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미국의 이라크 개입 이전만 해도 바그다드시(市)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는 고작 30개 정도였으나, 이제는 300개 이상이 성업중"이라고 기사는 전했다. 이어 "최근 들어 미국의 영향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현상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사담 후세인 정권에 의해 외부 세계와 오랜 기간 단절된 이 도시에서도 지긋지긋한 독재와 전쟁의 굴레에서 벗어난 새로운 풍속도가 생겨나고 있다"고 바그다드를 묘사했다. 후세인 정권의 몰락 이후 인터넷과 위성 TV, 휴대전화, 문신 등 신종 문물과 풍속들이 속속 이라크에 상륙했다는 점도 빼놓지 않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AP> 통신이 바그다드 발로 작성한 것을 한국의 한 통신사가 첨삭을 통해 옮긴 것이었다. 그 기사는 이라크인 자동차 부품 판매업자를 인용해 "이라크인들은 다양한 새로운 문물에 눈뜨고 있다"고 현재의 바그다드 상황을 묘사했다. 젊은 남성들에게 몸만들기가 새로운 유행이 되면서 전통적으로 뚱뚱했던 이라크인들의 체형은 물론 생활상에서도 변화가 일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사에 따르면 이라크는 '나쁜 과거'에서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는 현재' 그리고 '밝은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상당수 화제성 기사들이 그렇듯 이 기사도 이라크의 변화상 중 하나의 단면을 찾아 그것으로 이라크 전체를 비추고자하는 의도가 담겨있다.
현재의 그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고마운' 주체는 바로 "지긋지긋한 독재"를 벗어나게 해준 미국인데, 결국 상당수의 이라크인이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 <AP> 통신이 전한 바그다드 헬스클럽의 모습 ⓒAP=뉴시스 |
반미 집회에 10만이 모이는 현실
과연 그럴까? 바그다드 함락 6주년을 맞이한 지난 4월 9일 이라크 수도의 알-피르두스 광장에는 약 10만 명의 이라크인이 집결했다. 반미집회였다.
참가자들은 '미국은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인형을 불태웠다. 행사장 바닥에는 대형 성조기가 깔려있었고, 참가자들은 이를 짓밟고 있었다. 알-피르두스 광장은 6년 전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의 동상이 끌어내려진 곳이다.
300개의 피트니스 센터에 다니는 사람들의 수를 합치면 얼마나 될까? 3만 명 정도라고 해두자. 그렇다면 미국의 점령 종식을 요구하는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는 그보다 세 배 이상이었던 것이다.
이라크의 치안 상황이 최근 들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미군의 증파와 미-이라크 합동 작전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이라크 내 폭력 사건 발생 건수는 2007년을 기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에는 대규모 폭력사태 없이 지방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렀다.
그러나 이라크의 상황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시아파가 집권하고 있는 정부와 수니파 준군사조직 '이라크의 아들들(SOI)' 간 갈등이 지난달부터 본격화되면서 다시 치안 정국이 급격히 요동치고 있다.
SOI는 치안 상황 개선을 목적으로 미군이 양성한 수니파 준군사조직이다. 이 조직에 대한 통제권이 미군에서 이라크 정부로 이양된 직후 두 종파 간 감정이 악화하고 있다. SOI의 한 간부가 테러지원 혐의로 이라크 당국에 체포되면서 양측 간 갈등은 폭력사태로 치닫고 있다. 4월 들어서는 자폭공격도 크게 늘어나 200여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최근의 치안 악화는 미군의 철수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어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내년 8월까지 9만여 명의 전투 병력을 우선 철수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 후 2011년 12월까지는 지원 병력 5만 명도 완전 철수한다는 계획이다.
물론 내년 1월 30일로 확정된 총선이 무난히 치러지고, 미국이 지원하는 현재의 누리 알-말리키 정권이 계속 집권한다는 조건 하에서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에게 더욱 가혹한 것은 치안 상황보다 실업과 경제난이다. 일자리가 없고 생계를 유지할 수단이 없으면 매일 고통을 당해야 한다. 이라크의 현재 실질 실업률은 약 40%에 달한다. 노동가능인구의 40% 정도다. 부양가족까지 합치만 이라크 인구의 절반 정도가 소득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먹고 살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현상은 '엑소더스'다. 어떻게든 이라크를 떠나려는 움직임이다. 전쟁 이후 약 280만 명이 이라크를 탈출했다. 의사, 교수, 기술자 등 중산층 전문직이 대거 이탈하면서 이라크의 미래는 암담해질 것이다.
자신의 몸과 딸을 포기하는 이라크 사람들
다시 '몸짱 만들기' 기사로 돌아가 보자. 이 기사는 이라크의 전체 상황을 반영한다고 할 수 없다. 중동의 기사를 매일 검색하고 있는 필자가 자주 접하는 기사는 이와 사뭇 다르다. 서양 기자가 작성한 것이 아닌 중동 사람들이 보는 이라크 관련 기사는 이라크인들의 아픔을 주로 다룬다.
최근에 필자가 본 한 기사를 소개해 본다. 다음은 2009년 3월 범아랍 위성방송 알-아라비아가 방연한 특집방송이다. 전후 이라크는 이렇게도 변했다.
▲ 바그다드에서 북동쪽으로 65km 떨어진 바쿠바에서 한 여인이 아이들과 함께 순찰중인 미군들의 옆을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라나는 자식 넷을 둔 40대 미망인이다. 그녀의 남편은 2005년 바그다드에서 폭탄테러로 사망했다. 라나는 선택이 없었다. 현재 그녀는 매춘에 종사하고 있다. 시내의 상가 밀집 지역인 알-라쉬드 거리가 그녀의 일터다. 해가 지기 직전 집을 나서 지나가는 차량의 운전자가 자신을 봐주길 바란다.
아직은 '특정지역'이 없기 때문에 몇몇 다른 여성들과 이런 식으로 일을 한다. 운전자의 집으로 가거나 아니면 으슥한 도시의 구석으로 차를 타고 이동한다. 자식들을 위해 몸을 팔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라나다.
라나는 2003년 미국의 침공을 탓할 수밖에 없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촉발된 종파 간 분쟁으로 남편을 잃었다. 국가체계가 망가진 상황에서 여성들에게 돌아갈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 경제 재건이 늦어지면서 남성들의 절반도 사실상 실직상태에 있다.
라나는 남편이 사망한 뒤 몇 달은 남겨준 돈으로 어렵게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영양실조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변이 다 어려운 상황에서 가정부로 일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 전에는 남편을 잃은 이라크 여성들이 정부로부터 생계보조금과 양육비를 받았었다. 전쟁에서 사망한 경우는 공짜로 살 집을 얻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미망인들을 구제할 사회보장 장치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굶고 있는 것을 보다 못한 라나는 무작정 한 시장으로 가 자신을 '사 줄' 사람을 찾았다. 쉽게 손님을 만난 그녀는 남자로부터 받은 돈으로 먹을 것을 사들고 집으로 갔다. 라나는 먹을 것에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정조를 포기하기로 결심한다.
'이라크 여성의 자유(OWFI)'라는 비정부 기구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의 15%는 생계유지를 위해 임시 결혼이나 매춘 등을 원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라크 여성부는 이라크 전체에 미망인 수가 8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OWFI 대변인은 "미망인들은 가장 시급하게 다뤄야 할 문제이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다"며 수많은 여성들이 정상적인 직업을 구하지 못해 쉬운 방법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대변인은 또 2003년 미국의 침공 이후 이라크에서 약 4000여 명의 여성이 실종됐으며, 이 중 20%는 18세 이하고 실종 여성의 대부분이 주변국의 매춘업계로 팔려나갔을 것으로 추정했다.
부모가 자발적으로 딸을 파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치안 혼란으로 생계유지가 어려지면서다. 아내 없이 자식 다섯을 키우고 있는 아부 아흐마드는 딸을 업자에게 넘겼다. 1000달러 전후를 받고 넘긴 것이다. "어디를 가든 최소한 굶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는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딸의 희생으로 최소한 나머지 자식 넷을 키우는데 큰 보탬이 되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모자이크 처리가 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참담한 표정과 눈물을 닦는 모습은 생생하게 전해졌다. 전쟁 이후 일부 사람은 몸짱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수의 이라크 여성과 가장은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몸과 딸을 포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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