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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검의 왕국' 예멘, 알카에다로만 설명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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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단검의 왕국' 예멘, 알카에다로만 설명되지 않아

[서정민의 '인샬라 중동'] 새로운 테러 거점 부상의 진짜 배경

지난 연말 국제사회를 뒤흔든 테러 공포가 새해 벽두에도 이어지고 있다. 성탄절 미 항공기 테러 기도에 이어 새해에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테러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지난 달 30일에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의 미 중앙정보국(CIA) 지부를 겨냥한 폭탄테러도 있었다. CIA 요원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새해 벽두부터 미국 정계의 화두는 오바마 행정부가 어렵게 의회를 통과시킨 건강보험 개혁법안 조정 작업이 아니라 테러다.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나서 테러 관련 부처를 꾸짖는 등 테러는 미국 내 최대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근 가장 주목을 받는 나라는 예멘이다. 성탄절 테러 기도범의 어머니가 예멘출신이었다. 더불어 예멘에 본부를 둔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가 신년 초 미국 시설을 공격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미 중부군 사령관이 예멘을 방문해 알리 압둘라 살리흐 예멘 대통령과 면담했다. 이튿날인 3일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네덜란드 대사관이 잠정 폐쇄됐다. 5일 이들 대사관은 다시 업무를 재개했지만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새로운 알-카에다 거점 예멘"

미국 등 서방은 예멘을 새로운 알카에다의 거점으로 지목하고 있다. 페트레이어스 사령관의 방문도 테러조직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는 예멘 정부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을 담고 있다.

미국이 예멘 내 알카에다 소탕에 군사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예멘의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아부 바크르 알-쿠르비 예멘 외무장관은 알카에다 소탕작전에 미국을 비롯한 외국군의 직접적 개입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6일 밝혔다. 그러나 미국 등 서방이 간접적으로 예멘 정부의 테러세력 소탕 노력을 지원할 것은 분명하다.

수년 전부터 미국 정보 당국은 예멘을 알카에다의 새로운 온상이라고 경고해 왔다. 외국인에 대한 납치 및 살해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인들도 피해를 입었다. 2009년 3월 서남부의 쉬밤 지역에서 한국인 관광객들에 대한 폭탄공격이 있었고 6월에도 한국인 1명이 살해당했다.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지만 아프간에서 고전하고 있는 미국은 예멘이 알카에다의 새로운 활동 지역으로 부상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정책을 세웠다. 성탄절 테러 기도범의 어머니 출신 국가가 예멘이라는 것이 예멘 정부와의 대테러 협력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 예멘 정부군이 작년 12월 17일 알카에다의 훈련기지로 알려진 곳을 공격하자 이틀 뒤인 19일 예멘 남부의 도시 라드판에서 주민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반정부 정서가 강한 남부 주민들의 이 같은 정서가 곧 알카에다에 대한 지지라고 보는 건 단순한 시각이다. ⓒ로이터=뉴시스

무장공격은 모두 알카에다 소행?

수년 전부터 테러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나라들 즉,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예멘, 이라크, 소말리아 등의 공통적 특징은 중앙 정부의 통제권이 전 국토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특히 산악국가인 예멘과 아프가니스탄은 아직 지방의 부족세력이 정부의 통제권 하에 있지 않다.

때문에 미국과 각국 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에 쫒긴 무장 세력들이 은신처로 이들 나라에 잠입할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 일부 부족 세력이 정부와 무장충돌을 벌이고 있어 이슬람 과격단체인 알카에다를 비호하면서 서로 협력할 수도 있다. 미국 정보 당국은 현재 예멘에 수백에서 수천 명의 알카에다 대원이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파키스탄, 아프간, 예멘, 소말리아 등 소위 '실패한 국가'들에서의 폭력 사태를 모두 알카에다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다. 예멘 내 외국인 공격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속돼 왔기 때문이다. 1990년대 알카에다가 등장하기 전에도 외국 공관, 기업, 그리고 민간인에 대한 테러와 납치는 예멘의 오랜 골칫거리였다.

이슬람 과격세력이 아니더라도 반정부 테러를 벌이는 세력은 중동에 산재해 있다. 아랍정치학회 아흐마드 알-킵시 전 회장은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국내 반정부 세력이 상당수 폭력사태를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멘 출신의 알-킵시 회장은 "30년 이상 장기 독재체제를 유지해 온 예멘 정부는 정통성에 있어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살리흐 대통령 정부는 1978년 출범했다. 당시 중령이었던 그는 군부의 지지를 얻어 쿠데타로 집권했다. 33년째 통치하고 있는 것이다.

킵시 회장은 이에 대해 "가장 큰 실수는 국가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자신의 출신 부족과 군부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1990년 남북예멘 통일 이후 살리흐 정권의 지나친 권력 장악으로 1994년 남북 간 내전이 발생했고, 당시 무력으로 남쪽 정치 및 부족세력을 진압한 것이 정치적 불안의 원인"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북부 출신인 살리흐 대통령에 반하는 남부와 동부의 부족은 이후 중앙 정부의 통제에 사실상 따르지 않고 있다. '국가 안의 국가'로 다양한 반정부 부족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 정부로서도 산악 지역에 거주하는 반정부 부족 세력에 대한 무리한 군사적 작전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 아직도 국가보다는 부족에 충성하는 전통이 진하게 남아있어 애써 벌집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정책이다.

때문에 산악 그리고 유목 부족의 특성상 대부분 부족은 중무장한 자체 병력을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 개인도 총과 칼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부족적 전통이다.

개인무장 세계 최고인 예멘

"칼 두세 자루는 있어야 남자죠." 필자가 예멘 방문 시 만난 15살 자으파르는 허리춤에 찬 멋들어진 칼을 가리키면서 우쭐한다. 울긋불긋한 장식이 담긴 칼집 벨트는 하얀 옷과 잘 어울린다. "이 단검을 차지 않고 외출하는 것은 옷을 안 입고 나가는 것과 같아요." 자으파르는 칼을 찬 배를 불쑥 내밀며 설명한다.
▲ 예멘 수도 사나에서 단검 '잠비야'을 팔고 있는 사내. 날카롭게 갈아 허리춤에 차고 다닌다.

세계에서 단검이 가장 많은 나라는 예멘이다. 대부분 예멘 남성은 아직도 '잠비야'라는 전통 단검을 아랫배 부분에 차고 다닌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예멘에는 현재 잠비야가 4000만개 정도 있다고 한다. 인구 2000만의 절반이 남자라 한다면 1인당 4개꼴이다.

반월형 모양으로 끝이 약간 구부러진 이 단검은 예멘 남성의 필수품이다. '사우브'라는 원피스 형태의 긴 남성복을 입은 남자라면 금실·은실로 장식한 벨트와 함께 잠비야를 몸 중앙에 차야한다.

어른들 뿐만이 아니다. 원래는 성년이 되면서 부모로부터 선물 받는 것이 전통이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는 남자아이들에게도 이 단검은 중요한 소지품이다. 단순한 장식용이 아니다. 틈나는 대로 칼날을 갈아 최대한 날카롭게 유지한다. 잠비야는 끝이 구부러져 있어 양 등 가축의 목을 따는데 효과적이다. 때때로 가축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사용되는 것이 문제다.

단검만이 아니다. 국제 무기조사 기관인 '스몰암스 서베이'(Small Arms Survey)에 따르면 예멘 전체 국민이 소유하고 있는 총기 수는 1700만 정이다. 성인 1인당 평균 3정의 총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총기 수가 예멘 전체 인구의 3배인 6000만 정이라는 비공식 통계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된 국민'이 거주하는 나라다. 때문에 최근 4년간 발생한 4만5000건의 범죄 중 절반이 총기 사용으로 인한 것일 정도로 총기 사고가 비일비재하다.

아직도 지방에서 매주 열리는 장에 가면 잠비야와 현대식 무기가 공개적으로 거래된다. 자동소총에서 소형 미사일까지 마치 전쟁통에 열리는 무기시장 같다. 이 장이 열릴 때면 구입한 무기를 시험해보기 위해 총성과 폭음이 전역을 휩쓴다. 수도 사나에서도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총성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이를 위해 무기는 계속 밀수입되고 있다.

모두 합치면 정부군 보다 더 강력한 병력과 화력을 가진 각 부족의 민병대는 예멘 정치 안정의 가장 큰 문제다. 정부의 통합정치 실패, 부족주의 전통의 지속, 경제적 어려움 등이 예멘 폭력사태의 주요 배경들이다. 단순히 외부에서 잠입한 혹은 자생적인 이슬람 과격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지나치게 피상적이고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 담론에 따라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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