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전 대통령은 4일 평양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3시간 넘게 대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핵 문제를 포함한 거의 모든 현안을 협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은 대통령 재임 시절이던 1999년 윌리엄 페리 대북정책조정관을 평양에 파견했고, 페리는 대화와 협상으로 한반도의 냉전 구조를 해체하자는 내용의 '페리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그에 따라 북미 양국은 2000년 수교 직전까지 갔었다.
그랬던 클린턴이 스스로 평양에 가서 가져온 보따리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지 주목된다. 그는 조만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직접 만날 예정인데, 페리 프로세스의 개정증보판격인 '클린턴 프로세스'가 제안된다면 한반도 정세는 지각 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방북의 배경과 의미, 향후 전망을 들어보는 전문가 좌담을 마련했다. 5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진행된 이 좌담회에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서재정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 박후건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참여했다.
참석자들은 오바마 행정부가 클린턴을 평양에 '파견'한 것은 중국을 통한 대북 압박에 실패하면서 대북 제재국면을 대화국면으로 바꾸기 위한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이로써 북미관계의 시계는 2000년 10월 북미 공동코뮈니케 채택 당시로 돌아갔다는 게 전문가들의 생각이었다.
이들은 또 미국의 움직임과 더불어 일본의 정권 교체 가능성,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접근 등으로 볼 때 이명박 정부의 현 대북정책이 계속된다면 한국은 동북아의 외톨이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만남은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연합뉴스 |
프레시안 :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배경부터 짚어본다면
정세현 전 장관 : 표면적으로 여기자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간 것처럼 말하고 있고, 핵과 미사일 등 중대 현안과는 무관하다고 한다. 그러나 클린턴급(級)이 움직이는 걸 보면 미국이 북한한테 핵과 미사일에 대한 확실하고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내서 문제 해결의 수순을 밟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갔다고 본다.
김정일을 틀림없이 만날 수 있는 급의 인물을 보냈다는 점이 주목된다. 클린턴은 2000년에 대통령으로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평양에 보냈고, 자신의 방북을 타진했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는 그런 클린턴을 보내서 북한을 존중한다는 의사 표시를 한 것이다.
▲ 정세현 전 장관은 서울대 외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77년 국토통일원 연구관(4급)에 특채된 뒤 30여 년 간 남북대화의 현장에 있었다. 2002년 1월부터 2004년 6월까지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통일부 장관과 노무현 정부의 초대 통일부 장관을 역임했다. 현재는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을 맡고 있다. ⓒ프레시안 |
미국은 이렇게 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1874 결의에 따른 제재국면을 서서히 마무리하고 대화국면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5월로 예정된 NPT(핵확산방지조약) 검토회의에서도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NPT 체제를 복원하는데 있어 핵심은 북핵 문제다. 미얀마 핵기술 협조 의혹, 이란과의 무기거래 등은 모두 북한에서 비롯된 문제들이기 때문에 미국은 그 '수도꼭지'를 막아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는 어떻게든 북한을 상대해야 한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북한의 필요라기보다는 미국이 필요에 의해 이뤄진 것이다.
서재정 교수 : 같은 생각이다. 미국의 가장 중요한 외교안보 과제 중 하나는 바로 비확산 문제다. 내년 5월 NPT 검토회의가 있고, 거기서 NPT 체제를 강화하겠다는 게 오바마의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 중 하나인데,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오바마 정부는 지난 6개월간 북한을 다루는데 있어 중국을 동원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강경노선을 시험해봤다.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 라인이나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차원에서 밀어 붙여 봤는데, 지난달 27~28일 미중경제전략대화까지 해보니까 중국을 동원해 봉쇄하는 건 도저히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미중경제전략대화 공동발표문에는 북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언급이 있었고,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북한과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했다. 그걸 보면서 미국은 중국을 동원한 포위와 압박은 안 된다는 한계를 느꼈다. 중국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실패한 것이다.
박후건 교수 : 미중경제전략대화가 역시 굉장히 중요했다. 그 회의에서 미국은 중국을 활용해 북한을 제재하는 게 가능한지 마지막으로 타진했다. 미중 양국이 일종의 협상을 한 셈이다. 그런데 중국의 입장이 단호했던 것 같다. 만리장성에 막혀버린 것이다. 그러니 미국으로서는 더 이상 선택지가 없게 됐다.
어쩌면 미국은 처음부터 유엔 결의 1874호가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핵실험을 했으니까 상황 대응적으로 채택한 것인데, 실제로 성과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년 NPT 검토회의가 중요한데,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빨리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클린턴을 평양에 보낸 것이다.
▲ 박후건 교수는 미 캘리포니아주립대(UC Riverside)에서 북한 경제 개발 전략으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컬럼비아대 조교수, 보스턴컨설팅 그룹의 경영 컨설턴트, 일본 와세다대 국제교양학부 부교수를 거쳐 현재는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프레시안 |
정세현 : 북한에 대해 중국이 뭔가 큰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미국 사람들의 환상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북한은 중국에 지리적으로 가장 민간한 지역이기 때문에 중국은 북한 문제에서 득을 보겠다는 생각보다 손해를 안 보겠다는 정도의 계산만을 하고 있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중국이 인접국가 관리를 어떻게 했는지를 모르는 것 같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스타인버그 부장관 같은 중국통이 많은데, 중국을 움직이면 다 될 거라고 하는 맹신론적 전략은 결국 시간 낭비로 판명됐다.
중국의 협력이 있어야 미국의 경제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 정도로 중국의 역할은 커졌다. 그런데 중국이 북한을 그냥 놔두면 동북3성이나 화북지방의 경제권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는 건 중국 경제에 도움이 안 되고, 결국 미국 경제에도 도움이 안 된다. 그러니 중국은 '우리가 제재에 협조도 별로 안 했지만, 해도 소용없으니 미국도 그만 끝내라'고 한 것이다.
물론 중국도 상징적인 제재 몇 개는 했다. 최근에 중국이 단둥에서 북으로 들어가는 미사일 원료인 바나듐을 압수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것이 그 일환이었는데, 그걸로 '제재 인사'를 끝내겠다는 뜻이었다. 도리를 다 했으니 더 이상은 안 하겠다는 것이다.
서재정 : 오바마 행정부의 중국 인식에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다. 특히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키신저는 중국을 동원해야 한다는 얘기를 사방에 하고 다녔다. 키신저는 기본적으로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에 '중미 양대 강국이 힘을 모아 북한을 압박하면 뭔들 못 하겠냐'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니까 언론에서도 양국이 북한 같은 작은 나라를 요리 못하면 어떻게 세계를 경영할 수 있겠냐는 얘기가 나왔다. 이런 논리가 국무부에 들어가서 스타인버그 부장관 같은 사람에게 영향을 줬다. 그건 중국의 대외정책을 이해 못하는 것이고, 더 중요하게는 북한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 서재정 교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코넬대 정치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워싱턴D.C에 있는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SAIS) 교수로 있으며 한국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최근 <한미동맹은 영구화하는가>라는 책이 국내에서 나왔다. ⓒ프레시안 |
정세현 : 맞는 말이다. 북한의 대외정책을 이해하려면 김일성이 입에 달고 다녔던 말을 알아야 한다. "세계에 크고 작은 나라는 있지만 높고 낮은 나라는 없다." 그렇게 남한테 절대 굴복하지 않겠다는 특이한 외교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게 북한인데 중국과 북한 외교의 특성, 조(북)중관계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중국의 힘을 동원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서재정 교수는 최근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미국이 대북정책은 '제재와 대화'라는 투트랙이 아니라 대화를 하는 원트랙이라고 말했는데, 클린턴의 방북은 그 시그널인가? (☞관련 기사 : "美의 대북제재, '대화와 협상'의 준비 과정")
서재정 : 오바마 정부 내에서도 크게 두 가지 주장이 있었다. 하나는 중국을 통한 압박, 또 다른 하나는 대화를 통한 해결이었다. 그동안은 전자가 주류였는데, 6월 말에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인준을 받고 활동하면서 대화 노선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클린턴이 평양에 간 것은 그런 전환기에서, 대화의 틀을 조정하는 국면에서 나타난 모습이라고 본다. 대화 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북미 양자회담이냐 6자회담이냐 하는 이견이 있었는데 클린턴이 가면서 북 입장에서는 양자회담이라는 명분을 얻었다.
반면, 미국의 입장에서는 클린턴이 민간인 자격으로 간 것이니까 아직 양자회담은 아니라고 발뺌할 수 있는 구실이 생겼다. 그러면서도 내용적으로는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형식에 대한 고민을 두 나라가 절묘하게 돌파했다.
클린턴을 가서 무엇을 듣고 무엇을 전달했느냐가 관건인데, 북한이 클린턴을 불러들인 것은 줄 것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보따리를 준비하지 않고 손님을 부를 리 없다. 클린턴이 그걸 들고 돌아온 뒤 미국 내 대화론자들은 확실하게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박후건: 클린턴을 수행한 존 포데스타 미국진보센터(CAP) 회장을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클린턴의 마지막 비서실장이기도 했지만 미국진보센터를 만들었고, 오바마 정권인수팀장을 맡았던 사람이다. 직간접적으로 오바마 행정부와 아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어드바이저(자문역)의 어드바이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민주당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현안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미래 전략을 짜는 우두머리이다. 따라서 이번 방북은 빌 클린턴이 가장 적임자라는 포데스타나 힐러리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유일체제인 북한이 보기에 한때 미국의 최고지도자였던 클린턴이 왔다는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미국이 북한의 입장을 고려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미국이 어떤 트랙으로 가는 과정이라기보다, 이미 결정이 됐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북에서 주는 보따리도 있지만 클린턴도 그 비중에 맞는 선물을 가져갔음을 유추할 수 있다.
물론 미국 행정부 내에서도 여러 가지 이견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황들을 따져보면 대북정책이 투트랙은 분명 아니고 원트랙이나 1.5트랙 정도로 이미 좁혀졌다고 본다. NPT 검토회의 문제도 있고, 미국이 북한의 군사력을 꽤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캠벨 차관보가 지난달 서울에 왔을 때 말한 '포괄적 패키지'를 언급하고, 며칠 후 힐러리 클린턴 장관은 그 내용이 북미관계 정상화, 평화협정, 경제·에너지 지원이라고 말했다. 그건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이미 합의됐던 내용들인데, 힐러리는 그걸 재확인한 것이고, 클린턴의 이번 방북으로 보다 분명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레시안 : 클린턴 방북 이후 한반도 정세를 전망한다면?
정세현: 클린턴은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와 2000년 10월 조미공동성명(코뮈니케)을 이끈 대통령이다. 2000년 공동성명은 북미 상호가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국제관계에서 대등한 관계로 상대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클린턴의 이번 방북을 계기로 해서, 시계는 2000년 10월로 돌아갔다.
오바마는 당선 직후 부시의 대북정책이 아니라 클린턴의 정책을 따르겠다고 했는데, 이제는 정말로 클린턴이 떠난 지점에서 새롭게 시작하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도 빨리 그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과거 93~94년 한미관계가 불편했던 것은 북미관계가 개선되는데 대해 김영삼 정부가 계속 불평하고 견제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통미봉남이었다. 그 실수를 되풀이하려고 하나?
이명박 정부가 이 시점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왔다.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하면 이명박 정부 임기 3년 반 동안 아무것도 못한다. 과거에 그랬듯이 미국은 그냥 가버린다.
▲ 정세현 전 장관 ⓒ프레시안 |
서재정 : 클린턴 방북의 상징성은 바로 2000년 조미공동성명으로 돌아간다는 것에 있다. 조미공동성명은 북미가 상호 주권을 인정하고,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친선관계로 만들겠다는 전환적인 정치 선언이었다. 그걸 했던 클린턴이 북한에 갔다는 것은 오바마 행정부와 북한과의 관계가 그런 정신 위에서 진전될 수 있다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일본이 지금 정권 교체를 앞두고 있다는 것도 매우 중요한 점이다. 30일 총선까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지만, 큰 이변이 없는 한 정권은 민주당으로 이양될 것이다. 민주당은 자민당과 달리 납치 문제에 대한 부담이 없다. 정책자료집에서 그 문제를 언급하긴 했지만, 민주당의 인적 구성으로 볼 때 과거 사회당 인사들도 있고, 북한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교적 자유롭게 북과의 대화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사실 6자회담이 깨진 결정적인 책임은 일본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른 중유 지원에서 일본은 자신들의 몫인 20만 톤을 주지 않았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도 '거의' 다 줬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은 아예 안 줬다. 그런 상황에서 자민당 정부에서는 북일관계가 진전될 가능성은 없었는데, 정권이 바뀌면 대화가 가능할 것이다.
또한 중국은 '조중 친선의 해'를 기념하기 위해서 지난 3일 러슈강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선전부 상무부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친선 대표단을 북한에 파견했다. 러시아도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가 나온 뒤에 평양에 고위급 인사를 보냈었다.
북한은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에 찬성하는 것은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면서, 그렇다면 6자회담을 할 수 없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당 대표단을 보내서 다독이고, 러시아도 고위 인사를 파견해서 일단 그 문제를 풀어 놨다. 그리고 미국마저도 클린턴을 파견함으로써 그 문제를 우회했고, 일본도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시그널을 보내면서 대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주변국들과 북한과의 관계가 이렇게 변하게 되면 한국은 이른바 '5자회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5자회담이란 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것으로 북한을 빼고 모여보자는 것이었는데, 내가 말하는 것은 한국을 뺀 5자회담이다. 그걸 걱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상황은 막아야 한다.
박후건 : 6자회담이냐 양자회담이냐 하는 대화의 형식보다는 내용이 문제다. 미국의 정책이 대화 쪽으로 가면 6자냐 양자냐 하는 신경전은 결국 풀릴 것이다. 양자회담을 먼저 하고 나머지 나라들이 그걸 인정하거나, 혹은 북미가 먼저 협의를 하고 그 내용을 6자회담에서 공식화하는 식으로 풀어갈 거라고 본다.
문제는 미국과 북한이 그동안 말을 너무 많이 해 놨다는 것이다. 그러니 미국으로서는 체면치레 차원에서라도 6자회담을 하려고 할 것이고, 반대로 북한은 '6자회담은 끝났다'고 했기 때문에 그에 맞는 대화 형식을 찾아내려고 할 것이다. 그렇지만 6자회담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북한도 양자회담의 합의를 중심으로 한다면 6자 틀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정세현 : 포괄적 패키지의 내용이 북미관계 정상화, 평화체제 구축,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이라고 할 때, 북미관계 정상화는 두 나라가 그냥 국교를 정상화하면 되는 것이지만, 평화체제와 에너지 지원 때문에 6자회담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
평화체제 구축은 아무리 북미 평화협정을 기본으로 한다고 해도 실질적 당사자인 한국을 빼놓고는 할 수가 없다. 그래서 2007년 10.4 남북 정상선언에서도 전쟁 종료 선언을 '3자 또는 4자' 방식으로 하자고 한 것이다.
더군다나 2012년 전시작전통제권이 한국으로 돌아오면 한국은 그야말로 평화체제 문제의 실질적인 당사자가 된다. 중국도 정전협정의 당사자 중 하나이기 때문에 평화체제 문제에서 빠질 수 없다.
6자회담이 필요한 두 번째 이유는 경제·에너지 지원 때문이다. 지원을 하려면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참여해야 한다. 일본은 94년 북미 제네바합의에 따른 경수로 지원에서도 비용의 20%나 내기로 했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일본은 반드시 참여하는 걸로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이 6자회담에 안 나가겠다고 공언을 했으니까, 북한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일단 북미 양자대화로 심도 있게 첫 회담을 열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끌다가 다음 단계에 가서 나머지 4개국이 참여하는 쪽으로 가야 할 것이다.
북한도 그 정도는 양보해야 한다. 북한은 지난 4월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이 나온 뒤 6자회담을 거부하면서 '주권과 평등이 존중되지 않는 조건에서 못 나간다'고 했는데, 그 의장성명은 누가 주도했나? 미국이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우두머리인 미국하고만 대화하겠다는 것은 다분히 대국주의적 발상이다.
서재정 : 그 점에서 한국이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데, 미국의 방식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도 있다고 본다. 미국은 북한이 '주권과 평등'을 얘기하며 대화를 할 수 없다고 하니까 우회적이지만 북한의 체면을 살려 주는 제스처를 취했다. 힐러리 클린턴 장관이 기자회견에서 여기자들에 대한 '사면'이라는 단어를 쓰고 미안하다는 표현을 쓴 것이다.
북한은 그걸 보면서 '우리가 주권을 얘기하니까 미국이 결국 인정했다. 그러니 이제는 만나도 된다'고 해석했을 수 있다. 그렇런 명분을 미국이 준 측면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도 미국의 방식에서 시사점을 얻어야 한다. 남북관계 복원을 위해서는 뭐니 뭐니 해도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을 존중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 가장 큰 것인데, 거기에서부터 재출발을 하는데 있어 미국의 방식을 생각해 봐야 한다.
프레시안 :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활용해서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정세현 : 경축사를 이렇게 하면 된다. '그동안 6.15 및 10.4 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하겠다는 얘기를 해왔는데 북쪽이 이해를 못하는 것 같으니까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확실히 하겠다. 부정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사실은 존중한다는 말이었다.' 이런 식으로 둘러대면 된다.
듣자하니 남북은 북한에 인도적인 지원을 해주는 조건으로 개성에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유 씨를 석방해 달라는 식으로 물밑대화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건 성사가 된다고 해도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유 씨 석방과 연안호 송환 보다 더 큰 것을 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복원해서 앞으로 펼쳐질 미북관계에 걸맞게 보조를 맞추는 것이다.
미국의 이익은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그보다 더 큰 차원에서, 동북아시아에서 더 큰 국가이익이 보장된다면 그걸 위해서는 한미관계의 불편함을 감수한다. 그 엄연한 사실을 착각하면 안 된다. 한국이 자기 방식대로 안 따라오면 그냥 가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빨리 따라가야 한다. 한미관계와 남북관계를 부드럽게 만들면,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상황을 발전시키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관리를 했다는 평가는 받을 수 있을 것이다.
8.15가 지나면 한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군사훈련이 시작된다. 이게 끝날 때까지는 북한도 못 움직이겠지만, 그 와중에도 북미는 뉴욕에서 8월 말~9월 초 이후의 상황을 대비해서 북미관계를 어떻게 수면 위로 끌어 올릴지를 조율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도 방향을 틀고 8.15 경축사에서 '10.4 선언 이행 문제를 협의하는 회담을 몇 월 며칠에 서울에서 열자'고 제안하면 되는 것이다.
▲ 박후건 교수 ⓒ프레시안 |
박후건 : 그동안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너무 많이 나간 게 있기 때문에 수습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6.15와 10.4 선언은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합의한 것이기 때문에 북한 체제의 특성상 헌법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의 태도가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그걸 돌리는 게 쉽지 않은 과정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부가 진짜 실용주의를 발휘할 때가 왔다. 득과 실을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잘못하면 정말로 '한국을 뺀 5자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한다고 하는데, 그건 지원의 의미도 있지만 동북아 개발의 첫 삽을 뜬다는 의미도 있다. 이명박 정부는 그렇게 넓게 시야를 가져야 한다.
정세현 : 학자나 전문가 같은 인텔리들은 기존의 입장이나 발언을 뒤집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자기합리화를 어떻게 할까 고심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치나 외교에서 반전이나 유턴을 할 때 설명 붙이는 거 봤나? 없다. 그냥 하면 되는 것이다.
오래된 얘기지만 중국에서 그런 사례가 있었다. 모택동이 72년 닉슨을 불러들였을 때 주은래는 이걸 어떤 논리로 설명해야 할지 엄청나게 고민했다. 인텔리였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한 것이다.
그때 주은래는 친분이 두터웠던 김일성에게 전화를 걸어서 '어떻게 인민들에게 정당화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김일성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미 제국주의가 드디어 백기를 들고 중국 땅에 들어왔다고 설명하면 되지 뭘 고민하나?" 89년 천안문 사태 직전에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외교당국자로부터 그런 에피소드가 있다고 들었다.
이명박 정부도 그렇게 하면 된다. '북한의 태도가 변할 때까지 지켜보려고 했는데, 앞으로는 우리가 먼저 전향적인 자세로 나가면서 북한이 태도를 바꾸기를 기다리는 쪽으로 대승적으로 결정했다.' 그럼 끝이다.
물론 비판적인 사설이 하루 이틀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 몇 마디 듣는 것하고, 미북관계와 미일관계가 진전되는 상황에서 왕따를 당하는 것하고 어떤 게 더 나은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 정도의 정치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이 적기다.
과거 일본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이번에 정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은 민주당의 주류는 72년 7월부터 2년 4개월간 총리를 했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의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다나카는 전임 총리였던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가 중국에 대해 냉전적으로 대응했던 것과 다르게 가려고 했다. 다나카는 72년 2월 닉슨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미국과 중국이 가까워지는 것을 보고 일본이 미국보다 늦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해 9월 오히라 외상을 데리고 베이징에 가서 양국의 국교를 회복했다. 전후 27년 만에 전쟁 상태에 종지부를 찍고 일중관계를 확 뒤집어 놓고 왔다.
현 민주당의 주류는 그런 다나카 계열인데, 사실상의 오너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대표가 배후에서라도 지도력을 발휘한다면 납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일조(북)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식으로 적극 나갈 수 있다.
서재정 : 다나카 전 총리가 미국보다 반발 앞서 중국과 수교하면서 일본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외교적으로 엄청난 이득을 얻었다. 이명박 정부는 그런 걸 배워야 한다.
정세현 : 맞는 말이다. 78년에 총리직에 있었던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의 아버지)는 한 발 더 나아가 일중평화우호조약을 체결했다.(78년 8월) 그리고 중국은 그해 12월 공산당 대회에서 개혁개방 노선을 확정했고 이듬해에는 미국과 마침내 수교를 했다. 그런데 일본이 이미 선수를 쳤기 때문에 중국시장을 선점한 건 일본이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경제인 출신답게 북한의 시장가치, 자원 공급 기지로서의 가치에 눈을 떠서 다나카처럼 해야 한다. 북미관계 개선의 조짐이 있을 때 한국이 미국보다 반발만 앞서 가면 된다. 안 그러면 미국은 물론이고 다나카의 후예들인 일본 민주당에게 선수를 빼앗길 수 있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통일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0.4 선언을 이행하는데 14조 3000억 원이 든다고 한다. 그건 1년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약속한 사업이 끝날 때까지 들어가는 총액이다. 대통령 임기 5년에 다 끝난다고 해도 1년에 3조 원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에 대한 개발과 지원을 통해 우리 쪽으로 환류되는 이익은 비용의 최소 5배가 넘는다고 한다. 참모들은 이런 걸 조언하고, 대통령은 방향을 살짝 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박후건 : 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뛰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할 시기이다. 대운하가 아니라 동북아시아를 겨냥할 수 있는, '삽질'을 크게 하는 레토릭이 필요한데 이 대통령이 사업가 기질을 발휘한다면 가능하다고 본다.
어쨌든 우선순위는 6.15와 10.4 선언을 확실하게 인정하고 계승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전임 대통령이 약속하고 온 것이지만 국가 차원의 합의이기 때문에 지켜야 하고, 또 실용적인 차원에서도 아주 중요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프레시안 : 클린턴 방북 과정에서 특히 눈에 띈 점이 있었다면?
정세현 : 사진이 흥미로웠다. 북한은 최고지도자와 다른 사람이 사진을 찍을 때 최고지도자의 키가 커보이게 하는 앵글로 찍는 기술이 있다. 이번에 나온 사진을 봐도 클린턴과 김정일의 키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다.
그런데 김정일이 클린턴에게 뭔가를 설명하는 사진을 보면 김정일보다 클린턴의 정면 얼굴이 약간 더 많이 보인다. 김정일은 옆모습만 보이고. 그건 클린턴에 대해 최대한의 예우를 표시한 것이다. 단독 주인공은 아니어도 공동 주인공처럼 찍으면서 미국을 배려한 것이다.
그걸 보고 북한이 클린턴으로 하여금 앞으로 많은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사진 하나에 붙는 해석 치고는 과하다고 할지 몰라도, 그 사람들은 원래 그런 것까지 신경 쓴다.
박후건 : 북한의 역사를 도매금으로 말하자면 대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려고 했던 역사다. 그런데 클린턴이 평양에 오면서 그게 상징적으로나마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클린턴은 94년에 방북했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다르다. 카터는 재임 시절 인기가 없었고, 94년이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지 꽤 오래된 시점이었다. 따라서 공식적인 성격이 훨씬 적었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인권 관련 활동이나 하는 인물로 비춰졌다.
그런데 클린턴은 오바마 대통령과 맞먹는 현직 국무장관의 남편이자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의 정점에 있던 시절에 대통령을 했다. 그런 점이 북한에게 엄청나게 다가갔을 것이다. 드디어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서광을 봤을 것이다.
▲ 서재정 교수 ⓒ프레시안 |
프레시안 : 미국의 대북제재를 총괄하는 필립 골드버그 조정관이 최근 러시아에 갔다 왔고, 금융제재를 담당하는 스튜어트 레비 재무부 차관도 건재하다. 북한과 미얀마의 핵 커넥션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도 북미관계에 브레이크를 거는 세력들이 움직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서재정 : 미얀마 커넥션은 왜 나왔는지 아직도 궁금하다. 호주 언론에서 기사가 둘 나왔는데, 굉장히 엉성했다. 북한이 경수로 건설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둥 하면서 경수로와 중수로의 개념도 없이 쓴 것이었다.
또, 제목은 북한이 미얀마의 핵개발을 도왔다고 했지만 내용에는 그런 게 없다. 오히려 미얀마가 핵발전소를 비밀리에 건설하고 있는데 러시아가 도와주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즉, 겉으로는 북한을 추궁하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 그 기사가 겨냥한 나라는 러시아였다.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러시아에 압력을 넣는 측면도 있고, 북한에도 물론 의혹을 제기하면서 브레이크를 걸려고 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미국 내에서 그런 세력들은 항상 존재하면서 기술적인 부분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6자회담 진행 단계나 북미관계의 전개를 보면 이제는 기술적인 문제를 가지고 얘기할 단계는 아니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1,2단계는 '행동 대 행동'의 기술적인 과정이었지만, 3단계는 정치적 해결을 해야 하는 단계이다. 적대관계 청산과 평화체제 구축, 핵 포기 같은 내용이 공식적으로 나와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기술적인 전문가들보다 정치적인 결단을 내리는 사람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 이미 그런 단계로 들어가고 있다.
박후건 : 미국 의회가 문제가 될 수는 있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 협정을 맺고 수교를 하려면 의회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북한 민주화법' 같은 게 생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의원들이 제동을 걸거나 리뷰가 더 필요하다고 하면 일정한 수준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94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면서 북미 제네바합의 이행에 제동을 걸었던 상황이 재현될 수도 있다.
서재정 : 그러나 의회 변수에 있어 지금은 94년과 다르다. 그때는 공화당이 예상외의 역전을 해서 의회를 장악했다. 그냥 장악한 게 아니라 '반(反) 클린턴' 깃발을 들고 장악해서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지금은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다 장악하고 있고, 포데스타 같은 민주당의 핵심 브레인이 클린턴과 함께 방북했기 때문에 의회 변수는 비교적 적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인 대타결의 가능성이 높아지면, 오히려 의회가 밀어줄 수도 있다고 본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