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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사태에 발목잡힌 미국의 대테러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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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사태에 발목잡힌 미국의 대테러전쟁

진퇴양난에 빠진 부시 외교정책

아프간전쟁 승리 이후 이라크 공격을 벼르고 있던 부시 미 행정부가 중동사태라는 새로운 암초에 부딪혀 허우적거리고 있다. 이라크 공격을 위한 사전포석으로 시도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평화정착이 오히려 최악의 군사충돌로 이어지면서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의 다음번 공격 목표인 이라크가 석유수출 중지라는 무기로 미국에 대해 공세를 취하는 등 일방주의와 군사주의를 앞세운 부시행정부의 대테러전쟁은 심각한 장애에 부딪혀 있다. 바그다드로 진군하고 싶은 미국의 발목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잡고 있는 형국이다.

***이ㆍ팔 폭력사태 더욱 악화**

지난 9일 요르단강 서안지구 예닌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에서 이스라엘 병사 13명이 팔레스타인 민병대원과 교전중 사망했다. 이는 지난 2000년 9월 팔레스타인의 제2차 인티파다(봉기) 이후 이스라엘군이 입은 최대규모의 인명피해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측은 F-16 전폭기를 동원, 나블루스 지역에 대한 보복 폭격에 나섰다.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지난 8일 중동지역 순방에 나서자 이스라엘측은 칼킬야 등 2개 지역에서의 부분 철군을 발표하는 등 평화제스처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폭력사태는 더욱 악회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파월 장관이 아랍국가들의 압력에 밀려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수반과의 회담 의향을 밝히자 이스라엘의 샤론 총리는 '치명적 실수'라며 강력히 반발하는 등 미국의 새로운 중재노력은 시작부터 비틀거리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점차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있다. 이는 우리의 대테러전 수행 능력에 중대한 장애가 될 것이다. 여간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인들은 갈수록 남아공의 백인우월주의자들을 닮아가고 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자신들보다 급이 낮은 인간으로 보면서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을 서슴없이 죽이고 있다. 이스라엘인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군사행동이 불가피하다고 변명하고 있다. 이는 사실이긴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도가 지나쳤다"

***브레진스키, 부시 외교정책에 우려 표명**

이달 초 미 공영방송 PBS와의 인터뷰에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한 말이다. 브레진스키의 이 말 속에는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군의 무차별 폭력행사가 미국의 세계전략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깊은 우려가 배어 있다.

미국으로서는 이라크 정벌을 위한 사전포석에 불과했던 이스라엘ㆍ팔레스타인간 평화정착 시도가 오히려 전면전 위기로 치달으면서 미국의 지도역량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고조된 데 대한 초조함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미 세계전략의 실패를 목격하고 있다"**

브레진스키는 이 인터뷰 말미에 "우리는 지금 매우 슬픈 드라마(spectacle), 궁극적으로는 미 세계전략의 실패라는 슬픈 드라마를 목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레진스키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 7일자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다시 한번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미국은 세계여론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세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미국의 대외정책은 한편만을 두둔하고 있으며 위선적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테러 희생자들에게는 분명한 동정을 표시하는 반면 (그보다 숫적으로 훨씬 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특히 사담 후세인과 관련한 미국의 계획에 반드시 필요한 국제사회의 지지 확보는 중대한 위험에 처하게 됐다"

브레진스키는 키신저와 함께 미 주류사회의 대표적인 외교통이다. 그런 그가 이처럼 노골적으로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해 불만을 표시한 것은 그만큼 주류사회의 불신과 우려가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마디로 부시 행정부의 맹목적이고 일방적이며 군사주의 우선의 외교노선이 초래하고 있는 역작용에 대한 경고음인 셈이다.

미 대외정책의 최우선과제에 대해 현 부시 행정부와 브레진스키 사이에 이견은 없다. 그것은 전세계적 차원의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것, 아프간 전쟁 승리 이후 대테러전쟁의 다음 목표는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라는 것, 그리고 이라크 공격을 위해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평화정착이 필요하다는 데 대해서 양자의 의견은 일치한다.

문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정착을 유도하는 과정에서 미 정부가 친이스라엘적 태도롤 노골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점이다.

***중동사태 해결 없인 이라크 정벌 불가능**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지난 2000년 9월 팔레스타인의 제2차 인티파다 이후 준전시 상태를 유지해 왔다. 만일 이들간의 갈등을 해소하지 않은 채 이라크 공격에 나섰다간 아랍권 국민들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며 아랍권내 친미정권의 협조를 얻기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ㆍ팔간의 평화정착은 이라크 공격에 앞서 반드시 이뤄내야 할 선결과제였다. 이 때문에 미국은 지난 3월 사우디를 내세워 점령지로부터의 이스라엘군의 철수와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을 골자로 한 중동평화안을 내세우는 한편 딕 체니 부통령과 앤서니 지니 대통령 특사를 파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휴전을 성사시키려 했다.

그러나 휴전협상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의견 차이로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측은 휴전 문제만을 논의하자는 입장인 반면 팔레스타인측은 휴전협상과 함께 포괄적 평화안 마련을 위한 협상이 병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 중재에 의한 휴전협상은 결렬됐고 이스라엘은 지난 달 29일을 기해 팔레스타인 행정수도 라말라에 대한 대대적인 군사공격을 시작했으며 이후 베들레헴, 나블루스, 예닌 등 팔레스타인 6개 거점 도시로 공격범위를 넓혀 나갔다. 군사공격을 단행한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의 속셈은 차제에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팔레스타인의 군사능력을 무력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군사공격이 시작된 지 11일이 지난 지난 8일 현재 이스라엘의 군사공격으로 팔레스타인인 2백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1천5백명이 부상했다. 이스라엘은 또 테러 용의자라는 이유로 팔레스타인인 1천6백여명을 구금하고 있으며 팔레스타인측의 무기 2천여점을 압수했다. 반면 이스라엘측 사망자는 13명에 불과했다.

특히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군.정보기관 요인들에 대해서까지 무차별 공격을 감행, PA 무력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전까지 이스라엘은 PA 요인들에 대해서는 공격을 삼가 왔다.

***미, 친이스라엘 입장 여전**

이 과정에서 부시 미 대통령은 사태 악화의 책임을 아라파트에 돌린 반면 샤론 총리의 군사행동은 정당한 자위권의 발동이라고 두둔하면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었다. 이.팔간의 공정한 중재자라는 당초 입장을 내팽개친 것이다. 이스라엘의 군사공격이 당초 라말라에서 6개 도시로 확대된 데에는 이같은 부시 대통령의 친이스라엘적 발언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사태가 악화되면서 미국의 편파적 태도에 대한 아랍권과 유럽 등의 비판이 고조되자 부시 대통령은 지난 4일에야 이스라엘에 대해 철군을 요구하고 5일에는 파월 국무장관의 중동 파견을 결정했다.

하지만 샤론은 이같은 미국측의 요구를 못 들은 체 군사작전을 계속 강행해 나갔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 8일 "'더 이상의 지체없이' 철군할 것을 기대한다"고 재차 요구한 후에야 마지못해 칼킬야, 툴카렘 등 2개 도시에서 철군할 것임을 발표했다.

지니 미 특사와 샤론 총리와의 2시간 회담 끝에 나온 이 부분철군 발표와 관련, 이스라엘은 미국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당초의 군사목표가 완수됐기 때문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스라엘측은 라말라, 베들레헴, 나블루스, 예닌 등에 대한 군사작전은 목표가 완수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모파즈 이스라엘 군 참모총장은 각 지역의 테러분자를 뿌리뽑고 이스라엘에 대한 팔레스타인측의 도발을 막기 위해 이들 지역 주변에 완충지역을 설정할 것이라면서 이같은 작전이 완료되려면 앞으로도 8주일 가량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이스라엘군의 입장은 오는 11일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파월 미 국무장관과 샤론 총리와의 회담에서 어느 정도 조정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이번 과정을 통해 중재자로서의 미국의 능력과 권위는 큰 손상을 입은 셈이다.

***아랍권, 미국의 중립성에 강한 의혹**

파월 장관의 중재 노력에 대해서도 아랍권은 '미국이 여전히 이스라엘편을 들어주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이스라엘의 군사행동 저지가 급선무인데 한가하게 다른 지역을 먼저 방문하느냐는 것이다.

지난 8일 첫 방문국인 모로코에서 파월 장관은 모하메드 국왕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먼저 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압둘라 빈 압델 아지즈 사우디 왕세자한테는 미국의 명성과 신뢰성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는 경고를 들었다. 또 지난 9일 호스티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파월 장관에게 아라파트 수반이 팔레스타인의 유일한 지도자라는 점을 강조하며 그를 만나 사태를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팔레스타인도 강경입장 고수**

한편 이스라엘의 강경책에 대해 팔레스타인측도 크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샤론 총리가 지난 8일 의회 연설을 통해 "평화는 우리가 책임있는 팔레스타인 지도부를 발견한 이후에만 이룰 수 있다"고 말한 데 대해 더 이상의 평화협상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사론 총리의 이 발언은 아라파트 수반의 축출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야세르 아베드 라보 대변인은 이에 대해 "샤론은 자신을 위해 봉사할 팔레스타인 지도부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샤론은 파월 국무장관이 도착하기도 전에 평화협상의 가능성을 파괴해 버린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아라파트의 서명과 함께 발표된 이 성명에서 팔레스타인 지도부는 "이스라엘은 (이번 군사행동으로) 양측간에 합의된 평화협정의 종식을 사실상 선언했다"고 규정했다.

팔레스타인측은 또 이 성명에서 이스라엘측의 완충지대 설정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도시 및 난민캠프를 거대한 감옥으로 만들고 새로운 인종차별제도(아파르트헤이트)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라고 비난했다.

라말라 자치정부 사무실에 연금상태로 있는 아라파트 수반은 순교자를 자처하며 결사항전의 태도를 보이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지지도를 누리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상태에서 파월 국무장관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를 이룰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할 수 있다.

***이라크 석유금수조치로 미국에 공세**

게다가 이같은 틈을 노려 미국의 다음 공격목표인 이라크는 지난 8일 향후 1개월간 석유 전면 수출 중단을 발표했다. 가뜩이나 팔레스타인 사태의 악화로 국제 석유가격이 상승하고 마당에 이라크의 이같은 발표로 유가는 급상승 했다. 또 이란이나 리비아 등 다른 산유국이 금수 대열에 동참할 경우 제3차 석유쇼크의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알리 로드리게즈 사무총장은 이라크의 발표 직후, 이라크의 석유 금수에 이어 현재 파업사태를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석유수출 감소가 현실화될 경우 석유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베네수엘라 석유노동자들은 9일 24시간 시한부 총파업에 들어갔다. 이란은 적절한 시기에 석유금수를 단행할 것이라며 이라크의 입장에 동조하고 나섰다.

유가의 급격한 상승은 현재 불황으로부터의 탈출 국면에 있는 미국경제에 중대한 타격을 입힐 수도 있다.

미국의 이같은 곤경은 30여년에 걸친 이스라엘에 대한 일방적 편애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아랍권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양립불가능한 목표를 추구한 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과연 부시 행정부가 이러한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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