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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복합체, 미국을 집어삼키다"

[해외시각] '국방주식회사' 미국과 군사케인즈주의의 종언

지난 1월 17일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이 퇴임연설에서 미국의 '군산복합체' 부상을 경고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61년 1월 17일 연설에서 미국의 군부와 군수산업 세력의 상호의존적 결탁 체제를 말하는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 개념을 제시하며 미국이 항시적으로 전쟁의 위기에 놓이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아이젠하워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전쟁을 통해 경제를 부흥시키고 일자리를 만들자는 '군사 케인즈주의'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 결과 오늘날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아이젠하워 시대보다 더 강력한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들의 힘은 '변화'를 이야기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지마저 간단히 꺾어버렸다.

문제는 미국의 경제 현실이 이제는 '군사 케인즈주의'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어 있고, 미국은 심각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에 시달리는 채무국이 됐다. 블랙워터로 대표되는 일부 군사 기업만이 배를 불리고 있지만 과거처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도 않고 있다. 전쟁을 통해 국부를 창출했던 과거의 미국이 아닌 것이다.

2차대전과 냉전 기간동안 미국은 군사케인즈주의를 통해 빵과 버터를 함께 가질 수 있었지만, 즉 군비확장과 경제번영을 동시에 누릴 수 있었지만, 이제 더이상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아이젠하워 연설 50주년을 맞아 앤드류 바세비치 미 보스턴대 교수가 격월간지 <아틀란틱>(the Atlantic) 1~2월호에 기고한 글은 이처럼 딱한 처지에 놓인 미국의 현실을 파헤친 역작이다.

'국방 주식회사의 폭정'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바세비치 교수는 아이젠하워 연설 후 냉전 30년, 탈냉전 20년을 보낸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어떻게 진화하고 있고, 미국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붕괴시키고 있는지를 고발했다.

바세비치는 미국의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 군인으로 재직하다가 퇴역한 후 국제관계학 교수로 있으면서 미국의 군사 팽창 문제를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탁월한 연구자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 내용이다.(☞원문 보기)

▲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은 1961년 1월 17일 퇴임연설에서 '군산복합체'의 부상을 경고했다.

'국방 주식회사'의 폭정(The Tyranny of Defense Inc.)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군산복합체' 부상을 경고했다. 뛰어난 군인이자 평균 이상의 업적을 낸 대통령인 아이젠하워는 전쟁을 막는 방식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인물이다.

'군산복합체'는 1961년 1월 17일 전국에 방송된 아이젠하워의 퇴임연설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아이젠하워는 1953년 4월 16일 연설에서 이미 "철십자장(鐵十字章)에 매달린 인류"라는 말로 세계가 영구적으로 전쟁의 위기에 놓였음을 지적했다. 상호 보완적인 두 연설은 경제적·사회적·정치적·도덕적으로 군사화되어가고 있는 미국에 대한 고찰이었다.

아이젠하워는 1953년 스탈린 사망을 계기로 한 연설에서 냉전을 끝내기 위한 다섯 가지 계획을 소련의 새 지도자들에게 제시했다. 그 두 번째 항목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지나쳐 버렸는데, 핵심은 매우 간단했다. 무기와 군대에 돈을 쓰는 것은 근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 비용이 필요한 것처럼 보일 때조차도 그것은 희소한 자원을 남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과 전쟁 준비는 사회적 자산을 생산적인 목적에서 파괴적인 목적으로 돌림으로써 국력을 소진시킨다.

아이젠하워는 1953년 연설에서 말했다. "모든 총과 군함과 로켓은 결국 배고프고 춥고 헐벗은 사람들로부터 훔친 것이다." 무기를 사기 위해 자원을 쏟아 붓는 나라는 그냥 돈을 쓰고 있는 게 아니다. "노동자들의 땀과 과학자들의 재능, 아이들의 희망을 소비하는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장거리 전략 폭격기 하나를 사는 돈으로 30개 이상 도시에 학교를 하나씩 지을 수 있고, 전투기 한 대로는 50만 부셸(1750만 리터)의 밀을 살 수 있고, 구축함 한 대로는 8000명 이상이 살 수 있는 새 집을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냉전이 한창일 때 나온 아이젠하워의 말은 광야의 외침에 불과했다. 미국인들은 총과 버터 중 양자택일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둘 다 원했다. 총을 생산함으로써 버터를 끝없이 공급할 수 있다는 군사 케인주주의가 풍미하던 시절이었다. 1950년 미국의 재무장에 관한 청사진을 담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고서 'NSC-68'의 작성자들은 국방 예산을 증가시킴으로써 국민총생산(GNP)을 늘릴 수 있다고 명시적으로 이야기했다. 국방비 증액은 영구적인 경기 부양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이론은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명백히 입증됐다. 왜 냉전 시대에도 똑같은 논리가 적용되어서는 안 되는가?

따라서 미국인들은 총과 버터는 한쪽을 취하면 한쪽을 버려야 하는 관계(trade-off)라는 아이젠하워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50년대 미국은 새로운 무기와 새로운 학교, 새로운 군함과 새로 조성된 주택단지들이 같이 들어서던 때였다. 아이젠하워와 그의 공화당은 이러한 윈윈 상황을 통해 신뢰를 챙기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공화당은 아니더라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미국 중산층의 번영 이면에 있는 중요한, 그러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국의 중산층들을 만족하게 했던 전후 경제의 활기는 미국의 권력 지형을 재조정하고 재정의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는 이 과정에서 가장 덕을 많이 봤는데, 이른바 '안보국가'(national-security state)를 구성하는 정부 기관들이 특히 그러했다.

안보국가는 국가적인 위험의 존재에서 자신들의 행동 규범(raison d'Etat)을 찾는다. 대부분의 정치인들과 군부 지도자들과 소위 안보 지식인들(defense intellectuals)은 미국이 세계의 도처에서 전례 없는 위험과 마주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걸 제압하려면 전쟁 대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고 즉각적인 행동에 나설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컬럼비아대 사회학 교수 라이트 밀스(C. Wright Mills)는 1956년 <파워엘리트>라는 책에서 이같은 시각을 '군사 형이상학'(military metaphysics)라고 부르며 "국제 현실을 군사적인 관점에서 정의하는 심리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진정한 평화, 지속적인 평화는 바람직하지 않고, 평화란 전쟁 이전이나 전쟁과 전쟁 사이에 있는 일시적인 상태라고 여겼다.

아이젠하워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의 핵무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는 것만큼 군사 형이상학을 잘 설명하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1952년 아이젠하워 취임 당시 1000여 개였던 미국의 핵탄두는 1961년 퇴임 때 2만4000개 이상으로 늘었고, 60년대 말에는 3만1000개가 됐다. 아이젠하워는 군 최고통수권자로서 이러한 상황을 표면적으로 관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군 장성과 관리들, 군수업체, 의원 등 이해당사자들의 암묵적인 연합 세력에 의해 주도됐다.

아이젠하워는 소련의 공격을 억제하려면 공격시 대규모 핵 보복이 있을 것을 경고하는 '대량 보복' 개념을 미국 안보 독트린의 핵심으로 삼았다. 그는 이를 통해 미국인들에게 안보상의 안정감을 줌으로써 군비 지출에 있어 자신의 통제력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것은 심각한 오산이었다.

퇴임 전날 진실을 털어 놨던 아이젠하워

아이젠하워 재임 기간 군수 소비는 미국 경제의 엔진이었다. 소련을 봉쇄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총과 미사일, 폭격기, 군함, 탱크, 전투기가 필요했다. 미군의 즉각적인 대응 태세를 갖추기 위해서는 기지와 막사, 무기고, 훈련소를 지어야했다. 군 연구소는 자금을 조달받았다. 크고 작은 기업들이 군수 계약을 따냈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얻었다. 군수 산업을 지역구에 유치하는 정치인들은 지지 선언과 선거 자금과 표를 끌어 모았다. 1950년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은 낮았고 재정 적자는 미미했다. 결과적으로 미 국방부의 예산은 아이젠하워 시절 치솟아 정부 지출의 50% 이상, GDP의 10% 이상을 기록했다. 전쟁이 없는 시기로 보면 이례적이었다.

수혜자들에게 전쟁 준비는 하나의 선물이었다. 오늘의 군사 능력이 내일이면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더 크고 더 좋은 무기가 필요하다는 요구를 끝없이 만들어 냈다. 러시아의 군사 능력 향상은 군비 지출의 새로운 명분이 됐다. 예컨대 '미사일 갭'(핵탄두를 운반할 미사일 숫자에서 미국이 소련에 현격하게 뒤진다는 주장. 실제는 정반대였음. 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1950년대 당시 소련의 장거리 미사일은 10기가 채 안 됐다고 함: 역자)이라는 1950년대의 발명품은 공군력을 키워야 한다는 정치적 무기가 됐다. 의회의 관련 위원회들은 전문가들을 불러 증언을 들었고 언론은 이 새로운 문제점의 의미를 보도했다. 결국 예산이 들이 부어졌다. 미사일 갭은 허구였고 핵심을 벗어난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과도한 군비 지출, 특혜, 여론 조작 등에서 아이젠하워의 승인을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이젠하워는 미국이 폭탄과 미사일 능력에서 최첨단을 달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위협을 부풀리는 것이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 상황을 완벽히 통제하고 있다는 환상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장막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침묵했다. 퇴임 전날이 되어서야 국민들에게 진실을 말했다.

1961년 퇴임 연설에서도 아이젠하워는 도둑질에 대해 말했다. 1953년 연설에서는 집이나 학교를 훔쳐왔다고 했지만, 이 연설에서는 그 도둑질이 민주주의 자체를 이탈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젠하워는 냉전이 국방에 대한 접근법을 바꿔놨다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보습을 만드는 공장에서 필요에 따라 칼도 만들었지만" 소련과의 경쟁 상황에서는 병기만을 만드는 산업을 육성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미국은 국내 모든 기업의 순수익보다 더 많은 돈을 매년 군사 안보 분야에 쓰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젠하워는 군수 산업 집단의 "경제적·정치적·정신적" 영향력이 어마어마해서 "모든 도시, 모든 주 의회 의사당, 모든 연방 정부 부처에" 손을 뻗치고 있다고 말했다. 비록 그가 정책 전환의 필요성을 명시적으로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경고했다. 아이젠하워는 "우리의 땅과 자원, 살림살이가 모두 연관되어 있다"며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구조"라고 말했다. 기업가들이 국방부 요직 인사에 영향력을 미치고 전직 군 관리들이 군수 기업에 취직하면서 근본적인 가치가 위협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는 군산복합체에 의한 승인받지 않은 영향력을 방어해야 한다. 잘못된 권력이 부상할 가능성은 현재에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우리는 군산복합체의 압박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과정을 위험에 처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떤 것도 인정해서는 안 된다."

아이젠하워는 중요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민주주의에서 국방의 궁극적인 책임은 국민들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시민들이 엄격한 감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원들이 지역구를 생각하지 않고, 기업가들이 이윤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하고, 군 수뇌부들이 직업윤리를 가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오직 깨어 있고 총명한 시민만이 군산복합체를 몰아내고 안보와 자유가 공존하는 평화로운 수단과 목적을 방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고별 연설에 대한 반응은 미지근했다. 나라 전체가 후임 케네디 대통령에 열광하면서 성찰의 시간은 오지 않았다. 다가오는 위험에 대해 시민들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아이젠하워의 주장은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의 고별사는 하룻밤의 이야기가 돼버렸다.

아이젠하워는 떠났지만 군사 형이상학은 온전히 살아남았고 다음 행정부에서 더욱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케네디는 선거 운동 기간 국방비를 늘리고, 핵 능력을 향상시키고, 공산권과 더 열심히 싸우겠다고 약속했다(케네디 역시 미사일갭이 허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결코 이를 발설하지 않았다고 한다. 트루만행정부 당시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민주당은 '중국을 공산주의자에 잃었고 이는 공산주의에 무르게 대응했기 때문'이라는 공화당의 집요한 비판을 받아왔으며 여기에 매카시즘까지 겹치면서 당시 미국에서 공산주의에 유약하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곧 정치적 자살행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역자) .

군사 케인즈주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이유는?

아이젠하워가 백악관을 떠난 지 50년이 지났고, 많은 것이 변했다. 소련과 공산주의는 사라졌다. 그러나 위기의 분위기는 끝 모르게 만연해 있다.

안보국가는 규모와 범위와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키우고 있다. 예를 들어 아이젠하워 시대 정보기관은 중앙정보국(CIA)이 다였지만 오늘날 전문가들은 '정보 커뮤니티'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쓴다. 17개 정보기관의 집합체를 말한다. 9.11 이후 이들의 크기와 직원은 급격히 늘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7월 "(정보기관들이) 너무 크고 거대하고 비밀스럽게 된 나머지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고용하고,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이 있으며, 얼마나 많은 기관들이 중복된 일을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 후 미 정부 당국자들은 정보기관들이 매년 800억 달러 이상을 쓴다고 밝혔다. 국무부 예산 490억 달러와 국토안보부 예산 430억 달러를 합한 것보다 사실상 더 많다.

정보 분야뿐만이 아니다. 미 국방부의 예산은 10년 만에 두 배 이상 늘어 연간 7000억 달러가 됐다. 국가 안보라는 허울뿐인 명분을 가지고 연방정부의 재량 예산(매년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예산 외에 정부의 재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 역자)의l 반 정도를 쓴다. 놀랍게도 미국의 연간 군비 지출은 나머지 모든 나라들의 군비를 전부 합한 것과 거의 맞먹는다.

아이젠하워 시대에는 소련과의 경쟁이 군비 확충의 명분을 줬다. 그러나 경쟁자가 없어진 오늘날에는 국방 예산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양한 주장들이 동원된다. 중국처럼 미국의 우월적 지위를 위협하는 도전자들보다 국방비를 많이 써야 그들의 야심을 꺾을 수 있다는 게 하나의 명분이 된다. 이란의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나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 같은 이들이 가하는 그리 강하지 않은 위협을 실체적인 위협으로 바꿔 이단아들을 없앨 때까지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위협이 없어질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1950년대 미사일 갭을 말할 때 쓰던 위협 부풀리기는 미국 정부의 전통으로 남아 있다. 9.11 이후 당시 국방장관이던 럼즈펠드는 참모들에게 전달한 메모에서 "위협을 계속 고조시켜라"라고 썼다. 그는 "미국인들이 폭력적인 극단주의자에 둘러싸여 있다는 걸 알게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미국인들을 두렵게 하라는 냉전 때의 방식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작동하는 것이다.

▲ 변화에 대한 군부의 강력한 저항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스탠리 매크리스털 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사령관(오른쪽)의 미군 증파 전략만이 유일한 길이라는 국방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뉴시스

또한 군인들의 세계와 무기상인들의 세계 사이를 도는 회전문은 계속 돌고 있다. 미군 고위직에 있던 사람들에게 은퇴란 수입 감소를 의미하지 않는다.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은 옷을 벗으면 골프나 낚시를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과거 내 수업을 들었던 현직 군 당국자는 최근 나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미 육군협회의 연례 방위산업 전시회에 가 보니 "군산복합체의 소돔과 고모라"를 보는 것 같았다면서, 과거 자신의 상급자였다가 현재는 군수업체 임원이 된 수십명의 사람들이 자기에게 말을 걸었다고 말했다.

군부와 기업의 결탁에 관한 아이젠하워의 연설은 오늘날의 현실에 비춰볼 때 오히려 약한 것이다. "기업 임원의 역할, 장군으로 가장한 정치꾼들의 역할, 정치꾼같이 행동하는 기업 임원들의 역할을 하는 장군들의 연합체"이라는 라이트 밀스의 표현이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 거기에는 전문가로 통하는 고위급 퇴역 관료, 시야가 좁은 정책 관료, 영웅적인 야전 사령관의 심부름을 하느라 경쟁하는 언론인들이 더해져야 한다. 과거 의원이었다가 군수업체를 위해 현직 의원에게 로비하는 사람들, 자신의 지역구에 돈을 끌어오기 위해 국방 예산에 무조건 찬성하는 의원들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 결과 평화와 번영은 사라졌다. 미국의 군인들은 분쟁 지역을 헤매 다니고, 나라 전체는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 왜 이렇게 잘못됐는가?

9.11 발발 후 조지 부시 행정부는 미국을 테러와의 전쟁으로 몰아갔다. 부시 행정부는 미국의 군사력이 그 정도의 전투는 손쉽게 이길 거라는 경솔한 확신을 가졌다. 그러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일들은 기대를 무너뜨렸다. 지난 10년을 통해 얻은 교훈은, 우리는 전쟁을 어떻게 시작하는지 알아도 어떻게 끝내는지는 모른다는 사실이다.

무장이 잘 되어 있던 아이젠하워 시절 미국의 무기들은 총성을 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실제 교전에 참가하는 게 일상이 되었고, 그것은 엄청난 돈이 드는 일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는 최소 1조 달러가 들었고, 어떤 이들은 종국적으로 2조 내지는 3조 달러가 들어갈 거라고 평가한다.

또한 군사 케인즈주의는 실패한 것으로 판명됐다. 1950년의 상황과는 반대로, 군비를 낭비하는 것은 나라의 부(富)를 늘리는 게 아니라 갉아먹고 있다. 아이젠하워 시절 미국은 채권국이었고, 석유에서 자동차·텔레비전까지 모든 생필품들을 국내에서 생산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수출보다 수입이 많고, 그로 인해 지속적으로 빚이 늘어가고 있다. 아울러 1950년대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평화 속에 보냈지만, 오늘날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전쟁을 하며 보낸다. 그 결과 군대에 투입된 자원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간다.

다인코프(DynCorp), MPRI, 블랙워터(미국의 민간 군사기업: 역자) 등 돈방석에 앉은 기업들도 있다. MPRI는 "평방피트당 펜타곤보다 더 많은 수의 장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을 즐겨 한다. 그러나 그 장성들은 좋을지 몰라도 과거 중산층의 손주들은 실업률 9.8%에 시달리며 그처럼 엄청난 국방 지출로도 거의 덕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가기 위해 파슈툰족 운전수를 고용하는 것이 어떤 긍정적 경제 효과를 낳는다고 하더라도, 미국인 노동자들이 얻을 이익은 없다.

총과 버터는 한쪽을 취하면 한쪽을 버려야 하는 관계라는 아이젠하워의 1953년 예견은 이제 현실이 됐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미군 1명을 훈련시키고 무장하고 유지하는데 연 100만 달러가 든다. 한편 2010년 조사에 따르면 빈곤선 아래로 떨어진 미국인의 수는 7명 중 1명 꼴로 증가했다.

군-산-입법 복합체는 동맹 세력과 지원 세력에 힘입어 변화에 완강히 저항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정책을 재검토하면서 다양한 정책 대안들을 계속 요구했다. 그는 복수의 옵션을 원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에 따르면 국방부는 오바마에게 단 하나의 길을 보여줬다. 스탠리 매크리스털(전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사령관)의 이른바 '미군 증파'(surge) 전략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뭐야? 당신들은 옵션을 하나밖에 안 가져 왔잖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오바마가 선택한 것은 모두 군부가 선호하는 옵션이었다.

아이젠하워가 오바마를 본다면 대통령에게 표면적으로만 주어지는 권한을 행사해보려고 분투하는 그의 모습에 공감할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미국인들에 대한 놀라움과 실망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반세기 전 자신의 요구를 우리는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에서 군사 형이상학은 여전히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있다. 우리는 분명 계속해서 주머니를 털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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