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적 원로 인사들의 모임인 '화해상생마당'이 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전환기에 선 한반도, 통일과 평화의 새로운 모색'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대북 포용론자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그리고 '선진화론'을 주창하는 박세일 서울대 교수가 진보와 보수를 대표해 한반도 문제를 가지고 토론을 벌일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은 자리였다.
그러나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보수-진보 양측의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 대신 박세일 교수의 주장을 두고 논란만 크게 벌어졌다. 박 교수는 '한반도 위기의 본질과 선진화 포용 통일론'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과거 30년간 정부의 대북·통일정책을 비판하면서 자신이 주장하는 '선진화 포용통일론'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합리적 보수세력의 이론가로 일컬어지는 박 교수였지만, 그의 주장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간 합의에 대한 색깔론적 시각, 북한 조기붕괴론과 흡수통일론을 기반으로 한 현실 인식 등이 짙게 깔려 있었다.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대한민국의 공식 통일방안이고, 북한은 공식적으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이라는 대남 적화통일 방안을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2000년 6.15 공동선언에서는 어떠한 과정과 근거를 가지고 이 두 방안의 통일론에 큰 차이가 없다는 합의를 넣었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의 대북정책은 대통령의 이념과 소신에 따라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통령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입헌주의를 파괴하는 일까지 있었고, 대통령의 소신에 따라 대북정책의 원칙과 기조가 180도 달라지는 천박하고 경박한 모습까지 보여 왔다."
"북한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체제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스스로 실패국가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핵실험이라는 북한 지도자의 치명적 정책실패가 겹쳤다. 결국 북한은 체제실패 내지 국가실패 즉 hard landing(경착륙) 이외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자신의 '선진화 통일론'을 주장했는데 "통일 대업에 합류하면 과거는 서로 묻지 않고 한반도의 선진화에 동참해 함께 나아가자는 확고한 의사 전달과 의지 표명이 있어야 한다"며 "북한 사회에 선진화 통일세력을 만들고 그들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 북한에 대해 대(對)당국자 전략만 있었고 대민 전략이 없었다는 사실과 북한에 올바른 선진화 통일세력을 지원하기 위한 정치전ㆍ심리전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은 진정 만시지탄의 한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박 교수는 역대 정부에서 대북정책은 있었지만 통일정책은 없었다고 비판했고, 통일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주변 4대 강국에 대한 적극적인 통일외교도 없었다고 말했다.
윤여준 "6.15 선언, 헌법정신 이탈 안 했다"
반북(反北) 수구적인 논객들과 다를 바 없는 말들 쏟아지자 같은 보수 쪽 토론자로 나온 윤여준 화해상생마당 운영위원장(전 여의도연구소장)마저도 그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윤여준 위원장은 6.15 선언에 대한 비판에 관해 "국회 동의가 없는 등 국민적 합의 기반이 취약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당시 여론에서 적지 않은 지지를 받았던 것도 사실"이라며 "국민적 합의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이어 "6.15 선언이 자유민주주의를 명시적으로 거부한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헌법정신을 이탈한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라며 "남북이 기왕에 합의한 7.4 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 선언, 10.4 선언 등을 모두 존중하는 것이 현실에도 부합되고 국민통합에 유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 조기붕괴론을 시사하는 박 교수의 주장에 대해 윤 위원장은 작년에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미 국무부도 조기붕괴론에 회의적이더라는 일화를 소개하며 "가까운 장래에 hard landing이 불가피하다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개혁개방을 상당 기간 제한적이고 부분적으로 할 수 있으며 그 결과 경제가 전면 회복되지는 못하더라고 최악은 면한 채 답보하는 상태도 상정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핵문제도 완전한 해결은 아니더라도 부분적이고 미봉적인 해결과 교착의 반복이 나타날 수 있다"며 "특히 미국의 정책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복명과 숨은 변수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인도적 지원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북한 주민들이 자신들을 굶주림에서 구해준 것은 바로 남한 동포라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라며 박 교수가 이른바 '북한 주민에 대한 전략'을 언급하며 '정치전ㆍ심리전'을 강조한 것과는 다른 길을 제시했다.
윤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의 말을 덧붙였다.
그는 북핵 문제의 해결은 북미수교와 적대관계의 해소를 수반하고 동북아 역학 구조에도 근원적인 변화를 몰고 올 공산이 크다며 이를 "전대미문의 민족사적 도전과 세계사적 변화"라고 규정한 뒤, "이렇게 복잡하고 엄중한 상황은 현 정부의 '비핵ㆍ개방ㆍ3000'이나 광복절 경축사의 '신(新)평화구상' 같은 수준으로 대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세현 "무작정 통일외교 하면 될 일도 안 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6.15 공동선언이 북한의 연방제에 동조한 듯 주장하고 있는 박 교수에 대해 "색깔론 같은 정치적 배경이 아직도 남아 있다"며 공박했다.
정 전 장관은 1991년 김일성 신년사에서 '느슨한 연방제'가 나온 이후 연방제에 대한 북한의 개념 변화를 일별하면서 "북한이 연방제에서 국가연합 쪽으로 선회했고 노태우 정부 이래 김대중 정부도 남북연합을 통일의 중간단계나 출발점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6.15 공동선언은 (김대중 대통령의) 사적인 통일방안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합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정 전 장관은 역대 정부에 통일정책은 없고 대북정책만 있었다는 박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도 "통일문제가 담론 차원에서 맴돌던 70년대까지는 적실성 유무와 무관하게 통일정책이 거창하게 제시된 적도 있었지만 탈냉전과 더불어 통일문제가 가시권 안으로 들어오면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정책을 제시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통일외교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정 전 장관은 "4강이 각축하는 동북아에서 국제질서의 격변과 현상 타파의 의미가 있는 통일외교를 어느 선으로 해야 하는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초장부터 통일외교를 적극 전개하는 것보다 민족 내부의 통일 구심력부터 키워나가면서 정세를 엿보다가 '이때다' 싶을 때 국제적인 통일 견제 원심력을 약화시키거나 통일 협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충고했다.
북한 동포에 대한 정책을 펴야 한다는 박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현실적으로 북한 지역과 주민을 통치하는 것은 우리 정부가 아니라 북한 당국인데 어떻게 동포정책을 직접 추진할 수 있나"고 되물으며, "당국을 상대로 하는 정책을 통해 북한 사회가 변화하고 동포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도록 답답하지만 간접적으로 도와주는 길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세일 "체제 선택에서 중간은 없다"
이 같은 지적이 쏟아지자 박세일 교수는 흡수통일이 무엇이 문제냐는 식으로 맞섰다. 박 교수는 "흡수통일은 한 체제가 다른 체제를 동화하는 과정"이라며 "북한의 수령 절대주의와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선택의 여지가 있나? 중간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남한의 체제로 흡수되는 건 불가피하고 역사적으로도 불가피하다"며 "그건 불가피하게 흡수통일이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도 흡수통일을 주장하고 있는데 흡수통일이 왜 나쁜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너무나 당연한데 흡수통일을 하면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6.15 선언이 북한의 연방제 통일에 동조했다는 보수 진영의 주장은 과거 10여 년 동안 반박되고 해명되어 왔다. 흡수통일이 왜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89년 독일 통일 이후 줄기차게 지적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교수에 의해 또 다시 그런 문제들이 제기되자 전직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심포지엄이 끝난 후 "20년 전의 주장을 아직도 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또 다른 통일부 전직 고위 당국자는 "생각을 바꿀 의지가 없는 것 같다"며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홍구 "10.4 선언까지 예외 없이 수용해야"
토론에 앞서 기조발표를 한 이홍구 전 총리는 자신이 통일원 장관이었던 1989년 만들어진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는 '선(先) 민족공동체 건설 - 후(後) 통일국가수립'이라는 원칙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 전 총리는 또 민족공동체통일방안과 92년 남북기본합의서 및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은 "한 세트"라면서 "2000년 6.15 공동선언과 2007년 10.4 선언도 넓은 의미에서 민족공동체 건설이란 기본 궤도 선상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총리는 이어 "남북이 두 개의 국가체제의 잠정적 공존공영을 수용하고 하나의 민족공동체 건설에 협조하는 것이 궁극적 국가통일에 가장 바람직한 길이라는 데에 동의한다면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 6.15 선언, 10.4 선언을 예외 없이 수용하고 재확인해야 새로운 전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첫 토론자로 나온 백낙청 교수는 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서부터 남북기본합의서까지를 대북 포용정책의 '예비 버전'이라면서, 김대중 정부에서 비로소 포용정책 '1.0 버전'이 실행되었다고 말했다. 남북기본합의서까지가 '예비 버전'이었던 이유는 실천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백 교수는 '1.0 버전'의 계승을 전제로 이제는 포용정책 '2.0 버전'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2.0'은 포용정책을 펴면서 북핵 문제까지 해결하는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 "남북연합과 동북아 평화체제의 동시 추진이라는 거대한 새 구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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