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문재인 후보는 야권 후보 단일화와 관련해 "나에게 유리한 시기와 방법을 고집하지 않겠다. 모든 방안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논의를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다음날 오전 안철수 후보는 광주지역 언론사 대표들과의 자리에서 "단일화를 하더라도 정치개혁이 없으면 국민들을 설득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일화의 핵심 조건으로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단일화 자체에 무게중심을 두는 문 후보보다, '무엇을 위한 단일화인가'에 초점을 둔 진일보한 안 후보의 화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두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한 첫 단독 회동을 갖기로 했다. 결국 단일화의 핵심 쟁점은 정치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가로 모인 셈이다.
▲ 문재인-안철수, 야권 대선 후보 두 사람은 6일 오후 6시 '단일화'를 위한 첫 만남을 갖는다. ⓒ뉴시스 |
지난 몇 주간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간에는 정치개혁안을 놓고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 애초에 논쟁은 의원정수를 축소하느냐, 확대하느냐에 맞춰졌다. 하지만 지난 10월 29일 '대선후보 캠프에 묻는다-정치제도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송호창 선대본부장은 "(국회의원의) 절대적 수를 줄이자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서 의원 지위 누리는 사람을 빼자는 취지에서의 발언이었다"고 말하며 이와 관련해 더 이상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했다. 대신 양측의 선대본부장들은 이 자리에서 결국 정치개혁의 핵심은 '비례대표제의 전면적 확대'에 있다는 합의를 도출했다.
결국 단일화의 핵심 조건은 이미 그 중요성에 상당 부분 합의가 진척된 '비례대표제의 확대'를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일화 논의가 본격화됐는데도 의견을 좁히기 힘든, 갈등을 유발하는 이슈에 집착해서는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안 후보가 제시한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는 방안은 진보·개혁진영의 많은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캠프 내부에서조차 거센 반발을 불러온 바 있는데다 문 후보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부분이다. 한편 인물 쇄신은 한국정치에서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해결책으로 등장하는 것이지만 기존의 파벌과 제도가 그대로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그 개혁효과는 미비했을 뿐이다. 특히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하는 이런 접근 방식은 자칫 민주통합당 내부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와 단일화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처럼 의원정수 축소나 인물 쇄신 등의 개혁안은 그 개혁 효과도 미비할 뿐만 아니라 서로 간 갈등만 증폭시켜 결국 단일화에 대한 시민들의 피로감만 높일 우려가 있다. 요컨대, 정치개혁을 최우선에 둔 단일화 과정이 진행된다면, 그 핵심 연결고리는 양측의 갈등을 최소화하면서도 개혁의 실질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비례대표제의 전면적 확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관점에서 비례대표제 중요성 풀어내야
그렇다면 이제 단일화를 준비하는 양 후보 진영에서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첫째는 비례대표제의 확대가 왜 정치개혁의 핵심인지를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다 쉽게 설명하고 그들이 이 개혁에 적극 동참토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비례대표제를 확대하자는 제안은 여전히 어색할 수 있다. 비례대표제를 확대하는 것이 어떻게 정치개혁의 핵심이 된다는 것인가. 많은 개혁적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이 비례대표제 확대가 중요하다고 얘기하지만, 정작 비례대표 의원을 늘리자고 할 때 시민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양정례 등과 같은 공천 비리 사건이다. 즉 여전히 많은 시민들에게 비례대표제는 각 정당의 공천장사가 팽배한 영역이라는 인식이 크다는 것이다. 비례대표제 확대가 왜 정치개혁의 핵심이 되는지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춘 보다 친절한 설명이 필요한 이유다.
실제로 공천 때만 되면 어김없이 공천 헌금 등과 같은 문제가 언론에 드러나면서 시민들의 정치 불신이 더욱 커지곤 했다. 더구나 이런 비례대표 후보 공천 비리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나타났다. 새누리당에서는 주로 돈으로 공천 자리를 샀다는 비리가 터지는가 하면, 민주당과 진보당은 계파별 나눠 먹기로 비례대표 의석이 악용되고 있다는 기사들을 접하게 된다. 이처럼 공천 비리 문제는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기존 제도로부터 수혜를 받고 있는 각 정당의 기득권 세력이 비례대표 공천을 정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담합을 하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하지만 구더기 무섭다고 장 못 담글 수는 없는 일이다. 실제로 이런 공천 비리 문제는 비례대표제 자체가 갖는 문제라기보다는 기술적인 보완에 의해 얼마든지 해결 가능한 것이다. 예컨대, OECD 30개 회원국들 중 대부분의 국가들, 특히 유럽 선진 복지국가들의 대부분은 비례성이 상당히 보장되는 선거제도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 국가들에서는 한국과 같은 공천 비리문제가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다. 이는 이들이 한국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공천과정이 그만큼 민주적 통제 하에서 투명하게 지켜지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국가에서 선출된 국회의원들의 상당수가 비례대표제로 충원되기 때문에 시민들이 선거 때 가장 많은 관심을 갖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비례대표 명단이 얼마나 그 당의 정책적 지향을 잘 실현할 수 있는 인원들로 선발됐는지 여부이다. 이처럼 선거의 승패가 정당명부를 어떻게 작성하느냐에 달려있는 상황 하에서 비례대표 의원의 공천을 금전적 이해관계나 당내 계파별 지분 등에 의해 나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한국 정치에서 비례대표의 공천 비리가 많기 때문에 비례대표를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것임이 분명하다. 오히려 비례대표의 비중이 낮고, 그만큼 시민들의 관심 영역 밖에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정당 내 기득권자들이 이를 악용해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비리의 상당 부분은 비례대표의 의석을 대폭 확대해 시민들의 관심과 견제를 확산함과 동시에 공천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시민들이 갖는 비례대표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상당 부분 비례대표제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한 기술적 차원에 있다는 것이다.
두 후보가 정치개혁의 핵심으로 비례대표제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존의 제도로부터 혜택을 누려온 당내 기득권 집단들의 강력한 반대를 이겨내야 한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시민들로부터 개혁의 동력과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따라서 단일화 과정에서는 시민들이 비례대표제 확대가 왜 정치개혁의 핵심인지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비례대표제인가: 전국을 하나의 선거구로! 비례대표 비율은 50%까지!
두 번째는 비례대표제 확대에 대한 논의가 본래 개혁의 취지에 적합한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비례대표제 확대를 통해 기대하는 효과는 크게 두 가지 정도를 제시할 수 있다. 첫째는 비례성을 충분히 확보해 규모가 작은 정책정당들도 국회로 쉽게 입성할 수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한국의 지역주의 정당구도를 타파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같은 비례대표제라는 이름을 사용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을 취하느냐에 따라 그 개혁 효과의 정도는 천지차이가 날 수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우선 선거구의 크기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소수정당의 과소대표 문제는 오히려 더 악화될 수도 있다. 권역이 많아질수록, 즉 선거구가 작아질수록 비례성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본의 경우도 지난 1994년 선거제도 개혁이 있었는데 그 내용은 총 500석의 의석 중 300석은 소선거구 일위대표제로, 200석(향후 180석은 감소)은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뽑는 것이었다. 이 때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경우 전국을 무려 11개의 권역으로 나눠서 비례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미완의 개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소수정당의 과소대표가 심각하게 나타나 오히려 비례성이 기존보다 더 떨어졌다.
또한 선거구의 권역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지역주의 정당구도를 타파하려는 시도 역시 현저하게 약화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비례대표의 권역을 크게 수도권, 대구·경북권, 부산·울산·경남권, 호남권, 충청권, 강원권 등의 6개 권역으로 나누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권역을 이렇게 나눌 경우, 영호남을 축으로 하는 지역 정당 구도는 거의 그대로 유지될 것이다. 수도권을 제외한 기타 지역에서 이미 절대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정당들에게 득표가 몰리게 되고 결국 그 정당의 의석이 과다대표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권역별 비례대표제로는 기존의 지역주의 정당구도를 제대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가 제시한 지역구 의석을 200석으로 줄이고 비례대표 의석을 100석으로 늘리자는 제안은 그 개혁의 방향성 측면에서는 환영할만한 것이지만, 확대하는 비례대표 의석을 '권역별 비례대표제'로 선출하자는 제안은 많은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본래 개혁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전국을 단일 선거구로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즉 전국을 단일 선거구로 하게 되면, 소수정당의 과소대표 문제가 해결될 뿐만 아니라 영호남을 포함한 전국의 유권자들의 선호가 거의 여과 없이 합쳐져 의석수로 그대로 반영될 수 있으리란 것이다. 이를 통해 비로소 비례대표제 확대가 갖는 참 개혁의 취지가 살아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비율을 현재 2:1에서 1:1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더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례대표제가 확대될수록 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투명성은 더욱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OECD 선진국들 대부분은 국회의원의 50% 이상을 비례대표제로 선출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정책에 반영시키고 있다. 요컨대, 문 후보와 안 후보가 제시한 '비례대표제의 전면적 확대'라는 정치개혁안은 단일화 과정을 통해 보다 시민들의 삶에 다가서는 언어로, 그리고 보다 개혁적 취지에 걸맞은 구체적이고 대담한 방향으로 다듬어져야 할 것이다.
단일화의 성공이 아니라 성공적인 단일화 돼야
최근 단일화를 둘러싼 각종 언론과 전문가들의 관심은 오로지 어떤 방식의 단일화인가에 골몰해 있다. 노무현-정몽준 식의 여론조사 단일화는 누구에게 유리한지, 박원순-박영선 식의 복합적 방식은 누구에게 유리한지, 안철수-박원순 식처럼 누군가가 전격적인 양보를 하는 것은 어떤지 등등 여러 가지 정치 공학적 분석만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의 핵심은 단일화 그 자체가 아니라, 단일화 이후에 어떻게 기득권 세력의 견고한 반대를 최소한 10년 이상에 걸쳐 지속적으로 견제하면서 개혁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단일화 과정에선 그 무엇보다 어떤 정치개혁을 위한 단일화인지,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시민들의 사회경제적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이득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가치 중심의 논의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누군가가 말했듯이 '단일화의 성공이 아니라 성공적인 단일화'가 성사될 수 있을 것이다.
[취지문] 비례대표제 청년포럼은 비례대표제 포럼의 청년그룹으로서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 개혁이 필수적이라는데 동의하는 개인, 청년단체, 시민사회단체, 언론사, 정당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비례대표제 포럼에서는 청년들이 다양성이 인정되는 속에 합의의 정치가 이루어지는 한국 사회를 만들기 위해 비례성, 다양성, 공정함이 보장될 수 있는 선거제도를 얼마나 열망하는지, 이를 위해 비례대표제 확대를 얼마나 고대하는지, 조금은 거칠지만 생생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열망을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정치의 해인 2012년에 비례대표제 확대가 우리 사회 주요한 사회적 아젠다로 자리매김하는데 청년들의 이 작은 몸짓들이 마중물이 되어주길 간절히 소망하며 '청년, 정치개혁을 말하다' 연재를 시작해봅니다. 비례대표 청년포럼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prforum.tistor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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