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이 북한에 의해 폭침(爆枕)됐음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보수 언론과 단체들은 이번 사고와 논리적으로 직접 관련이 없는 사안들까지 끄집어 내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려 하고 있다.
겉으로는 북한을 때리면서 실제로는 다른 목적을 달성하려는 일종의 '성동격서'(聲東擊西)다.
전작권 환수 연기 최대 기회로 여기는 듯
대표적인 것은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를 연기 혹은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천안함 사태는 우리 군이 전작권을 떠맡을 초보 역량이라도 갖추고 있는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조선일보> 21일 사설)는 논리다.
박세환 재향군인회 회장은 20일 "이번 천안함 침몰 사건을 계기로 전작권 전환 연기 문제를 더욱 힘 있게 압박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천안함 사고를 전작권 환수 연기의 명분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은 여야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군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는 만큼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그간 전작권 문제에 관해 가급적 언급을 삼갔던 대통령이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신중한 검토'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상황 전개다.
그러나 군 고위 관계자는 19일 <연합뉴스>에 "천안함의 침몰 사건이 외부폭발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만 이번 사건을 전작권 전환 작업과 직접 연계하는 것은 곤란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두 문제를 연계하는 건 논리적 비약임을 인정한 것이다.
▲ 20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재향군인회 주최로 열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및 한미연합사 해체 연기, 연내 매듭' 촉구 특별강연회에서 참석자들이 즉각적 연기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천안함 사고로 북한 인권에 관심 높아졌다"?
또한 한나라당은 국회에 계류중인 북한 인권법을 처리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 명분으로 천안함 사고를 들고 있다.
김성조 한나라당 정책위원장은 20일 "한 여론조사 발표에서 천안함 침몰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 때문이라는 견해에 대해 공감한다는 의견이 46%로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보다 두 배가 높게 나타났다"며 북한 인권법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김 의장은 이어 "민주당은 이 법이 북한 정권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번번이 저지했다"면서 "국민 절반이 천안함 침몰이 북한과 연관됐다고 하는 상황에서 북한 인권법에 대해 (북한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민주당에 대해 국민들이 의구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한나라당 간사인 김충환 의원도 "천안함 침몰 사고로 북한의 인권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면서 "북한 인권법안 처리를 미룰 이유가 없다"고 거들었다.
부활, 복구, 재개, 그리고 또…
2004년부터 국방백서에서 빠졌던 '북한=주적(主敵)' 개념도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다시 삽입될 공산이 커 보인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21일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군과 정부가 천안함 침몰 사고를 국가안보상 중대 사태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주적 개념 부활을 위한 적극적인 검토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 산하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도 이날 오전 전체회의를 열고 천안함 침몰 사고를 계기로 국방백서의 주적 개념 부활 문제에 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천안함 침몰과 북한의 연계성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변경된 주적 개념을 올해 9~10월에 발간될 '2010 국방백서'에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문화일보>는 전했다.
이 보도에 대해 국방부는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김태영 국방장관은 이미 지난 19일 국회 국방위에서 "(주적 개념 삽입은) 사고 조사 결과가 나온 뒤 검토해야 할 사안 중에 들어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 뒀다.
그밖에 한나라당 김옥이 의원은 "군사분계선 일대에 대북 심리전을 위한 전광판을 복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김동성 의원은 휴전선에서의 대북방송 재개, 북한 상선의 제주해협 통항 불허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결정판은 역시 군비증강
천안함 사고를 활용해 달성하려는 보수적 아젠다의 결정판은 군비증강이다. 지난 주말부터 잠수함 탐지장비 보강 계획을 언론에 흘리던 군 당국은 이제 종합적인 해군 방위력 증강을 위해 500~600억 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입장을 익명으로 말하고 있다.
해군은 잠수함을 탐지하는 음탐장비(소나)와 초계함의 레이더 성능개선, 소해(기뢰제거·탐색) 헬기(MH60) 도입 등이 필요하다는 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합참 관계자는 "해군의 장·단기 전력 소요계획 전반에 대해 검토할 것"이라고 말해 전력 보완 및 조정 작업이 예상했던 것보다 큰 폭으로 이뤄질 것임을 시사했다.
군은 천안함 사고와 관련한 전력 소요 보완과 조정을 위한 방위력개선사업 예비비로 500~6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하고 기획재정부 등과 곧 협의에 나설 예정이라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경제 번영의 일부를 희생해서라도…"
천안함 사고가 북한의 소행이었음이 객관적으로 입증될 경우 주적 개념 부활과 군비증강을 주장하는 것이 논리적인 비약은 아니라는 시각도 가능하다. 전작권 문제나 북한 인권법과는 달리 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고 원인조차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적 개념 삽입과 군사비 증액부터 거론하는 것은 순서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보수층이 지지하는 정부가 안보를 허술히 했다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논점을 흐리는 의도도 엿보인다.
보수층은 북한 연루설을 기정사실화하는 토대 위에 자신들이 원했던 안보 이슈를 모조리 꺼내 관철시키려 하고 있고, 그런 논의를 통해 북한 연루설이 또 다시 강화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같은 경향은 비단 안보 이슈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고 원인을 확정하는데 필요한 긴 시간 동안 보수적인 목소리가 다양한 분야에서 활개를 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21일 사설에서 "북한을 제압하려면 경제 번영의 일부를 희생하더라도 안보 역량을 대대적으로 강화해 북한이 도발을 계속하면 북한 체제의 종말을 앞당겨 버리겠다는 단호한 각오를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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