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 중 상당수가 최근 감투를 썼다. 김영춘, 송영길 의원은 각각 열린우리당 최고위원과 사무총장을 맡았다. 이종걸 의원은 '통합신당 추진모임'의 정책위의장을 맡았다. 그런가 하면 현실성 있게 다뤄지기 시작한 범여권의 4월 재보선 연합공천 논의의 중심에는 김부겸, 임종석, 송영길 의원 등이 포진해 있다. 범여권의 정계개편 과정에서 한 가지 뚜렷한 현상 중 하나가 바로 이들 재선그룹의 '전진배치'인 셈이다.
이들은 과연 현재의 격변기를 거치며 지난 16대 국회 시절 재선의원들로서 여권의 중추 역할을 하며 급속히 성장했던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지금은 저마다 항로를 달리하고 있지만 대권을 넘보는 위치에 오른 오늘의 '천신정'은 지난 2000년 민주당의 정풍운동,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등 굵직한 정치적 격변을 주도하며 성장했다.
제16대와 제17대 국회에서의 여권 재선그룹의 성장과 역할을 비교해 보는 것은 최근의 정치적 난맥상을 읽고 해석하는 데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는 지적이 많다.
가난했던 시절의 의기는 어디에…
박성민 민기획 대표는 "재선그룹이 최근 들어 처음 전진배치 됐지만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자리"라며 "이들 재선그룹은 많은 기대를 받아 왔지만 당의 중요한 고비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일침을 놨다.
최근 범여권의 흐름에서도 재선 의원들의 역할은 기대치에 못 미쳤다는 평가가 많다. 박 대표는 "이들이 초선의원들을 이끌고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했다면 열린우리당의 분당은 없었을 것"이라며 "이들은 우리당의 분당에 대해 지도부 다음으로 가장 책임을 크게 느껴야 한다"고 말했다.
17대 국회 초반만 해도 개혁성과 의정경험을 두루 갖춘 세력으로 언론과 정치권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이들은 지금 왜 이 지경이 됐을까. 지난 2003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에 합류한 의원들을 일컫는 '독수리 오형제'의 한 사람이었던 김영춘 의원은 "(그 때와 지금은) 의지의 수준이 다르다"고 표현했다.
김 의원은 "우리당 창당 때만 해도 떨어질 각오로 시작해 좋은 정치를 위해 희생한다는 옹골찬 도전정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희망이 없이 굴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이 제1당이 된 것이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 됐다"고도 했다. 배는 불렀으되 가난했던 시절의 의기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는 자조인 셈.
송영길 의원은 "그간 재선그룹의 활동이 많이 부족했다"며 "열린우리당에는 초선임에도 연배가 많은 분들이 많아 우리가 제 역할을 못해 온 것이 사실"이라고 자평했다. 송 의원은 재선 의원들의 중용에 대해서도 "당의 자원이 떨어진 것 아니겠느냐"는 자조적인 평가를 내렸다.
정치권 바깥에선 이들의 모호한 정체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자기들만의 선명한 색깔이 없었다는 것. 과거 '천신정' 그룹이 정치개혁을 기치로 들고 구정치와의 단절을 주도했던 것과는 매우 다르다.
박성민 대표는 "재선 의원들은 40대 중년, 중부권 기반, 이념 중도, 중산층 대변 등 이른바 '4중(中)론'의 대표적인 정치인들이다. 더 이상 소장파도 아니다"고 쏘아붙였다.
박 대표의 지적대로 학생운동 시절에는 신화와 같은 존재였던 이들이 재선 딱지를 붙이면서부터는 '원내 경험'을 내세워 초선 의원들의 개혁적 요구를 달래는 일이 종종 목격되기도 했다.
싸울 대상이 없기 때문에?
물론 천신정의 성장 조건이기도 했던 '구체제'가 사라진 점이 역설적으로 이들이 조로(早老)한 이유라고도 할 수 있다.
민주당 정풍운동 당시 '천신정' 그룹은 실세였던 권노갑 전 고문의 퇴진이라는 혁혁한 전리품을 챙겼다. 2002년 대선 이후에는 '천신정' 그룹이 벌인 민주당 개혁 작업에 한화갑 대표가 중심이 된 '구주류' 측이 강력히 반발하고 당 내에서 멱살잡이까지 벌어지게 되면서 신주류-구주류 간의 대립 전선이 아주 명확해졌다.
그러나 현재의 재선그룹에는 그러한 '카운터파트'가 없었다. 이종걸 의원은 "열린우리당 창당 때에는 구지분을 요구하는 과거 세력이 있었고 이들을 공격하거나 개혁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스스로 선명성과 개혁성을 나타낼 수 있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노무현 대통령이나 '천신정' 선배들이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재선그룹이 단결해서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은 없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의 문제가 스스로의 문제의식 부족이라는 비판을 피해가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 이 의원은 "재선그룹이 상당한 힘을 발휘하려면 과거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어야 했다"며 "만약 새로운 지점을 상정하고 새로운 정치지형을 구축했다면 지금처럼 무너지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김영춘 의원도 "열린우리당 창당 때는 지역주의 정치, 구태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뭉친 의견 그룹이 생겼던 것이 유효했다"며 "지금도 어떻게 하면 우리당 의원들의 '정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박성민 대표는 "과거 '천신정' 그룹이 그랬듯이 소장파는 본래 당권교체를 주도하면서 지도자로 떠오르는 법인데 지금의 재선그룹은 당풍 쇄신운동을 해본 적이 없다"며 "당이 혼란에 빠졌을 때 제 목소리를 분명히 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유력한 대선후보나 지도자는 주로 40대에 자기 결단을 통해 지도자 반열에 오르는데 우리당 40대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진단했다.
재선그룹은 모래알?
리더그룹이 되기까지 끈끈한 결속력을 자랑했던 천신정과 달리 늘 사분오열해 왔다는 점도 재선그룹이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 원인으로 지적된다. 지금도 이들은 열린우리당 잔류파와 탈당파로 갈려 각기 흩어져 있는 상황이다.
이들의 '모래알 습성'은 지난해 2.18 전당대회에 김부겸, 임종석, 김영춘, 이종걸 등 4명의 후보가 한꺼번에 출마했을 때가 압권이었다. 후보단일화 실패는 물론이고 지도부 입성에 전원이 실패했을 때 이들은 '개인 욕심' 때문에 공멸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종걸 의원은 "그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재선그룹의 정치적 입지가 약해졌다고 생각한다"며 "김두관에게 밀린 선거 결과뿐만 아니라 정책적 입지도 설정하지 못했고, 전략지점도 잡지 못해 지금처럼 지리멸렬하게 흐트러질 수밖에 없게 됐다"고 돌아봤다.
이 의원은 "처음 한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도 어차피 수 년이 지나면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갈라지기 마련이나 천신정 그룹이 구주류에 대항했던 것과 같은 공동전선 구축과 단결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재선그룹이 정치적 목적만큼은 수미일관하게 '개혁'으로 잡고 한 목소리로 밀고 나갔어야 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우리 정당정치의 새 활력소는 어디에 있는가?
범여권 정계개편 과정에서 서로 다른 길을 택한 이들은 이제 각개약진 해야 할 형편. 이들도 이를 인정했다. 김부겸 의원은 "모두 서로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모두 목숨 내놓고 하고 있는데 이래라저래라 논평할 상황은 아니다"고 에둘렀다.
송영길 의원도 "재선그룹이 워낙 이질적인데다 일부가 탈당하는 등 재선그룹이 모임을 갖거나 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지도부의 역할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얼마나 올바르게 대응하는가가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들이 각자 택한 '새로운 모색' 역시 결국 정계개편에 이어 올해 대선과 내년 총선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심판을 통해 성적표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벌써부터 한나라당 소장파의 몰락과 함께 여권의 재선그룹의 침체가 정치권 전반의 활력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여러 곳에서 들린다. 우리 정당정치의 새로운 활력소는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