제', '지식 기반 경제' 등등의 담론에 열광했던 독자라면, 그러면서도 소득과 부가 '공평'하고 '공정'하게 분배되는 세상을 원한다고 스스로 믿는 독자라면, 마땅히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노동과 사유 재산 : 존 로크와 데이비드 리카도

이 책의 진짜 백미는 제2부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따라서 독자들은 제1부보다는 제2부를 먼저 읽어도 무방하다.

제2부에서 저자들은 먼저 "공짜 점심은 없다"며 복지 국가를 분쇄하는데 앞장섰던 자유 시장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을 반박하기나 하듯이 "공짜 점심은 널려 있다"는 경제사학자 조엘 모커의 지적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공짜 점심(불로소득)의 문제야말로 지난 300년간 자본주의 역사에 있어 핵심적인 정치경제적 논쟁 지점이었음을 상기시킨다(106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배의 공정성, '응분의 보상'의 기준은 바로 '노력의 대가(earned)'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불로소득이란 그렇지 않은 부당한 보상(undeserved)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불공정한 소득 분배에 관한 철학 사상과 사회 비평의 역사는 길다.

먼저 기독교 성경은 "그들이 심은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 하리니"라고 썼으며, 영국 청교도 혁명의 사상가인 존 로크는, 노동에 의한 소유 및 소득(즉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원칙)을 정립하였다. 로크는 자신의 노동으로 창조한 가치로부터 이득(소득 및 소유)을 얻는 인간의 자연권이야말로 모든 사유 재산의 근본적인 윤리적 기초라고 주장했다(110쪽).

19세기 들어 데이비드 리카도는 존 로크의 논의를 더욱 발전시킨다. 특히 리카도는 차액 지대론을 통해, 나폴레옹에 의해 선포된 대륙 봉쇄령(강제된 보호 무역주의)에 의해 발생한 영국의 곡물 가격 폭등으로 이익을 얻는 농업 지주들을 비난하면서, 지주들의 불로소득을 비난했다. 왜냐하면 농업 지주들은 곡물 가격이 올라가는데서 아무런 노력도, 투입도 하지 않았는데도 앉아서 횡재를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리카도는 지주들의 불로소득 (차액 지대)을 없애기 위해서는 곡물을 자유롭게 수입하여야 한다는 자유 무역주의를 주장했다.

리카도의 지적은 우리나라의 1970~80년대를 상기시킨다. 우리나라는 당시 전자 제품 및 자동차 국내 시장을 보호하는 보호 무역 조치를 시행했고 이를 통해 당시의 신생 기업들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이 국내 시장에서 '불로소득'을 획득하도록 정부가 의도적으로 지원하였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들 회사로부터 불로소득을 환수하기 위해 법인세를 더 많이 거두는 것은 '공정 사회' 원칙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토지 소유자의 불로소득 : 헨리 조지와 한국의 진보적 '자유 시장' 이론가들

19세기 초반 영국의 리카도가 비교우위론(영국의 농업 포기 정당화 이론)과 함께 농업 지대(차액 지대) 이론을 발전시킨데 반하여, 19세기 후반 미국의 헨리 조지는 공업화 및 도시화에 따른 도시의 토지 가격 및 지대의 상승에 따른 불로소득 상승을 비판하는 이론을 전개하였다.

도시의 토지 가격 및 지대(rent)는 경제 발전과 산업화에 따른 인구 증가와 인구의 도시 집중에 따라 급격하게 상승한다. 그리고 도시의 부동산 보유자들 역시 아무런 노력 및 자기 투자도 하지 않은 채 인구 증가 및 도시 집중화에 따른 막대한 불로소득(시세 차익 및 임대 소득)을 획득한다.

자유 무역 및 자유 시장을 옹호하기 위해 농업 지주의 불로소득을 비판했던 자유시장의 이론가 리카도와 마찬가지로, 헨리 조지 역시 자유 시장(free market) 즉 사유 재산제 및 자본주의 기업 제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면 토지 소유자들의 불로소득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23쪽). 그리고 이를 위해 헨리 조지는-무역 자유화를 주장했던 영국의 리카도와는 달리-토지 소유자들의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국가의 강력한 조세 정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즉 헨리 조지는 개인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등과 같은 세금은 폐지하고 그 대신 단일세인 토지 보유세를 징수함으로써 토지 관련 불로소득을 환수한다면 '시장의 자유' 즉 '자유 시장'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자유 시장'을 옹호하고 '토지 불로소득'은 비판하는 헨리 조지의 (그리고 리카도의) 입장과 견해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그것은 토지+자유 연구소 소장 남기업,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 선대인 그리고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김대호 등에 의해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는 당연히 (자유 무역을 포함한) '자유 시장' 그 자체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와 직접적으로 부딪친다.

자본가의 불로소득과 누진 소득세, 복지 국가 사상

다른 한편, 19세기 후반 이래 영국과 미국, 그리고 유럽 대륙에서는 토지 소유자 계급의 불로소득만이 아니라 자본가 계급이 획득하는 막대한 불로소득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된다. 이는 가령 미국의 경우 록펠러와 카네기 가문과 같은 산업 자본가 계급이 성장하고 경제를 주도함에 따라 이들의 부와 소득, 권력이 전통적인 토지 소유자 계급의 그것을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공업화를 일찍 완료한 영국에서는 산업 자본가와 산업 노동자 간의 소득과 부를 둘러싼 갈등이 이미 19세기 중반부터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이 시기의 경제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은 오늘날 현대 경제학에서 나오는 지대(rents)의 범위를 토지 소유와 무관한 영역에까지 확대시킨다. 그에 따르면 지대 불로소득은 "개인이 순전히 단독 활동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는 모든 소득"이다. 따라서 그의 논리를 따르면, 산업 자본가의 소득 역시 지대로 간주할 수 있게 된다.

1906년에 집권한 영국의 자유당은 불로소득의 개념을 확장하여 산업 자본가들이 획득한 부와 소득도 불로소득으로 규정한다. "산업 시스템에 의해 창출된 불로소득의 크기는 토지 소유자에게서 발생한 것보다 훨씬 크다"고 당시 영국 자유당의 경제 이론가인 홉슨은 주장하였다(124쪽). 그리고 홉슨은 리카도(그리고 헨리 조지)와 존 스튜어트 밀이 발전시킨 지대의 개념을 더욱 확장하여, 토지 소유와 관련되지 않는 '산업 지대'(산업 자본가들의 불로소득)가 더욱 큰 문제라고 주장하였다(125쪽).

그리하여 총리 로이드 조지와 경제 사상가 홉슨, 레너드 홉하우스 등이 이끌었던 20세기 초반의 영국 자유당은 역사상 최초로 상위 소득자에 대한 누진 과제(누진 소득세)를 도입하였고, 또한 누진 상속세도 도입하였다(126쪽). 당시 자유당 정부의 장관이었던 윈스턴 처칠 역시 토지 소유자 및 자본가들의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를 찬성했다. 이렇듯 20세기 초반 들어 기존의 '고전적 자유주의'(즉 '자유 시장' 만능주의)를 반성하고 '사회적 자유주의'로 방향 전환한 당시 영국 자유당의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이가 바로 경제학자 케인스였다.

1920년대에 영국의 노동당을 설립한 시드니 웹 역시 개인의 노력이 아닌 외부적 기회 요인(경제학에서 말하는 '외부성')에 의해 큰 돈을 번 미국의 록펠러 등 자본가들에 대한 누진적 소득 과세와 함께 이렇게 거둔 세금을 사회 복지 정책에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1930년대에 뉴딜 정책을 펼친 미국의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역시 록펠러와 모건 등 대자본가들에 대한 누진 과세를 통해 이들의 불로소득 즉 사회적 지대(social rents)를 환수하였으며 이를 재원으로 하는 사회 보장 제도를 대폭 확충하는 복지 국가 정책을 전개하였다(129쪽).

더구나 프랑스 제3공화국의 정치가 레옹 부르주아가 다듬은 사회연대주의(solidarism)의 철학은 부르주아 계급의 소득과 재산에 대해 누진세를 부과하여 조성된 재원으로 복지 국가 정책을 펴는 것이었는데, 이것은 이후 미국의 뉴딜 정책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기술 발전의 집단적, 사회적 성격과 불로소득

이제 이 책의 앞부분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 책의 앞부분인 제1부는 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첫째 주제는 로버트 솔로와 에드워드 데니슨 등이 발전시킨 성장 회계(growth accounting)를 중심으로, 경제 성장에 있어 노동 또는 자본의 투입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나머지(잔차) 부분이 주로 기술 발전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는 경제학자들의 발견이다.

성장 회계 및 나머지(잔차 즉 총요소 생산성)에 관한 저자들의 이와 같은 주장은 우리에게도 이미 낯익다. 노무현 정부는 한 때 우리나라가 1998년 이래의 '자유 시장' 개혁 덕택에 '혁신 주도형 경제 구조'(지식 기반 경제 구조)로 전환하는데 성공하였으며 그 결과 한국 경제의 성장 패턴은 자본 및 노동의 추가 투입과 같은 전통적인 '요소 투입형 성장'이 아니라 기술 혁신과 같은 '총요소 생산성 증가' 형으로 전환하였다고 자화자찬하곤 했었다. (총요소 생산성 위주 성장론에 대한 나의 비판은 <쾌도난마 한국 경제 >(부키 펴냄)를 읽어 보시기 바란다.)

그런데 저자들이 제1부에서 정말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기술 발전이 경제 성장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로버트 솔로의 경제 성장 회계 모델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이처럼 중요한 기술 발전이 영웅적인 개인적 발명가 또는 발명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영역에서 무수한 개인들에 의해 집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기술 발전이 집단적 또는 '사회적'(협력적)이라는 점이야말로 저자들이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점이다.

저자들이 이렇듯 경제 성장에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한 기술 발전이 영웅적 개인들의 발명 및 발견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집단적, 사회적, 공공적으로 활동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점을 유별나게 강조하는 까닭은 바로 이것이 '분배적 정의'의 문제 즉 무엇이 공정한 분배인가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만약 부와 소득 증대의 원천인 기술 발전이 빌 게이츠와 스티븐 잡스와 같은 영웅적 개인의 활동보다는 사회 전체의 집단적 활동의 기여에 의해 이룩된 것이라면, 빌 게이츠 또는 스티븐 잡스보다는 사회 공동체 전체야말로 그렇게 창출된 부와 소득의 가장 큰 몫을 분배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부의 압도적 원천인 지식은 우리 자신의 노력을 하나도 거치지 않은 채 우리에게 그냥 다가온 것들이다. 이들은 과거의 너그럽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불로 선물이다. 모커의 말대로 '공짜 점심'이다."

오늘날 미국의 상위 1%가 미국 전체의 하위 1억2000만 명보다 더 많은 소득을 얻는다. 최고 부자 가구 1%는 모든 가계 투자 자산(주식, 채 권, 펀드, 부주거용 부동산)의 절반을 소유하고 있다. 저자들은 묻는다. 만약 미국의 거대한 부가 대체로 과거가 선사한 '공동의 선물'이라면 과연 이러한 불균형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과연 이것이 공정한가?

불로소득의 환수와 공정한 분배를 위한 '철학 노트'

이 책에는 "추가적 논의를 위한 철학 노트"(165쪽 이하)를 부록으로 담고 있다. 이 철학 노트의 목적은 '분배적 정의'에 관한 기존의 여러 이론들과 저자들이 전개하는 '기술 지식 공동 재산 이론'과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밝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 롭다고 할 수 있다. 저자들은 기존의 분배적 정의 이론으로 네 가지를 든다. 첫째는 존 로크, 데이비드 리카도, 헨리 조지 등에 의거하는 '노동에 따른 소유 및 분배'의 이론이다. 그리고 이 이론이 영국 자유당 및 노동당, 그리고 미국 뉴딜 정책의 정치경제학 사상으로 이어진다는 저자들 의 지적은 흥미롭다. 사실 저자들 역시 이 첫 번째 견해를 지지한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이론은 로버트 노직으로 대표되는 '자유(자유 시장) 지상주의'와 그리고 이와 긴밀하게 결합된 '한계 생산성 이론'이다. 저자들은 이들 이론들에 내포된 자가당착과 순진성("순진한 생산성 윤리학")을 비판한다(182쪽). 참고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이승훈은 한계 생산성 이론의 관점에서 현재 복지 국가론 및 부자 증세론을 비판하고 있다.

네 번째 이론은 롤스의 정의론인데, 저자들은 롤스의 사회계약론을 비판한 마이클 샌델의 공동체론을 지지하면서, 개인주의적 관점에 선 롤스와는 달리 마이클 샌델은 "어째서 공동체가 개인들의 특수한 재능을 발휘하여 얻게 되는 이익(소득과 부)에 대해 적극적 권리를 할 수 있는지"를 밝혔다고 주장한다(187쪽). 즉 현대의 지식 경제(즉 기술 문명)를 인류 공동의 공동체적 유산으로 보는 저자들의 관점에 롤스의 정의론보다는 마이클 샌델의 공정론이 더욱 부합한다는 것이다.

현대 경제학의 한계와 소득 분배의 공정성

1970년대 이래 케인즈 경제학을 비판하며 등장 한 시카고 학파의 경제학은 소득 분배의 불평등과 그로 인한 수요 부족 같은 문제들보다는 장기적 경제 성장 및 그에 있어 기술 혁신의 역할과 같은 공급 측면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다.

특히 로버트 루커스 같은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폴 로머와 리처드 넬슨, 네이선 로젠버그 등이 발전시킨 '기술경제학'과 결합되어 지식 기반 경제의 경제학을 발전시켰다. 그렇지만 이들 경제학은 과학, 기술, 문화 등의 지식을 '공동의 유산'이라는 입장에서 제기하여 '평등'(특히 소득 및 부의 평등)의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아직 없었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로버트 솔로와 케네스 애로, 조지 에컬로프, 조지 스티글러 등 많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을 등장 시키면서 이들의 견해를 저자들의 논의 속에 녹아내 결합시킨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과연 저자들의 논의가 성공했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설령 경제 성장과 부의 원천인 기술 발전이 인류 공동의 유산(재산)인 과거의 기술을 토대로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러한 인류 공동의 기술 문명이 오늘날 '공짜 점심'으로 획득되어 빌 게이츠와 스티븐 잡스, 이건희와 같은 산업 자본가들이 독식하는 '불로소득'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그들의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를 정당화시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저자들의 논리는 과거의 기술적 성과(인류 공동의 유산)를 공짜로 이용하는 것을 막고 유료로 사용하게 하여야 한다는 주장 즉 '지식 소유권(사유 재산권) 강화'의 논리로서 '자유 시장'의 경제학자들에 의해 곧바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날의 경제가 지식 기반 경제로 바뀌었다는 저자들의 견해 역시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저자들 역시 지난 100년에 걸친 미국 경제 성장의 80%를 노동 및 자본의 투입보다는 기술 발전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는 기존 연구를 인용하는데, 이것은 곧 미국 경제가 (1990년대부터가 아닌) 이미 100년 전부터 지식 기반 경제였음을 방증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많은 경제학적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 사회에서 초미의 관심사인 '분배의 정의'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는 잊혀진 고전적 견해들, 즉 존 로크와 데이비드 리카도, 프루동과 존 스튜어트 밀, 그리고 헨리 조지와 홉슨, 시드니 웹 등의 견해들을 되살려 놓았다는 점에 서 매우 중요하다. 독자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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