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신부' 문정현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울음소리는 20일 오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주 해군기지 갈등 해결을 위한 비상시국회의'에 참석한 수백명의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문정현 신부는 비상시국회의가 끝나면 바로 강정마을로 달려가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점심식사도 마다하고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 제주 해군기지 갈등 해소를 위한 비상시국회의가 20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정치인과 종교계, 시민사회단체, 문화예술계, 학계 등에서 100여명이 참여해 '세계평화의 섬' 제주도 지키기 평화선언을 발표했다. 사진은 문정현 신부가 눈물을 흘리며 인사말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
강동균 마을회장을 풀어주기로 약속한 것도 헌신짝처럼 내팽개쳐 졌고, 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가 없는 강 회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과 핵심적인 활동가들을 철창 안에 가둬두고 있다. 대화를 통해 해법을 모색해야 할 자리에는 소송과 고발과 손해배상 등 공권력의 남발을 통한 공안정국 조성이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과연 '세계평화의 섬'과 제주 해군기지가 양립 가능한 것이며, 범정부 차원에서 제주도를 '세계 7대 자연경관'으로 채택하고자 하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천혜의 자연환경과 평화로운 마을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이 납득할 수 있는 일이냐는 절규어린 호소도 신기루와 같은 국익 논리에 묻혀버리고 있다.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국익'의 관점에서 제주 해군기지의 문제점을 제기해왔다. 복지와 교육 등 돈 쓸 곳이 넘쳐나고 국가 재정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지 건설과 20여척의 대형 함정 도입·유지에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과연 국익인가?
해군이 말하는 것처럼 제주 해군기지를 만들어 '합의되지 않은' 이어도 인근 수역에 초계 활동을 하면, 한-중 간에 불필요한 군사적 갈등을 유발할 것이 뻔 한데 이것이 국익인가? 미국이 쓰고 싶으면 쓸 수 있는 것이 냉엄한 현실이고 이럴 경우 미-중 간의 패권경쟁에 한국이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는 정말 아무런 근거가 없는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
대한민국 국민치고 우리에게 생명선과도 같은 해양 수송로를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중국의 이어도 영유권 주장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는데 대다수 국민들은 동의한다. 그러나 한국의 해양 수송로가 봉쇄당하는 상황은 미-중간의 군사 충돌시 한국이 미국편을 들지 않는 한 상상하기 어렵다. 이어도는 섬이 아니라 수중 암초이고, 한국과 중국이 배타적경제수역(EEZ) 획정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독도 문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해군기지 건설이 우리에게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전략적 부담'이, 국가안보상의 긴급한 상황을 진화할 수 있는 '소화기'가 아니라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을 확실한 위협으로 만드는 '인화물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제기는 이내 "종북·좌파세력의 주장", "반대를 위한 반대", "유언비어" 등으로 일축되기 일쑤다. 합리적 토론을 통해 검증을 해야 할 대상이 '색깔론'에 묻혀버리고 있는 것이다.
울지마 구럼비, 힘내요 강정!
이미 강정마을은 거대한 펜스로 둘러쳐 있고, 생명의 바위 구럼비도 굴착기에 의해 파괴되고 있다. 그러나 강정마을 주민들과 국내외의 수많은 자원 활동가들과 종교인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외친다.
오는 10월 1일에는 구럼비살리기 전국시민행동의 일환으로 "울지마 구럼비, 힘내요 강정"이라는 이름을 달고 제2차 강정마을 생명평화축제가 열린다. 공권력 남용으로 인해 민·형사상 감당하기 힘든 경제적·법률적 부담을 떠안게 된 주민들의 고통을 분담하기 위해 9월 24일 후원주점을 열고, 벌금대납 시민행동 '쫄지마 캠페인'도 전개될 예정이다. 공사 강행을 중단시키고 해군기지 건설을 재검토하도록 청와대와 국회를 상대로 한 다방면의 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28일째 제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강동균 마을회장은 9월 19일 옥중 서한을 통해 아래와 같이 호소했다.
"타당한 안보적 이유도 없이 해군이 자신들의 몸 불리기만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려 한다면 이는 마땅히 국민의 이름으로 중단할 것을 명령해야 합니다. 진정한 평화와 안보를 위한 진정한 첫 걸음은 이제 우리들 국민들에게 달려있습니다. 부디 힘을 모아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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