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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개혁가인가 탈공산혁명가인가

[대결, 차베스와 룰라] 멕시코 사빠띠스따 봉기 15년(2)

지금부터는 어떻게 멕시코의 오지 라깐돈 정글의 2000여 명에 불과한 원주민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세계적인 투쟁의 상징으로 발전했는지를 분석하고자 합니다.

먼저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 봉기 당시의 국내외적 조건을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봉기 당시 조건은 사빠띠스따들이 역동적으로 전략을 변화시켜가게 된 배경을 알려줍니다.

▲ 사빠띠스따 평화대행진을 응원하기 위해 스위스에서 도착한 국제주의자들. ⓒ박정훈

1994년 1월 1일, 멕시코와 세계

봉기 당시의 대외적인 조건을 보면,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 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91년 소련의 몰락은 자본주의 대안으로서 그 유효성을 지속적으로 상실해가고 있던 공산주의의 운명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서반구 유일의 공산주의국가였던 쿠바체제는 1994년 이른바 대규모 뗏목 탈출 위기를 맞게 됩니다. 사탕수수를 수단으로 공산주의 블록에 의존하던 쿠바 '원조교제경제'의 붕괴는 사회적 위기를 낳았고 수많은 시민들이 플로리다 해협에 뗏목을 띄워 미국으로 향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둘째, 라틴아메리카 대륙 전역에서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게릴라 혁명의 유효성도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1980년 게릴라 혁명에 성공한 니카라과는 1990년에 선거민주주의를 도입하여 대선을 치르게 됩니다. 엘살바도르 게릴라는 1992년 평화협정에 서명했으며, 과테말라 게릴라는 1996년 멕시코 시티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합니다.

당시의 국제정세를 보면 공산주의를 목적으로 게릴라 전략을 수단으로 삼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것이 명백합니다. 무기를 들고 무장봉기를 일으키는 것은 시대착오적으로 보였습니다.

한편, 봉기 당시 멕시코 내적 조건은 어땠을까요? 1982년 외채위기 이후 도입된 신자유주의 정책이 살리나스 대통령(1988~1994)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로 절정에 이릅니다. 또한 이 신자유주의 시대는 제도혁명당의 민주주의 파괴가 극에 달한 시기이도 합니다. 국제금융기구과 제도혁명당의 결탁에 의해 일방적으로 진행된 민영화 과정의 부정부패는 물론이고 1988년 대선에서 벌어진 부정선거는 멕시코를 세계적인 선거부정국가로 만들었습니다.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신자유주의가 절정을 이룬 이 시대는 바꾸어 말하면 1910년 이후 멕시코 혁명으로 들어선 뒤 71년간 정치적 안정과 경제 성장을 이끌어왔던 제도혁명당 체제가 막을 내리는 시대였습니다. 민족주의 이념 아래 자본가에서부터 원주민까지 모든 계층들이 참여하는 타협체제였던 제도혁명당 체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자신의 정치적전통적 지지 세력을 차례차례 배반하게 됩니다. 제도혁명당의 인권유린이 중간층의 이탈을, 민영화 과정과 북미자유무역협정으로 노동자 및 농민층이 서서히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멕시코 내부 정세는 신자유주의 제도혁명당 독재에 맞서는 다양한 저항이 활성화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요컨대, 외부적으로는 구좌파의 이념과 투쟁방식의 시효가 소멸되었으며 내부적으론 민주주의의 후퇴와 민생파탄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즉 멕시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목표와 수단이 모색되어야 했습니다.

▲ 연방의회 앞의 에밀리아노 사빠따 거리에서 집회하는 사빠띠스따들 ⓒ박정훈

언어를 무기로 삼은 게릴라

당시 국내외 정세는 사빠띠스따가 구사할 수 있는 정치적·군사적 수단을 규정합니다. 먼저 당시 정세가 사빠띠스따들의 군사적 수단의 활용 범위와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살펴봅시다.

첫째, 사빠띠스따들은 무장봉기를 자신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는 전술로 활용합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멕시코시티로 진격할 만한 군사적 수단(군사무기의 수도 한정되었고, 훈련된 게릴라 병사도 고작 300명에 불과했음)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즉 94년 1월 1일 무장봉기전술의 요체는 신속히 라깐돈 정글을 둘러싸고 있는 주요 군청 소재지를 점령하고 신속히 퇴각하여 라깐돈 정글 혹은 고원지대의 근거지로 귀환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이 무장봉기 소식과 사빠띠스따들의 요구사항을 전 세계로 전파할 수단이 중요해집니다. 사빠띠스따 게릴라들의 투쟁에서 실제 전투보다 언론과 인터넷을 통한 담론투쟁이 압도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우리의 무기는 언어"라는 진술이 나옵니다. 그것은 멋진 수사가 아니라 사빠띠스따의 전략적 판단의 결과물입니다.

둘째, 봉기 이후 멕시코 시민 사회는 사빠띠스따 원주민들의 요구에 대해 대단히 우호적이었습니다. 반면, 군사적 수단을 일시적으로 사용한 것에는 이해한다는 태도를 취하지만, 무장투쟁 자체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취합니다. 그것은 1995년 8월 27일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이 직접 멕시코 시민사회와 함께 개최한 민중투표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의 진로를 묻는 이 투표에 무려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해 의사를 밝혔는데, 다수가 정치조직으로 전환하기를 바랐습니다.

게릴라 조직이 자신의 진로를 시민사회를 대상으로 묻는 것은 냉전 시대의 라틴아메리카 게릴라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빠띠스따들은 멕시코 시민사회의 요구를 수용해 정치조직으로서 사빠띠스따 민족해방전선(FZLN)을 건설합니다. 하지만 무장을 해제하지는 않습니다. 제도혁명당 체제 아래서 치아빠스 게릴라들의 신변 안전도 보장되지 않을뿐더러 치아빠스의 특권층의 준군사조직, 제도혁명당의 경찰 및 연방군에 맞서 원주민 마을을 방어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군사적 수단은 사빠띠스따의 전략에서 부차적인 지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 사빠띠스따를 응원하는 어릿광대들 ⓒ박정훈

사빠띠스따 정치

이번에는 당시 정세가 사빠띠스따들의 정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 지 살펴봅시다. 사빠띠스따들은 쿠바 게릴라를 모델로 조직된 라틴아메리카의 고전적 게릴라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크게 세 가지 영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 사빠띠스따 군대의 모든 결정은 원주민 마을과의 합의를 통해서 확정됩니다. 무장봉기 계획에서 연방정부와의 평화 협상 결과에 대한 인준까지 모든 과정이 지속적인 토론과 합의의 결과물입니다. 이것은 부사령관 마르꼬스의 지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마르꼬스는 정치적·군사적 권한을 위임받아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산에 집단적으로 거주하고 훈련받은 인수르헨떼와 마을에서 예비병력의 역할을 하는 밀리시아노로 구성되어 있음)을 통솔합니다. 그런데 마르꼬스는 원주민 마을 대표로 구성되어 있는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의 최고의결기관의 지휘를 받습니다. 바로 이 기관에 속한 원주민 마을 대표들이 사령관들입니다.

둘째, 사빠띠스따들은 지속적으로 치아빠스의 사빠띠스따 원주민 마을 외부에 존재하는 멕시코 시민사회와 소통합니다. 자신의 진로를 멕시코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민중투표로 결정하는 파격적인 면모뿐만 아니라 1995년 4월 말 치아빠스 고원 지대의 작은 마을 산 안드레스에서 정부와의 평화 협상이 열렸을 때, 협상의 주요 내용은 멕시코 시민사회(지식인들)가 총 출동하여 토론한 내용들이 반영됩니다.

요컨대 평화 협상 결과 체결된 산 안드레스 협정은 게릴라와 연방정부의 밀실협상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멕시코 시민사회와 사빠띠스따 게릴라들의 대화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사빠띠스따들 게릴라들과 연방 정부 간의 타협의 산물입니다.

셋째, 사빠띠스따 게릴라들은 라틴아메리카의 고전적 게릴라와 다르게 국제 시민사회와 지속적으로 소통합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먼저 라틴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원주민 운동 집단과의 연대로 드러납니다. 이것은 과테말라, 에콰도르,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을 배출한 볼리비아 등 원주민 인구가 존재하는 곳에서 원주민들의 권익 신장을 위한 사회운동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하고 동시에 대륙 차원에서의 연대를 공고히 하는데도 기여합니다.

그리고 비원주민 시민사회라 할 수 있는 북미와 유럽의 시민사회와 지속적으로 소통합니다. 1996년 7월 27일~8월 3일 사빠띠스따들은 라깐돈 정글에서 '신자유주의에 맞서 인류를 방어하는 대륙 간 회의'를 개최합니다. 이것은 고전적인 라틴아메리카 게릴라들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방식의 집회였습니다.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 대륙의 진보적 활동가들은 물론이고,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알렝 투랜, 다니엘 미테랑, 체게바라와 볼리비아 게릴라 투쟁에 참여했다가 살아남은 레지스 드브레 등의 지식인들 총 4천 여 명이 신자유주의 대 인류의 전쟁에서 인류를 응원하기 위해 모입니다. 이 대회는 공산주의 몰락 이후 최초로 열린 국제적인 저항 집회였습니다.

이 집회 이후 시애틀(1999 세계무역기구 제3차 각료회의 반대시위), 제네바(2001 G8 정상회담 반대시위), 칸쿤(2003년 세계무역기구 제5차 각료회의 반대시위) 같은 다양한 반세계화(대안세계화) 운동이 활성화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1999년에는 원주민의 권리에 대한 민중투표를 조직하여 약 250만 명의 시민이 참여했습니다. 이 투표에는 외국의 지지자들도 참여했습니다. 게릴라가 자신의 운동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국제사회를 직접적으로 참여시킨 첫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차라리 전쟁이 더 쉬웠습니다.

새로운 유형의 게릴라

사빠띠스따들의 새로운 운동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사빠띠스따 게릴라는 민주적인 게릴라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사빠띠스따들이 '시민사회'라고 명명한 외부와 집회, 포럼, 민중투표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의사를 반영해 사빠띠스따의 조직적·정치적 방향을 결정해왔습니다.

둘째, 사빠띠스따 게릴라는 비밀운동을 특징으로 하는 전통적인 게릴라와 달리 대담하고 공개적인 활동을 벌입니다. 그들의 정부와의 평화 협성 과정에 시민사회가 참여할 통로를 연 것은 물론이고 그 과정 자체를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진행했습니다.

셋째, 이들은 아주 개혁적인 게릴라의 모습을 제시합니다. 국가권력 장악을 외치던 과거의 혁명적 게릴라들과 달리 이들은 원주민 자치를 내세웁니다. 이 또한 멕시코 시민사회와의 토론 결과가 반영된 것으로서 헌법 개정을 통해 이루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무장한 개혁파"라는 분석도 가능합니다.

넷째, 이들은 국제적인 게릴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안에 대한 국제적인 지지를 호소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국제주의가 아니라 자신들의 투쟁이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른 투쟁과 그 방식은 다를 수 있지만 저항의 동기와 목적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차원의 국제주의를 제시합니다.

▲ "원주민 민중은 인류의 희망이다." ⓒ박정훈

무장개혁가인가 탈공산 혁명가인가

하지만,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 운동은 그 내부에 다양한 모순과 역설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 운동에서 우리가 살펴야 할 아주 중요한 점들인데, 그것이 멕시코 치아빠스 원주민 게릴라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첫째, 사빠띠스따들은 무장 개혁파일까요? 탈공산주의 혁명가일까요? 사빠띠스따들은 스스로를 멕시코의 신자유주의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집단으로 규정합니다. 따라서 이들은 멕시코 시민사회를 향해 민주주의를 투쟁하는 모든 이들이 참여하기를 호소합니다. 요컨대, 전통적인 구좌파의 담론과 달리 노동자계급, 혹은 빈농계급처럼 특정한 계급이나 계층의 주도권을 전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이들의 세계관이 담겨 있는 다양한 텍스트에도 그대로 드러나는데 이들이 말하는 '시민사회'는 대단히 이질적인 계층들이 서로 대립·갈등하고 연대하고 저항하는 공간입니다. 거기에는 노동자, 농민뿐만 아니라 원주민, 동성애자들까지 다양한 소수자들이 공존하는 그런 공간입니다.

마르코스는 라틴아메리카 혁명적 좌파들에게는 두 가지 큰 공백이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 하나는 원주민 민중입니다. 다른 하나는 소수자로 분류되는 사회집단입니다. 이들이 가면을 벗는다면 소수가 아닐 것입니다. 게이, 레즈비언, 성 전환자들이 그들입니다. 라틴아메리카의 혁명적 좌파들은 이들이 무시하거나 혁명 과정 속에서 사라질 존재들로 간주했습니다. 동성애자는 혁명을 배신할 위험이 있으며 원주민은 생산력의 발전을 더디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른바 노동자계급의 배타적 주도권을 인정하는 정통파의 견해와 달리 사회집단의 근본적인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연대를 통해 멕시코의 신자유주의 독재에 맞선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견해는 개혁주의의 현대적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의 요구는 다양한 계층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공통의 준거를 요구하게 되고, 그것이 바로 멕시코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주의, 자유, 평등의 정신입니다.

그렇지만, 사빠띠스따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장악하지 않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수차례 언급해왔습니다. 대변인 마르꼬스는 2001년 평화 대행진 후에 이뤄진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벌어질 최악의 일이 권력을 장악하여 혁명군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확언했습니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원주민 자치 구상입니다.

이 구상은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천연자원 및 토지 등 자연 자원 통제권에서 고유한 정치적·사법적·문화적 전통을 보전할 권리까지를 보장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민족국가의 고유한 작동 원리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의 보편적이고 획일적인 정치제도와 사법제도, 그리고 국가적 차원의 자원 통제가 민족국가의 고유한 작동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국가주의 혁명 좌파에 맞서는 자치주의 혁명 좌파의 탄생이라고 할 만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반란자"라는 사빠띠스따들의 시적 수사는 바로 이 투쟁이 장구한 저항의 결과물이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 어린 사빠띠스따 ⓒ박정훈

민족주의자인가 신국제주의자인가

둘째, 사빠띠스따들은 멕시코 민족주의자일까요? 제국에 맞서는 신국제주의자일까요?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이란 이름엔 중남미 모든 게릴라처럼 민족해방이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민족해방은 제국주의 유럽에 이은 제국주의 미국에 맞서 싸우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어디를 가나 멕시코 국기를 들고 행진하며 멕시코 민중의 500년 저항 전통에 호소하며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에 맞선 멕시코 민족의 단결을 호소합니다. 특히 '나쁜 정부'(즉 제도혁명당 정부)가 멕시코 민족을 외국에 팔려고 한다고 비판합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민족주의 노선입니다.

그런데, 마르꼬스는 세계가 민족국가라는 전통적인 정치단위 차원에서 '세계국가'라는 새로운 정치 차원으로 이행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각 국의 정치계급은 모두 세계국가의 테크노크라트에 불과하다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마르꼬스는 각 민족국가의 정치계급은 자본과 세계국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기 때문에 '비정치가들'에 불과하다고 역설적으로 비판합니다.

바로 이런 비판적 분석에 따라 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저항이 바로 이 세계국가 체제에 대한 저항이 됩니다. 이런 인식은 사빠띠스따 민족해방군이 생각하는 신국제주의 노선의 핵심입니다. 이것은 네그리, 하트의 [제국]의 인식과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1996년 사빠띠스따들이 자신들이 '죽음의 인터내셔널'이라고 부르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인류를 방어하는 대륙간 회의를 치아빠스 정글에서 개최한 것이 바로 이런 인식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국제연대에 대한 사빠띠스따의 담론과 실천은 늘 그 같은 맥락에서 이뤄집니다.

전통적인 국제주의가 민족국가적 의제에 대해 다른 민족국가 구성원의 지원과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었다면 사빠띠스따들은 '세계국가적 의제'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제금융기구, 선진국들의 국가블럭, 세계무역기구 등 세계적인 통치기구들에 맞서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르코스가 깐꾼에서 신자유주의에 맞서 투쟁하다 자살하신 농민 이경해 씨의 투쟁에 대한 발언도 동일한 맥락인 것입니다. "치아빠스의 저항은 깐군에서 한 한국인이 벌인 투쟁과는 다른 방식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온 그(농민 이경해 씨)는 아주 우리 가까이에 있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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