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지도부가 당초 오는 6일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할 예정이었던 당 진로에 관한 설문조사를 미루기로 했다. 당 비상대책위원회는 5일 저녁 국회 당 의장실에서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설문조사를 순연하기로 결정했다.
박병석 비대위원은 "당의 진로에 관한 설문조사는 예산안과 민생 법안 처리에 전념하기 위해 예산안 처리가 끝나는 시점으로 맞춰 순연키로 했다"고 밝혔다.
박 위원은 "예결특위 진행상황을 보고받은 결과 9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데 합의했다"며 "당의 진로 결정보다 예산안 및 민생법안 처리가 더 시급하다는 판단에 따라 설문조사를 늦추기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야당이 적극 협조할 경우 예산안 처리는 다음주 주말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설문조사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또 "예산안 처리를 위한 임시국회가 끝나기 2~3일전 설문조사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대위 내에도 부정적 시각 다수
당 비대위는 설문조사를 미루기로 한 이유로 '예산안 처리'를 들고 있으나 앞서 노무현 대통령이 편지를 통해 설문 조사에 대한 분명히 반대의사를 밝힌데다 이날 오전 친노 성향 당원들이 비대위 해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여는 등 당내 친노그룹의 반발이 격해진 데 대한 당 지도부의 부담감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게다가 당 비대위 내에서도 설문조사 강행 실시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근태 의장부터가 설문조사 자체에 부정적이었다는 것. 김 의장의 측근은 "의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승인한 것일뿐 김 의장 자신의 생각은 아니었다"고 귀뜸했다.
또 김한길 원내대표도 이날 "설문조사 결과로 당의 진로를 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비대위가 조용히 (당내 여론을) 취합해 의총에 참고자료로 내놓는 절차가 돼야 한다"고 말해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친바 있다.
배기선 비대위원은 간담회에 참석하기 직전 "설문조사가 만병통치약이 될지는 모르는 일 아니냐"며 "한 정당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있어 설문조사만 갖고 하는 데 대해 대통령도 반대하고 여러 사람들이 반대하고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이어 "지금은 대통령을 흔들어서는 안되는 때"라며 "현재 당청간 갈등을 겪는 상황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때문에 일단 비대위는 설문 조사를 진행하더라도 당내 친노 그룹의 반발을 최소화 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박 위원은 "당에서 작성한 설문조사 문항에 대해 당 내외 전문가의 의견을 듣기로 했다"며 설문조사 실시에 대해 한층 신중해진 태도를 보였다. 또 박 위원이 설문조사가 실시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 시점은 노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날 비대위 결정으로 이대로 설문조사가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어졌다. 이와 관련 박 위원은 "설문조사를 실시한다는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면서도 "설문조사가 실시될 때까지 정계개편의 논의를 유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설문조사와는 별도로 정계개편 논의를 추진할 예정임을 밝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