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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카다피가 미사일 사겠다면 그것도 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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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정부, 카다피가 미사일 사겠다면 그것도 팔건가?

[기자의 눈] 리비아 사태를 보면서 불편한 이유

1.

일본 대지진에 따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태를 보면서 2006년 건설노조의 파업이 한창이던 때 인터뷰했던 쉰 초반의 배관공이 떠올랐다.

"내가 씨가 말랐어요. 고리 원전에서 일하다가. 사람이 평생 동안 쬘 수 있는 방사능이 정해져 있다데요. 검사 해보니까 난 이미 다 찬거야. 그래서 이제 원전일은 하고 싶어도 못 해요."

원전에서 일하다 생식기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임신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래도 뭐, 자식들 다 낳았으니 상관은 없지만"이라고 껄껄 웃었다.

최근 리비아 사태를 보면서도 그가 다시 떠올랐다. 그는 1980년부터 1990년대까지 중동 건설 현장을 누볐다고 했다. "사람 사는 곳에 배관 없는 곳 없다"는 그는 이란-이라크 전이 한창이던 아르빌에서 이란의 포격이 쏟아지는 동안 벙커에 피해 있다가 포격이 끝나면 후다닥 나와서 작업을 했다고 했다. 동료 한 명은 KAL858기가 폭파될 때 운명을 달리했다고 했다. 그는 리비아에서도 배관을 깔았다. 그는 "나야말로 달러벌이 산업의 역군이었다"고 자신의 청춘을 회고했다.

▲ 20일(현지시간) 리비아 벵가지에서 한 소년이 연합군의 폭격으로 부서진 무아마르 카다피 측 군용 차량 위에 올라서서 환호하고 있다. ⓒ뉴시스

2.

리비아 사태를 보여주는 방송 화면과 사진 속에는 익숙한 '물체'가 눈에 종종 띈다. 한국에서는 운명을 달리한 대우자동차들이다. 대공포를 실은 토요타 픽업 사이로 라노스, 누비라 같은 차가 지나간다. 에스페로도 봤다.

리비아 사태가 터지면서 우리 교민들의 안전이 관심사로 급부상했다. 그만큼 리비아에는 우리 건설 노동자들이 많다. 리비아는 어떤 이들에게는 기회의 땅이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부터 리비아에 진출해 사막을 초원으로 바꾼다는 대수로 공사를 해냈고, '기적'이라 칭송을 받았다. 그런데 같은 기간 미국은 카다피 관저에 폭격을 가했다. 정치적 목적이야 어떠했든 서방 사회는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독재자 축출에 골몰하고 있었다. 유엔 결의로 1990년대 후반까지 경제제재도 가해졌다. 그 와중에도 우리나라 건설 역군들은 리비아에서 피땀을 흘려 '오일 머니'를 챙겨왔다. '리비아 수주' 기사에는 항상 동아건설 전 최원석, 대우건설 전 김우중 회장이 카다피와 막역한 사이라는 무용담이 뒤따랐다.

그리 먼 이야기도 아니다. 지난 해 가을 리비아 대사관 직원의 간첩 파문이 일어 한국 기업들이 쫓겨날 위기에 처하자 대통령의 형님인 이상득 의원까지 직접 리비아를 찾아가 독재자 카다피의 비위를 맞췄다.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카다피가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생각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항의하자, 이 의원은 오해입니다. (한국 대사관원의 간첩 활동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대통령이 나이가 칠순이 넘고 몸도 편치 않은 형을 직접 리비아에 보낸 것만 봐도 (한국의 진심을) 아실 수 있지 않습니까"라고 항변했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독재자 카다피와의 '형제애'를 바탕으로 막대한 오일 머니를 벌어들였다.

3.

북아프리카나 중동의 아랍 독재국가들에게는 서방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정치 체제 잣대를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도 있다. 이러한 반론에는 서방 세계의 자원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맞물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종합적으로 다각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다만, 군사정권 시절, 다시 말해 굶주림을 벗어나는데 총력을 기울이던 20세기가 아닌 21세기, G20에 들었다고 자랑스러워 하는 민주화된 대한민국이라면 세상, 보다 정확히 말하면 제3세계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리비아의 문제만은 아니다. 대한민국 기업들은 아직도 군부독재가 행해지며 전세계적 제재를 받고 있는 버마(미얀마)에서 자원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국제적인 민주단체들은 이와 같은 자원개발이 독재자들의 통치 자금을 채워줄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리비아, 미얀마 등 서방 국가들이 외면하는 독재의 땅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들었다. 오히려 경쟁률이 낮은 기회의 땅이었을 것이다.

설 연휴에 방송사 기획뉴스를 장식한 것은 아프리카 동부 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 니켈 광산 개발과 같은 자원 제국주의스러운 뉴스들이었다. 19세기 미국 서부 금광개발 시대의 '골드러시'가 떠올랐다. "고! 웨스트"처럼 "고! 아프리카"를 외치고 있었다. 19세기 미국 서부에서는 원주민(인디언)들이 금 때문에 학살당했다.

우리는 마다가스카르의 니켈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배와 독립, 뒤이은 친미 정권의 수립과 최근 유혈 혁명과 쿠데타에 의한 정권교체 등과 같은 마다가스카르의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대통령부터가 전세계적으로 원전에 대한 우려가 급증할 때 원전을 팔러 다니고, 민주화 혁명이 들불처럼 이는 아랍에서 석유 개발권을 사오는데 여념이 없다. 해외자원개발은 자원 빈국의 숙명이겠지만, 요즘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대한민국은 오랜 전제 군주의 역사를 지나 제국주의의 침략에 식민지배를 겪었고, 해방과 군사독재를 거친 나라다. 반세기도 지나지 않아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고 민주화를 이룩했지만 점점 우리를 침략했던 제국주의 국가들을 닮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명박 정부 들어 줄기차게 부르짖는 '국격'이라는 것이 과연 이런 것이었나. 카다피가 '형제의 나라'에게 서방 연합국에 대항할 대공 미사일을 팔라면?

중학교 1학년 때 "보이스, 비 앰비셔스"를 외치던 국어 선생님이 강력 추천하던 책이 있었다. 당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김우중 전 회장의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만약 이 책을 지금 다시 읽는다면 나는 이 책 제목을 이렇게 바꿔 부르고 싶다.

"세상은 넓고 뜯어 먹을 나쁜 놈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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