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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핵개발은 문고리가 안쪽에만 달린 문"

[한반도 브리핑] 북핵문제의 오해와 진실 5가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 그리고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로 북한문제는 악화일로였다. 상황의 심각성으로 미루어보아 쉽사리, 그리고 단기간에 국면전환이 이루어지긴 힘들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북한 방문을 계기로 해빙의 움직임이 가파른 탄력을 받고 있다.

강경 기조를 유지하던 이명박 정부는 대화국면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표하고 있지만, 속내는 그리 편치 않은 것 같다. 특히 최근 북미 양자대화의 가능성이 본격 거론되면서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의 유화책에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한 발언이나, 18일 유명환 장관의 시대착오적 적화통일 언급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유화자세로 돌아설 당시 이를 두고 강력한 원칙론의 성공이라고 내세우던 때와는 사뭇 다르다.

물론 제재와 대결국면이 해빙의 기미를 보인다고 해서 결과를 낙관할 수는 없다. 북한 핵문제는 일시적인 노선 변화로 해결이 보장되지 않는 복잡한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핵 위기 시작 이후 16년간 타결과 교착의 굽이굽이마다 복잡한 관계들이 만들어낸 뒤틀림과 편견, 그리고 쟁점들까지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아래 제기한 5개의 오해와 진실은 미묘한 차이일 수 있지만 잘못 다룰 경우 그 결과가 심대할 수 있는 것들이다. 현 정부의 판단착오로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 지도 모를 이번 대화국면이 다시 수렁으로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 북핵문제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주 잇달아 보여준 시각에는 북미 대화 움직임에 관한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연합뉴스

1. 변수의 착각

북핵문제를 양자문제 또는 다자문제로 볼 것인가에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어떻게 진단하느냐에 따라 해결책도 당연히 달라지는데, 양자문제로 볼 경우 북미협상이 주해결책이 될 것이고, 다자문제로 볼 경우 6자회담을 통한 해결이 거론된다.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배타적 관계는 아니지만, 선후(sequence)나 우선순위의 구별이 중요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해는 다자로 보는 관점이고, 진실은 양자문제이다.

북한의 핵은 한반도 문제이지만 아쉽게도 냉전의 역사, 미국의 영향력을 냉철하게 살필 때 본질적으로 북미 양자의 문제다. 뒤틀린 진실이지만 차가운 현실이다. 당사자인 민족문제가 되기 위해서라도 선결조건으로 북미간의 타결이 필요하다.

1990년대 초 시작부터 핵문제는 철저히 북미양자의 문제였으며, 94년 제네바 북미합의에서 미국도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봐야한다. 제네바합의는 절반의 성공이었지만, 부시 행정부가 실패로 규정한 후 등장한 것이 이른바 6자회담이다.

그러나 6자회담은 미국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미국의 책임을 분산시키는 동시에 공동의 압력을 행사하기 위한 도구였다. 6자회담이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중요한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으나 고비마다 물꼬를 튼 것은 북미간 막후회담이었다.

북한이 행동이 아무리 무모하다 해도 변할 수 없는 결과적 진실은 그들이 벌이는 생존게임의 대상이 미국이라는 점에서 북미가 풀지 않으면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명분과 이상의 측면에서 주도권이 없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보다 현실을 간과하고 우리가 독립변수라고 믿는 것은 안타까움을 넘어 위험하다. 변수에 대한 착각이며, 한반도의 현재 구도를 제대로 읽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미국이 협상국면으로 돌아선 경우 한국의 강경책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임을 이명박 정부는 직시해야만 한다.

2. 등가교환의 유혹: 스톡홀름 신드롬 그 이후

스톡홀름 신드롬은 인질들이 처음에는 인질범을 무서워하다가 차츰 인질범들에 설득당해서 그들을 지지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지난 10년간의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세력들은 스톡홀름 신드롬을 이야기했다.

북한은 핵무기를 들고 협박하는 악질적인 인질범이고 남한은 인질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인질범을 압박하는 미국을 비판하고 북한이 인질 행위를 할 수밖에 상황을 이해하라고 설득했다는 것이었다. 일견 설득력 있는 논리이며, 특히 미국의 네오콘들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 보유는 강경책이 실패한 결과이다. 북한을 압박해 핵을 포기시키고, 나아가 정권붕괴를 촉진시키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일관된 전략이었지만, 북한으로 하여금 오히려 핵무기에 집착하는 결과를 나았다.

그렇다면 위의 논리대로 남한이 미국과 함께 강경책을 펼치지 않아 실패한 것인가? 그렇게 본다면 첫 번째 변수 착각의 함정에 다시 빠지는 것이다. 물론 남한 정부가 미국의 군사적 옵션을 포함한 대북 압박정책에 반대했지만, 동북아 전체 구조나 미국 내부 사정이 얽혀있었으며, 근본적으로 대북 강경책의 효과가 별로 없기 때문이라고 봐야한다.

대북정책의 역학구조상 우리가 강경책을 선택할 경우 등가성의 함정이 있다. 물론 외교의 기본은 우리가 한만큼 상대방도 해야 한다는 등가적 상호성이다. 그러나 과거 동서독도 그랬듯이, 남북한이라는 특수 관계에서 엄격한 등가성을 주장하는 것은 문제 해결 자체를 어렵게 한다.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조용하다가도 일이 틀어지거나 북한의 행동이 우리의 기대를 벗어나면 어김없이 등가성의 원칙을 제기하면서 남북관계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패턴을 반복했다. 엄격한 등가성의 원리는 명분은 세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문제 해결은 요원하게 한다.

또한 강경책은 앞에서 지적한 남한의 변수로서의 역할을 더욱 축소시킨다. 남한이 월등하게 강한 미국과 비대칭적 동맹을 맺고 있기 때문에, 남한 단독의 강경기조는 북한을 근본적으로 압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강경기조에 대해 온건정책을 선택해도 우리의 지렛대는 크지 않지만, 일정 정도 미국의 대북 강경책을 완화할 수 있는 개입변수의 역할은 가능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대북문제에서 가장 공헌한 점을 꼽으라면 바로 꾸준한 온건정책을 견지함으로써 남북문제에 있어 주요행위자로서 기능하게 만들었다는 부분일 것이다.

북핵문제와 관련해서는 스톡홀름 신드롬보다는 반대로 인질범들이 차츰 인질들에게 동화되어 공격적 성향이 적어진다는 이른바 '리마(Lima) 신드롬'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3. 핵개발 의도에 관한 흑백론

북핵 위기 초기부터 북한의 의도가 핵무기 개발인지, 아니면 협상도구인지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있어왔다. 이는 현재 핵무기 보유가 기정사실화된 이후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큰 함의를 가진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고 한다면 두 가지 접근이 가능하다. 하나는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비확산에 주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협상국면은 무의미하므로 군사충돌을 불사하고 압박의 강도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다. 전자는 미국 내 소수의견으로 새로이 부상하고 있고, 후자는 한미 양국 보수층의 다수의견이다.

반대로 여전히 핵무기를 통한 보상에 따라 북한이 핵을 폐기할 수 있다고 본다면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에 주력해야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 포기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 협상은 무의미한데, 그것은 협상을 통해서 받을 것은 모두 받아내고도 결국 핵무기도 가지려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 북한의 15년 협상에서 보여준 돌출행동과 약속 불이행을 들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그러한 행동에는 미국의 약속 불이행에 대한 반발 차원도 적지 않았다. 또한 북한이 그동안 확실하게 보상받은 것도 없이 지루한 협상에 꾸준히 참여하고 여러 차례 중요한 합의도 했다는 것에서 나름의 진정성을 엿볼 수가 있다.

북한의 핵개발은 마치 문고리가 안쪽에만 달린 문과 같다. 김정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정권유지이고, 이를 위해 외부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버티고는 있지만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외부의 도움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북한의 대규모 변화와 개방인데, 이를 허용할 경우 자신도 동유럽의 독재자들의 운명이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핵(문고리)을 통해서 문을 여는 정도와 속도를 자기가 조절하겠다는 것이다.

김정일에게 개혁은 필요하지만 철저하게 주도권을 가지고 해야만 하는 것은 절대절명의 조건이다. 문고리가 밖으로 나있지 않아 문밖의 사람들을 답답하게 하지만, 그렇다고 문을 부숴버리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주도권이든 속도조절이든 일단은 문을 조금이라도 열게 해서 그 틈새를 최대한 벌여야 한다. 그러므로 북한이 궁지에 몰아 협상용으로서의 유용성을 완전히 잃게 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위험한 것이다.

4. 통미봉남 : 자기복제 콤플렉스

1970년대 이후 미국이 북한과 직접접촉을 할 때마다 한국 정부로부터 어김없이 터져 나오는 용어가 통미봉남(通美封南)이다.

북한의 위협을 전제로 맺어진 한미동맹이지만, 상호평등의 동맹이 아니라,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왔기에 역대정권들은 동맹의 방기(abandonment)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한국이 미국에게 제공할 것은 별로 없고, 미국의 의사에 전적으로 기대야만 한다는 열등감이 존재했다.

특히 70년대 미국과 중국의 관계정상화와 뒤이은 데탕트는 이런 우려를 현실로 만들었다. 대북정책에 관해서는 한미가 다를 수 없다는 믿음이 깨지는 계기였다. 더욱이 권위주의 정권들은 정통성의 문제를 안고 있었고, 상당 부분 북풍을 이용해 무마해왔다는 점에서 미국의 변심가능성은 늘 불안했다.

기본적으로 이는 냉전의 유산이지만 냉전이 끝나고 탈냉전이 도래했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김영삼 정부가 초기의 전향적인 대북관에도 불구하고 김일성 조문정국과 그 후 북핵문제해결을 위한 북미 양자접촉에서 돌변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와서야 비로소 북한의 위협이 과거보다 현저히 낮아졌다고 판단하고, 정통성에 대한 자신감으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국내 보수세력들은 달라진 국제환경을 수용하기보다는 결과적으로 나빠진 한미동맹만을 우려하며,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한미동맹의 복원의 전제조건으로 믿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은 출범하자마자 대북 강경책을 통한 대미접근을 재촉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앞으로 통미봉남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최근 북미대화 움직임에 대한 반응을 보면 이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과 두려움은 남아있는 것 같다.

아무튼 통미봉남은 북한이 전략으로 사용한 경우보다 남한 내부에서 자기복제에 의한 것이 더 많다. 사실 미국을 이용해서 북한을 다루는 적극적인 실용의 지혜가 필요함에도 여전히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안타깝다.

5. 목표와 방법 사이의 의도적(?) 오해

북핵문제에 관련한 다섯 번째 오해는 비핵화라는 목적과 그 비핵화에 이르는 방법에 대한 편견이다.

강경론자들은 자신들이 북한의 비핵화를 최우선 순위의 목표로 삼으면서 협상론자들이 북한이 핵 보유를 용인하는 것처럼 취급한다.

햇볕정책의 지지자들이 북한의 비핵화라는 대전제를 부정한 적이 없지만 북핵을 용인한다는 식의 인상을 갖게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상대방에게 논쟁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의도적 오해라면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또한 오히려 이런 식의 왜곡은 북한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한 방법적인 면에서 구체성을 떨어뜨린다.

북한 비핵화의 최종단계만 강조하게 되고, 또한 그것을 전제로 한 보상만 다루기 때문에, 구체적인 중간과정이 대부분 생략되기 쉽다.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가 제시한 대북정책의 경우 최종단계만 있고 구체적인 방안이 없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

'비핵·개방 3000'으로 대표되는 대북정책은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있을 보상을 말하는 것이지, 이를 어떻게 이끌어낼지에 대한 계획이 전무하다. 이렇게 될 경우 북한이 스스로 무장해제하기 전에는 한발 짝도 진전되지 않는다. 왜 겉으로는 실용주의를 부르짖지만, 실제로는 대북문제에 명분과 이념적 접근을 하고 있는지 설명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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