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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 독재자 귀국 '배후'는? 바로 당신!"

[해외시각] "국제사회 무관심이 아이티 민주화 재앙 불러와"

25년 전 민중 봉기로 추방된 '베이비 독' 장 클로드 뒤발리에 전 아이티 대통령의 귀국이 논란을 빚고 있다. 현 아이티 대통령이 지난 2007년 그가 귀국하면 처벌당할 것이라고 공언했는데도 이뤄진 전격 귀국이다. 현재 불안한 아이티의 정치 상황에서 그의 귀국은 향후 정국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17일자 기사 '아이티 국민, 뒤발리에 귀국으로 고민에 빠지다'에서 "지진, 허리케인, 콜레라, 정치 혼란 등 아이티의 상황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뒤발리에가 돌아오기 전의 이야기"라며 그의 귀국이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신문은 뒤발리에를 '한때 가장 악명높은 약탈적 정치가(kleptocrat)이며 독재자, 플레이보이'라고 소개하며 "지금 아이티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만 국민들을 고문하고, 살해하고, 나랏돈을 도둑질한 그의 귀국은 필요치 않다"고 비꼬았다. 신문은 "일부 아이티 국민들이 그의 귀국을 반긴 것은 이 나라가 겪고 있는 절망의 반영"이라고 덧붙였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와 휴먼라이트워치(HRW) 등 인권단체들은 아이티 당국에 즉각적인 처벌을 요구했다. HRW의 미주 담당 임원 호세 미겔 비반코는 "뒤발리에의 귀국은 그에게 정의의 심판을 내린다는 단 하나의 목적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뒤발리에는 "아이티를 돕기 위해 돌아왔다"고 말했지만 현재 정확한 귀국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가디언>은 "호화스러운 것으로 알려진 그의 파리 망명 생활이 사실은 극빈(penury)에 가까운 것으로 판명난 것은 그의 귀국 이유에 대해 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며 프랑스에서의 생활로 돈을 탕진한 그가 어쩔 수 없이 돌아왔을 가능성도 언급했다. 그의 부인 베로니크 로이는 한 기자가 귀국 이유를 묻자 "안 될 이유는 없잖아요?"(Why not?)이라고 답했다.

같은날 이 신문에는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보내온 한 편의 칼럼이 실렸다. 작년 1월의 대지진 이후 아이티의 재건 상황 등 현지 사정을 알리는 글을 <가디언>과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알자지라>등에 기고해 온 칼럼니스트 이자부 두세는 이 칼럼에서 "뒤발리에의 귀국과 아이티의 정치적 혼란은 국제사회가 이 나라에 얼마나 무심한지를 보여 주는 것"이라며 세계인들의 무관심을 질타했다.

두세는 '뒤발리에의 귀환이 아이티를 괴롭히고 있다'는 제목의 이 글에서 재임 당시 독재자로서의 뒤발리에의 모습을 전하며 그의 귀국은 아이티 민중에 대한 모욕이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
원문 보기) <편집자>

베이비 독의 귀환이 아이티를 괴롭히고 있다
(Baby Doc's return haunts Haiti)

독재자 장 클로드 뒤발리에의 귀국은 중대한 국면에 이뤄졌다. 이 나라의 취약한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에 불길한 전조다. 17일 그의 귀국은 사람들을 긴장시키는(chilling) 새로운 혼란의 요소를 안고 있으며 이미 민주주의 위기를 맞고 있는 이 나라에 대한 모욕이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두 번은 민주적인 선거로 뽑혔으나 추방된 장-베르트랑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의 귀국과 관련한 질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이 소속됐던 정당은 아직도 가장 높은 지지율을 가지고 있지만 최근 선거에서는 참여가 제한됐다.

과거 아이티 민중은 뒤발리에를 쫓아냈고 그의 독재정치의 도구였던 '톤톤 마쿠트' 민병대를 약화시켰으며 군대를 해산하고 처음으로 다수 대중의 지지를 받는(최소한 그때까지는) 민주 정부를 선거로 뽑았다. 그러나 뒤발리에의 귀환은 아이티 민중들이 분열되고 불신에 사로잡혔으며 정당하게 대표되지 못하면서 힘을 잃었음을 보여준다.

지난 주 대지진 참사 1주기 추모식에서 참석자들은 비정부기구(NGO)들과 유엔, 아이티 정부가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분노를 쏟아냈다. 미주기구(OAS)가 개입해 치러진 지난해 11월 28일의 대선 과정에 대한 토론도 이어졌다. 르네 프레발 현 아이티 대통령은 그의 양자인 주드 셀레스틴을 후계자로 삼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국제 감시단체들은 셀레스틴이 결선 투표에 올라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OAS가 납득할 수 없는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베이비 독'의 귀국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의 아버지인 프랑수아 뒤발리에는 시골 의사이자 아마추어 인류학자였지만 1957년 아이티의 토속 종교인 부두교를 활용한 선전과 민병대의 힘으로 권력을 잡았다. '파파 독'으로 알려진 그는 부족하고 놀기 좋아하는 아들을 종신 대통령에 임명했다. 이들 부자(父子)의 통치 기간 동안 5만 명이 살해당했다. 언론의 자유는 없었고, 반대파들은 죽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추방됐다. 이때 발생한 아이티 지식인층의 공백은 아직도 메워지지 않고 있다.

▲ 1971년 4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종신 대통령'직에 오른 '베이비 독' 장 클로드 뒤발리에가 언론 보도문을 읽고 있다. 당시 그는 겨우 19세였다. ⓒ뉴시스

아이티에는 정보가 입소문을 타고 퍼지는 문화가 있다. 거리와 호텔에서 나도는 풍문, 라디오 방송, 트위터 메시지 등이 소문을 전달한다. 이런 소문들은 진실과 허위가 반반씩 섞여 있다. 예를 들면 뒤발리에의 귀국은 프레발 대통령이 아들 셀레스틴을 지지해 달라며 초청했기 때문에 이뤄졌다든가, 아리스티드 전 대통령이 파나마에 있고 그의 군대와 함께 귀국할 것이란 얘기, 뒤발리에가 아파서 다 죽어가고 있으며 이미 돌아갈 비행기 표를 끊었다는 얘기, 프레발 대통령이 미국과 프랑스에 의해 출국을 강요당했다는 얘기 등이다.

최근 몇 년간 아이티에는 위험한 향수(鄕愁)가 떠돌았다. 이 나라가 신자유주의로 인해 파산 지경에 다다르기 전(사실 이것은 뒤발리에가 처음 시작한 것인데도), 민주주의 이전의 나날들들 그리워하는 것이다. 한때 거리에는 '차라리 뒤발리에가 돌아오는 게 낫겠네'라며 정부를 비꼬는 스프레이 페인트 낙서(그라피티)가 그려져 있기도 했다. 오늘날 이것은 냉소적인 농담 그 이상이 됐다. 아이티 인구의 대부분은 뒤발리에 정권의 통치를 기억하기에는 너무 젊고, 변화에 대해 너무 절망적이어서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그를 환영하기도 한다.

만약 어떤 대선 후보가 이들의 잘못된 향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면, 그는 아마 뒤발리에와 함께 나란히 연단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OAS에 따르면, 충격적이게도 이 나라의 인기 있는 대중 가수 중 하나가 대선 결선투표에서 셀레스틴의 자리를 대신할지도 모른다고 하는데 그는 '톤톤 마쿠트'의 지도자 미셸 프랑수아를 기리는 노래를 부른 것으로 유명하다. 유력한 대선 후보 중 한 명은 한때 영부인이었던 70세의 노 법학자로 여전히 뒤발리에 집권 당시의 유력층과 돈독한 관계다. 샤를-앙리 베이커 후보는 11월 선거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뒤발리에와의 친분을 활용해 표를 얻으려 할 수도 있다.

뒤발리에가 법정에 설 위험을 무릅쓰고 귀국했을 리는 없다. 그는 지난 2007년 프레발 대통령이 "뒤발리에가 귀국한다면 수천 명의 죽음과 수백만 달러를 횡령한 데 대한 정의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 이제는 공허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프레발 대통령이 뒤발리에와 연합할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만약 대통령이 그의 귀국에 관여했다면, 그것은 과거의 권위주의적 극우 정권의 망령을 '중도주의자'로 평가받는 그의 후계자와 대비시켜 셀레스틴의 지지율을 높이려는 효과를 노리는 것일 수는 있다.

뒤발리에가 정치에 복귀한다면 이는 국제 사회가 아이티의 민주주의 발전에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이다. 뒤발리에의 귀국이 아이티의 정치적 미래를 결정지을 중대한 시점에 이뤄진 것 역시 이런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 아이티 국민들이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듯이 말이다.

확실한 것은 뒤발리에의 귀국이 불길한 전조라는 것이다. 이는 1990~2004년(아리스티드 대통령 통치기를 포함한 민주적 선거가 치러진 시기)을 제외한 기간 동안 아이티가 또 한번 '사실상의(de facto) 독재'를 겪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이티는 국제 사회의 압력에 휘둘리기만 했다. '민주적 선거'라고 불린 지난해의 선거도 사실은 아이티 민중에게서 힘을 빼앗고 그들을 소외시키는 과정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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