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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양쪽 코트에…누가 먼저 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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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양쪽 코트에…누가 먼저 칠 것인가

[관점] 6자회담 전야 장외설전의 연립방정식

"(미국이) 어떤 대답을 가지고 왔을지는 봐야 알겠다." (김계관, 16일 중국에 도착해서)

"실질적인 진전은 북한에 달려 있다." (힐, 17일 중국에 도착해서)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가 16일 "김계관과 언론을 통해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6자회담이 시작되기 전 언론을 통한 장외 공방은 이미 시작됐다.

북한 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16일 중국 베이징에 도착해서 "(11월 베이징 북미접촉에서) 미국 측에 우리 요구를 이야기했고 미국은 알고 갔다"며 "제재 해제가 선결과제"라고 공을 미국에 넘겼다.

그러자 힐 차관보는 같은 날 일본에서 "이번 회담의 목적은 대화가 아니라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된 내용을 이행하는 데 있다"면서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되받아쳤다.

힐 차관보는 17일 베이징 서우두공항에 도착해서도 "우리가 하려는 것은 9.19 공동성명 이행에 진전을 이루려는 것"이라며 "북한은 비핵화에 대해 진지(serious)해져야 한다"고 또다시 북한의 책임을 거론했다.

"북한이 제재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실질적인 뭔가를 이루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북한에 달려 있다"고도 덧붙였다.

1990년대 미사일협상 시절부터 미국과의 협상에 잔뼈가 굵은 김계관. 보스니아 내전 때 홀로 정전협상을 이끌며 '진정한 외교관'이라는 평을 들은 힐. 이 노련한 두 협상가의 초기 설전은 세계 랭킹 1, 2위의 테니스 스타 로저 페드로와 라파엘 나달의 경기를 방불케 했다.

'공의 위치' 공방은 결국 쟁점에 대한 시각차

회담의 성패가 상대방에 달려 있다는 김계관과 힐의 발언은 우선 고도의 협상술로 볼 수 있다. 회담이 결렬될 경우에 서로 책임을 떠넘김으로써 사태악화의 원인을 상대방에 떠넘길 수 있는 명분을 쥐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김계관과 힐이 무슨 문제를 언급하며 공의 소재를 말했는지를 꼼꼼히 해부해보면, 북한과 미국이 무엇을 핵심과제로 삼아 이번 회담에 임하고 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단순한 외교술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계관은 금융제재 문제를 꺼냈다. '회담의 최대 문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평화공존 정책으로 바꿀 때에야 해결될 수 있다"고 답했다. '적대시 정책'이란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의 북한계좌에 가해진 금융제재와 10월 핵실험 이후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호에 따른 대북 제재를 뜻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핵무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조(북)미관계가 나빠진 게 아니라 조미관계가 미국에 의해 나빠져서 핵무기를 만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북 적대시 정책, 즉 금융제재를 끝내면 6자회담의 본 주제인 핵폐기를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6자회담과 같은 시기에 진행될 북미 간 BDA 실무협상이 6자 본회담에 강한 영향을 줄 것임을 암시한 것으로도 분석된다.

반면 힐 차관보의 화두는 비핵화였다. "북한은 비핵화에 대해 진지해져야 한다"며 "북한도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는 유엔 결의 1695호 및 1718호가 계속 유효하다는 것을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6자회담과 BDA는 별개의 문제이고, 제재를 풀려면 비핵화를 먼저 해야 한다는 미국의 기본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 18일 개막되는 6자회담을 위해 16일과 17일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왼쪽)과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차관보(오른쪽) ⓒ뉴시스

공은 양쪽 코트에…어떤 걸 먼저 치느냐가 관건

금융제재로 대표되던 적대시 정책의 철회가 먼저냐, 아니면 비핵화가 먼저냐 하는 것은 6자회담이 공전되던 지난 13개월 동안 양측이 내놓은 주장을 다시 한 번 되풀이한 것이다. 6자회담 재개에 합의했던 10월 31일의 베이징 북미접촉과 장장 15시간에 걸쳐 만났던 11월 28~29일의 북미회담에도 불구하고 갈등의 기본 구도는 아직도 그대로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공은 어디에 있는가?

힐 차관보는 11월 북미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가동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 핵실험장 폐쇄, 핵시설 신고 등 핵폐기를 위한 4가지 '초기이행조치'를 북한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초기이행조치를 수용할 경우 북미관계 정상화, 한국전쟁 종전 선언, 경제지원 등에 합의할 수 있다는 '상응조치'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김 부상은 '본국에 돌아가 협의하겠다'고 말했는데, 이는 결국 미국의 비핵화 요구, 혹은 최소한 초기이행조치에 대한 공은 북한에 넘어가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후 침묵을 지키던 북한은 6자 본회담에서 답변을 내놓을 것으로 보이는데, 힐 차관보가 "북한에 달려 있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한편 안보리 제재야 미국 단독으로 어찌할 수 없지만 BDA 제재는 미국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보면 "(미국이) 어떤 대답을 가지고 왔을지는 봐야 알겠다"는 김 부상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미국의 결단이라 함은 BDA에 묶여 있는 2400만 달러 중 합법적인 자금은 풀어주고, 북한이 불법적인 거래에 의한 자금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증거가 나왔다 하더라도 예를 들어 북한이 '불법행위는 인정하지만 국가적 차원의 결정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면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북한에게 '고백의 고통'을 경감시켜 줌으로써 금융제재 갈등을 해소하고 비핵화 문제로 논점을 집중시키는 열쇠는 역시 미국이 쥐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공은 양쪽 코트에 다 있다. 다만 6자회담과 금융제재 문제가 형식적으로는 분리돼 있지만 사실상 한 덩어리이고, BDA 문제가 6자 본회담에 강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이 '먼저' 공을 쳐야 한다.

이번 회담은 핵폐기를 위한 초기이행조치를 북한이 어느 정도 받아들일 것이며, 이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는 어디까지가 될 것인가에 대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핵심 관건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하지만 본회담과 금융제재 실무협의 간 균형점도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회담은 단순한 평균대 경기가 아니라 중첩된 쟁점을 다뤄야 하는 2단 평행봉 경기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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