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복의 구조화가 너무 견고하게 진행되지 않았나 싶다. 어떤 이는 불복을 넘어 승리의 확신까지 품고 이 정권에게 전면적인 투항을 권고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19일 이문열 작가)
이는 전날(18일)에 백낙청 교수가 "정부 및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동참하는 일종의 거국체제를 만들어 국가비상시국에 대응해야 한다" 고 베이징 6자회담 비슷한 방식을 제안한데 대한 반격이다. 물론 백 교수는 치밀한 학자답게 "합법적인 정부가 엄연히 존재하는 마당에 이들의 결정이 법적인 구속력을 가질 수 없고..."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말이다.
백 · 이 두 명사를 초청한 언론친목 · 연구단체 관훈클럽의 관훈포럼은 주로 촛불집회(시위)를 중심으로 하여 현 시국에 대하여 여러 모로 깊이 생각하게 하는 좋은 자리였다. 그 두 사람의 논의에서 앞으로의 정국운영이나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 나갈수도 있을 것 같았다.
<비상시국 타개를 위한 국민통합의 길>이란 제목의 백 교수의 발표는 대충 이러하다.
지금 단순한 경제위기를 넘어 국가적인 비상시국에 처해있다. 작년의 촛불시위는 적절한 수준의 창의적 방식이었다. 국가적 위기로는 계층간의 격차 확대, 남북 당국 간의 단절, 용산참사와 같은 강경진압, 일각에 국한된 독립언론마저의 제거 기도 등등이 있으며 나라 다스리기(거버넌스)체제의 붕괴에 가깝다. 그래서 합리적인 보수와 책임있는 진보가 폭 넒은 중도세력을 형성하여 새로운 거버넌스체제, 즉 거국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친 대의민주정과 불복(不服)의 구조화>란 제목의 이 작가의 발표는 간추려보면 이러하다.
불복의 카르텔이라 할 것이 만들어졌고 불복의 구조화가 자리잡았다. 대의민주정은 지쳐있다. 인터넷광장에서의 오해와 착시를 활용한 여론조작과 다수위장은 집단지성이란 허구를 만들어 냈다. 대선불복세력이 계기를 잡아 한곳에 모여 다수를 조작한 것 같다. 예를들어 나치스가 등장한 배경이 연상되어 우려도 된다. 보다 상위의 공동선(共同善)을 개발해야 할 것인데 그것은 쉽지 않고, 불복세력의 자제와 그리고 헌법체계를 수호할 효율적인 수단과 방도를 찾아야한다.
▲개혁, 진보쪽인 백낙청 교수(왼쪽)와 보수쪽인 이문열 작가(오른쪽)와의 간접논쟁은 점잖은 태도를 유지하는 가운데 불꽃을 튀겨 아찔하기도 하였다. 두 사람의 논의는 결국 촛불집회(시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로 압축할 수 있겠다.ⓒ연합뉴스 |
두 사람의 논의는 결국 촛불집회(시위)를 어떻게 볼 것인가로 압축할 수 있겠는데 거기에 관하여는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서 많은 논의가 있어왔다.
특히 떠오르는 책이 김영철 씨가 쓴<광화문에서 만납시다-밀실세대와 붉은 악마, 그리고 촛불/월드컵 2년의 리포트>이다.
거기서 보면 월드컵 때의 거리응원이 탄핵무효 촛불집회, 여학생 추모 촛불시위 등의 원형(原型)이라는 것이다. 스포츠 · 문화의 공간 축제· 놀이의 공간이 정치적· 사회적 변화의 마당으로 전환되었다는데 그럴듯하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문화(연극)는 혁명의 예행연습이다" 라는 말도 인용하며 " 촛불집회에 모인 사람들은 새로운 시민혁명을 미리 연습한 셈이다"란 이야기도 나온다.
4· 19당시의 학생데모의 행태만을 놓고, 이전에 되풀이되었던 학생동원의 행사나 관제데모에서 훈련되고 익숙해진 행태가 쉽게 반복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냐는 해석도 있었다. 비슷한 군중행동의 이치에 대한 관찰이다.
그동안의 논의들을 대충 살펴보니 인터넷 집단지식(성)의 한계론이 나오고 우중(愚衆)정치에 관한 우려도 나온다. 새로운 민의의 표현의 틀로 추켜올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특히 최장집 교수는 정당 중심의 대의제를 강화하여 간접민주주의로 나가야 한다고 역설, 주목을 끌었다.
1968년을 전 세계적으로 격동의 시대라 한다. 미국에서, 프랑스 등 유럽에서, 일본에서 특히 학생들의 항의 운동은 피크를 이루었었다. 미국에서는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운동이 치열해진 데다가 흑인 민권운동도 겹쳐 있었다.
그런데 그 격동은 곧이어 잠잠해졌다. 한국에서는 4· 19, 6· 3 등의 간헐적인 폭발을 보였다. 그래서 항의 운동에는 어떤 사이클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관측도 낳았다.
그때와 지금이 다른 것 중 결정적인 것은 인터넷시대라는 점이다. 앞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촛불집회(시위)는 인터넷을 매개로 에스컬레이트하는 것이다.
거기에 당면해서의 경제위기이다. 백 교수는 " 현재의 난국이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일환으로서 우리 정부의 책임으로만 돌릴 일이 아니라는 점에 누구나 합의하고 있는 데다가...." 하고 신축성을 보였고, 이 작가도 " 다 같이 당하는 화는 화가 아니다" 하는 옛말을 인용하기도 했지만 역시 경제위기는 위기이다. 이 위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정치위기로까지 되어 비상시국이 될지, 훌륭한 정치역량의 발휘로 비상시국으로까지는 안 가고 진행될지, 정말 예측이 어렵다. 그러기에 백· 이 두 사람의 대응책에 있어서의 차이도 생기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영양이 좋아진 탓이겠지만 중년 이상에 당뇨병을 가진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당뇨병은 치료되는 게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비유가 적절하지 않고 좀 경솔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인슐린 투여를 끊임없는 개선책이라고 비유하면 될까, 촛불집회(시위)도 " 치료되는 게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란 이치에 따라 그것을 발본색원 하겠다는 지나치게 과격한 생각을 하지 말고 그것과 함께 살며 때로는 그것을 민심측정의 바로미터로 삼기도 하면서, 적절히 관리하겠다는 태도를 취했으면 하는 것이다.
최장집 교수의 생각을 소개했지만, 당연히 촛불 만능주의 비슷한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도 곤란하다. 우선은 명분의 문제가 있다. 누가 생각해도 분명한 잘못과 보기에 따라서는 잘· 잘못이 나뉘어지는 상대적이거나 애매한 것이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양상을 보면 그런 것들이 혼합된 상태이고 뚜렷한 명분이 있는 것이 오히려 드물었다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정치에 있어서는 선거를 통한 경쟁이다. 그러니 정당이 강화가 되고 대의 정치의 마당인 국회가 제 기능을 다하여야 한다. 원외의 항의나 투쟁은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적이고 부차적인 데 머물러야 한다.
또한 촛불집회(시위)에도 효용체감의 법칙이 작용한다. 너무 남발하면 일반 국민이 무감각해지거나 싫증을 느낄 수도 있다. 미국산 쇠고기 때도 천주교 신부들과 불교승려들이 거리에 나왔을 때를 계기로 그것을 구획짓는 명분삼아 깨끗이 집회(시위)를 끝났어야 했다. 그러지 못하고 무원칙하고(아니면 전략상 졸렬하게) 질질 끌고만 가다가 지리멸렬이되고 권력당국에게 강경 단속할 구실만을 주어 일대 타격을 입게 된 것이 아닌가.
이문열 작가는 보수인사답게 마지막에 '법과 질서'론을 내세웠다. 이 씨가 아니더라도 어느 사회에 있어서나 항의운동의 격앙이 있으면 '법과 질서'론이 으례 강조되기도 하는 법이다. 68년때의 미국의 격동기에도 공화당의 닉슨은 '법과 질서'를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되었었다.
그런데 이 ' 법과질서' 또는 질서유지를 위한 공권력 행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진짜로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우선 서둘러 말하여 용산 철거민 강권집압방식 같은 것은 절대 불가한 것이다. 그것은 백 교수가 지적한 대로 '특공대 투입식의 공권력 지상주의'였다.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외국에서의 과격파의 이론은 권력과 정면으로 대결하여 권력의 철권탄압을 유도하고 그 권력의 가혹한 이면을 일반에게 알리며, 결과적으로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유리시키고 운동세력이 국민의 동정을 얻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데에 말려 들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도 권력은 그 항의자들도 우리 국민이라는 자세로 끌어안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동양사회의 덕치(德治)가 그런게 아닌가. 권력은 똑똑하게 야박해서는 안되고 어리숙한 듯 보이며 후덕해야 하는 것이다.
이번에 미국의 주 일본대사로 내정된 조셉 나이 교수는 '소프트파워'이론으로 알려져 잇다 '하드 파워'로는 전 세계를 제패하고 남을 미국이지만 '하드파워'만 갖고 대응하려 해서는 안되며 문화적 접근을 포함한 설득의 '소프트 파워'로 대응해야 한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 오바마 행정부 들어서는 '스마트 파워'라는 말까지 나왔다.
국가는 최고의 강자이다. 경찰 등 공권력은 막강하다. 그리고 '법과 질서'의 요구는 으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행사는 장기적 안목에서 지는 듯 이기는 유연성을 발휘하는 현명한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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