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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북방"

[이수훈 칼럼] 천안함 5.24 조치 1년을 맞아

보수정부였던 노태우 정부는 1988년 7월 7일 이른바 '7.7 선언'을 발표했다. '7.7 선언'은 한반도 냉전 해체를 향한 6개의 중요한 내용을 포함했는데, 남북 화해와 교류·협력을 골자로 한 문건이었다.

이 선언을 근거로 노태우 정부는 북방정책을 마련했고, 전세계적 냉전의 종식이라는 대세를 타고 대단히 적극적인 자세로 북방정책을 펼친 바 있다. 러시아를 비롯해 구(舊) 동구 공산권 국가들과 수교를 했고, 1992년에는 중국과도 국교정상화를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남북간에도 빈번한 총리급 회담 끝에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해양만 바라보던 남한이 북방 대륙과 반세기에 걸친 이념의 벽을 허물고 교류와 협력의 한반도 시대를 개시했던 것이다.

이후 남북간 화해·협력의 진전, 한중관계의 눈부신 발전, 한러관계의 우호화 등 우리에게 매우 긍정적인 변화가 뒤따르게 되었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이 없었다면 혹은 당시 정부당국이 북방정책의 추진에 미온적이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한국이 있었겠는가를 되묻게 만들 지경으로 북방을 한국의 협력 파트너로 변화시킨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정확히 '남북기본합의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새길 수 있으며,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 역시 햇볕정책을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따져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2007년 대선에서 보수세력과 한나라당은 남북관계 분야에서 김대중·노무현 두 정부를 싸잡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객관적 근거가 부족한 구호를 내세워 선거에 임했다. 이전 두 정부가 북한에게 '퍼주기'로 일관하면서, 변화는 고사하고 북한의 버릇만 잘못 들였을뿐더러, 퍼주기의 결과 핵 프로그램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방조했다는 주장을 폈다. 전적으로 이 논리 탓은 아니겠지만 한나라당은 집권에 성공했고,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켰다.

MB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한미동맹 강화론으로 일관한 나머지 북방을 경시하게 되었다. 한미관계만 좋아지면 만사가 문제없다는 식으로 남북관계와 한중관계를 부차적으로 다루었다. 러시아도 중요한 외교적 대상이 아닌 듯이 다루어졌다. 이런 외교적 기조는 곧장 남북관계 악화, 한중관계의 불협화음, 러시아에 대한 홀대로 연결되었다.

▲ 이명박 대통령이 작년 5월 25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남북관계 단절 조치를 발표하는 장면 ⓒ청와대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결과 2010년 3월에 천안함 사건이 발발했다. 5월 24일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사건을 북한 소행이라며 대국민담화를 발표했고, 그에 따른 남북관계 전면 중단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5.24 조치'가 내려졌다. '5.24 조치'를 계기로 MB 정부의 대북 태세는 대결적이고 적대적이며 동시에 강경한 성격으로 굳어졌다. 이전 10년간의 포용정책을 뒤집는 조치에 그치지 않고, 보수정부였던 노태우 정부의 '7.7 선언'을 전면 부정하는 일이기도 했다. 시대를 거슬러도 한창 거스른 행위였던 것이다.

'5.24 조치'는 남북 교류·협력을 전면 중단시킴에 따라 다양한 경협사업들에 치명적 영향을 미쳤다. 임가공 형식으로 남북 경협사업을 하고 있었던 중소기업들은 파산했다. 외국 전문가들에 의해 한반도 평화의 상징이자 미래라고 불리던 개성공단마저 심각한 타격을 입고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실용주의 노선을 걷겠다는 정부에게 아주 부적합한 행위이자, 실리의 관점에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조치라고 하겠다.

또한 '5.24 조치'는 안보적 차원에서 군 기강 확립과 군 전력 강화 및 국방개혁의 가속화를 강조했다. 사회적 분위기 전체를 안보와 군사화로 몰아갔다. 유별난 대비를 할 것처럼 소란을 피우고 북한에 자극적인 심리전이나 전단 살포 등으로 군사적 긴장을 한껏 고조시켰다. 매월 실시한 한미간의 연합 군사훈련은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게 되었다. 하지만 '5.24 조치'가 강조한 군 기강과 전력 강화 부분에서도 전혀 개선이 없었다는 사실이 연평도 포격 사건에서 명백하게 입증되었다. 안보를 강조하면서 실패를 거듭하는 무능을 드러낸 것이다. 국방개혁 방안을 내놓자 군 안팎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높고,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밀어붙이기로 일관하고 있다.

남북관계가 차단되자 북한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북한'이 되어버렸고, '한반도 시대'는 '남한 시대'로 퇴행했다. 우리 정부가 인도적 차원의 지원마저 끊고 제재와 압박에 치중하자 북한은 중국에서 돌파구를 찾기에 이르렀다. 천안함 사태 와중인 2010년 5월과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두 차례나 중국을 방문해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 주 다시 보란 듯 중국을 공식 방문했다. 건강 문제로 곧 사망할 것처럼 치부하면서 기다린다는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는 우리 정부 당국을 비웃기라도 하듯 김정일은 쉼 없이 3000km 열차 일정을 소화해냈다. 우리 정부 외교안보당국자들의 구상과 전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김정일의 면모다. 제재하고 압박하면 백기 들고 나올 것으로 인식해온 북한은 중국과 밀착해 생존책을 구사하고 있다. 더구나 미국과 국제사회도 더 이상 인도적 식량 지원을 미룰 수 없다는 방침 아래 지원 명분 쌓기에 나선 모양새다. 우리 국민들 가운데 다수가 염려하듯이 북한은 점차 중국의 자장 안으로 빨려들고 있다. 우리가 버리니 중국의 품으로 가고 있는 형국이다.

'5.24 조치'의 일환으로 정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채택을 비롯한 국제적 대북제재 공조를 이끌어 내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인 바 있다. 이른바 '천안함 외교'를 공세적으로 펼치게 되는데, 그 와중에서 중국과 여러 차례 노골적인 외교적 갈등을 빚었다.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보이지 않는 중국, 그것도 '외교적'이어야 할 외교부가 아주 거친 말로써 우리 정부와 마찰을 빚었다.

중국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대해서도 노골적으로 군부와 외교부가 나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실제 중국은 일종의 대응책으로 실탄 군사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 한중관계가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라기 보다는 상호불신과 대결 관계의 성격이 농후하도록 외교를 펼쳤다. 이는 북핵 문제와 6자회담에서 긴밀한 공조가 필요한 중국을 아주 미숙하게 다루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우리 주변지역에 신냉전이 조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생겨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고 하겠다.

이 와중에 러시아와도 러시아 천안함 조사단의 보고서 문제를 두고 불협화음이 있었다. 한미간에 '찰떡공조'를 과시하면 할수록 중국이나 러시아가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사려(prudence) 부족이 마냥 아쉽다. 러시아는 자원과 항공우주과학기술 분야에 있어 우리의 소중한 협력파트너다. 이전 정부들이 이같은 파트너십을 쌓기 위해 들인 공이 무너졌다. 러시아와는 이전과 같은 협력정신이 크게 손상된 나머지 다음 정부가 새롭게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면서 관계복원을 해야 하는 짐을 떠안게 되었다.

MB 정부는 현재의 외교안보 노선을 수정할 것 같지 않다. 따라서 '잃어버린 북방'을 회복하는 일이 MB 정부 임기 중에는 불가능하다. 북한을 다시 교류협력 파트너로 끌어들이고, 균형잡힌 외교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와 다시 신뢰에 기초한 협력관계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대외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것이 진보개혁 진영의 또 다른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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