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후 7시 촛불을 들고 모인 1만여 명의 시민들은 지난달 25일 전주에서 '정권 타도'를 외치며 분신, 이날 오전 숨을 거둔 이병렬(42) 씨를 추모하며 다음 날 있을 집회를 기약했다.
1시간 30분가량 진행된 집회를 마친 시민들은 남대문, 명동, 종로 등을 거쳐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행진을 벌인 뒤 9시 30분 경 해산했고 남은 시민들은 교수노조 등이 주최한 대국민 거리토론회에 참석했다. 시청에서 100미터가량 떨어진 청계광장에서는 문화예술인들을 중심으로 한 공연과 진보신당 관계자들의 상황 설명 등이 이어졌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는 방송국"
시민들은 특히 지난 주말 시위에서 등장한 쇠 파이프 문제, 촛불집회가 초기의 시민주도형 방식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지적, 광우병국민대책회의와 별도로 집회를 치르자는 주장 등에 대해 저마다 견해를 밝혔다.
개인 신분으로 참여한 시민들은 쇠 파이프를 드는 문제나, 경찰이 폭력을 유도했다는 주장(프락치설) 등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지만 광우병대책회의의 주도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날 처음으로 집회에 참여한 권정무(25) 씨는 "쇠 파이프를 쓰면 경찰을 자극하고 강경 진압을 합리화할 명분을 주기 때문에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씨는 또 "시간이 지나면서 구호가 미국산 쇠고기 반대에서 공공 부문 민영화와 같이 다양한 이슈로 넘어왔다"라며 "공론화할 필요가 있는 사안이긴 하지만 쇠고기 문제 하나로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광우병대책회의가 만드는 무대는 소통을 위한 방송국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없앨 수 없다"라고 말했다.
부인과 함께 유모차를 끌고 참석한 대학원생 유기정(35) 씨는 쇠 파이프를 든 시민의 정체에 대해 "시민이라면 얼굴을 공개했을 텐데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프락치일 가능성이 크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촛불집회에 처음 왔다는 유 씨는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의지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다"라며 "그러려면 리더가 있어서 흩어지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대책회의가 그런 역할을 맡아줘야 한다. 선입견을 품고 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다섯 차례 집회에 참여한 직장인 이준호(44) 씨는 "소위 일반시민들이 겉돈다고 하는데 자발적인 것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산발적이어도 안 되기 때문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 필요하다"며 "경험과 역량을 갖춘 대책회의가 시민들의 힘을 합치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어 "그런 단체를 두고 '배후세력이네' '운동권이네' 매도하는 게 더 문제"라며 "서로 정보와 공감대를 나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먼 길을 가야 하는데 지금은 초반전이다. 집회 주최 측에서 그동안 매우 세련되게 진행해 왔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씨는 청와대로 향하는 거리행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그는 "청와대에 간다고 해서 대통령을 끌어낼 수도 없기 때문에 거리행진만 하면서 의사표시를 적절히 하는 게 좋다"고 지적했다.
"프락치가 무서운 이유는 서로 불신하게 하기 때문"
혼자서 15차례 이상 집회에 참여했다는 회사원 김인수(43) 씨는 쇠 파이프가 등장한 장면을 코앞에서 목격했다며 "광화문 중앙분리대에 있는 파이프 비슷한 것이었다. 방패로 맞다가 흥분해서 집어든 것이다. 준비된 게 결코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자신을 '운동권 주변에서 맴돌던 386세대'라고 소개한 김 씨는 특히 경찰이 보낸 프락치가 집회의 과격화를 유도했다는 소문에 대해 학생 시절 경험을 들려줬다.
"과거 학생 시절에도 경찰 프락치라는 의혹을 받아 소외받는 친구들이 많았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런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었다. 프락치는 그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그를 통해서 서로 불신하게 하는 게 정말 무서운 것이다. 서로 의심하면서 싸우게 만드는 것이다."
김 씨는 이어 "국민대책회의가 너무 조심스러운 게 오히려 문제라면 문제"라며 "집회를 짧게 하고 행진을 해야 하는데 토론이나 자유발언을 두 시간이나 한다. 그렇게 해선 안 바뀐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명박 정부의 대응을 보니 상황이 녹록지 않다"라며 "구호만 외치고 기다리면 들어줄 거로 생각하면 오산"이라고도 덧붙였다.
이어 그는 "간디의 무저항 운동은 영국 상품을 안 쓰고 생업을 포기하면서 사회시스템을 붕괴시키는 방식이었다"라며 "이명박 정부가 하는 걸 보면 그런 방식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시민들을 만나던 중 1990년대 경기도 지역 학생운동을 '주름잡았던' 김 모(38) 씨를 만났다. 지금은 보통 시민인 그가 이번 촛불시위와 주말 이후 변화된 분위기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김 씨는 "이렇게 많은 군중이 모이다 보면 통제가 어렵고 개인 의견이 다양할 수 있기 때문에 뭐가 옳다 그르다 얘기하기 어렵다"라며 "쇠 파이프를 들자거나 청와대로 가자는 의견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려되는 건 이명박이 노리는 분열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인데 쇠고기 재협상을 하라는 큰 대의에 동의할 수 있다면 작은 이견을 이해해야 한다"라며 "자기 행동은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니 최대한 분열된 모습을 보이지 말고 서로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쇠파이프 시위자 '배후세력' 아니었다 경찰은 지난 주말 촛불집회에서 쇠파이프를 사용한 혐의로 이 모(44) 씨에 대해 9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전경버스에 올라가 방패벽을 부수는 등 폭력사태를 주도한 혐의로 전 모(44) 씨와 윤 모(51) 씨에 대해서도 같은 조치를 내렸다. 경찰이 촛불집회 거리시위에 가담한 시민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씨는 지난 8일 오전 4시 5분 경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서 청와대 진입로를 막고 있는 전경버스에 올라가 근처 공사장에서 가져온 쇠파이프를 휘둘러 전의경 2명에게 상처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씨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근로자였고 윤 씨는 노숙자였으며 전 씨는 생수판매업을 하는 저소득 자영업자였다. 따라서 과격행위자들이 20~30대 운동권일 것이라는 일각의 선입견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이 씨의 경우 쇠파이프를 미리 준비해 온 것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영등포경찰서와 도봉경찰서는 이들 외에도 7명을 추가로 연행해 조사했으나 노동계, 학생운동권 등 소위 '배후세력'과의 관련성은 확인하지 못했다. 한편 경찰은 10일로 예정된 6.10 항쟁 기념 촛불집회를 앞두고 경찰 가용경력 100%를 동원할 필요가 있는 경우 발령되는 '갑호 비상'을 발령했다. 경찰의 비상 단계 중 가장 높은 갑호 비상이 발령됨에 따라 경찰은 전의경 위주의 상설 254개 부대와 경찰관으로 임시 편성된 163개 부대 등 417개 중대(약 4만명)를 동원해 집회 대처와 민생 치안에 투입할 방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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