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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아라뱃길·한강섬이 왜 우선순위인지 설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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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아라뱃길·한강섬이 왜 우선순위인지 설명해야

[창비주간논평]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허점과 파급력

서울시가 주도하여 8월 24일 치러질 예정인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일단 그 절차상 치명적인 결함을 두가지 안고 있다.

첫째, 주민투표에 부쳐지는 1안과 2안 중 어느 것도 서울시교육청의 정책안과 일치하는 것이 없다. 투표용지에 기재될 1안은 소득 하위 50%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것이고, 2안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전면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의 무상급식안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4년부터 전면적으로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이 방안은 곽노현 교육감의 취임 초인 2010년 8월부터 서울시교육청이 일관되게 견지해온 것으로서, 중학교의 경우 2012년 중1을 시작으로 무상급식 대상을 매년 1개 학년씩 확대하여 2014년에 정책을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흔히 서울시교육청의 안인 것처럼 선전되어온 2안과 비교해보면 '보편적'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2안이 '즉각적' 실시안인 반면 교육청안은 '단계적' 실시안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다르다.

서울시가 멋대로 만들어놓은 주민투표안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정작 무상급식의 원조격인 교육청의 정책안을 누락시키고서는, 자기 멋대로 만들어놓은 두 방안을 놓고 투표를 요구하며 헛다리를 짚고 있는 것이다.

둘째, 주민투표법 7조 2항에 의하면 "국가 또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또는 사무에 속하는 사항"은 주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런데 급식은 당연히 서울시교육청이라고 하는 엄연한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 사무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주민투표를 주도한 단체들은 서울시청이 아닌 서울시교육청에 와서 발의를 요구했어야 한다. 그런데도 이 주민투표를 발의한 사람은 바로 오세훈 서울시장이었다. 이것은 명백히 위법이다.

물론 교육청의 고유 업무영역이라 할지라도 서울시가 이에 '지원'을 해주는 것은 법적으로 허용되며 늘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 주민투표가 서울시의 '지원'에 관한 것이라 할지라도 주민투표법 7조 3항에 명시된 또다른 금지사항, 즉 "지방자치단체의 예산·회계·계약 및 재산관리에 관한 사항"에 해당하여 역시 위법이 된다. 위의 1안이든 2안이든 판가름이 나면 거의 자동으로 이에 따른 예산규모가 확정되므로, 주민투표는 그 내용상 '예산'과 관련된 투표인 셈이다. 그런데 예산과 관련된 주민투표는 법률상 금지되어 있다.

이번 주민투표를 추진하는 과정이 정치적 야심과 탐욕에서 비롯된 흑색선전으로 점철되어왔음은 구태여 일일이 지적하지 않겠다. 서울시교육청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 청구'와 '주민투표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고 야당에서 무상급식 주민투표 거부운동에 나선 것은, 무엇보다 이 주민투표가 위와 같은 치명적인 두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2011 하반기 서울시 통합방위회의에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공짜밥 논란'의 심층 프레임

"왜 재벌 아들에게도 공짜밥을 줘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의외로 만만치 않은 설득력을 가진다. 여론조사 결과 오세훈 시장의 주장에 공감하는 시민이 적지 않다는 것은, 무상급식 찬반 논란이 쉽게 사그라질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찬성론이든 반대론이든 공유하고 있는 공통의 지반이 있다. 즉 표면적인 논란의 저변에 깔려있는 '심층 프레임'을 가늠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첫번째 고려할 문제는, 무상급식 이슈가 국민에게 '예산 사용의 우선순위'에 대한 감수성을 각성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즉 찬성론자든 반대론자든 간에 '예산을 이러저러한 데 먼저 써야 한다'는, 서로 다른 입장과 기준을 (심지어 '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오세훈 시장이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며 무상급식을 공격할수록, 자신이 추진하던 아라뱃길에 몇조원, 한강예술섬에 몇천억원을 투자해야 하는 타당성과, 수해방지예산이 최근 몇년간 1/10 수준으로 급감한 이유를 해명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같은 심층프레임상의 변화를 감안한다면,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것이 반드시 오세훈 시장에게 유리하다고 볼 일은 아니다. 자신이 추진하는 정책들에 대해서도 그만한 돈을 써야 할 필요성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마찬가지 논리로,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것이 반드시 야당과 곽노현 교육감에게 유리하다고 볼 일도 아닌 것이다.

두번째 고려할 문제는, 무상급식 이슈가 헌법상의 의무교육과 직결된 문제라는 것이다. 의무교육은 영어로 'compulsory education'인데, 이는 '강제'교육의 의미로 새길 수 있다. 의무교육 규정이 비교적 느슨하여 홈스쿨링이 성행하는 미국 같은 나라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의무교육 기간 동안 정당한 사유 없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 100만원의 벌금을 반복적으로 부과할 수 있는 매우 강력한 '강제'교육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강제로 학교를 다니도록 한다면, 응당 국가는 학생에게 뭔가를 해줘야 마땅하다. 나는 의무교육기간에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두가지는 '기초학력을 보장하는 것'과 '돈을 낼 필요가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헌법 31조 3항은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부자의 아이나 가난뱅이의 아이나 똑같은 건물과 교실에서 똑같은 교과서와 책상을 사용하며, 재벌의 자녀에게도 의무교육 기간에는 등록금을 받지 않는 것이다.

'소득 우열반'은 없어야 한다

그런데 학교에서 이뤄지는 다른 대부분의 써비스는 무상-균등 원칙을 따르면서, 급식만은 굳이 돈을 내야 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일까? 정부·여당에서는 작년에 만5세 아이들의 무상보육을 발표한 데 이어 최근에는 심지어 0~4세까지 무상보육 추진안을 흘리고 있는데, 유독 급식만은 보편적 무상화를 해서는 절대로 안되고 소득 상·하위 50%를 기준으로 '소득 우열반'을 갈라야 한다는 것은 '의무'교육의 취지와 철학에 대한 몰이해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무상급식 논쟁은 의무교육기간에 국가의 책무성이 어떠한 범위에서 보장되어야 하느냐의 문제를 수반하고 있는바, 현재 지자체 수준에서 벌어지는 분쟁이 조만간 국가정치의 영역으로 비화될 것임을 짐작케 한다. 또한 '예산을 어디에 얼마나 써야 할 것인가?'라는 매우 구체적인 문제에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향후 여야의 정쟁이 본격적인 '정책대결다운 정책대결'로서 벌어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미 '복지논쟁 2탄'인 '반값 등록금'이 정치권의 화두가 되어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같은 변화로 인해 보수진영이 불리하고 진보진영이 유리하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단견이다. 보수진영에는 나름의 '복지 원조'인 박근혜 의원이 버티고 있는 데다, 예산과 재정 문제에 있어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의 전문성의 수준에 차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사적으로도 적지 않은 복지정책을 보수진영에서 제기하고 이끌어갔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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