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시 대통령이 발표한 내용은 '신(新) 파라오'라는 비난을 들을 정도로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호스니 무바라크를 축출한 시위대 희생자에 대한 재판 및 보상 문제도 언급이 됐지만, 대통령의 명령에 대해 아무도 이의제기 할 수 없다고 못 박았고 무르시 자신이 속한 무슬림형제단이 주도하는 새 헌법 제정위원회 역시 어떤 사법주체에 의해서도 해산될 수 없다고 선언해 법조인들의 반발까지 사고 있는 상황이다.
이집트 언론인 헤샴 살람은 24일 이집트 영자지 <이집트 인디펜던트>에 올린 칼럼(☞원문 보기)에서 민주화 혁명 이후 이집트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살람은 무르시의 최근 지침이 민주화 시위대를 폭력 진압했던 군과 치안부대의 개혁 조치는 언급하지 않으면서 무바라크 시대보다 더 심각한 권한 강화를 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집트 내부는 이슬람 근본주의와 세속주의에 대한 지지가 대등한 상황이지만 무르시는 사회 통합보다는 자기 진영의 이익을 위한 행보를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살람이 쓴 칼럼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23일(현지시간) 이집트 카이로에서 연설하고 있는 모하메드 무흐시 이집트 대통령. ⓒAP=연합뉴스 |
이집트 혁명의 국유화
많은 논란을 빚고 있는 모하메드 무르시 대통령의 최근 결정 중에서 대통령의 권한과 헌법제정위원회의 활동이 법적 이의제기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선언한 대목은 이집트의 정치가 오늘날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언뜻 보기엔 이번 지침이 (현재 유족들이 받은 연금을 올리는 등) 민주화 혁명 희생자들을 위한 약속을 지키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더 면밀히 살피면 이번 지침은 명백하게 혁명의 정통성을 도용하고 이를 무슬림형제단이 장악한 대통령직을 강화하는 데 이용할 목적을 띠고 있다. 지난 월요일에 시작된 모하메드 마흐무드 거리의 충돌 및 민주화 시위대들을 탄압한 이들을 정부가 처벌하지 않는다는 광범위한 분노에 대응 격으로 나온 이번 지침은 중앙 권력을 더 강화하고 대통령 권한에 대한 어떤 간섭도 제거하려는 시도로 귀결된다.
이번 지침은 대통령의 결정이 최종 결정이고 사법당국의 검토 대상도 아니라고 규정한다. 이는 무바라크식의 대통령직으로 회귀하겠다는 전조이며, 더 나아가 무바라크 정권이 자신들의 권위주의적 방식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했던 법적 허울마저도 벗어던지겠다는 의미다.
무르시는 또 모하메드 마흐무드 거리의 시위대가 무력진압 용의자들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재판이 이뤄지지 않는 데 대해 분출하는 분노를 검찰총장 대체 결정의 정당화에 이용하고 있다. 18일간의 봉기 이후로 잘못을 저지른 전·현직 안보 분야 관리들에게 정의를 구현하는 데 실패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본질적으로 군부와 치안당국에 대한 유의미한 개혁이 없다는 점이다. 무르시의 이번 결정이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다.
이러한 세력들이 무르시 밑에서도 개혁 대상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들이 전·현직 관료들에 대한 조사를 계속해서 방해했다는 건 놀라운 게 아니다. 그들이 집요하게 평화 시위대들에 대한 끔직한 폭력을 가했다는 것이 최근 사례에서도 증명된다는 것 역시 놀랍지 않다. 치안당국, 그리고 이들과 이집트 사회 사이의 관계를 바로잡기 위한 법적·제도적 개혁이 부재함을 간과함으로써 무르시는 가까운 미래에 해결되지 않은 핵심 문제를 남겨놓았다.
이러한 결정이 나온 타이밍도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흥미롭다. 먼저 검찰총장 교체 결정은 무슬림형제단이 자신들의 법적 지위에 대한 의문이 밀려오는 데 대한 공포를 나타낸다. 무슬림형제단에 정치적으로 충성하지 않은 검찰총장은 현재·미래에 무슬림형제단의 적법성에 대한 이의제기를 위협적으로 만든다. 두 번째, 대통령 권한의 공고화는 국제통화기금(IMF)과 48억 달러 규모의 차입에 합의한 이집트 정부가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고 제왕적 대통령이 최소한의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는 반대파들을 양산할 경제자유화 중단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셋째, 현재 헌법제정위원회나 슈라위원회(이집트 상원의회)가 위헌으로 판결날 수 있는 골치 아픈 이의제기를 법원이 검토하고 있는 시기에 이 기관들을 해산 불가한 조직으로 결정 내렸다. 넷째, 대통령은 자신이 무바라크와 같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에 효과적인 중재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미국 정부가 이번 조치에 대해 비민주적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출하길 주저할 것이라고 느낀 뒤 선언문을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으로써 자국 내 반대 여론에 대처하는 데 재량권을 획득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선언에 대해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내용이 무엇을 포함하고 있으냐가 아니라 무엇이 빠져 있느냐에 있다.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무자비함, 무고한 어린이 수십 명이 사망한 아시우트의 스쿨버스 충돌 사고에 대한 분노, 그리고 새 헌법 조항에 격렬히 반대하던 비 이슬람 인사들이 헌법제정위원회에서 대거 제외된 점 등을 고려해 일각에서는 무르시가 이번에 꽤 다른 내용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집트 총리) 히샴 칸딜 내각의 교체, 내무부 및 치안기관의 개혁, 헌법제정위원회 해산 및 보다 신뢰성과 대표성을 갖춘 헌법제정 기관 구성 등 말이다. 대신에 무르시는 자신의 결정이 최우선이며, 무슬림형제단이 장악한 헌법제정위원회는 해산될 수 없고, 자신의 정부와 무바라크 시대로부터 이어진 억압적 치안기관은 손댈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무르시는 명확하게 한 쪽 편을 들었고, 혁명의 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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