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는 2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한일협정의 진상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며 "한일협정과 관련해 부정한 정치자금이 오고갔다면 그 또한 밝혀져야 한다"고, 당내 일각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과거사 문제에 대해 정면대응 방침을 밝혀 주목된다.
***"한국경제성장, 일제피해자들 희생위에 이뤄져"**
김 대표는 "나는 1965년 한일협정과 관련해서 당시 반대투쟁으로 구속된 경험을 갖고 있다"고 언급한 뒤, "한일협정의 진상은 분명히 밝혀져야 하고, 한일협정과 관련한 부정한 정치자금이 오고갔다면 그 또한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일협정 체결전 공화당에 6천6백만달러의 불법 정치자금이 일본측에서 제공됐다는 의혹을 언급한 것으로, 김 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박근혜 대표에게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 대표는 "일제피해자들의 희생위에 한국의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한일협정관련문서는 말해주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한일협정과정에서 문제점으로 드러난 개인청구권 부분에 대해서는 먼저 사실관계를 명확히 규명한 후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보상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이어 "국회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아픈 과거사가 정략적으로 이용돼선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이는 '역사학자가 밝혀야 한다', '청구권 자금을 경제가 너무 어려워 경제발전에 썼다'는 박근혜 대표와의 발언과는 확연히 다른 톤으로 당내에서도 박정희 전대통령의 문제에 예민하게 대응하는 데 대해 쐐기를 박은 것으로 해석돼 논의결과가 주목된다.
***"쟁점법안 냉각기 가져야"**
김 대표는 국보법 등 3대입법 처리에 대해 '일정기간 처리유보'를 제안해 열린우리당과 시각차를 보였다.
김 대표는 "쟁점이 되고 있는 사안과 법안에 대해 일정한 냉각기를 가지는 것도 필요한 과정"이라며 "민생을 살리기보다 국민의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고 정쟁의 불씨가 될지도 모르는 쟁점법안에 대해선 일정기간 그 처리를 유보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신행정수도 문제에 대해 "후속대책은 '수도란 정치행정의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기관의 소재지'라는 헌법재판소 결정문의 취지에 부합해야 한다"며 "정부여당은 국가경쟁력 제고와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한다는 차원에서 국회특위에서 야당과 함께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합의를 강조했다.
김 대표는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개헌문제에 대해서도 "조심스럽지만 당리당략을 떠나 개헌문제에 대한 연구도 진척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정치권, 지지자들로부터 자유로워야"**
김 대표는 "우리 정치가 달라지기 위해선 먼저 정치권이 자기를 지지했던 사람들로부터 자유스러워져야 한다"며 "노무현 대통령은 노사모로부터, 열린우리당은 과격운동권으로부터, 민주노동당은 강경 대기업노조로부터, 한나라당은 시대의 징표를 읽지 못하는 경직된 보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도 비난의 강도를 줄이고 "과반이라는 숫자의 유혹을 이겨낸 여당내 다수의원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며 "노 대통령이 '과반의석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한 말에도 경의를 표한다"고 이례적인 칭찬을 했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는 여당이 급격한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해 왔는데, 국보법 폐지 등을 보면서 17대 국회 들어와 여야간에 역할이 전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할 때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나는 여기서 여야간 상생과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며 "앞으로 여당은 국정의 관리자라는 책임을 더 의식하고 야당은 시대의 변화에 맞춰 자신을 변화시킨다면 여야간 거리는 좁혀지고 합의도 어렵지 않으리라 하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재차 양쪽의 책임을 강조했다.
김 대표는 "나도 한때는 과격한 민주투사, 개혁주의자였다"면서 "그러나 국회는 결코 운동권의 운동장이 될 수 없고 공동선을 위해 특수선을 양보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국회의원은 더 이상 저항세력이 아니라 책임 있는 국정운영의 주체"라며 "국회의원의 품위에 걸맞지 않는 표현, 수구꼴통, 반동, 빨갱이, 용공분자, 스파이, 사기꾼 따위의 말을 국회에서 몰아내는 명예협정을 맺자"고 제안했다.
김 대표는 "이러한 명예협정이 잘 지켜진다면 국회의원의 '명예헌장'을 제정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이제까지의 낡은 정치와 유산을 말끔히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자총액제도 종국적으로 폐지해야"**
김 대표는 "단기간에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묘약은 없다"며 "정부의 단기 부양정책은 두고두고 우리 경제에 멍에가 될 뿐"이라고 지적하며, 감세정책, 규제혁파와 증권집단소송 유예,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 친기업정책을 주장했다.
김 대표는 "법인세는 더 내리고 증권집단소송과 경영권 방어제도도 현실에 맞게 고쳐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며 "기업투자를 가로막는 '출자총액제한제도'도 종국적으로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국민연금의 주식과 부동산 투자 동원은 우리세대가 흥청망청 다 써버리고 후손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기겠다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반드시 막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복지 분야에선 "기부에 인색하다고 손가락질을 하기 전에 여유있는 사람이 기부를 할 수 있도록 제도부터 만들어야 한다"며 "한나라당은 기부모금에 대한 규제위주의 허가제를 신고제로 전환하고, 파격적인 세제혜택을 주는 법안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남북정상회담도 필요"**
김 대표는 남북문제에 있어서 "남북정상회담도 필요하다"면서 "그러나 그것은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안보불안을 해소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돼야 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투명하게 추진할 때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건을 제시했다.
김 대표는 "얼마전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2기 취임사에서 '자유의 확산'과 '폭정의 종식'을 강조했고, 라이스 국무장관은 북한을 '폭정의 거점'으로 지목했다"고 미국내 대북강경분위기를 지적한 뒤, "그 어느 때보다 정부의 성숙한 외교력의 발휘와 긴밀한 한미공조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탈북자 문제에 대해서도 철저히 대처해야 한다"며 "북한을 싫어한다고 모른 척하거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북한 동포를 기아와 공포로부터 구출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이어 "전 세계에 퍼져있는 7백만 해외동포는 우리민족의 소중한 인적, 문화적, 경제적 자산"이라며 "한국 국적을 갖고 해외에 나가있는 해외동포에게 대통령선거 등에서 참정권을 주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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