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가운데 연평도 사태 당일 아침 한민구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해병대 연평부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있을지도 모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알려줬다는 충격적인 주장이 제기됐다.
군사전문가인 김종대 <디앤디(D&D)포커스> 편집장은 27일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이같은 사실을 언급하며 "연평도 사태는 예견된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김 편집장은 공군의 최신예 전투기인 F-15K를 동원해 북한의 도발 원점을 타격하는 것도 당시로서는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사건 당일 한국 공군 전투기는 공중전에 대비한 무장만을 갖추고 출격했을 뿐, 지상공격이 가능한 무기체계는 탑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그는 전투기들이 설사 공대지(空對地) 화력을 장비했다고 해도 한국 공군의 전자정보체계로는 공격 목표를 정확히 설정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가능하지도 않았던 전투기 폭격을 놓고 국회의원들과 언론, 국민들이 엉뚱한 설전을 벌인 셈이 된다. 정부가 국민을 우롱한 셈이다. 김 편집장은 이를 '국민사기극'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 외에도 이명박 대통령의 교전규칙 개정 지시가 적합했는지, 한국군 사격은 과연 '통상적'인 훈련일 뿐이었는지 등에 대해 논쟁적인 주장을 쏟아냈다. 그는 교전규칙 개정 논란에 대해 대통령이 지휘 책임을 면하기 위해 현장 지휘관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으로 보았으며, 지난달 20일의 해상사격훈련도 결코 합참의 주장대로 '통상적, 방어적'인 것만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편집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 김종대 <디앤디(D&D)포커스> 편집장 ⓒ프레시안(곽재훈) |
"연평도 사태, '위기의 일상화' 결정판"
프레시안 : 연평도에 북한이 포격 도발을 감행한 지 한 달이 조금 더 지났다. 차분하게 재평가해 본다면?
김종대 : 연평도 사건은 서북해역의 위험한 군사정세를 상징하는 일이었다. 특히 위기의 일상화 내지는 구조화라는 점에서, 이번 연평도 사건은 완결판이다. 지난해 11월 대청해전부터 올해 1월, 8월의 북한 포사격훈련, 천안함 사건, 연평도 사태까지 1년여 동안 3~4개월 주기로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위기 구조가 일상화, 상시화된 것이다.
과거에도 위기가 있었지만 성격은 전혀 달랐다. 과거의 교전은 제한된 공간에서 수상함정끼리 벌인 것이었다. 통제·관리하기가 비교적 용이했던 구조다. 그러나 지금은 위기의 일상화 자체도 문제지만 비대칭적이고 전면적인 위기다. 관리하기 어려운 쪽으로 변했다는 데에 심각성이 있다.
우리 영토 중 서북 5도는 서울보다 평양과 더 가깝다. 적진 깊숙이 고립된 지역인 것이다. 이곳을 방위하는 문제는 우리 정부에 군사적으로 무거운 짐을 얹어주고 있다. 다른 영토 같으면 남쪽으로 인접해 있기 때문에 북의 침투·도발 경로가 매우 긴데 반해 이 지역은 북한 육지 코앞에 붙어 있고 우리 군의 후방 전력과는 완전히 격리돼 있다. 지리적 차원의 한계와 더불어 위기 구조가 상시화됐을 때 천문학적인 군사비 부담이 든다. 향후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면에서 이번 사건은 안보 면에서 굉장히 아픈 사건이다.
"MB정부, 위기 와중에 '철학의 부재' 드러냈다"
프레시안 : 초기부터 한국 정부의 대응에서 허점이 많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종대 : 연평도 사태로 인해 이명박 정부의 '평화·안보 철학의 부재'가 드러났다. 사건 직후 청와대에서 나오는 메시지는 고장난 녹음기 같았다. 위험천만한 발상들이 난무했고, 또 이것이 국민들에게 잘못 알려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단호한 대응'과 '확전 방지'를 놓고 이것들이 상충되는 게 아닌가 하고 많은 국민들이 혼선을 빚었다. 그러나 확전을 방지한다는 것은 모든 위기관리에서 제1의 원칙이다. 따라서 확전을 방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확전을 막을 것인가가 중요하게 다뤄졌어야 했다.
그런데 교전 중에 '확전 자제'라는 메시지가 바로 나간 것은 너무나 부적절했다. 확전 방지라는 말 자체는 그 자체로 적절하고 위기관리의 전제지만, 교전 중에 내보낼 메시지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일단은 더 이상의, 2차적인 도발을 막을 수 있는 군사적인 조치에 몰입했어야 하는 상황에서 바로 '확전을 자제하라'는 메시지가 나갔다는 것은 아쉽다.
잘못 알려진 것은 또 있다. 정부에서는 한국 공군의 F-15K와 KF-16 전투기가 출격해 사태가 더 악화됐을 때 상황을 통제하려 했다고 홍보했다. 언론에 보도된 조종사 인터뷰를 보니 당시 명령만 내려졌으면 북한 측 해안의 포격 원점을 타격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사실이 아니다.
ⓒ프레시안(곽재훈) |
이에 합참의 작전 중요 직위자가 "만전을 기하라"고 한 지 5분이 채 안되어 실제 상황이 터졌다. 북한에서도 포격 직전에 미그23 전투기가 5대 출격해 있었고, 미그기가 교전에 참가했을 상황에 대비해 우리도 긴급히 전투기를 출격시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상전 위주로 더 확전됐다 할지라도 F-15K 등 한국 전투기는 교전에 참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출격 목적이 공대공 작전이지 공대지 작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한편, 출격한 전투기에는 SLAM-ER(슬램 이알)이니 J-DAM(제이담)을 사용할 수 있는 공대지 작전은 준비되지 않았고 탑재하지도 않았다는 증언도 내가 직접 들었다. 단지 AIM-9, AIM-120과 같은 공대공 무장만 탑재하고 출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투기로 북한의 포대를 때릴까 말까 고민했다는 내용이 나중에 언론을 통해 나오는 것을 보고, 이건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공대지 작전을 수행하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F-15K 전투기 무기체계는 GPS 정보에 기반한 것인데, 일각에서는 북한이 전자전 준비를 완료하고 GPS 전자파 교란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미사일을 쐈다 해도 엉뚱한 데 가서 떨어지게 돼 있다. 따라서 당시 공대지 전력은 극히 제한돼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사건이 끝나자마자 쏠 수 없었던 사정은 숨기고, 청와대와 합참이 마치 엄청나게 고뇌를 한 것처럼 언론에 흘렸다. 사실과도 다르고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었다. 우리 군의 능력이 응징 보복까지 꿈꿀 정도가 안 되고 이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해서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군은 정직하지 못하다.
또 '확전'이란 말 자체도 오해가 많은데, 확전이란 이런 거다. 예를 들어 23일 북한 개머리해안에서 포를 쐈는데 우리가 대응 사격할 때 개머리해안에만 쏜 것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무도까지 쐈다. 결국 북한에서 2차 포격 도발을 해 올 때는 무도와 개머리해안 두 군데에서 다 날아왔다. 이게 확전이다. 꼭 전투기를 동원해야 확전이 아니다. 이미 포로 확전을 시켜 놓고 무슨 확전 방지를 말하나. 초반 대응을 잘했어야 하는데 여기서 엉키는 바람에 이후로도 3일간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프레시안 : 사태 발생 후 하루 만에 교전규칙 개정 등의 이야기도 나왔는데.
김종대 : 사건 다음 날(24일) 대통령이 교전규칙 개정을 검토하라고 했을 때 나는 기절하는 줄 알았다. 교전규칙은 현장지휘관 차원에서 신속 간편한 의사 결정을 하기 위한 것이고, 우발적 충돌이 확대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방 비무장지대(DMZ)에 우물이 하나 있는데 아군과 북한군이 모두 거기에서 물을 길어온다고 치자. 그런데 물 뜨러 갔다가 서로 마주치면 어떡하나. 무조건 전투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때 대응 방식이 정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게 바로 교전규칙이다. 즉 우발적인 상황, 예기치 않았던 상황, 상부의 지휘 통제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정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서북 도서지역에서 아무리 현장 지휘관에게 많은 권한을 위임했다고 하지만 1, 2차 연평해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상부'인 합참이 모든 상황을 다 통제했다. 워낙 예민한 지역이기 때문에 합참 통제 없이는 총 한 발, 대포 한 방 쏜 적 없다.
또 대통령의 군 통수권과 합참의 작전권, 군령권 같은 권한 행사는 교전규칙보다 상위에 있기 때문에 이 규칙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현장지휘관의 잘못된 판단과 대응으로 우발적 충돌이 전쟁으로 확대되는 것만 막는 장치가 교전규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치 현장 지휘관과 교전규칙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교전규칙 개정 얘기를 대통령이 한 것은 책임을 현장지휘관에 전가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이 정권에서 강경 보수세력들에게 '나는 하려고 했는데 군사 시스템이 뒷받침이 안 돼서 못했다'고 변명하려고 하다 보니 나온 것이다. 처음에 교전규칙 얘기가 나왔을 때 한 순간 합참 등에서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몰랐다고 하더라. 교전규칙 문제는 이번 사건과는 전혀 연관이 없고 나올 필요도 없는 아젠다(의제)였다.
"연평도 전체를 요새화? 망상 수준"
프레시안 : 그 뒤의 대응은 어떻게 평가하나?
김종대 : 25일부터는 점점 더 '맛이 가기' 시작했다. 연평도에 '세계 최고 수준의 무기를 배치하라'는 지시가 나왔다. 이런 식의 감정에 치우친 발언을 통해 맹목적 군사주의의 첫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지난 30년간 이 지역 현장 지휘관들로부터 전력을 증강해달라는 많은 요구가 있었지만 국방 당국이 응하지 않았다.
이는 워낙 적진 깊숙이 들어가 있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지형이어서 첨단무기 배치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북 5도의 성격이 어업기지에서 군사기지로 전환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결국 김관진 국방장관 지명자가 12월 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첨단무기를 배치한다는 말을 뒤집었다. 이것만 보더라도 앞뒤 없이 막 한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통령은 또 서북도서를 요새화하겠다는 말도 했다. 대만의 진먼다오(금문도)를 모델로 섬을 요새화한다는 얘기인데, 거의 망상에 가까운 수준이다. 실현이 불가능하고 매년 유지보수에 엄청난 예산이 든다. 지하 요새는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과거 냉전 시기에 대규모 핵전쟁이 있을 때 생존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 냉전 이후로는 요새를 건설한 전례도 없다.
대만 진먼다오도 1940년대 후반 전투를 치루고 1970년대 요새화가 완성되었다. 30년 넘게 걸린 대공사를 했다. 대만은 거대한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국토를 대부분 요새화하였고 마오저뚱(毛澤東)은 대만 점령을 아예 포기했다. 그러므로 이 나라는 존재 자체가 냉전형이다. 그러나 양안관계가 회복되고 나서 이제는 요새가 관광상품화됐다. 북유럽에서 소련 핵무기를 대비해 지은 시설도 없애지 못해 골칫거리가 됐다가 주민 복지시설로 다 바꿨다. 이걸 청와대가 답습하겠다고 하니까 아주 기절할 지경이다.
주민들이나 현지 장병들도 요새화해달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대통령 혼자인 것 같다. 대통령이 5개의 섬을 공깃돌 갖고 놀 듯 하고 있는데 좀 더 큰 틀에서 전략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보수 안보를 표방한 정권인데, 남북관계는 취미가 없으니 그렇다 치고 안보라도 잘 해야 할 것 아닌가.
"국론분열? 정작 대통령은 야당에 협력 요구 안해"
프레시안 : 군사적인 조치 외에 정치적인 행태는 어떻게 평가하나?
김종대 : 그렇게 즉흥적으로 말해놓고 반대하면 국론 분열이라고 하는 건 대단히 잘못됐다. 국민에 대한 고압적 태도가 현 정부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예전에는 이런 위기 상황이 있었으면 역대 대통령들이 꼭 하는 게 있다. 야당 당수한테 전화하고 전직 대통령들을 초청해서 국민 통합을 꾀하는 것이다. 2006년 북한이 핵실험을 한 다음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로 여야 영수를 초청해서 오전에 회담하고 오후에는 전직 대통령들이 청와대로 들어갔다. 이후에 청와대에서 바로 대국민담화가 발표됐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이 초당적 협력을 요구한 것은 천안함 사건 발생 후 20일쯤 됐을 때 한 번 있었고, 대통령 담화는 사고 두 달 정도가 지난 5월 24일에 처음 나왔다. 연평도 사태 이후에는 6일 만에 담화를 발표했지만, 그 사이 초당적 협력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이것(안보 문제)도 국내정치 사안으로만 보는 것 같다. 국론 분열이니 종북이니 막말만 쏟아냈지 초당적 협력을 당부한 적이 없다.
위기 상황에서 뒤로 숨는 것은 이 정부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9.11 테러가 발생했을 때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당일에만 3번, 9일 동안에 11번이나 성명을 발표했고 현장에서 사태 수습을 지휘했다.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현장으로 뛰어들어 존재감을 느끼게 하니까 미국 정치지도자들은 위기 때 오히려 지지율이 오른다. 우리 대통령은? 일단 벙커로 들어가 안 나온다.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참모가 겹겹이 에워싸고 발언을 '마사지'하기 바쁘다. 대통령이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마저 보호받는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에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거버넌스(통치)의 책임성이 떨어지는 정부다. 그런데 스스로 개선할 생각은 않고 국론이 분열돼서 이렇다며 국민을 탓한다. 처음에는 무책임, 나중에 반대파 솎아내기의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최악의 위기 관리다. 심지어는 이 위기를 틈타 참모들 간의 자리싸움을 한다. 군 내외에서는 천안함 사건이 가져온 유일한 결과는 TK(대구·경북) 군맥이 실권을 장악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 이명박 대통령이 연평도 사태 이틀 후인 11월 25일 청와대에서 '긴급 안보-경제 점검회의'를 주관하고 있다. ⓒ청와대 |
"한민구 의장, 당일 아침 연평부대장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 전화해"
프레시안 : 11월 23일 당일 훈련에서 사격이 '북한 해안 쪽으로' 이루어졌다고 <창비주간논평>에 기고한 글을 봤다. 북한이 보기에 당시 한국군 훈련이 도발적이라고 판단할 만했다는 것인가?
김종대 : 한국군이 북한 반대쪽, 그러니까 후방으로 쏜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사격 원점에서 탄착점까지의 거리보다, 탄착점에서 북한 해안까지의 거리가 더 가깝다. 사격 규모도 과거에 있었던 통상적 훈련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과거에는 이런 정도의 훈련을 할 만한 화력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70년대에 105mm 견인포를 이 도서에 배치했고, 여러 화기로 사격을 한 바 있으나, 미미한 수준이었다. 아니면 해상에서 함포 사격을 하는 정도였다. 예년의 통상적 훈련이란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당시 북한의 입장에서는 어떤 메시지가 있는 훈련으로 볼 소지가 충분히 있었다. 물론 우리 영해지만 북한의 코 앞에서 사격훈련을 하는 것이 주권이라고 하면 우리도 북한 미사일 발사를 가지고 뭐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다른 해역에서, 북한에서 안 보이는 쪽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했는데 북한에서도 탄착 지점에 물방울이 튀는 게 다 보일 정도였다. 너무 근접했다.
물론 훈련을 한 것 자체는 이해가 간다. 했어야 하는 필요성은 있다. 그러나 정부에서 통상적 훈련이라고만 설명하는 것은 본질을 잘못 알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당일 3600여 발을 쏜 것은 예년 수준에 비해서는 굉장히 많은 것이다. 통상적 훈련이 아니라 무력 시위에 가깝다. 차라리 그걸 인정하고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주었다'고 하면 될 것을 뭘 그리 둘러대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연평도 사태는 충돌이 예견된 사건이었다. 그 증거로 당일 오전 9시 한민구 합참의장이 해병 연평부대 부대장에게 전화로 '오늘 있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말한 것만 봐도 최소한 이 훈련이 무력시위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일 아침부터 긴장은 고조돼 있었다.
프레시안 : 27일 국방부 업무보고 내용으로 합동군사령부 창설 제안 등 국방선진화위원회의 제안 내용도 포함됐다. 군 구조개편에 대한 견해가 궁금하다.
김종대 : 우선 '서해 5도 사령부'를 만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지휘 단계가 복잡하다는 것이 우리 군의 고질적 문제인데 서북 5도를 전담하는 사령부를 또 만들면 도대체 지휘 단계가 몇 단계가 되나. 조직을 슬림화(간소화)하고 낭비를 줄인다는 것이 국방개혁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는데 서해 5도 사령부니 각군 총사령부니 하는 것들이 또 우후죽순 생겨났을 때 어떻게 관리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만큼 전시-평시가, 군정권-군령권이 분리돼 있는 군대가 없다. 평시 훈련에는 허정무가 감독하고 전시에 월드컵 나가서는 히딩크가 감독하겠다는 건데, 이래서 되겠나. 정보사령부, 수송사령부 등 기능사령부도 너무 많다. 이미 너무나 많은 조직과 기능이 중첩돼서 관리하기 어려운 차원인데 조직을 또 만들면 '옥상 옥'이 될 공산이 크다. 국방개혁에 위배되는, 보여주기 위한 전시성 군사 조치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합참과 관련해서는 조직 구조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정권이 바뀌면서 합동 직위를 경험한 장교들이 물갈이되고 합참 경험이 없는 야전 장교가 중요 직위를 싹쓸이했다. '야전형 군인'이라는 것은 이전 정권에서 핵심 직위에 있었던 사람들을 내보내면서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다. 그러면서 합동 작전의 무능함을 드러낸 것이 천안함 사건이다.
"남북관계 잘하는 정권이 안보도 잘해"
프레시안 : 긴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다.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점점 더 고조되는 느낌인데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답답하다. 해법은 없는 것일까.
ⓒ프레시안(곽재훈) |
그런데 북한은 20일 당시 빌 리처드슨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를 불러들여 만나고 있었고 유엔에선 안보리 회의도 열렸다. 역으로 북한이 '봐라, 중국이나 러시아, 우리는 다 대화하려 하는데 남한은 사격훈련을 한다'고 우리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쪽으로 정국을 운영하고 있다. 북한이 주도하고 남한은 뒤따라가는 대단히 불리한 게임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 한반도 정세를 주도할 것이냐다.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임기 끝날 때까지 끌려다니기만 할 수도 있다. 정세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위기 관리 능력이 필요하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안보다. 서북해역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방어할 것인가 집중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정세를 주도할 수 없다. 평화적 번영의 청사진도 같이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북한의 개혁개방은 해주·남포 축선을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 과거 남침의 축선이기도 했지만 개혁개방을 이끌어내려면 좀 풀어줘야 하는데 현 정권 들어 NLL은 사실상 북한 봉쇄선으로 기능하고 있다. 물론 NLL이 경계선임을 부인하자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정권 때도 NLL이 경계선이 아니라고 한 적은 없다. 다만 관리를 평화적으로 하면서 북한의 답답함을 풀어주면서 남북의 공동 이익을 도모해야 평화가 온다는 것이다.
이 지역의 경제적 가치는 매우 높다. 어업적 측면만 봐도 이 지역은 청정수역으로 굉장한 잠재력이 있다. 경제적 이익 쪽으로 생각하면 평화적 관리가 가능한데 봉쇄·강압으로 일관하면 손해만 보게 돼 있다. 서북 5도의 경제적 손실은 지금 치명적이다. 이맘때 낚시꾼들로 갯가에 발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었는데 지금은 관광객이 다 끊어졌다. 또 이 틈을 타서 중국 어선만 득을 본다. 신무기를 배치해 새로이 부대를 창설하는 등 군사기지화가 되면 토지도 수용해야 하고 철조망 치고 방벽 쌓고 해야 한다. 어업기지로서의 평화적 생존을 영위하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보수 정부는 안보를 잘하고 진보 정부는 남북관계를 잘한다고 대다수 사람들은 생각하는데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남북관계 잘하는 정부가 안보도 잘한다. 남북관계를 잘하면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이점을 얻게 되고 결국 그것이 안보의 밑바탕이 된다. 현 정부는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는 부분에서 실패하면서 안보 자체도 구렁텅이에 빠졌다.
그렇게 해 놓고 국론을 분열시킨다고 국민을 윽박지를 게 아니다. 널리 지혜를 구해야 할 대통령이 단합만을 얘기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단합인가. 장기적 차원의 지혜가 필요한데 그런 것에는 눈과 귀를 닫아버리고 무조건 단합하라고 해서 단합할 우리 국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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