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6월 17일 해병대 초병들이 아시아나 민항기를 북한 항공기로 오인해 총격을 가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남북관계가 위기이고, 한국군의 대응 태세의 위기이며, 이로 인해 많은 국민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민항기 오인 사격 이후 정상항로 운항 여부가 논란이 되었으나, 국방부는 "확인 결과 민항기는 정상항로를 운항 중이었다"고 확인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 것일까? 또한 이런 유사한 일이 재발할 가능성은 없는 것일까?
국방부의 설명에 따르면, 사고 발생의 원인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초병이 "민항기를 북쪽에서 접근해 오는 미확인 물체로 오인"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이런 오인이 발생했는가'이다. 아무리 숙달된 초병이라고 해도 실수는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실수는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수록 나타날 공산이 크다. 앞서 언급한 포탄 오발 사고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연평도 포격전 이후 채택된 '선 조치, 후 보고'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공교롭게도 사고 발생 이틀 전인 6월 15일, 김관진 국방장관은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창설식에서 "적이 또 다시 도발한다면 이제까지 훈련한 대로 현장지휘관에 의해 주저 없이 강력하게 응징해야 할 것"이라며 "이것이 자위권의 개념이고, '선 조치, 후 보고'의 행동요령"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개념에 충실하려면 민항기를 적의 전투기로 오인한 초병은 보고에 앞서 사격이라는 조치를 먼저 취할 수밖에 없다. 오인은 잘못이더라도 사격은 임무에 충실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보고와 동시에 선 조치 개념에 따라 개인화기인 K-2소총으로 즉각 경고사격을 실시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보고와 '동시에' 사격을 했다는 것은 대응 지시 없이 조치를 취한 것이라는 점에서 '선 조치, 후 보고'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 지난 15일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창설식에서 훈시하는 김관진 국방부 장관. 김 장관은 이날 '북한 도발시 현장지휘관에 의한 주저 없는 강력한 응징'이 필요하다며 '선 조치, 후 보고'를 강조했다. ⓒ뉴시스 |
기계를 믿고 안심하라?
사고 발생 이후 국방부가 내놓은 대책으로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하다. 국방부는 "평시 민항기를 포함한 모든 항공기와 방공무기에는 피아 식별장비가 장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방공무기 사격체계상 통제 및 확인절차가 마련되어 있어 예방이 가능하므로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기계의 성능을 믿고 안심하라는 의미다.
그러나 인간이 오인할 수 있듯이 기계도 얼마든지 오작동할 수 있다. 세계 최고의 방공 미사일 가운데 하나라는 패트리어트 시스템의 오작동 사례는 이러한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패트리어트가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바로 2003년 3월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이었다.
당시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미군과 영국군 항공기 1대씩을 격추시켰고, 1대는 격추 직전까지 갔다. 1대가 격추를 피할 수 있었던 것도 패트리어트 시스템이 오류를 수정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스템을 만든 레이시온사(社)의 기술자가 황급히 "발사하지 말라"며 작전병을 말렸기 때문이다. 그러자 미 육군은 보고서를 통해 "전장에 배치된 패트리어트 시스템은 표적 식별에 실패하기도 하고, 적이 미사일을 발사하지도 않았는데 미사일을 식별해 스크린에 보여주기도 한다"며 치명적인 결함을 인정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 5일 후인 3월 25일에는 미국의 F-16 전투기가 패트리어트 부대를 공격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당시 이 조종사는 자신의 전투기가 적의 방공망 레이더에 포착되었다는 신호를 받고 자위 차원에서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의 패트리어트 부대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패트리어트가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자, 로널드 카디쉬 미 미사일방어국(MDA) 소장은 2005년 4월 9일 의회 청문회에서 "패트리어트 시스템 자체와 시스템 적용 둘 모두에 결함이 있다고 믿는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국방부 차관 출신 필립 코엘을 비롯한 미국의 전·현직 국방 관계자들은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있지도 않은 미사일'을 겨냥하거나, 아군 전투기를 조준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지적하고 있다.
최첨단 무기와 장비를 자랑하는 미국에서, 그것도 피아 식별 장치가 장착되어 있는 상황임에도 전투기와 방공 미사일 사이에 교전이 발생했다는 사례는 한국 국방부의 대책이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평시와 전시를 넘나드는 서해의 위기
이러한 비판에 대해 미국의 사례는 전시에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물론 전시에 사고가 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러나 해병대 초병의 오인 사고에서도 알 수 있듯 평시에도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고가 발생한 서북도서 지역이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릴만큼 평시와 전시를 넘나들며 위기가 상시화된 곳이라는데 있다. 3차례의 서해교전,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전, 그리고 민항기 오인 사고 등 최근 남북한의 무력 충돌 및 한국군의 사고가 이 지역에서 발생했다는 것은 이러한 지적이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남한은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창설해 군사 요새화에 착수한 상황이고, 북한 역시 대규모의 공기부양정 기지를 건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군 당국은 북한의 추가 도발시 도발 원점뿐만 아니라 지원부대까지 타격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작전은 공군이 주도한다는 방침인데, 이와 관련해 박종헌 공군참모총장은 4월 7일 △공격 비상대기 전투기 확대 운용 △비상시 출격 소요시간 단축 △원거리 정밀 폭격 무기로의 무장 등을 통해 "도발 원점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직접적으로 관여된 목표까지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극히 우려할 만한 상황은 이러한 작전 계획에서 비롯된다. 우선 북한 '도발'의 모호성이다. 북한이 남측 함정이나 영토를 선제공격한다면 이는 명백한 도발에 해당되고, 이에 따라 '선 조치, 후 보고'가 일정 정도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애매한, 그러나 남한 정부와 군당국이 '도발'로 간주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다.
가령 북한의 함정이 북방한계선(NLL)을 월선하거나 북한이 해안포나 지대함 미사일 시험 발사 탄착지를 NLL '이남', 그러나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분계선 '이북'으로 삼을 경우에도 "도발 원점뿐만 아니라 지원부대까지 타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상황에서 '선 조치, 후 보고' 방침에 따라 선제 사격을 가할 경우 남북한의 무력 충돌은 물론이고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은 호전적 나라'라는 '국격의 실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무력 충돌 발생시 확전의 위험이 대단히 크고, 이에 따라 민항기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군 당국은 북한의 도발시 육·해·공 합동작전을 통해 보복·응징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남측이 전투기와 방공 미사일 등 공군력을 동원한다면 북측 역시 마찬가지로 대응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이렇게 되면 서해에서는 평시와 전시, 국지전과 전면전의 경계가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민항기의 안전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가장 안전한 조치는 운항을 전면 중단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국가신용도의 하락을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고 운행을 허용할 경우에는 북한에 의해서든 남한에 의해서든 오발 사고로 인한 참사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까닭으로 남북한의 전투기와 방공미사일, 민항기가 서해상에서 뒤엉키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여 이번 민항기 오인 사격이 주는 교훈은 자명하다. 이번 사고는 초병들의 '인간적 실수'와 국방장관 등 상부가 지시한 '정책적 위험'을 동시에 입증한 만큼, 초병들에게 사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군 지휘관이 취할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 정책의 시정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선 조치, 후 보고' 조치를 철회하거나 최소화해야 한다. 동시에 초긴장 상태에 있는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를 완화해나갈 수 있는 조치도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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