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 유난히 추웠다. 올 여름에는 정말 더웠다. 그 어느 때보다 열대야에 시달려야 했다. 춥고, 덥고, 비오고, 바람이 부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2010년 한국인들은 온갖 재난 위협에 마음을 졸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런 재난은 인명 피해와 함께 각종 재산 피해뿐만 아니라 농작물 피해로 인한 각종 채소와 과일 가격 상승까지 걱정하게 만든다.
이런 태풍이나 폭염, 호우 외에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별로 걱정을 하지 않지만 지진, 화산 폭발, 지진해일, 자연 산불, 가뭄, 벼락 등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자연 재난은 많다. 현대인은 이런 자연 재난 외에도 테러, 공장 폭발 사고, 대기 오염 물질, 유해 화학 물질, 유해 폐기물, 각종 전염병과 암 등 질병, 술, 담배, 교통사고 등등과 같은 사람이 만들어낸 위험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다.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어 이를 모두 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위험이 가장 많은 생명과 건강을 앗아가는지, 또 사회·경제적 손실을 주는지를 꼼꼼히 따져 각 개인과 공동체, 사회, 국가, 나아가 지구촌이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 자세다.
문제를 한 번 내 보겠다. 다음에 열거하는 것 가운데 앞으로 당신을 가장 위험하게 만들 것으로 여기는 위험은 어떤 것인가.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 한국 사회에서 어떤 위험이 가장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찬찬히 생각해보고 각 질문에 하나씩 골라라.
핵무기, 오존, 원자력 발전소, 비행기 사고, 자동차 사고, 오토바이 사고, 자전거 사고, 보행 교통사고, 중금속, 선박 사고, 벼락, 가뭄, 지진, 농약, 유전자 조작 식품(GMOs), 내분비계 장애물질(환경호르몬), 다이옥신, 흡연(간접흡연 포함), 술, 에이즈, 독감, 감기, 신종 플루,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유행성 출혈열, 폐암, 위암, 간암, 전립선암, 자궁경부암, 위암, 췌장암, 대장암, 뇌졸중(중풍), 관상 동맥 질환, 당뇨병, 휘발성 유기화합물, 벤젠, 라돈, 석면, 포름알데히드, 전쟁, 테러, 우울증, 자살, 방사선 조사 식품, 식품 첨가물, 강도, 항생제, 산업 재해, 직업병, 약화사고, 마약, 수술 사고, 버스 폭발, 고감미료, 화재, 실내 안전 사고, 치매, 결핵, 식중독, 자외선, 전자기장, 전자파, 아황산가스, 미세먼지.
개인적으로 가장 위험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마다 크게 다를 수 있다. 청소년은 교통사고나 오토바이 사고, 자전거 사고 등에 더 신경을 쓸 것이고 노인은 우울증이나 치매, 암, 독감, 뇌졸중, 당뇨 같은 만성 질환이나 심혈관계 질환, 그리고 노인성 질환을, 중장년층은 산업 재해, 술, 흡연, 자동차 사고와 각종 암을 위험하게 여길 것이다. 흡연자는 흡연 및 폐암 등 흡연과 관련한 질환에,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간 질환을 비롯한 알코올 관련 질환과 안전사고 등에 더 신경이 쓰일 것이다. 남성은 또 전립선암이나 간암에, 여성은 유방암이나 자궁경부암 등에 관심을 둘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정답이 없다.
두 번째 질문, 즉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위험에 대한 필자의 답은 흡연(간접흡연)이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 흡연을 고르지 않은 분들도 많을 것이다. 다이옥신이나 환경호르몬, GMOs를 고른 분들도 있을 것이다. 당신의 직업과 학력, 전공, 성별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필자가 흡연을 고른 것은 우리나라 암 가운데 사망자가 가장 많은 것이 폐암이고 폐암의 원인 가운데 부동의 1위가 흡연(간접흡연)이기 때문이다. 흡연(담배)은 폐암 외에도 췌장암, 후두암, 구강암 등 각종 암과 호흡기 질환, 심혈관계 질환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킨다. 또 운전 중 흡연으로 교통사고를 유발하기도 하고 산불을 비롯한 각종 화재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흡연을 선택한 또 다른 이유는 흡연으로 인한 의료적 손실과 사회·경제적 손실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조기 사망에 따른 손실과 직간접 비용을 모두 더하면 족히 10조 원이나 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흡연은 중독성이 워낙 강해 강력한 금연 정책을 도입한다 해도 흡연자를 줄이기가 쉽지 않고 당장 흡연자를 줄인다 하더라도 그 효과는 당장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 피해가 여전할 것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담배가 얼마나 중독성이 강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최근 발생했다. 지금 칠레에서는 광산 사고로 33명의 광부가 지하 700m 아래 갱도에 갇혀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벌써 한 달을 훌쩍 넘겼다. 전 세계인들이 이들의 구조 소식을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이 갱도까지 자그마한 구멍을 뚫어 소통을 하고 간단한 물품도 전달할 수 있게 되면서 이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술과 담배였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있으면서도 담배를 피울 수 있게 해달라는 이들의 메시지는 비흡연자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광부 가운데에는 담배 중독자가 많을 것이며 이들은 심각한 금단 증상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들에게 담배는 제공되지 않았다. 흡연 광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담배를 피우면 갱도 내 공기는 심각하게 오염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단 증상을 줄여주는 한 방법으로 니코틴 패치와 껌을 내려 보내기로 했다.
▲ 링거액 주사를 맞고 있는 환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장면을 담은 이 금연 포스터는 담배가 얼마나 중독성이 강한지를 잘 보여준다. ⓒ안종주 |
도박 중독에 빠진 한 중년 여인이 도박으로 돈을 모두 날린 뒤 밤낮 없이 식당에서 힘들게 음식을 나르고 그릇을 치우고서 약간의 돈을 받으면 주말에 다시 도박 모임으로 쪼르륵 달려가 한 순간에 돈을 잃는 일을 반복하다 뒤늦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TV로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적이 있다.
알코올 중독자 또는 알코올 의존증 환자도 마찬가지다. 필자는 오랫동안 대한보건협회가 펴내는 절주(건전 음주) 전문 잡지 <건강생활>의 편집위원장을 맡아오면서 알코올 의존증 환자를 인터뷰할 기회가 많았다. 얼마나 술을 많이 마셨기에 환청과 환시에 시달려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수차례 반복하다가 죽음 일보 직전까지 가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겪은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 듣고서는 중독의 무서움을 새삼 깨달았다.
흡연이 나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지만 주변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이들 가운데 대다수가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길거리를 걸어가면서, 술집이나 식당에서 주위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피운다. 이들에게 도덕심이나 양심에 호소해보아야 십중팔구 소용이 없다. 담배 중독은 알코올 중독처럼 일종의 질환이기 때문이다.
알코올 중독과 담배 중독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알코올 중독자는 술을 마시는 과정에서 인체에 위해한 알코올을 타인에게 직접 전달해주지는 않지만 흡연자의 경우 담배를 피우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생담배 타는 연기와 입에서 내뿜는 담배 연기를 통해 타인에게 심각한 건강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이는 때론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다. 간접흡연 피해는 흡연자는 곧 간접 살인자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 간접흡연의 위험을 경고하는 타이의 금연 홍보 포스터. ⓒ안종주 |
필자가 몇 년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있을 때 건강 검진에 관한 국제 세미나를 하면서 미국의 저명한 보건학자를 초청해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그는 파워포인트로 열심히 미국의 건강 검진을 소개하고 금연과 운동, 조기 검진, 암 검진, 영양 조절 등 건강 증진의 중요성을 차례로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 슬라이드를 보여주면서 조기 건강 검진이나 암 검진, 운동, 식이 등 모든 것을 포함해 이 하나만 실천하면 성공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꼭 실천하기를 당부했다. 그 슬라이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Quit Smo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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