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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물 먹인' 박근혜, 중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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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물 먹인' 박근혜, 중도 포기했다

[이철희 칼럼] 박근혜의 대선 승리를 위한 전략적 선택은?

성공할까? 8월 20일 대선후보로 선출된 박근혜 후보가 53일 만인 지난 11일 선대위를 발족시켰다. 거의 두 달 가까이 허송세월, 아니 본인의 한계와 주변의 다툼으로 인해 지지율을 까먹은 고통의 세월이었다. 선대위 구성이 얼마나 효과 있으려나. 어쨌든 소란을 수습하고 갈등을 봉합한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선대위의 면면이 던지는 대중적 소구력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박 후보가 어렵사리 구성한 선대위의 핵심은 김무성 전 의원의 총괄본부장 기용이다. 그는 불과 몇 달 전에 있었던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할 정도로 친박에게 배제 대상으로 '찍혔던' 인물이다. 게다가 선대위 의장단에 포함시킨 다음 박 후보가 개최한 만찬에 가족여행을 핑계로 불참하는 '불경'을 저질렀던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선대위 운영의 키를 맡긴 것부터가 어색하고 우습다. 그럼에도 워낙 혼돈에 빠져 허우적대던 캠프이고 보니 그의 등장에 기대를 거는 것도 그리 큰 무리는 아니다.

그런 그가 첫날부터 대뜸 사고를 쳤다. 부유세, 통일세, 보육세를 거론하며 증세를 외쳤다. 이런 걸 두고 흔히 뜬금없다는 표현을 쓴다. 지난 해 야당에서 부유세 목소리가 나왔을 때 세금폭탄 운운하던 그가 아니던가. 생각이 변할 수야 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것은 아무래도 볼썽사납다. 뿐인가. 부유세는 박 후보의 생각과도 다르다고 한다. 상황이 안 좋아 어쩔 수 없이 캠프 관리 역할을 맡겼는데 첫 일성이 정책에 대한 것인데다 엇박자를 냈다. 어찌 하나 같이 이 모양인지, 박 후보로서도 난감할 게다.

지난 4월부터 시작된 김종인 위원장과 이한구 원내대표 간의 반복된 갈등이나 안대희 위원장과 한광옥 전 김대중 대통령 비서실장 간의 갈등 모두 따지고 보면 '예고된 참사'다. 경제민주화를 상징하는 김종인 위원장과 '줄푸세'를 대변하는 이 원내대표 간에는 갈등이 없는 게 되려 이상할 정도로 차이가 크다. 게다가 정책통이라 불린 이 대표가 정책 이니셔티브를 뺏긴 형국이니 심사가 뒤틀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안 위원장과 한 전 실장 간의 갈등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수사해 사법처리했던 한 전 실장을 '정치쇄신의 아이콘'이고자 하는 안 위원장이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런데도 박 후보가 일방적으로 통보하듯이 인사를 하니 갈등이 격화되고 혼란이 조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박 후보의 불통이 문제의 원인, 즉 화근이다. 불통은 곧 박 후보의 리더십이 권위적 리더십이라는 말이다. 박 후보의 리더십 스타일은 차이와 다름을 전제로 소통하고 타협하는 민주적 리더십이 아니다. 권위적 리더십, 바로 이것 때문에 박 후보가 끊임없이 시대와 불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대선후보는 집단적 정체성(collective identity)을 표상한다. 자연인 홍길동은 개인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그러나 홍길동에 '후보'라는 타이들이 붙으면 그것은 홍길동 외에 여러 사람과 정책, 노선 등을 포괄해 상징하는 하나의 브랜드, 즉 집단적 정체성이 된다. 돌이켜 보면 박 후보가 비대위 활동에서 보여준 브랜드는 '혁신'었으나, 총선 이후의 그것은 안정 내지 정체(standstill)다.

2004년 당 대표로 등장할 때부터 박 후보에게는 낡은 보수, 구닥다리 한나라당의 쇄신을 의미하는 상징성을 갖고 있었다. 그 상징성이 최근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우파본색'의 김무성 본부장에다 최홍재 등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을 대거 등용함으로써 박 후보의 브랜드 정체성은 미래가 아닌 과거, 변화가 아니라 안정으로 바뀌었다. 박 후보에게 닥친 위기는 이것이 본질이다.

▲"투표율을 높이지 않는 게 보수대연합 전략의 핵심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무릇 선거는 전략의 게임이다. 박 후보가 쓸 수 있는 대선 전략은 중도확장 전략과 보수대연합 전략으로 대별할 수 있다. 약칭 중도전략과 보수전략은 지금도 박 후보 캠프 내부에서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종인 위원장이나 이상돈 교수 등이 중도전략을 지지한다면, 김무성 위원장이나 이한구 대표는 보수전략이 답이라고 믿는 듯하다. 박 후보가 출마선언문에서 언급한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 등 세 과제 중에 두 진영이 날카로운 대립을 보이는 아젠다(의제)가 경제민주화다.

사실 복지 아젠다를 두고서는 박 후보 캠프 내에서 별 논란이 없다. 박 후보가 내세운 복지정책이 그리 세지 않은데다 복지 아젠다를 상징하는 인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제민주화의 김종인 위원장처럼 복지 아젠다를 상징하는 인물이 영입되고, 그가 김종인 위원장처럼 노회한 정치력을 발휘했다면 복지에서도 논란이 야기됐을 것이다. 복지 논란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박 후보의 복지가 경제민주화처럼 정책 타깃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지'국가'로 가려면 토건 위주의 예산 체계를 바꾸어야 하는데, 박 후보의 복지'정책'에는 그런 문제의식이 없다.

반면 경제민주화는 정책의 타깃이 분명하다. 재벌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미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했는데, 그 시장을 좌우하는 것이 재벌이다. 게다가 김종인 위원장이라는 '영민한 정치인'(shrewd politician)이 있어 경제민주화는 수시로 초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즉 경제민주화의 부각은 김종인의 힘이다. 때문에 중도파와 보수파 간에 갈등이 이 아젠다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이 싸움 때문에 박 후보의 대선 전략이 오락가락했다.

이번 선대위 인선을 보면 박 후보가 이미 어떤 전략을 쓸지 정한 것으로 보인다. 중도가 아니라 보수전략으로 선회한 듯하다. 김무성 전 의원을 캠프 핵심으로 등용한 것이나 김종인 위원장을 사실상 '물 먹인' 것에서 이런 선택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8월 우파정권의 재창출에 정치인생이 마지막을 걸겠다고 한 이가 김무성 본부장이다. 그는 박 후보 쪽이 애써 기피하는 '우파', '재창출'이란 단어를 즐겨 사용할 만큼 개혁적 보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지난 12일 김종인 위원장이 이런 말을 했다. "선대위에 공약위원회를 설치한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 그는 또 "공약위 설치는 측근들의 개입 여지를 열어두는 것"이라고도 했다. 선대위 출범 며칠 전 박 후보에게 공약위 설치에 대한 반대의사를 밝혔는데도 박 후보가 그냥 강행했다는 부연설명도 했다. 이 말에 따르면 김 위원장이 영락없이 물 먹은 꼴이다. 결국 앞으로 경제민주화도 적당한 수준에서 관리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박 후보는 이제 경제민주화 등을 앞세워 중도로 외연을 확장하는 것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투표율을 높이지 않는 게 보수전략의 핵심이다. 대선은 투표율이 어느 선거보다 높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지금의 민주당이 이겼는데, 당시 투표율이 70.8%였다. 지난 4월 총선의 투표율이 54.3%였고, 득표율로 보면 새누리당이 야권연대와 박빙의 구도였다. 때문에 투표율이 올라가면 갈수록 야권에게 유리한 경향성(tendency)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흔히 투표율이 올라간다는 것은 20~30대가 투표장에 많이 나온다는 뜻이고, 20~30대는 야권 후보 지지율이 높기 때문에 이렇게 되면 여권이 불리해진다. 이런 점에서 새누리당이 투표율을 낮추려 하는 것은 지극히 온당한 전략적 선택이다.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에서 확인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40%의 견고한 지지층이다. 누가 뭐래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흔히 콘크리트 지지율이라는 표현까지 쓸 정도다. 다른 하나는 도무지 확장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저런 수를 다 썼지만 결과적으로 지지율은 늘어나지 않았다. 약간의 상승은 있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금방 다시 빠졌다. 요컨대 박 후보의 지지율은 견고한데 늘어나지는 않는다. 이런 사정이니 확장을 포기하고 투표율을 낮춰서 견고한 40%의 지지율로 이기는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 전략은 상당히 유효해 보인다. 우선 야권의 후보들이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앞서고 있긴 하나 세대별 투표율 변수를 집어넣어 시뮬레이션해 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확실하게 진다. 따라서 여론조사에서 야권 후보를 찍겠다는 의사를 밝힌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장에 나오지 않으면 야권으로선 힘든 싸움이다. 냉정하게 보면 지금 야권의 후보들은 이들에게 강렬한 투표동기를 못 주고 있다. 따라서 검증이니 뭐니 하면서 온통 혼탁하고 재미없는 선거판을 만들어서 젊은층이나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투표할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는 전략, 즉 보수전략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 하겠다.

이런 점에서 이번 대선은 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60%의 유권자들에게 야권의 후보가 투표동기를 부여해 얼마나 많이 투표장에 나오게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박 후보의 확장이 아니라 야권 후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달라지는 게 바로 대세론이 지고 대안론이 뜬다는 분석의 참뜻이다. 그렇다, 또다시 문제는 문재인, 안철수 후보의 역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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