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나라당의 최대 화두는 단연 '박정희'다.
한일협정과 문세광 사건 등 잇단 과거사 문서 공개에 이어, 박 전대통령의 광화문 현판 교체, 10.26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그때 그사람' 등 박정희 전대통령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련의 사건에 대해 한나라당은 '정치적 의도'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박정희의 딸은 잊어달라"는 주문을 했던 박근혜 대표 역시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 불편한 속내를 드러냈다.
***이계진 "지금의 청와대도 여색 밝히나"**
박 대표는 25일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 대한 질문을 받고 "보고는 받았는데 직접 보지 못해 모르겠다"면서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겠나"며 불편한 속내를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당직에서 자유로운 의원들에게선 더욱 노골적인 불만이 묻어난다.
영화시사회에 참석했던 이계진 의원은 25일 자신의 블로그에 "표현의 자유를 나무랄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 자유를 어느 한쪽, 그것도 약자 죽이기에 쓴다면 그것은 '자유'를 앞세운 슬프고도 잔인한 방종이 아닐까"라고 영화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 의원은 "영화는 앞부분에서 '사실에서 모티브를 얻었으나, 이야기는 픽션'이라는 자막처리까지 하는 성의를 보였는데, 오히려 연출기법은 '이 영화가 사실'이라는 것을 강변하고 있었다"며 "사실로 봐달라는 강한 주문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동시대에 살면서 동시대의 역사를 이렇게 자신있게 단죄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영화의 단상을 덧붙인다"며 "당시의 연예인들은 상당수 청와대를 거쳐 갔을 것이라는 또하나의 놀라운 X파일을 연상했고, 당시의 권력층은 먹고 마시고 여색에만 몰두했다는 사실과, 당시의 군부는 코믹한 병정놀이를 했구나 하는 사실, 그리고 처내려오지 않은 북한에 감사한 마음을 느꼈다"고 영화를 비꼬았다.
이에 이 의원은 "역사는 반복한다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의 청와대 내막도, 지금의 권력층 내부도, 지금의 국방상황도 그렇겠구나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했다"며 "예전에는 비밀의 말을 '일본어'로 지금의 집권층은 '영어'로 말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광화문 현판 교체, "홍위병 흉내를 내는가"**
박정희 전 대통령 필적인 '광화문' 한글 현판을 정조 글씨로 교체하겠다는 문화재청 방침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은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 대표는 이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뭘 어떻게 보냐"며 입을 닫았다. 당내에선 문화재청의 방침이 발표된 직후만 해도 당직자들의 불편한 심기와는 별도로 공식적인 반응은 없었다.
그러나 조선일보 등 일부 보수언론에서 이 문제를 크게 부각시키자 한나라당도 이 문제를 정치쟁점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김무성 사무총장은 26일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문화재청의 광화문 현판 교체의 찬반공방이 문화계로 확산되고 있다"며 "조선닷컴과 동아닷컴 인터넷 여론조사에서 '보존해야 한다'가 80%, 90%대로 나왔다"고 보고했다.
이정현 부대변인은 25일 논평에서 "광화문 글씨를 뜯어내는 것은 파괴 전문 철거반의 '힘자랑'같이 보인다"며 "뜯어내고 부수는 것이 참여정부 문화라면 고속도로 아스팔트도 걷어내고 자갈길 신작로로 복원하지 그런가"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이 부대변인은 "무서운 것인가, 두려운 것인가, 정치보복인가"라며 "문화혁명을 벤치마킹하는 것인지, 홍위병 흉내를 내는지 알 수 없지만 베스트셀러 저자로 존경받아온 문화재청장 혼자서 한 결정은 아닐 것"이라고 현판교체의 의도에 의혹을 제기했다.
***"역사를 쓰레기통으로 만들고 있다"**
이에 2월 임시국회에선 과거사 진상 규명이 여야간 또 다른 불씨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은 연일 현대사의 긍정성을 강조한다.
강재섭 의원은 26일 오전 회의에서 "노 정권은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미명아래 역사 속에서 쓰레기만 찾아내 역사를 쓰레기통으로 만들고 있다"며 "역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된다"고 비난했다. 강 의원은 "한국은 6.25전쟁을 승리하며 결국 공산주의를 막아냈고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뤄낸 자랑스런 역사"라며 "노 정권은 자주역사의 창고를 뒤지는 일을 제쳐놓고 경제발전에 매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영남지역 의원들도 강 의원과 마찬가지 입장이다. 이들 지역에서 '박정희 부정'이란 꿈도 꿀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내 소장파와 비주류 의원들은 이같은 반응 자체가 한나라당으로선 '손해'라는 입장이다.
홍준표 의원은 문서공개 등에 대해선 정치적 의도를 인정했지만, 광화문 현판 교체 같은 '작은' 사건에 대해선 "국보 건물에 한국 현대사에 속하는 대통령 글이 있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정치적으로 나쁘게 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나라당의 집권을 위해선 박 전대통령과의 절연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비록 지난 4월 총선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을 업은 박근혜 대표의 선전으로 참패를 모면할 수 있었으나, 다음 대선에서의 정권 재탈환을 위해선 박정희와의 절연이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현재 한나라당 지도부나 당내 역학관계를 볼 때 한나라당에게 박 전대통령과의 절연이 아직 요원한 과제로 보이는 게 현실이다. 언론, 정계 등 각계 보수세력의 집중지원 사격아래 박정희 전대통령의 그림자가 아직도 한나라당을 무겁게 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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