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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t Away’와 미국형 PPL<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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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t Away’와 미국형 PPL<상>

김명훈의 영화, 영어, 그리고 미국 <4>

한국에서는 최근 들어 이른바 PPL(Product Placement) 마케팅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와 각종 매체에 나오는 PPL 관련 정보를 종합해 보면 PPL이란 선진형 광고기법이며, 이를 제도화된 형태로 빨리 정착시켜야 한다는 분위기인 것 같다. 얼마 전 LG주간경제(lgeri.co.kr)에 실렸던 글의 일부를 발췌해 보자.

"'캐스트 어웨이'에서 페덱스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페덱스는 사장이 영화의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관여할 정도로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총 상영시간 2시간 30분 중 70여분 동안 자사 브랜드를 노출시켰다. 뿐만 아니라 무인도에서 구조된 주인공(페덱스 직원)이 우편물을 잊지 않고 고객에게 배달함으로써 '고객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기업 정신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미국영화의 사례를 순수한 마케팅 전략의 견지에서 벤치마킹 하면서, 마치 'PPL 완전정복'을 지상 과제로 삼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이 글이 물론 상업적 마인드에서 나온 것이기는 하지만, PPL이라는 개념이 도입된 지가 오래되지 않아서인지 이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도 대체로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캐서린 헵번이 담배 피던 시절부터 영화가 상업적 도구로 이용되어온 미국에서는 PPL의 초창기부터 이러한 방식의 마케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적지 않았다. 초창기에 영화 속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상품이 담배와 술이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누가 뭐라 해도 영화를 상품이 아닌 작품으로 보고 싶은 소위 '깨어있는' 무리들이 많기에, 제작자가 돈이나 물품을 제공받고 영화 속에 특정 브랜드를 노출시킨다는 것은 일종의 파우스트적 밀거래라는 비난이 꾸준히 일어 왔다. 특히 상업주의연구센터(Center for the Study of Commercialism) 같은 민간단체들이 이와 관련된 업계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PPL 거래를 했다가는 구설수에 오르기 십상이다.

2000년 'Cast Away'의 개봉 당시 이 영화에 대한 미국의 일부 평론가들과 관객들의 반응을 보아도 이러한 반상업주의적 정서를 읽을 수 있었다. 영화가 수작임을 인정하면서도 PPL의 정도가 지나쳤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왔고, 페덱스(FedEx)사가 영화 제작비 전액을 댔다느니, 페덱스사가 이 영화에 투자를 했다느니 하는 루머들도 무성했다. 후자의 경우 페덱스사의 창업주이자 CEO인 프레드 스미스(영화 후반부에서 카메오 출연)가 이 영화의 2개 제작사중 하나인 이미지 무버스(Image Movers)에 투자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사실로 드러났으나, 페덱스사에서 제작비를 현금으로 제공하지는 않았다.

페덱스사는 대신 'Cast Away' 제작지원팀까지 구성해 자사의 업무에 관한 컨설팅은 물론 비행기·차량·소품·장비·유니폼·엑스트라 등 이 영화의 제작과 관련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 로버트 제메키스는 이 영화 속에 PPL이란 절대로 없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약간 흥분된 어조로 강조하곤 했다.

그의 부연설명 인즉 "예전에 돈을 받고 '그 짓을 해봤는데', 간섭만 받고 골치만 아프더라. 그래서 PPL 같은 거 안 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Cast Away'에서 가짜 운송회사를 만들어서 등장시키는 것은 사실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페덱스사의 로고사용 허락을 요청했던 것이고, 페덱스는 이것을 수락했을 뿐이다? 대충 이런 얘기였다.

물론 제메키스 감독의 이 같은 말은 위선이다. 'Cast Away'에서 페덱스 로고가 나오는 장면들을 촬영할 때 필요했던 장비와 물품만도 수백만 달러어치가 됐을진대, 그 엄청난 물자를 페덱스사로부터 무상으로 지원 받으면서 "PPL이란 절대 없었다"고 말하면 누가 믿겠는가. 하기야 몸 파는 여자들이 가장 순애(純愛)를 갈망한다 했던가.

제메키스가 이같이 위선적인 말을 하는 이유는 그 자신이 PPL 같은 간접 마케팅이 순수한 작품 활동에 해악이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며, 적어도 원칙상으로나마 이러한 상업적 거래에서 자유롭고 싶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헐리우드의 간판 감독 중 하나인 제메키스는 이미 파우스트적 밀거래에 깊숙이 빠져 있다. 그는 무의식중에 스쳐 지나가는 PPL의 귀재이다. 'Cast Away'에서 톰 행크스가 구조된 후 옛 동료가 비행기 안에서 그에게 따라주는 음료수는 다름 아닌 닥터페퍼(Dr. Pepper)다. 제메키스가 감독하고 행크스가 주연을 맡았던 'Forrest Gump'(1994)를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포레스트 검프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수도 닥터페퍼였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닥터페퍼는 Dr Pepper/Seven Up사의 제품이다.)

별 생각 없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장면이지만, 'Cast Away'에서 톰 행크스에게 닥터페퍼를 따라주는 장면은 제메키스-행크스 콤비가 이 영화 이전에 마지막으로 함께 만든 'Forrest Gump'에 대한 재치 있는 오마주이면서 동시에 1급 배우인 행크스를 통한 상품 추천의 연속성을 꾀하는, 고도의 계산이 깔린 PPL인 것이다. 작품의 완벽한 구성 속에 숨어있는 장사꾼의 음모, 이것이 미국형 잠재의식 마케팅의 결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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