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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가 만들어낸 '일본형 불도저'의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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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가 만들어낸 '일본형 불도저'의 질주

[김성민의 'J미디어'] '논쟁적 인물' 하시모토는 누구인가

오사카(大阪)의 한 중학교 교장실에 3명의 교사가 호출되었다. 졸업식에서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君が代)'를 부르지 않았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혐의의 근거는 놀랍게도 입모양. 교장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기미가요가 제창되는 사이 그 3명이 입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그 중 1명이 '혐의'를 인정했고 오사카 교육청은 해당 교사에 대한 징계 논의에 착수했다. 전쟁 중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2012년 3월 13일에 벌어진, 앞으로 일상적인 일이 될지도 모르는 사건이다.

이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인물이 바로 하시모토 토오루(橋元徹) 오사카 시장이다. 전 오사카부(府) 지사이자 부(府)와 시(市)로 나뉘어져 있는 오사카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정당 '오사카 유신회'(維新の會) 회장인 그는 지금 여론의 압도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오사카 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현 노다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30%를 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시모토는 이미 60%가 넘는 지지율을 구가하고 있으니 소위 말하는 '태풍의 눈'이 아닐 수 없다.

오자와 이치로(小沢一郎) 민주당 전 대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 도쿄도 지사 등 여야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정치인들이 '미래권력'인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오사카 개혁'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어느새 '일본 개혁'으로 몸집을 불려 중앙 정치를 넘보고 있다. 하시모토가 만든 정치학원인 '유신정치숙(塾)'에는 3326명의 엘리트들이 몰려들었고 그는 이 중 300명을 중의원 선거에 내보내 200의석을 획득하겠다고 공언했다. 변호사 겸 방송인 출신으로 정치에 입문한지 불과 5년 만에 중원이 바로 그의 코앞에 놓인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하시모토의 발언과 행보 역시 거칠 것 없다. 기미가요 사건에 대해서도 그는 '교사를 지도하고 학교를 관리하기 위한 당연한 일'이라며 오히려 직무명령을 수행한 해당 학교 교장을 칭찬하고 나섰다. 그도 그럴 것이 교사의 전원 기립, 전원 기미가요 제창을 의무로 하는 '기미가요조례'는 그의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당장 그가 주도하고 있는 '직원‧교육기본조례안'이 통과되면 지자체장이 교육과 교육행정까지 통치하는 폐쇄적인 시스템이 구축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하시즘(하시모토+파시즘)이라는 신조어가 말해주듯 스스로 '지금 일본 정치에 가장 필요한 건 독재'라고 스스럼없이 외치는 그가 지금의 '몰아붙이기'를 그만 둘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미디어와 대중의 인기를 양 손에 쥐고 있는 그다. 미디어를 쥐락펴락 하는 능력은 과거 '극장식 정치'의 달인이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전 총리보다 한 수 위라고 평가받을 정도다.

그러니 적어도 '싸움판'에선 누구도 그를 쉽게 이길 수 없다. 모든 문제를 미디어로 옮겨와 단순한 언어로 흑백의 딱지를 붙여 여론재판에 올려버리는 그에게 복잡하고 섬세한 논의가 대항할 공간 자체가 막혀있기 때문이다.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그의 언어에 논리적인 논쟁이 성립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예를 들면 학자들의 문제 제기에 하나하나 대응하기보다 '쓸모없는 문과 교수들'로 싸잡아 폄하하는 식이다. 정치인 중 가장 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그의 트위터에서 '멍청한', '바보같은' 식의 표현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 하시모토 토오루(오른쪽) 오사카 시장은 오사카부 지사 시절이던 2009년 7월 청와대를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을 만났다. ⓒ청와대

그러나 그의 그런 행보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도 그의 원색적인 언어나 편협한 관점에 우려를 나타내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사사건에 감정이입을 한 나머지 '그런 나쁜 놈은 죽어야 돼. 사형!'이라고 외치는 그를 보고한 유명 작가가 변호사로서의 기본 자질을 의심했다는 일화가 있는가 하면, '근무시간 중 사원은 회사의 완전한 통제 하에 놓이기 때문에 프라이버시는 일절 인정되지 않는다'는 그의 방송 멘트에 아연실색했다는 동료 변호사도 있다.

최근 문제가 되어 있는 오사카 앙케이트 사건은 그의 성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지난 2월 오사카시 전직원에게 하시모토 시장의 자필서명이 들어간 '업무명령' 형태의 앙케이트지가 전달되었는데, 한 직원이 폭로한 바에 따르면, 총 150여 개에 달하는 조사내용은 '조합에 가입했는가', '가입했다면 누구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는가', '지난 2년 간 연설회 참석 등 정치활동을 한 적이 있는가', '그 정치활동을 권유한 것은 조합 혹은 외부의 누구인가' 등등 조합을 적대시하는 사실상의 '정치적 사상조사'였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선을 넘을 게 분명한 사건이다. 오사카시 안에 오직 '같은 편'만 두겠다는, 웬만한 우익정치인들도 감히 꿈꾸지 못할 위험한 발상이고 방법이다. 그럼에도 아직 일본 사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충분한 비판과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오랜 경기침체와 3.11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양당 체제에 실망하고 리더의 부재에 불안해하는 일본인들에게 그는 여전히 구세주이고 '개혁'의 아이콘으로 부상 중인 것이다.

특히 무능한 기성세대에 등을 돌린 20~30대 젊은 대중의 지지는 도드라져 보인다. 기존 권력에 대항하는 듯한 그의 과격한 언어에 누구보다 열광하는 것 역시 젊은층이다. '정치인 하시모토'는 오롯이 미디어가 만들어낸 작품이니 대중이 열광하는 한 미디어는 그를 버리지 않을 것이고 미디어가 그를 버리지 않는 한 대중은 계속 열광할 것이다.

그러니 미래권력인 하시모토는 분명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그가 가진 능력이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가 그 이상의 것을 향해 달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일본이라면 그게 실현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예의 주시해야 하는 건 하시모토 개인의 정치적 성장만이 아니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와 폭발적으로 비대해지고 있는 권력을 일본 사회는 어떻게 견제하고 감시할 것인가. 강한 리더십을 갈망하는 대중이 그로 인한 생겨날 자유와 다양성의 위축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를 만들어낸 미디어는 언제까지 그의 대중적 인기를 이용할 것인가. 진정한 일본의 미래는 오히려 거기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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