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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민주주의 확산', 그 난감한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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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부시의 '민주주의 확산', 그 난감한 패러독스

중동 국가들 진짜 민주화되면 반미ㆍ자주 지향할 것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2006년 신년 국정연설의 화두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확산'이었다. 시리아, 미얀마, 짐바브웨, 북한, 이란 같은 '비민주국가'에 서구식 민주주의를 이식해 폭정(暴政)으로 신음하는 국민들을 자유케 하자는 '메시아적' 사명은 9.11테러 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방 전쟁', '대량살상무기' 같은 단어들을 완전히 밀어냈다.

***'대량살상무기' 타령 대신 자리한 '민주주의와 자유'**

일단 부시 대통령의 그같은 입장 천명은 세계를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미 국민을 향한 '국내용'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라크 주둔 미군의 사망자 수가 2,000명을 넘어선 지 오래고 북한 핵 문제의 해결도 더딘 대외적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중동과 북한을 향한 공격적인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인들에게 뭔가 비전을 제시해야 할 필요로 만들어낸 정치적 '레토릭(修辭)'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대량살상무기'를 또다시 테이블 위에 올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토록 많다던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단 한 개도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인들을 또한번 기만하는 것은 11월에 있을 중간선거에서 결정적인 감표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사실을 공화당과 부시 캠프가 모를 리 없다.

이때 남은 것이라곤 민주주의와 자유를 확산시키는 것이 미국의 사명이라는, 실제로 미국이 그래왔냐는 것과는 상관없이 미국인들의 마음 속에 뿌리박은 믿음에 호소하는 것뿐이었고 부시 대통령은 그렇게 했다. "이라크에서의 갑작스런 철수는 이라크인 동맹자들을 죽음과 감옥에 버려두고, 전략국가를 빈라덴과 자르카위 같은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이 될 것이며 미국의 맹세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다"는 말로 미국인들의 가슴을 울려보자는 속셈이다.

***고양이와 쥐의 게임**

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미국이 중동과 아시아, 아프리카의 독재 국가들에 확산시키겠다는 '민주주의'가 실제로는 '미국에 고분고분한 국가'를 만드는 것에 불과했다는 사례를 제시하는 것은 이제 '식상'하다.

이집트 카이로대학의 정치학 교수 하산 나파는 이집트 무바라크정권과 부시행정부 사이에 흐르고 있는 최근의 냉기류를 예로 들며 미국과 독재정권들의 상호작용을 '일부러 놔줬다가 다시 잡는' 고양이와 쥐의 게임(game of cat and mouse)'에 비유했다.

딕 체니 미 부통령은 1월 초 이집트를 방문해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과 수행원 없이 3~4시간 동안 단독 면담했다. 이 만남 직후 미국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의 유대인 정착촌 철수를 관철시키는 데 이집트가 보여줬던 역할에 대한 보상으로 요구했던 수백만 달러의 원조 자금을 줄 수 없다고 거절했고, 양국간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후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1월 17일자 사설에서 이집트가 국가 비상사태를 중단하고, 정당과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며, 언론자유를 보장하고 야당 지도자를 석방하는 등 일련의 민주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파 교수는 친(親)공화당 신문인 〈워싱턴포스트〉의 사설은 부시행정부의 비공식적인 압박이라면서, 미국의 비호 아래 30년 집권을 자랑하는 무바라크정권이 미국으로부터 그처럼 심한 압력을 받는 것은 체니 부통령이 요구했던 무언가를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이에 대해 민주화 요구라는, 미국에 우호적인 독재국가들이 미국의 요구를 듣지 않을 때 꺼내는 '전가의 보도'를 또한번 휘둘렀다는 것이다.

나파 교수는 "부시행정부는 결코 중동에서 민주주의의 확산을 도우려 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독재정권들이 전횡을 저지르도록 놔두면서 그런 독재를 막기 위해 미국이 군사적으로 주둔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식으로 정당화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동 국가들의 국민들은 자기네 나라의 정권이 정치 개혁에 별 관심이 없고 미국 역시 중동 정권들에게 민주화를 강력히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며 "고양이와 쥐의 게임과 유사한 특수 관계라는 맥락에서 민주주의라는 카드를 사용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집트와 미국간의 냉기류는 미국의 민주주의 확산 노력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대(對) 중동 정책이 곤경에 빠졌기 때문에 나오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민주주의의 패러독스**

중동 국가들이 미국이 요구하는 의회민주주의를 확립했을 경우 미국의 중동 정책에 반(反)하는 정권이 들어서거나, 기존의 정권이라도 반미(反美)적인 성향이 강한 민심 때문에 미국의 뜻과는 다른 정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민주주의의 역설'은 민주주의 확산 정책이 말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식 의회민주주의로 미국에 적대적인 정권이 들어선 대표적인 사례는 팔레스타인 총선에서의 하마스 압승이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제도 정치권에 들어간 후에도 이스라엘을 제거하겠다는 헌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하며 경제원조를 중단하겠다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협박에 맞서고 있다.

하마스의 등장은 2003년 부시 대통령 주도로 마련된 이른바 '평화 로드맵'을 보류시켰고 부시 대통령도 자신의 임기 내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의회민주주의로 친미적인 세력이 설 땅을 잃은 또하나의 사례는 이라크다. 지난해 12월 실시된 이라크 총선에서 미국이 밀던 이야드 알라위 전 총리가 이끄는 초정파연합인 이라크국민리스트(INL)는 총 275석 중 25석만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적극 협조했던 쿠르드족의 양대 정당연합도 총 53석을 차지해 제헌의회 의석(75석)보다 22석이나 줄어들었다.

대신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 시절 정권을 잡았던 수니파들은 총 55석을 차지하며 약진했다. 수니파 척결을 위해 미국과 협력했던 시아파 정치블록인 통합이라크연맹(UIA)이 제1당이 되긴 했지만 그들이 미국의 바람대로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시아파들은 기본적으로 이란과 가깝고 반미적인 여론 위에 서있기 때문이다.

또 핵 봉인을 제거하며 미국과 강력히 대치하고 있는 이란은 '민주주의 확산'을 명분으로 한 미국의 강공책에 국민들이 반발한 케이스다. 정권을 잡지는 못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레바논, 이집트 등에서도 지난해부터 이슬람교를 정치의 근본으로 삼는 '이슬람 정치세력'들이 민주적 선거를 통해 약진했다.

***'국민들이 무서워'…미국 뒤통수치는 '친미' 정권**

미국의 비호를 받는 독재정권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요구했던 민주화 조치로 국민들의 눈치를 보게 되어 미국의 뜻과는 다른 정책을 취하게 된 대표적인 경우는 이집트 무바라크 정권이다.

이라크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자신들이 떠맡고 있는 부담을 덜어줄 이라크의 치안 및 안보 확충 사업에 이집트가 힘을 보태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무바라크 정부는 이집트 국민들의 민심과는 정반대인 그 일에 끼어들기를 주저하고 있다. 나파 교수는 이집트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미국의 그같은 요구를 받아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란 핵 문제와 관련해서도 미국은 이집트가 자신의 편에 서 줄 것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집트는 이란의 핵무기 개발 증거가 없고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의 의무조항을 어기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대신 이집트는 이란 핵 문제를 이스라엘의 핵무기를 포함해 중동 지역 전체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마스 문제에 있어서도 이집트는 아랍권과 이스라엘의 갈등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에도 국제사회의 압박이 가해져야 한다는 입장으로 이스라엘을 조건없이 편드는 미국과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나파 교수는 "미국이 중동 국가의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정책을 수행하고 중동 정권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쓰며 그에 복종하라고 강요하지만 대중들의 반응이 무서워 거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라'**

부시는 국정연설에서 이란 국민들을 향해 "스스로의 미래와 자유를 선택할 권리"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면서 "미국은 언젠가 자유롭고 민주적인 이란과 가장 긴밀한 친구가 되기를 바란다"며 이란 내부의 민주화 운동을 기대한다는 뜻을 표명했다.

그러나 미국의 싱크탱크 '뉴 아메리카 파운데이션'의 중동전문가인 아나톨 리벤 수석연구원은 〈인터네셔날 헤럴드 트리뷴〉의 지난 1월 30일자 기고문에서 "만약 미국에서 어떤 정당이 다른 나라의 지원을 받고 그 나라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고 했을 때 미국인들이 과연 그 당을 찍겠냐"며 민주주의의 확산 정책이 왜 공허한 레토릭에 불과한지를 꼬집었다.

그는 "인권을 설교하면서 고문을 일삼고, 무슬림들에게 민주주의를 설교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경멸감을 표하는 부시행정부의 태도는 민주주의의 진정한 확산은 물론 미국의 이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심각한 상처를 준다"며 "부시 행정부의 레토릭과 중동의 현실 사이의 갭은 마치 구(舊)소련을 연상케 한다. 소련에서 그랬듯이 그 갭은 나머지 세계에서 더욱더 뚜렷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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