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들에서는 소위 암흑물질이라는 논의가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심각한 상황에 처한 미국경제를 구원할 구세주와 같은 존재는 아니라는 비판들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쏟아지는 여러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은 미국의 힘을 과신하고 있는 듯하다. 이미 하버드대의 쿠퍼 등은 미국이 호황을 구가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자본이 당연히 미국으로 유입되는 것이고 이는 전 세계의 과잉저축을 해소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하우스만 등은 빗발치는 비판에 대해 자신들의 연구는 미국 대외투자의 수익률에 관한 수수께끼를 푼 것이며 여전히 미국은 보험, 유동성, 그리고 혁신을 제공하는 데 비교우위가 있으므로 다른 나라들이 이에 대해 더 많이 지불한다고 믿는다고 주장한다.
한편 보다 낙관적인 논자들은 암흑물질과 신경제론을 함께 결합시켜 미국경제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신경제의 도래를 최초로 선언했던 <비즈니스위크>의 마이클 만델은 최근 미국경제는 연구개발, 지식 등 무형자본에 대한 투자가 높으며 이것이 생산성 상승을 낳았다고 강조한다. 이미 공식통계에서 잡히지 않은 무형자본의 투자를 계측하여 미국경제의 성장을 분석하는 연구들도 발표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특히 생산성의 성장과 무역적자의 급증이 동시에 나타난 것이 중요하며 이는 역시 미국의 무역적자가 역시 보이지 않는 수출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로부터 미국으로 유입된 자본이 미국의 교육이나 연구개발을 촉진하고 이 신경제의 힘, 즉 뛰어난 기술과 지식이 암흑물질의 기술적 기반이 되어 무형수출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비즈니스위크>의 기사 제목처럼 미국경제는 생각보다는 훨씬 튼튼한 것일까.
암흑물질 혹은 신경제론의 모순과 한계
그러나 반론의 목소리도 높다. 2000년 이후 연구개발이나 교육에 대한 지출이 크게 높아지지는 않았으며 기업들은 이윤 증가에도 불구하고 기업 내부에 현금을 쌓아놓거나 자사주 매입 등에 지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또 다른 난점은 신경제의 도래로 미국경제가 소위 성장주(growth stock)가 되어 외국자본의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면 미국에 대한 해외투자의 수익률도 높아질 것이므로 암흑물질이나 무형수출 자체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버클리대의 국제경제학의 대가 아이켄그린은 암흑물질 류의 이론은 외국자본이 미국경제의 밝은 전망과 높은 투자수익을 기대하며 미국으로 계속 유입된다는 신경제 이론과 모순된다고 일침을 놓는다.
그는 최근의 세계적 불균형을 설명하는 새로운 주장들을 신경제론, 암흑물질론, 그리고 미국투자자들의 우위론 등 3가지로 구분하고 각각 그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신경제론은 90년대 후반 이후 정보기술혁명과 생산성 증대로 대표되는 미국경제의 부활로 인해 미국에 대한 외국자본의 투자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으므로 무역적자는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미국에 투자되는 외국자본의 수익률이 높지 못하고 사적인 투자도 주로 부채 형태이며 순투자의 상당부분은 중앙은행의 투자라는 점, 그리고 중국의 생산성 상승이 오히려 미국보다 더 빠르다는 점을 지적하며 신경제론을 반박한다.
'현명한 미국투자자' 이론은 암흑물질론과 유사하게 미국의 투자자들이 외국투자자보다 더 똑똑하므로 외국에 투자한 미국투자의 높은 수익이 무역적자를 다 메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미국투자자의 수익률이 계속 외국투자자에 비해 더 높을 것이라는 주장의 현실성과 지속가능성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별로 설득력이 없다.
결국 암흑물질도 신경제도 그 무엇도 미국경제의 심각한 수지적자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스타벅스의 높은 이윤마진이든 마이크로소프트의 로얄티 수입이든 아니면 다른 무엇이든 아무리 더해 보아도 천문학적인 무역적자와 급등하는 대외부채, 그리고 이로 인한 이자지출을 메우기에는 불충분한 것이다. 튼튼해 보이긴 하지만 미국경제는 속에서부터 곪아가는 치명적인 병에 걸려 있는 것일까. 아이켄그린을 포함한 많은 학자들은 정신 차리고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으며 갑작스런 조정에 대비하는 예방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며 경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거인의 중병
미국의 높은 대외투자 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기술이나 지식과 같은 경쟁력만큼이나 세계경찰이라 불리는 압도적인 군사력과 같은 정치적 요인일 것이다. 급등하는 무역적자와 함께 군비지출로 인한 재정적자도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지키기 위한 이러한 지출이 도리어 미국경제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가라앉는 제국의 위태로운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전쟁의 수렁과 급등하는 쌍둥이 적자를 보면 부시와 레이건의 얼굴이 그대로 겹쳐진다.
버는 것보다 써대는 것이 훨씬 더 많아서 저축률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미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AFL-CIO의 경제학자 팰리는, 가장 큰 문제는 2000년 이후 무역적자의 급등으로 미국 제조업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어서 미국경제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실제로 현재 미국의 제조업 고용수준은 1950년대 이래 역사상 최저수준을 기록하고 있으며 최근 급락하고 있어서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미국 제조업의 고용은 1960년대 중반에서 2000년까지 오랫동안 약 1700만 명 이상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2000년에서 2004년 사이 무역적자의 급등과 함께 전체의 17%나 되는 약 300만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져 버렸다. 게다가 콜센터와 같은 저임금 사무직 일자리는 점점 더 개발도상국으로 아웃소싱되고 있어 빈곤층의 기회는 더욱 줄어들고 있다.
물론 무역적자와 일자리 감소는 보다 복잡한 관계가 있겠지만, 세계화의 충격이 미국인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며 하층민들에게는 더욱 큰 압박이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미국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2004년 현재 절대적 빈곤선 아래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전체 인구의 12.7%인 3700만 명이나 되는데 이는 2000년 이후 4년 연속으로 540만 명이나 늘어난 숫자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모국 미국경제는 최근의 호조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심각한 가난과 소득분배의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문제와 세계경제의 혼란
이렇게 속병을 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흥청망청하는 지출 탓에 무역적자가 계속 악화되고 있는 것을 보면 미국경제는 아무래도 위태로워 보이며 그 여파가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심히 우려스럽다. IMF조차 작년 세계경제전망에서 미국경제와 세계경제의 심각한 불균형에 우려를 표명했으며 적절한 조정이 없이는 급작스런 붕괴가 나타날지도 모른다고까지 이례적으로 지적하지 않았던가.
암흑물질이 얼마나 되든간에, 미국의 수지적자는 역시 미국 경제가 부분적으로 버블에 기초하여 분에 넘치는 수입을 해 대는 동시에 중국과 같은 나라들이 끊임없이 미국에 달러를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지적하듯 문제는 이렇게 수지적자를 암흑물질로 메우는 상황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결국에는 미국인들도 허리띠를 졸라매는 법을 배우고 동아시아 등 다른 지역은 대외의존의 감소와 내수 확대에 기초한 보다 건강한 성장을 지향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또한 지역적이고 국제적인 금융협력 또는 핫머니에 대한 규제 등을 통해 불안한 국제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노력이 필수적이라고 지적된다.
실제로 지난 5월 이후 세계금융시장은 인플레와 금리인상, 그리고 전 세계적 유동성 감소에 대한 우려로 인해서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각국의 주식시장이 급락하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이슬란드와 터키 등은 올해 들어 외환금융위기의 징후마저 보여주고 있다. 이미 심각한 수준에 이른 전 세계의 자산가격 버블의 붕괴, 달러화의 평가절하와 인플레이션 압력의 증가, 그리고 금리인상에 따른 충격 등이 세계경제를 다시 한번 휘청거리게 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지금은 미국인들뿐 아니라 세계의 모두가 돈부쉬 교수의 명언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볼 때다.
"매우 똑똑하고 존경받는 경제학자들이 무역적자가 유지가능하다는 새로운 그럴 듯한 이론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면 그때가 바로 준비할 때다. 붕괴가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중국, 그리고 한국
암흑물질 류의 주장을 둘러싼 국제적인 반응도 무척 흥미롭다. 미국의 무역적자의 압도적인 부분은 역시 중국 때문인데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꾸준히 위안화의 절상을 요구해 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중국정부는 암흑물질 이론에 기대어 미국은 표면상 대규모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수지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리더수이 전 국가통계국장은 통계에 포착되지 않는 미국기업들의 해외투자 수익, 지적재산권 사용료, 문화수출 등을 고려하면 미국의 국제수지는 사실상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적자투성이 미국이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세계화로 인한 국제분업이 발달했기 때문이며 해외에 진출한 미국기업의 투자수익이 엄청나기 때문에 위안화의 절상압력은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세계적 불균형을 둘러싼 논란이 이제 미중 간의 세계경제 패권 다툼에도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으며, 중국은 암흑물질론을 자신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데 차용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지난해 다른 나라들의 대미 무역흑자가 크게 늘어난 것과는 달리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상당히 줄어들었는데 이는 최근 한미 FTA 추진에도 주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 그러나 대미수출의 감소는 기업들의 생산기지 해외이전과 그로 인한 우회수출 증가와도 관련이 크다. 미국의 관세율이 훨씬 낮고 중국의 가격경쟁력이 압도적인 상태에서 FTA를 통한 수출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며 오히려 시장개방으로 인한 충격이 훨씬 더 우려되는 상황이다. 거꾸로 미국 입장에서는 FTA가 무역흑자뿐 아니라 소위 암흑물질을 엄청나게 벌어들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제대로 준비도 없이 한미 FTA를 몰아붙이는 한국 정부에게도 세계경제의 불균형과 미국경제의 현실을 둘러싼 진지한 이해와 고민, 그리고 이에 기초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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