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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지 나비효과', 금융공황 태풍으로 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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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모기지 나비효과', 금융공황 태풍으로 변하나

[분석]투기자본이 파놓은 유동성 함정, 사전 차단장치 시급

16일 국내 증시 사상 최대 폭락장이 연출된 직접적 원인은 미국발 주택담보대출 부실에 따른 국제적인 신용경색 우려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금융당국은 투자심리가 냉각될 것을 우려해 서둘러 불끄기에 나섰다.

재경부는 "미국의 비우량주택담보대출채권인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비중은 미국 전체 모기지론 시장의 12%, 미국 전체 금융자산의 1% 미만인 만큼 경제적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일시적인 돌풍'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 펀더멘털이 튼튼하기 때문에 웬만한 돌풍에는 끄떡없이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 8월16일 코스피가 사상 최대 폭락을 기록했다.ⓒ연합뉴스

하지만 '금융은 심리'라는 말이 있다. 내가 투자한 금융자산 가치가 폭락할 것 같다면, 내가 맡긴 돈이 떼일 위기가 닥쳤다는 위기감이 든다면 선착순으로 투매하거나 환매나 인출을 위해 금융회사들에게 몰려가게 된다.

이런 현상이 한 나라 안에서 일어날 경우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면 정부의 다양한 수습방안으로 시간이 좀 걸릴지라도 결국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에 1조 달러가 넘는 투기자본이 국경을 넘나들고 있는 '세계화 체제'에서 '금융수출국' 미국의 1%의 금융자산이 흔들린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사실 비우량대출인지 우량대출인지는 금융시장의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기 때문에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가 실제로는 미국 전체 모기지의 20%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 '제2외환위기' 경고 발언이 남의 나라 얘기라고?

특히 일부 전문가들은 1997년 아시아 각 국을 강타했던 외환위기 이후 10년이 지나는 동안 한 곳의 금융위기를 순식간에 '전세계적인 금융태풍'으로 증폭시킬 '금융의 세계화'가 구축되었다면서, 지금 몰아치고 있는 신용경색 위기가 '전세계적인 사상 최대 금융위기'의 뇌관이 마침내 터진 것으로 볼 것이냐의 판단 문제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의 '경제대통령'으로 불렸던 앨런 그린스펀도 "금융거품은 언제 터질지 예측할 수 없다"고 고백했듯이, 그 판단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IMF 구제금융의 끔찍한 악몽을 겪게 했던 97년 외환위기 때와 유사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우려가 그 어느 때보다 큰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우려가 다름아닌 우리 경제의 수장이라고 할 권오규 경제부총리의 입에서 직접 나왔다는 점에서 시장이 받은 충격은 상당 기간 아물기 힘들 전망이다.

통상적으로 금융당국의 최고책임자는 시장의 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거짓말도 불사한다. 그런데 권 부총리는 누구보다 앞서 지난 14일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가 소위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급격한 청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내비친 점에서 그의 발언은 심각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란 0%에 가까운 낮은 금리가 유지되고 있는 일본의 엔화 자금을 달러 등 다른 통화로 바꿔 주로 신흥 증시 등 고수익 투자처에 투자된 것을 말한다.

국내 증시가 휴장일인 15일을 넘기자마자 개장부터 폭락세를 보인 요인에는 권 부총리의 발언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재경부는 곧바로 최고 수장의 발언을 반박하는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급격히 청산된다고 해도 우리나라가 제2의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권 부총리는 우리나라 상황이 아니라 과도한 엔 케리 자금이 들어온 일부 다른 나라의 경우를 언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금융시장의 동향을 의식할 한 나라의 경제부총리가 허튼 소리를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한 발언의 문맥으로 보아 다른 나라에 대한 위기를 경고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1997년 IMF외환위기 당시에도 3월과 4월에 위기설이 나온지 8~9개월 후인 12월에나 현실로 드러났고, 그 직전까지만 해도 '위기는 없다'는 식의 반응이 팽배했었다는 점에서 권 부총리가 이번야에말로 작심하고 미리 강력한 경고를 한 것으로 봐야한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 권오규 경제부총리가 제2 외환위기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경고해 파문이 일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권 부총리는 어떤 사태가 벌어질 것을 우려한 것일까.

사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별 것 아니라는 정부의 공식해명만 감안하면, 프랑스 최대은행인 BNP파리바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관련 자산유동화증권에 투자한 3개 펀드의 환매와 가치산정을 일시 중단한 사건 이후 미국의 중앙은행뿐 아니라 유럽중앙은행(ECB)이 나흘 사이에 무려 270조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긴급자금을 지원하고 나선 것을 이해하기 힘들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자체보다 파생상품이 문제

우리나라 한 해 예산(240조원)보다도 많은 자금을 ECB가 황급히 쏟아부어도 시장이 '언 발에 오줌누기'라는 반응을 보인 이유는 이번 위기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드러낸다.

미국 월가에서는 투기자본들을 위해 일반인들은 이해하기도 힘든 금융상품들을 발명해 왔는데, 이를 소위 '파생상품'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것이 주택담보대출채권(MBS) 등 금융자산을 다시 담보로 해서 발행되는 부채담보부증권(CDO) 등 고위험 신종채권이다.

고위험인만큼 일반 회사채보다 수익이 높기 때문에 '리스크 회피'의 달인이라고 하는 헤지펀드 등이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대거 매입했고, 이 과정에서 원금의 10배에 가까운 레버리지까지 사용한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서브프라임모기지 대출 1건에 파생상품 10개가 만들어진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구조의 상품들로 현재 규모를 파악할 수도 없는 '금융거품'이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파생상품 거래의 또다른 폭발성은 이 상품이 워낙 복잡해 컴퓨터를 동원한 수학적 거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으로 '파생상품 거래의 귀재'라는 골드만삭스마저 지난 13일 소속펀드인 '글로벌 에쿼티 오퍼튜니티즈(GEO) 펀드'가 지난 한 주만에 30% 이상 손실을 내 30억 달러를 긴급 투입하는 결정을 내리는 수모를 겪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펀드는 사전 입력된 포트폴리오에 의해 컴퓨터가 알아서, 해당 종목이 고평가되면 팔고 저평가되면 자동으로 추가매수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사태처럼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매매가 쉬운 우량주들을 계속 투매하면, 컴퓨터가 우량주 매입타이밍으로 인식해 대량매수에 들어가는 시스템은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된다.

10년 전 세계경제를 뒤흔들었던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숄스 박사는 자신이 고안한 수학적 투자모델에 의해 '손실 가능성 제로'라고 자부했으나 결국 거액손실을 입고 파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파생상품에 대거 동원된 자금이 바로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다. 이 자금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4월 기준으로 1700억 달러로 추산했으나, 금융시장에서는 5000억 달러에서 최대 1조 달러로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에도 재경부는 최대 50억 달러(4조50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고 밝혔지만, 시장에서는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엔화가 달러 등 다른 통화로 바뀌어 유입되는 경우 정확한 집계가 어렵기 때문이다.

98년 LTCM이 파산했을 때도 세계 금융시장의 혼란이 더 컸던 것도 엔화 가치가 열흘 만에 17%나 급등할 정도로 엔캐리 자금이 급격히 회수됐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엔 캐리 자금의 급격한 회수 벌어지면 본격적인 유동성 위기

권 부총리도 1997년 11월 일본 은행들이 우리나라에 대출했던 대규모 자금을 한꺼번에 회수하면서 비(非)일본계 은행들의 자금 회수에까지 영향을 끼쳐 결국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발생을 촉발하는 주요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재경부는 그동안 엔 캐리 자금이 과도하게 유입되지 않도록 관리해 온 결과 국내에 유입된 엔 캐리 자금 규모는 2500억달러에 달하는 전체 외환보유액의 2%, 1분기 현재 371억달러 가량인 일일 외환거래량의 약 16%에 불과해 큰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의 해명 방식은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것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 자금의 규모가 아니라, 자기가 보유한 자산을 하루라도 빨리 회수해야겠다는 심리가 연쇄적으로 퍼지는 사태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앞다퉈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유동성 위기가 닥칠 수밖에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중에 돈이 너무 풀렸다면서 미국이나 한국의 금융정책당국이 금리를 계속 인상할 정도인데, 하루 아침에 돈줄이 말랐다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금융시장의 취약점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박사 등 상당수의 금융전문가들은 엔화 투기자금이 고수익을 좇는 헤지펀드에 많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서브프라임 사태→헤지펀드 위기→엔화 투기자금 환매→글로벌 신용경색 확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정말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자금 경색이 부동산 시장으로까지 타격을 주는 사태다. 이미 부동산을 담보로 2000선까지 치솟은 증시에 뒤늦게 뛰어든 개미투자자들이 경매에 내몰리고 있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유동성 위기가 회복불가능한 '유동성 함정'에 빠지기 전에 국제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투기적 자본거래를 제한하는 '토빈세' 도입 등 그동안 꾸준히 논의되어온 방안은 물론, 국제적인 유동성 위기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국제협약도 생각할 시점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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