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사전 양해 구했을 수도
과거 같으면 즉각 반발했을 북한이 이틀 이상 침묵을 지키는 것은 백악관의 발표를 '싱가포르 합의' 이행을 위한 불가피한 수순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합의 이행을 위해 부시 행정부가 의회를 설득할 필요가 있는 만큼 그럴 수 있는 시간을 주겠다는 것이다. 백악관 발표 직전 평양을 방문한 성 김 미 국무부 한국과장은 그같은 과정에 대한 북한의 양해를 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부시 행정부가 시리아 핵협력 문제를 6자회담의 틀 안에서 풀겠다고 밝힌 것도 하나의 이유로 분석된다. 6자회담으로 '창구단일화'를 한다는 것은 싱가포르 합의대로 북한이 풀루토늄 추출 내용을 신고하기만 하면 미국이 테러지원국 삭제 절차를 밟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테러지원국 삭제라는 '과실'이 눈앞에 있는 시점에서 미국의 '과거의 일'로 규정한 시리아 문제를 굳이 재론할 필요가 없다는 계산을 했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24일 성명에서 "6자회담의 틀 안에서 엄격한 검증 매커니즘을 구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도 "북한과 시리아의 핵 협력은 과거의 일이라는 것이 미 당국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외무성 대변인이 3월 28일 농축우라늄(UEP)과 시리아 문제를 부인한 만큼 또 나설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며 "이미 미 행정부에서도 6자회담 재개쪽으로 방향을 틀어 놨으니 추이를 지켜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침묵 자체가 시리아 문제에 관한 '간접시인'이 아니겠냐고 해석하기도 한다. 미국이 북한 관리가 포함된 사진자료까지 내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음으로써 무언의 시인을 한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는 뜻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확산' 및 '시리아 친선' 강조 속내는?
그렇다고 북한이 시리아와 핵확산 문제에 관해 완전히 입을 닫은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 내용과 방식이 북한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7일 "미국이(…)다른 나라들에 핵물질을 넘겨주거나 그것을 생산하도록 적극 도와주고 있다"며 "미국은 핵과 관련해 그 누구를 비난하고 문제시할 자격도, 체면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북한이 '미국의 확산' 문제를 지적하는 방식으로 자신들과 시리아의 핵협력 주장을 간접적으로만 반박하고 넘어가려 한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북한 매체들이 시리아와의 친선관계를 잇따라 보도하는 것도 눈에 띈다. <조선중앙방송>은 27일 시리아의 '알 아흐드 알 와타니당' 총비서가 지난 1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으로 보낸 축전 소식을 전했다. <평양방송>, <조선중앙통신> 등도 시리아와의 우호 관계에 관한 보도를 연이어 내놨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한 북한 전문가는 "시리아 핵협력설 공개는 크게 보아 북한에게 미국과 시리아 중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라며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을 택했는데, 그에 따른 시리아와의 관계 소원을 막기 위해 그런 보도를 내놓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국 내 태도 악화 땐 반응 보일 듯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이 또 한 번 시리아 핵협력설을 반박하고 나올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보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이 문제에 대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강경파들의 반발이 계속될 경우이다.
<워싱턴포스트>는 26일 북-시리아 핵협력설 공개가 공화당 의원들을 분노하게 만들어 북핵 협상에 대한 지지가 심각하게 약화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특히 부시 행정부 관리들의 말을 빌려 이번 공개가 북한의 테러지원국 삭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상황이 현실화해 미국 내 강온파간의 갈등이 지속될 경우 북한은 백악관의 발표를 정면으로 반박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북한이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더 이상의 진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北, 연락사무소 제안 거부…'예견된 일'
한편, 북한은 26일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 중 제안을 거부했다.
<노동신문>은 연락사무소 제안에 대해 "북남관계 악화의 책임을 회피하며 여론의 시선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한 얕은 수"에 지나지 않는다며 연락사무소 설치방안 자체를 "반통일 골동품"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이같은 태도는 예견된 것이었다. 북한은 6.15공동선언과 10.4정상선언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수용을 남북관계 재개의 시금석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대북전략 차원의 제안이 아닌 만큼 북측의 거부의사에 대해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라며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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