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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없는 강남, 마을이 살아야 교육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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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없는 강남, 마을이 살아야 교육이 산다"

[민들레 교육 칼럼] 마을운동과 교육운동

'교육 불가능' 시대라고 합니다.

과열된 입시 경쟁,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학교 폭력, 공교육을 대체하다시피 팽창해버린 사교육 등. 가르침과 배움은 사라지고 오로지 '등수 매기기'에만 골몰하는 교실 풍경은 이제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식상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다들 이런 식상한 이야기를 하곤 하지요. 누구나 알고 있는 현실 진단을 기계적으로 읊조리는 정책 당국자, 학자들의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끼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런 뻔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풍경, 그 맞은편에는 학교 폭력, 입시 부담, 혹은 어른들이 짐작하지 못하는 그밖의 어떤 이유로 자살을 고민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세상을 떠나고 싶을 만큼 심각한 문제 앞에서, 어른들은 왜 '뻔한 이야기'만 반복하는 걸까요. 어쩌면 이런 간극이야말로 우리 교육의 절망적인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지금 진짜 필요한 미덕은 '솔직함'일 수 있겠다고 봅니다. 짧은 자기 경험으로 섣부르게 단정짓기보다 교육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아주 하찮은 수준이라는 걸 솔직히 인정하고 시작하는 태도 말입니다. 또 근대적인 학교 모델이 이젠 어떤 구조적인 한계에 부딪혔다는 점, 그리고 그 한계와 모순에 대한 우리의 인식 역시 한계가 있다는 점 역시 솔직히 인정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대안교육 격월간지 <민들레>에 주목한 건 그 때문입니다. 지난 1999년 창간된 이 잡지의 시선은 '학교 너머'를 향하고 있습니다. "학교가 바뀌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만큼 우리는 학교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만들자"라는 <민들레>의 목소리가 교육에 관한 '뻔한 이야기'들에 갇혀 드러나지 않았던 '학교의 빈 곳'을 살피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편집자>


아이, 마을의 연결고리

태곳적부터 사람들은 마을을 이루고 살아왔다. 아주 오랜 세월을 씨족사회로 지내왔고, 부족사회를 거쳐 국가 체제를 이루게 되었지만, 농경에 기반을 둔 전통 마을은 20세기까지도 씨족사회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전통 마을은 빠르게 해체되었다. 넓은 의미에서 마을을 '말이 서로 통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라 정의한다면, 말이 표준화되면서 마을의 경계 또한 자연스럽게 확장되고 모호해졌다.

이는 단순히 표준화와 도시화의 결과가 아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마을을 기능적으로 분화시켰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일터가 있고, 직장인들은 일터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또 이전에는 마을 안에서 마을 사람들끼리 하던 일들을 이제는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해소하고 있다. 수많은 동호회들이 기존에 마을이 감당하던 놀이와 사교 무대를 대신하고 있고, 교회는 도시나 시골을 불문하고 또 하나의 마을처럼 기능하고 있다.

사실 오늘날 도시에는 마을 공동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 사회의 경우 개인과 가족 중심의 효율성을 우선하는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마을 공동체 형성을 가로막는 큰 요인이기도 하다.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2년마다 이사를 가야 할 만큼 주거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이다 보니 도시에서 마을 공동체라는 말은 낯설기 짝이 없다.

이런 사회에서 최근 새삼 '마을'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다들 외로움에 지친 것일까. 외로움은 도시의 익명성이 주는 자유로움에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온다. 아이를 키우면서 힘든 경험을 많이 하는 엄마들이 더 적극적으로 마을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인간이란 모름지기 사람들 사이에서 어울려 살아야 한다고 여겨, 사람다운 사람을 기르기 위해서도 마을 속에서 아이를 기르고자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초원의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새끼를 돌보기 위해서는 무리를 짓지 않을 수 없다. 힘센 사자나 호랑이처럼 어미의 힘만으로도 새끼를 기를 수 있는 사람들은 마을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겠지만, 약한 동물들은 무리를 지어 새끼를 함께 기르는 것이 안전하고 힘이 덜 든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도 아이들을 같이 돌보고자 하는 필요에 의해 마을이 살아나고 있다. 아파트촌에서도 아이들이 매개가 되어 이웃이 만들어진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잇는 연결고리다.

마을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교육이 살아나야 하고, 교육이 제대로 살아나기 위해서는 또 마을이 살아나야 한다. 배움터, 학교는 마을의 심장과 같은 존재다. 피를 돌게 하는 역할을 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학교가 마을과 분리되면서 마을은 핏기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돈도 사람도 중앙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지역은 빈사 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학교 또한 죽어가고 있다. 그렇게 죽어가는 학교가 살아나는 것이 마을이 살아나는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교육은 학교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다. 학교 살리기는 '공교육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시도되는 '근대 학교의 부활'이 아니라, 학교 같지 않은 학교로 거듭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마을이 큰 학교가 될 때 교육은 제 모습을 찾게 되고 마을도 제대로 살아날 것이다.

도시에서 마을과 교육 살리기

아이들을 마을이 함께 키워야 한다는 자각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움직임들이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공단이 밀집해 있는 경기도 안산의 와동과 선부동 지역아동센터에서 벌이고 있는 일들은 지역에서 소외되던 아이들이 먼저 마을 어른들에게 손길을 내밀면서 인정도 받고 스스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아이들이 동네 정원을 대신 가꾸어주기도 하고, 공원을 찾는 어른들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먼저 소통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본받을 만한 어른들과 지역의 문화재를 찾아서 '동네문화재'로 선정해 책자도 만들면서 칭찬이 되돌아오는 칭찬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 '성미산마을 걷고 싶을 지도', 성미산마을 관련 일을 하는 마을 단체 '사람과마을' 카페 캡처 ⓒcafe. daum. net/sungmisanpeople

서울의 마포 성미산마을, 우이동의 재미난마을, 상도동의 성대골마을 같이 대도시에서도 아이들을 매개로 해서 마을이 살아나는 곳들이 적지 않다. 상도동의 성대골어린이도서관은 주민들이 아이들을 위해 만든 민간 도서관이다. 동작구의 풀뿌리 단체인 희망나눔동작네트워크와 상도동 주민들이 2년 넘게 모금 활동을 벌여 2010년 10월에 개관했다. 마을카페 '사이시옷'도 비슷한 시기인 2010년 겨울, 지역 주민 20명이 300만 원씩 출자해 만든 것이다. 목수는 탁자, 실내장식업자는 블라인드를 기증하고, 미술학원 교사는 벽화를 그리고 꽃집에서는 화분을 선물했다. 카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목공방 '성대골별난공작소' 역시 주민 참여로 만들어진 협동조합으로, 목공과 관련된 다양한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카페나 목공소의 수익금은 저소득층과 지역 발전을 위한 기금으로 쓰인다.

지난해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으면서 충격을 받은 엄마들이 자발적으로 지역 공동체 모임 '착한 에너지 지킴이'를 꾸려 어린이도서관 내에 성대골절전소를 만들었다. 핵발전소를 포기하기 위해서는 우리 집부터 전기를 아껴 써야 한다는 자각에서 시작된 생활운동이다. 절전소라는 무슨 시설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도서관 벽면에 '성대골절전소'라 적힌 종이를 붙이고 거기에 33가구의 전력량 사용 현황을 그래프로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와 올해의 전력량을 다른 색깔로 표시해 얼마만큼 에너지를 절약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그래프가 벽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지금은 400세대가 참여하고 있고, 이제는 절전에서 더 나아가 대체에너지 마을 만들기를 목표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공동 육아 어린이집과 그 연장선인 대안학교를 연결고리로 해서 만들어지는 마을의 경우 부모들과 기존 지역 주민들이 어우러지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성대골의 경우는 좀 더 열려 있는 마을이라고 볼 수 있다. 도서관을 만든 주축 멤버들은 이제 대안적인 방과후학교인 성대골마을학교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지역에 하나뿐인 초등학교인 상도초등학교는 이태 전까지만 해도 2부제 수업을 해야 할 만큼 과밀학교였는데, 교사를 신축하면서 학교 환경도 많이 좋아졌다. 아이들을 살리려는 엄마들의 노력이 어른들과 마을까지도 살려내고 있는 좋은 사례인 셈이다.

서울에서 마을 공동체의 모습을 갖추어가는 곳만도 20여 곳에 이르고 있고, 그 싹이 보이는 곳도 90여 개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형태는 매우 다양하여, 성미산마을이나 재미난마을처럼 공동 육아를 모태로 만들어지는 곳도 있고, 성북구 장수마을이나 은평구 산새마을처럼 기존 달동네를 주거재생사업을 통해 살려내는 사례도 있다. 쪽방촌으로 알려진 용산구 동자동에서는 2010년 쪽방 주민들이 자활을 위해 1계좌 5000원씩 출자하여 '공제협동조합'을 만들었다. 6개월만 꾸준히 저축하면 담보나 보증 없이 대출을 해주는 '문턱 없는 은행'이다.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그 돈이 어떻게 모인 돈인지 알기에 빌린 돈을 반드시 갚기 위해 애써, 지난 3년 동안 상환을 포기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2008년에 '동자동사랑방'을 처음 열었던 엄병천 씨는 최근 고향인 제천 덕산면으로 귀농하여 쪽방촌 주민들의 귀촌 귀농을 돕는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에서 마을 만들기 사례가 아직 없는 곳은 강남구와 서초구, 중구라고 한다. 업무지구가 많은 중구나 서초구의 경우는 구조적 한계가 있지만 주거 비율이 높은 강남구의 경우는 다르다. 굳이 마을을 만들 필요를 못 느끼는 이들이 많은 까닭일 것이다. 다들 호랑이나 사자들처럼 고독하게 사는 걸까. 아니면 인맥과 혼맥으로 끼리끼리 커뮤니티를 만들어 지구촌을 마을 삼아 재미나게 살고 있을까. 글쎄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자보다는 얼룩말들이 더 재미나게 살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시골 마을과 교육 살리기

21세기 이 땅에서 살아 있는 대표적인 농촌 마을을 꼽는다면 충남 홍성 홍동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홍동을 살린 힘은 풀무학교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형로 씨를 비롯한 마을 일꾼들 대부분이 풀무학교 졸업생들이다. 지난 50여 년 동안 교육 철학을 지키면서 아이들을 건강한 청년으로 길러 낸 풀무학교는 지역의 활기를 더하는 데 구심 역할을 해왔다. 1970-1980년대 대학생 농활이 한창일 때 홍동으로 농활 온 이화여대 여학생들 중 십여 명이 그 청년들과 결혼하여 지역에 뿌리를 내린 것도 홍동의 활기를 더했을 것이다.

한살림운동의 발원지인 원주도 지역운동이 활발한 편이지만 홍동면만큼 활기를 띠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지역운동의 중심 역할을 하는 풀무학교 같은 학교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장일순 선생이 서울대학을 중퇴하고 귀향하여 사재를 털어 원주 시내에 설립한 대성중고등학교는 풀무학교보다 4년이나 일찍 문을 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평범한 사립 인문계학교가 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풀무학교처럼 시골구석에서 별 볼 일 없는 농업학교로 시작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대성학원이 장일순 선생의 정신이 살아 있는, 지역일꾼을 길러 내는 학교가 되었더라면 원주가 사뭇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50여 년 뒤 장일순 선생의 정신을 잇고자 하는 대안학교들이 원주에 생겨났지만 아직 지역에 온전히 뿌리를 내리지는 못했다. 역사도 짧을 뿐더러 대부분의 기숙형 대안학교들처럼 도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이다 보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는 사람은 그 지역 출신 아이들이다. 대안학교가 마을과 하나가 되려면 그 지역의 아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두 가지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학비를 감당하기 어렵고, 더욱이 대도시로 나가기를 바라는 마당에 시골의 비인가 학교에 아이를 보낼 지역주민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바람직하기로는 공립학교를 개혁하여 대안학교 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이는 어쩌면 새로운 학교를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기존 학교들이 지역 일꾼을 길러 내기란 기대난망이다. 이제는 도시화와 세계화의 힘이 더 강해져서 아이들이 시골이나 지역에 뿌리를 내리기가 더 힘들어졌다. 결국 귀농·귀촌한 사람들이 지역에 제대로 정착하고 그 자녀들이 지역의 (대안)학교를 나와서 지역 일꾼으로 성장하여 새로운 마을운동을 해나가지 않으면 지역이 살아나기 어려울 것이다. 세계화의 폐해를 막는 길이 지역성을 살리는 데 있다고 본다면, 대안학교들의 과제는 풀무학교처럼 그 지역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농촌 마을은 예전의 마을과는 다른 모습의 마을일 것이다. 우리가 마음먹기에 따라 더 평등하고 더 따뜻한 마을을 만들 수 있다. 주거환경도 개선하고, 이웃 관계가 좋아질 수 있도록 마을 구조를 설계하고, 그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배운 만큼 좀 더 현명한 방식으로 좋은 모델을 만들어볼 일이다. 노인들을 비생산 인구로 치부하여 복지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 수도 있다. 완주에서 시도하고 있듯이 중소도시 근교에 60∼70대 노인들이 힘에 부치지 않게 텃밭 농사를 지어 건강한 먹을거리를 자급하고 읍내에서 팔수도 있는 시스템을 갖추면 노인들도 건강한 노후를 보낼 수 있고 지역 사람들도 더 건강해질 수 있다.

어깨 걸기 전에 마주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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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 85호 ⓒ민들레
지금의 마을 만들기 움직임을 살펴보면 어린 시절 마을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는 이른바 '386세대'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이제 386세대도 어느덧 오십 대에 접어들었다. 평균수명 백 살 사회에서 오십은 청춘이라 자위하지만, 명퇴당한 청춘이 어디 있는가. 이제는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이른 것이다. 제2의 인생을 살아낼 준비를 해야 한다. 여생이라 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앞에 있다. 노후를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의 안전망에 기대기보다 인간적 유대로 엮인 안전망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을 만들기는 사회안전망의 대안으로서도 주목할 만하다.

노인과 아이들은 서로 잘 어울리는 궁합이다. 386세대는 이전 노인세대와 달리 사회의식도 있고 교육 문제에도 관심이 많으므로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할 수도 있다. 귀촌한 50대들의 경우 산촌 유학생을 돌보는 일을 해도 좋을 것이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전국에 20여 개 현장이 산촌 유학생들을 받고 있고, 그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민들레> 통권 80호 특집 참조). 도시아이들에게 건강한 시골살이를 경험하게 하고, 농촌 지역도 활기를 띠게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하지만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 사람을 기르는 데는 미흡하다. 언제나 그랬듯이 도시 뒷바라지만 하는 시골이 되지 않도록, 지역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방향을 잘 잡아야 할 것이다.

도시든 시골이든 함께 어울려 사는 일은 쉽지 않다. 도시의 마을도 시끌시끌하지만 귀농·귀촌자들이 많은 마을일수록 말도 많고 탈도 많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마을살이는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철학자 레비나스가 말했다. 우리는 서로 어깨를 걸기 전에 먼저 서로 마주 보아야 한다고. 타인의 소리 없는 말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고. 386세대는 어깨를 거는 일은 잘했지만 마주 보는 일에는 서툰 편이었다. 마주 보려면 자신을 드러내야 하고, 그렇게 드러난 상대방의 모습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진정한 연대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마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실 마을이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그 무엇일 것이다.

* 위의 글은 <민들레> 85호 "교육, 마을에서 길을 찾다"에 실린 글입니다. (☞ <민들레>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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