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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곧 그 사람의 본모습이거늘…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양동 마을의 무첨당

지난 7월 31일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 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고택이 있어 아름다운 양동 마을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기계천과 형산강이 만나는 삼거리가 있다. 포항에서 안강으로 차를 몰다보면 이 삼거리 신호등 앞에 머무른다. 왼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두 물이 만나는 편안한 풍광이 아주 멋스럽게 펼쳐진다. 두 물줄기가 만나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하나가 하나를 만나면 다툼이 있게 마련이다. 이것이 세상사다. 그러나 물은 아무런 말이 없다. 기계천과 형산강의 두 물줄기도 서로를 아우르고 다독이며 더 큰 흐름을 만들면서 조용히 낮은 곳으로 흐를 뿐이다. 물이 더 많아졌는데 그러니까 기세가 더 세졌는데도 흐름이 오히려 느려진 것도 의미심장하다.

게다가 물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둥근 그릇에 담으면 물은 둥근 모양이 되고, 주전자에 담으면 주전자 모양이 된다. 이렇게 늘 모양을 바꾸면서도 물은 자기 정체성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불 난 데는 건질 물건이 있지만, 물이 지난 데는 건질 물건이 없다는 말처럼 물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정화한다.

▲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 마을 전경. ⓒ뉴시스

양동 마을로 들어서면 멋스런 고택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나는 외관의 풍경보다 고택에 깃든 정신에 주목하고 싶다.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가옥 구조와 가옥 주인은 서로 닮는다. 그러고 보면 집 짓는 이의 마음이 사람들의 사고와 심리를 지배하고, 결국에는 문화를 만들어 낸다.

한국인만의 질병인 화병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원래 불같은 속성을 가진 한국인은 그를 보완하고자 열린 가옥 구조를 선호했다. 전라남도 담양에 있는 소쇄원(瀟灑園)과 식영정(息影亭)은 자연을 향해서 열린 건축의 대표다. 이곳에는 사람과 자연이 동화하려는 건축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쇄'와 '식영'에 담긴 교훈도 구조와 다르지 않다. '소쇄(瀟灑)'는 송나라 때 명필 황정견이 주무숙의 사람됨을 두고 "가슴에 품은 뜻이 맑다"고 한 말을 양산보가 옮겨 놓은 것이다. <채근담>의 "바람과 꽃의 소쇄로움이나 눈과 달의 맑음은 자연의 참모습을 닮은 고요한 자의 것이다"란 문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식영(息影)'은 노자(老子)가 언급하는 자연과의 동화다. 목적으로 치닫는 삶은 잊고 그림자마저 쉬게 하면서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려는 염원이다. 전라도의 소쇄원과 식영정에서 노자 스타일의 물아일체의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다면, 양동 마을의 고택 무첨당에서는 유가 스타일의 미를 확인할 수 있다.

무첨당의 아름다움도 소쇄원, 식영정에 못지않다. 금방이라도 꽃이 필 듯 윤기가 오른 배롱나무, 모든 것을 자연에 맡겨 연륜이 쌓일수록 운치를 자랑하는 매화나무, 여기에 귓가를 간질이는 바람소리, 기왓장 사이로 떨어지는 빗물소리, 산새의 노랫소리가 조화를 이룬다. 인공과 자연의 완벽한 조화다.

무첨당(無添堂)의 '무첨(無添)'은 "태어난 그대로의 심성을 더럽히지 말라"는 뜻으로 천진난만한 본심을 일컫는다. 집 이름에 당이 들어간 것은 집이 곧 자신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가 완당(阮堂)으로 호를 정한 것도 집을 자신의 육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첨당에는 끊임없는 수양으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 결국 집도 자기 자신을 닮으리라는 혹은 '무첨당'이라는 이름처럼 살겠다는 선비 정신이 담겨 있다. 이런 무첨당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집에서 사리사욕만 따지는, 집에 대한 일말의 존중도 없는 오늘날의 세태를 보면서 무첨당을 지은 옛 조상은 어떤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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