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패권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미국과 중국 간의 힘겨루기는 이제 더 이상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80년대 이후 고속성장하고 있는 중국경제가 몇십 년이 지나면 미국보다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외국자본의 직접투자를 빨아들이고 전 세계를 중국 상품으로 흘러넘치게 하며 부상하고 있는 중국경제는 세계화의 흐름을 가장 잘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투자의 흐름에는 중국기업 스스로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제 중국자본의 해외투자도 무섭게 늘어나고 있다.
특히 최근 중국기업들은 공격적으로 미국의 기업들을 사들이고 있어서 세계인들의 경탄과 미국인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이미 IBM의 그 유명한 씽크패드 노트북사업은 중국의 레노보(Lenovo)에게 팔려버렸고 최근에는 중국의 전자업체인 하이얼(Haier)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미국의 메이택(Maytag)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중국 국영 해외 석유회사(CNOOC: China National Offshore Oil Company)는 지난 6월 22일 미국의 유노칼(Unocal)에 대한 인수전에서 경쟁사 쉐브론(Chevron)보다 무력 20억 달러 더 많은 185억 달러를 전액 현금으로 제시해서 이 인수협상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용의 공습**
이미 1980년대 잘 나가던 일본자본이 미국의 건물과 기업들을 사들인 바 있다. 당시 록펠러 빌딩이 일본의 거대기업에게 팔려나갔으며 소니는 콜롬비아 영화사를 인수하기도 했다. 미국을 사들이는 일본인을 좀은 나쁘게 묘사했던, '떠오르는 태양'이란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던 것을 기억하시는지. 그러나 일본 자본의 미국 침투가 몇몇 분야에 대해 제한적이었던 데 반해서 중국기업들은 이미 잘 알려진 미국기업들을 인수하고 있다. 80년대 일본의 미국침투가 사무라이들의 국지적인 공습이라면 최근 중국자본의 미국진출은 인해전술을 앞세운 대폭격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차츰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미국인들은 적잖이 당황하고 있는 눈치이며 벌써부터 국내적으로 반발이 터져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엄청난 달러를 쥐고 있는 중국정부의 압도적인 금융지원에 기초한 중국의 미국기업 사들이기는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실제로'이코노미스트'지에 따르면 CNOOC가 유노칼 인수에 필요한 자금 약 200억 달러 중 70억 달러는 중국정부로부터 미국 국채금리보다도 훨씬 낮은 이자율에 지원 받고 60억 달러도 국영은행으로부터 빌리는 돈이다.
게다가 유노칼을 중국의 국영기업이 인수하는 것은 안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도 들린다. 이미 40명이 넘는 미국 국회의원들이 중국의 유노칼 인수에 우려를 표명하는 공개편지에 서명을 했고 미국 석유자본의 근거지 텍사스 출신의 한 공화당 의원은 국가안보를 들먹이며 이 거래를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중국의 관리들은 이에 대해 심히 불편한 눈치이며, 많은 전문가들은 유노칼의 규모나 이미 많은 자원이 현물과 선물 시장에서 활발히 거래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국가안보를 운운하는 것은 오버라고 꼬집고 있다. 하지만 중국 등의 값싼 제품의 수입으로 인한 경쟁 격화 그리고 개도국으로의 공장 이전 등으로 인한 위협효과로 만만치 않게 높아진 미국인들의 세계화에 대한 불만에, 이제 중국자본의 미국기업 사들이기가 추가되고 있는 형국이다.
***세계화와 중국의 전략**
엄청난 달러보유고를 무기로 한 이러한 중국의 대외확장은 우선 급성장과 함께 절대적으로 필요한 에너지자원의 확보를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강대국들이 제국으로 떠오르는 과정에서 세계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충돌은 언제나 있어왔던 일이 아니던가. 중국은 이미 남미나 캐나다의 석유나 금속 등의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한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기업이 발표한 해외 인수ㆍ합병(M&A) 금액은 2003년 약 20억 달러에서 2004년 약 40억 달러로 늘어나더니 급기야 올해는 유노칼 인수전으로 인해 상반기에 벌써 230억 달러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대외진출의 다른 중요한 요인은 역시 경영자원의 확보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아직 세계시장에서 저가품으로 통하는 중국기업들이 단기간에 구축하기 힘든 브랜드 파워와 기술력을 아예 사 버리려는 경영전략을 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외국인직접투자(FDI: Foreign Direct Investment)를 받아들일 때도 해외기업들에게 기술의 이전을 중요한 조건으로 걸고 있다. 과거의 신흥공업국들의 성장방식과는 사뭇 다르게 중국은 압도적인 시장과 엄청난 돈의 힘을 무기로 선진기술을 자기 것으로 장악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중국 자본의 미국 진출은 어쩌면 고삐풀린 세계화가 낳은 필연적인 결과이며 특히 미국의 딜레마와 같은 경제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다. 엄청난 소비증가와 천문학적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며 성장하고 있는 미국경제는 외국으로부터의 막대한 자본유입에 기초하여 지탱되고 있다. 세계에서 직접투자를 가장 많이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며 이러한 자본유입이 없다면 언제 달러가 폭락할지도 모르는 상황인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기업의 미국기업 인수는 미국에 대한 투자의 다변화의 수단이 되고도 있다. 이미 엄청난 중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미국의 국채 매입 등으로 통해 미국으로 환류되었으며 이제 부분적으로 직접투자도 여기에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작년보다 무려 50% 넘게 늘어나 지난달 외환보유고가 7000억 달러를 돌파했다는 것을 볼 때 중국 기업의 대외투자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의 딜레마와 고민**
자, 그렇다면 미국은 어떻게 할 것인가. 타국에게는 언제나 문을 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미국정부가 중국의 투자에 대해 딴지를 건다면 자유시장을 언제나 외치는 스스로의 입장에도 배치되는 자기모순일 것이다. 물론 선진국들의 농업 보호나 이들이 스스로 시장보호에 기초하여 성장해 왔던 것을 생각하면 필요할 때는 언제나 보호를 찾는 이중성이 별 새삼스런 것도 아니긴 하다.
아무튼 많은 학자들은 중국의 대미투자를 규제하는 대신 투자에 대부분 실패했던 일본의 예에서 그랬듯 중국의 왕성한 투자도 위험이 크다고 지적하며 중국 스스로도 더욱 합리적으로 변화하기를 바라고 있다. 미국 국채를 엄청나게 쥐고 있는 중국자본의 유입이 미국경제에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함부로 미국정부가 중국을 때리기도 쉽지 않은 노릇 아닌가. 오히려 베이징의 중국인들은 미국기업을 비싼 값에 사려는 중국에 대해 미국이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정작 보통의 미국인들은, 역시 중국자본이 미국기업을 장악했을 때, 공장 이전 등으로 국내의 고용이나 장기적인 성장이 침해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지우기 어려울 것이다. 외국인직접투자(FDI)의 이런 어두운 면은 남미를 비롯해서 미국 다국적기업의 투자를 받은 많은 개도국들에서 이미 터져나오지 않았던가. 물론 FDI가 국내경제에 결국 도움이 될 거라 믿는 학자들의 눈에는 근거없는 우려인지도 모르지만 경제학의 여러 실증연구들도 FDI의 성장효과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런 걱정도 단지 기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아무튼 최근 중국기업의 미국진출은 소용돌이치는 세계경제에서 강대국간의 갈등의 일면을 잘 보여주며 특히 세계화의 부메랑이 미국으로 도로 날아간 것인 것과도 같은 흥미진진한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가 가져다줄 결과에 대해서 많은 세계인들이 예의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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