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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란?

[이근식의 '상생적 자유주의']<6>

지난 세 번째 칼럼에서 말한 것처럼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란 개인의 사회적 자유를 의미한다. 이런 개인의 사회적 자유를 가장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보는 사회사상을 자유주의(liberalism)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히 말하기에는 자유주의의 의미가 매우 풍부하고 복잡하다.

이 때문에 외국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자유주의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자유주의의 본 고장인 서양에서도 보수주의자와 급진개혁주의자가 모두 자유주의자임를 자처한다. 공산주의자들도 자유를 달라고 외친다. 마르크스도 자신이 바라는 이상사회를 '자유의 왕국'이라고 표현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혼란이 심하여 자유주의를 진보적 인사들은 부르주아지들의 집단이기주의로 해석하는 반면에 보수 사람들은 자신들의 반공(反共)주의를 자유주의 혹은 자유민주주의라고 우기기도 한다.

이처럼 자유주의에 대한 해석이 구구한 것은 자유주의 자체가 시대, 사회와 집단에 따라서 각기 달리 사용되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혼란을 피하고 자유주의의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자유주의가 등장하고 발전해온 역사적 과정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다른 사회이념과 마찬가지로 자유주의도 사람의 머리 속에서 관념적으로 발전되어 온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역사과정 속에서 형성되어 왔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르네상스, 종교개혁 및 시민혁명이라는 서양 근대 역사의 구체적 전개 속에서 형성되어 왔다. 14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17세기 초반까지 전 유럽에 퍼진 르네상스에서 인본주의, 현세주의, 개인주의, 인간이 가진 이성의 자각, 이성을 이용한 과학의 발견과 합리적 사고방식이라는 자유주의의 요소들이 생성되었다. 천년에 가까운 오랜 중세동안 서양 사람들은 가톨릭의 종교적 세계관에 사로잡혀서 신과 내세만을 추구하고 인간과 현세의 가치를 부정하여 왔었다. 이를 벗어나게 한 것이 르네상스였다. 르네상스를 통하여 서양사람들은 중세의 기독교 세계관에서 벗어나서 인간과 현세를 긍정하고 인간이 가진 이성의 존재와 힘을 인식하고 이를 이용하여 과학과 합리적인 사고를 시작하게 되었다.

16세기에서 17세기 중반까지의 종교개혁과 종교전쟁을 통해서는 종교와 사상 및 양심의 자유, 관용이라는 자유주의 요소가 형성되었다. 종교개혁을 시작하였던 루터와 칼뱅 모두 종교적 독선의 화신 같은 사람이어서 신앙의 자유를 전연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종교개혁운동 이후 약 백년간 계속된 기나긴 종교전쟁을 통하여 신앙은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양쪽 모두가 인정하게 되어 종교(신앙)의 자유와 관용이 서양사회에 정착하게 되었다. 신앙의 자유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로 쉽게 확대되었다. 기나긴 종교전쟁을 통해 죽음으로도 인간의 양심을 강요할 수 없으므로 서로가 다른 사람의 신앙과 사상을 인정하고 공존할 수 밖에 없다는 관용(tolerance)의 정신이 서양문명에 정착되게 되었다. 사상의 자유와 관용을 확립시켰다는 점에서 종교개혁을 서양 자유주의의 시발점으로 보기도 한다.

절대군주제와 신분차별제도를 무너뜨린 시민혁명(16세기 후반의 네덜란드, 17세기 중후반의 영국, 18세기 말의 프랑스와 미국독립전쟁)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인격과 기본권을 갖고 있다는 만인평등사상, 폭정에 대한 저항권, 사유재산권을 포함한 개인의 기본인권사상, 의회민주주의 그리고 왕도 법의 지배를 받아야한다는 법치주의라는 근대 자유주의의 사상과 사회제도가 확립되었다. 절대왕정과 신분제도에 대항하여 싸웠던 시민혁명을 통하여 만인평등사상, 폭정에 대한 저항권, 정치적 사상과 행동의 자유권, 사유재산권을 비롯한 개인의 기본권 등의 자유주의의 핵심적 내용이 정착하게 되고 의회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자유주의의 사회제도가 확립되었다. 시민혁명을 통하여 자유주의의 내용과 사회제도가 확립되었다.

마르크스와 같은 사회주의자나, 헤겔과 같은 국가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을 제외하고, 베이컨(F. Bacon), 홉스(T. Hobbes), 로크(J. Locke), 흄(D. Hume), 벤담(J. Bentham), 스미스(A. Smith), 밀(J. S. Mill), 몽테스큐(C. L. Montesquieu), 볼테르(F. M. A. Voltaire), 루쏘(J. J. Rousseau), 칸트(I. Kant), 베버(M. Weber) 등 근대 서양의 대표적 사상가들 대부분이 자유주의자에 포함된다. 이들의 다양한 주장이나 이론을 모두 담을 수 있도록 자유주의를 정의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런 곤란을 피하기 위해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하면, 자유주의는, 모든 개인은 절대적으로 소중하며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근대시민사상이며, 비인간적이며 차별적이었던 절대군주제와 전통적 신분사회를 무너뜨리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축으로 하는 근대서양의 평등한 시민사회를 건설한 주역이었던 부르주아의 건강한 시민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애덤 스미스와 마르크스가 같이 지적한 바와 같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의 모든 부문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변화하지만 이중에서도 경제의 변화는 다른 모든 부문의 변화를 이끄는 기초가 된다. 서양에서 자본주의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다고 딱 잘라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12-13세기에 당시 지중해 무역을 독점하여 부를 쌓던 이태리 도시국가들에서 자본주의가 최초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점차 유럽에 퍼져서 대략 15-16세기에는 서유럽 대부분이 자본주의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본 르네상스, 종교개혁 및 시민혁명은 모두 이러한 자본주의의 발전을 토대로 발생하였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서양사회를 모든 면에서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생활단위가 장원(莊園, manor)이라는 공동체에서 상공업을 운영하는 개인으로 변함에 따라서,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도 중세의 공동체주의에서 개인주의라는 근대적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다. 또한 중세의 지주 귀족계급이 점차 힘을 잃어간 반면, 평민인 중소상공인(부르주아)이라는 새로운 계층이 부를 축적하여 새로운 사회주도세력으로 등장하여 사회변화에 앞장서게 되었다. 이 부르주아계급이 서양 근대사회발전의 주역인 시민계급이다.

서양에서 대략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는 근대국가 건설 단계(nation building stage)였다. 서로마제국이 476년에 멸망한 이후 천년의 중세 서양에는 수 백 명의 영주들이 독자적으로 자신의 지역을 다스렸기 때문에 통일된 국가가 없었다. 이를 정리하고 근대국가를 건설한 것이 절대군주였다. 유럽에서 절대군주들이 나타나서 분할되어 있던 지역들을 통일하고 근대국가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5세기경부터라고 볼 수 있다. 절대군주들은 안으로는 지방영주들을 정복하여 분할되어 있던 국토를 통일하고, 조세제도, 행정제도, 법률 등의 근대 제도를 정비하여 근대국가를 건설하고, 밖으로는 외국과 영토전쟁을 계속하였다. 이 시기 유럽국가들의 부국강병책 내지 경제적 민족주의의 경제정책을 중상주의(mercantilism)라고 부른다.

부르주아들은 절대군주제가 처음 만들어지던 중상주의 단계에서는 절대군주에 협력하였다. 절대군주들이 영토와 시장을 통일하고 제도를 정비하여 상인들로 하여금 지방영주들의 수탈과 복잡한 규제를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 이들에게 유리하였기 때문이다. 절대군주들도 기존 귀족들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부르주아들의 협력이 필요하였다. 절대군주들은 부르주아 출신들을 관료로 등용하였으며, 귀족이나 교회로부터 뺏은 토지를 부르주아들에게 판매하였다. 이와 같이, 절대군주제의 형성은 절대군주와 부르주아의 연합세력이 기존의 귀족세력을 축출하는 과정이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파악하면 자유주의의 핵심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부르주아들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을 수탈하던 절대군주제와 신분차별제도를 반대하였고, 절대군주의 횡포를 막기 위하여 헌법과 법으로 국가권력을 명확히 제한하는 입헌주의 내지 법치주의를 주장하였고, 나아가서는 자신들이 직접 국정에 참여하기 위하여 민주주의를 주장하였으며, 자신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위하여 정부의 경제규제를 철폐하는 자유시장경제를 주장하였다. 또한 과거 중세시대의 공동체 생활과 달리 이들의 생업은 각 개인이 자기책임 하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상공업이었기 때문에 공동체보다 개인의 권리와 책임을 우선시하는 개인주의를 주장하였으며, 개인의 생명과 재산, 자유 등 자신들의 모든 정당한 사회적 권리를 자유(liberty 혹은 freedom)라는 한 마디로 요약하였다. 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자유는 자유만이 아니라, 생명과 재산의 권리를 모두 포함하는 개인의 기본인권 전체이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파악하면 자유주의의 핵심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부르주아들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들을 수탈하던 절대군주제와 신분차별제도를 반대하였고, 절대군주의 횡포를 막기 위하여 헌법과 법으로 국가권력을 명확히 제한하는 입헌주의 내지 법치주의를 주장하였으며, 나아가서는 자신들이 직접 국정에 참여하기 위하여 민주주의를 주장하였고, 자신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위하여 정부의 경제규제를 철폐하는 자유시장경제를 주장하였다. 또한 과거 중세시대의 공동체 생활과 달리 이들의 생업은 각 개인이 자기책임 하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상공업이었기 때문에 공동체보다 개인의 권리와 책임을 우선시하는 개인주의를 주장하였으며, 개인의 생명과 재산, 자유 등 자신들의 모든 정당한 사회적 권리를 자유(liberty 혹은 freedom)라는 한 마디로 요약하였다. 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자유는 자유만이 아니라, 생명과 재산의 권리를 모두 포함하는 개인의 기본인권 전체이다.

이상과 같은 원래의 부르주아의 근대시민정신인 자유주의가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이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16세기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서 구미에서 민주주의, 법치주의, 자유시장경제와 같은 근대적 사회질서를 건설하는 데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이런 점에서 자유주의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현대의 후진국 내지 중진국이 근대적인 사회질서를 건설하는 데에 크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고방식이다. 차별적인 신분제도, 강압정치, 정경유착과 관치경제 등과 같은 후진성을 탈피하여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및 자유시장경제라는 근대적 사회질서를 건설하는 것이 오늘날 이들 국가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자유주의는 부르주아의 세계관이라는 계급적 한계를 갖고 있다. 자유방임의 시장경제와 그로부터 발생하는 빈부 양극화를 당연시하는 것이 그것이다. 자유주의를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로 구분하면 자유주의의 진보성과 보수성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고찰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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