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인터뷰이((interviewee)는 최문순 민주당 의원. 최문순 의원은 문화방송(MBC) 기자 출신으로 1995년 MBC 노조위원장, 1998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위원장, 2000년 11월 초대 산별노조위원장을 거쳐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문화방송 대표이사를 지내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민주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그는 기자 출신으로 현재의 언론노조를 만든 주역 중 하나이며 MBC 전 사장이었고, 또 민주당 의원 중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의원으로 꼽힌다. 그를 만나 현재의 '언론의 위기'를 바라보는 그의 속내를 들어봤다. <편집자>
최문순, 그의 시선은 언제나 사람 사이에 있다.
민주당 소속 의원인 그는 현재 언론장악저지대책위 간사로 활동 중이다. 항의 성명서를 내거나 발표를 하는 그의 모습이 신문이나 TV에 얼굴이 나올 때마다 그의 시선이 참 인상적이었다. 흔히 정치하는 이들에게 보이는 날 선 표정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국회의원회관 그의 사무실 분위기 역시 그러했다. 누군가 막 들여다 놓았는지 옥수수 포대가 책상 한 쪽에 기대있었다. 푸르고 싱싱한 껍질에 싸인 옥수수. 의원이나 그 주위 보좌진들 미소가 모두 그 색깔과 닮아 있다.
"초유의 언론 탄압, 초유의 언론 지키기 운동"
지금 우리 방송언론의 독립성이 벼랑 끝에 서 있다. 광풍으로 밀어붙이는 거센 바람 앞의 등잔불 같다. 촛불시민들은 안타깝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최 의원은 오랫동안 언론운동을 해온 주역으로 얼마 전 까지 MBC 방송국 사장이었다.
"지금 매일 매일이 긴급하게 이뤄지는 데가 4군데 있습니다. KBS, YTN, MBC 그리고 인터넷이지요. 매일의 상황에 대처하기 힘들 정도로 언론의 독립성, 언론의 자유가 놀라울 정도로 훼손되고 있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일들은 정말 군사정권 때도 겪어보지 못한 거칠고 스피디하고, 그래서 당혹스러운 일들입니다."
대통령은 KBS 사장 해임한다고 하고, YTN에는 사원들의 결사 반대에도 언론특보를 사장자리에 앉혔고, 검찰은 MBC <PD수첩>의 진실성 여부를 수사한다고 나섰다. 경찰은 법적 절차는 무시한 채 인터넷 포털에 올라온 마음에 들지 않는 댓글을 삭제한다고 했다.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지 어안이 벙벙할 정도이다.
"또 놀라운 일은, 언론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많은 이들이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민들이 방송국 앞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데, 처음 있는 일이지요. 사실 이제까지는 기자나 PD, 언론종사자들이 파업을 이유로 광장을 지킨 적이 서너 차례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이렇게 나선 것은 처음이지요. 하지만 이런 사태에도 불구하고 정부쪽이 이런 의사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게 더 당혹스러운 일이지요."
"KBS 노조, 시민들과 만나야"
최문순 의원(52)은 1984년 MBC에 입사했다. 당시 각 방송사들이 신입사원들을 대거 채용하는 바람에 자신도 들어올 수 있었다고 믿는단다(동기가 3백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당시 MBC는 저 유명한 '땡전 뉴스'로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 함께 운동하던 친구들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어야했다. 그러나 얼마지 않아 그는 자신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일을 냈다. 방송사 안에 노조를 결성하고 본격적인 언론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그런 그에게도 방송국 앞에 모인 시민들의 촛불 시위는 감동스럽고 놀라운 일이다.
"제가 20-30년간 언론운동을 해왔는데 이 분야가 상당히 전문적이라서 운동하는 이들도 그 수가 정해져 있었습니다. 일반국민들에게로 확산되지는 않았지요. 그런데 이번에 일반시민들이 쇠고기 문제를 다루면서 언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시청 앞에서 시위하던 분들이 KBS 쪽으로 몰려온 것입니다. 다행히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언론문제가 확산된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언론문제가 다른 문제와 달리 방송사 내부 관계자들과 연결이 안 되면 구체적 사안에 들어가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게 됩니다. KBS 노조가 일반시민들과 연계가 되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텐데, 아직 그렇지 못한 점이 안타깝지요. 이런 단점을 보고 정부가 막 밀어붙이는 것 아닌가 싶어요. 내부조직이 잘 연결되어서 안팎이 호응하는 체제가 만들어져야 구체적인 힘이 만들어 질것입니다. 그것이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론운동에 큰 진전이 있었던 것은 맞습니다."
그는 1980년대 산별노조의 산파역할을 했다. 산별노조에 대한 그의 집념은 확고했다. 각각으로 있던 노조를 산별노조로 묶어 재정적으로 약한 노조를 같이 끌고 나가면서 언론의 다양성과 독립성을 지키고자 했다.
그러나 최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와 언론재단지부, YTN 지부가 이탈행위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기적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촛불시민들은 헷갈린다. 언제까지, 어디쯤에서 동의해줘야 하는가?
"지금 KBS 노조는 상위개념과 하위개념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습니다. 제가 정연주 사장 개인을 위해서 지켜주자는 말이 아닙니다. 그 상징성 때문입니다. KBS 노조도 그 건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검찰, 감사원 등 힘있는 국가기관이 방송사 사장 하나를 잡으려고 다 나섰습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한 것인지 구분을 해야 합니다. 방송사 사장이 출국금지를 당하고…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거든요."
"재정적 독립성이 한국 언론의 핵심 문제"
그는 후배언론인들에게 자존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지금 이 결정적인 순간이 재정비를 해야 할 시기라고 믿는다.
"언론의 독립성과 자유는 최종적으로 언론인들 스스로 지키는 것입니다. 밖에서 촛불, 정치인들이 지켜주려고 하지만 스스로 존엄을 지켜 나가야할 때 그 가치가 높은 것입니다. YTN이나 KBS, 언론재단 노조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10여년 간 언론자유와 독립성을 지키는 훈련이 안되었기 때문에 노동조합들이 뭘 해야 하는지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최의원은 그러나 방송사 내부사정에 대해 좀 더 소상하게 설명해준다. 언론들이 다매체로 전환되면서 제각기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말이다. 물적 토대가 흔들리면서 정신적으로 나약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언론독립성은 정치적 독립과 재정적 독립을 두 축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야하는데 지금 재정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 독립성이 상당히 훼손되고 있는 것이지요. 그 약한 고리를 정부여당에서 뚫고 들어가 밥그릇을 건드리려고 하니까… 안타깝지요. 재정적 독립성이 한국 언론의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MBC <PD수첩>, 권력에 굴하지 말라 가르친 후배들"
자신이 몸담았던 방송사의 프로그램인 <PD수첩>이 광우병을 다룬 프로그램으로 진실성 여부에 대해 검찰로부터 곤욕을 치루고 있다. <PD수첩>사태를 바라보는 최의원의 가슴이 많이 쓰라릴 것이다.
"정치권력 그 자체인 검찰이 직접수사를 하면서 번역을 잘못했다고 짚고 있습니다. 자막을 통해 촛불시위를 일으켰다, 이런 내용인데, 참 이건 난센스, 해외토픽감이예요. 논리적으로 지나치고, 거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당하지요. 지금 고생하고 있는 김보슬 PD는 제가 MBC 있을 때 가르친 친구예요. 권력에 굴하지 말라고 가르친 후배들입니다.'
최연소 MBC사장이라는 기록을 가진 그는 사장이라는 자리가 쉽지 않았다. 차라리 군대를 한번 더 가는 게 낫다고 할 정도로 그 시절이 힘들었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시작한지 두 어 달 남짓 된 국회의원직과 비교해 보자면?
"아직은 역시 사장이 힘들다 싶은데요. 국회의원은 부담은 적지만 조직구성원들과 힘을 합해 일을 해내는데서 얻는 보람은 덜해요. 주몽, 하얀 거탑, 커피 프린스1호점, 굳세어라 금순아, 내이름은 김삼순 등등 시대를 앞서가는 좋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청자들에게 인정받도록 한 게 보람이었지요. 국회는 남을 견제하는 게 주임무라서....."
아직은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에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그는 누구를 공격한다는 게 힘들다고 토로한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간존엄'을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방송 쪽에서 일하면서 그는 어느 정도 이뤄냈다고 자부한다.
"독재정권시절 끌려가 매 맞으면서 인간을 존엄하게 한다는 게 우리가 살아가는데서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그게 해결되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실생활에서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게 관건이죠. MBC 사장으로 시작할 때 힘들었어요. 사람들은 개혁이라고 하면 징벌적 개혁을 요구합니다. 개혁이라는 말 안에 그 요구가 들어있어요. 반대쪽을 확 잘라버리고 숙청하고 감옥에 가두고 그러잖아요. 그동안의 분노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저는 그렇게 개혁하지 않았습니다. 가능하면 지역, 이념을 넘어서 공평하고 공정하게 ,투명하게 하려고 노력했지요. 조직전체가 한 방향으로 갈수 있도록 아끼고 존중하는 조직 문화로 바꾸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실생활에서 인간존엄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확신합니다."
최의원은 언론이 함부로 권력의 반열에 올라 인간존엄을 해치는 일에 동조하지 않으려면, 그 본연의 정신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겸손해져야한다고 강조한다. 후배들이 더욱 강해지길 당부한다.
'촛불 시위에서 보듯이 이제 어느 누구도 정통성, 정당성을 독점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양면이 있고 다른 의견에도 정당성을 부여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인식이 넓어지려면 끊임없이 공부하고 또 제도적인 교육도 필요할 것입니다. 세상이 바뀌면 재교육을 통해서 고쳐나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언론인도 이제 겸손해야 합니다. 살기위해서라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다채널시대인 요즈음, 시청자들에게 선택을 받으려면 겸손해야지요. 남성성보다는 여성성과 섬세함이 더욱 각광 받는 시대임을 명심해야합니다.'
"이명박, 가난이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끝까지 마치진 못했지만 그는 서울불교대학원에서 다닌 적이 있다. 상담심리를 공부하고 싶었다. 현장기자로 취재활동하면서 그는 '사건 속의 인간'을 만났다.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모습에 부딪치면서 인간에 대한 그의 이해는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그의 인식은 이렇다. '지금 저 사람이 웃고 있지만 저마다 상처 하나씩 갖고 있지, 우리는 누구나 그 상처에 끌려 다니는 거 아닌가.' 불교에서 말하는 측은지심이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그에게 지금 대통령은 어떤 상처를 가진 사람으로 보이는가 물었다.
"가난이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돈에 대한 집착, 권력에 대한 집착, 뭐든지 혼자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성과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줄 알아야 하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는 정치는 사랑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그러기를 바라고 싶지만 그게 가능한 일인가?
"남들이 보기엔 제가 조·중·동과 많이 싸우는 사람인 것 같겠지만 사실 전 그들 때문에 제가 많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더욱 조심해서 살게 만들고 더 노력하게 만들었다고 믿거든요. 세상살이에 반대자는 어차피 있는 것,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반대자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내안에 화를 죽이고 분노를 다스릴 줄 알게 되는 것… 젊었을 적에는 그것을 다스릴 줄 몰랐지요. 박정희, 전두환에 대해서는 그냥 분노를 느꼈지만 지금은 제 분노에 측은지심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편안한 인상으로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그를 보다가 문득 누군가 떠올랐다. 평화운동가 틱낫한 스님. 그 선사처럼 최의원도 아주 마른 체격이다. 언론위원장으로 일하던 시절에 절박한 이슈를 해결하기위한 방식으로 단식농성을 자주하곤 했다. 아마 그 탓도 클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마라톤 하프 코스는 너끈히 달릴 정도로 건강 체질이다.
"대의정치, 참 어렵다"
국회의원이 되고 난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노동조합 상태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아요. 그전에 사장일 때는 사측이 되었는데 요즘은 성명서 쓰고 집회 나가고… 하하하…"
어느 쪽이 더 좋은가, 물어 보자.
"둘 다 별로예요. 그 중간쯤이면 좋겠습니다. 양쪽 다 수용 받을 수 있고 양쪽 다 이해받을 수 있는 그런 위치가 있었으면 좋겠지요."
노조위원장으로 사장까지 지냈으니 방송쪽 관련 업무는 훤할 것이다. 앞으로 복잡한 영상산업쪽 이야기도 그가 의정활동 중에서 맡아야할 몫일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언론 쪽이 조금 조용해진다면 그는 어떤 쪽에 관심을 쏟고 싶어할까?
"여성 리더십 기르는 일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여성의 힘을 아주 믿거든요. 여성인력을 사회적으로 길러내는 일이 중요합니다. MBC에서 일하면서 여성인력이 얼마나 훌륭한지 실감했어요. 우리사회에 더 많은 여성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제가 딸이 둘 있기도 하고요, 하하하…"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그에게 앞으로 거는 기대가 크다고 하자 그는 솔직하게 대답한다.
"국민이 바라는 바는 높지만 정치인들의 역량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대의정치가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론개혁문제의 경우만 해도 아주 중층적이고 복합적이고 동시다발적인 것입니다. 통신융합, 인터넷… 이런 문제를 정책적으로 잘 풀어낼 욕심으로 의회에 들어왔고 열심히 공부하면서 일하고 싶은데 지금 우리 정치가 20년 전으로 퇴행해버렸습니다. 20년 전하고 똑같이 싸움박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가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최의원은 잘 가라고하며 계속 따라 나온다. 문가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방문객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분명 엘리베이터 앞까지 와서 배웅을 마쳤을 것이다. 그것도 고개 숙인 인사를 거듭 거듭하면서 말이다.
최문순 의원의 금배지에는 권력의 냄새가 하나도 나지 않는다. 혹시 무슨 국회의원이 저래, 하고 깔보는 사람들이 있으면 어쩌나, 걱정이 들 정도이다. 아니다, 이젠 저런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한다. 우리도 언젠가 시인 신동엽이 그린 정치인 -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가더란다' - 을 가져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좋은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국회로 진출하는 것, 그런 것을 진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최문순의원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드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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