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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있는 제프리 삭스냐, 백악관 등에 업은 김용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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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있는 제프리 삭스냐, 백악관 등에 업은 김용이냐

[해외시각] 세계은행 총재를 둘러싼 진보 진영의 전례없는 논쟁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 23일 세계은행의 총재로 한국계 이민 1.5세대인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지명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 선택은 이중의 효과를 봤다. 우선 세계은행 출범 이후 미국 출신 백인이 총재직을 독식한데 대해 불만을 드러내던 중국과 브라질 등 신흥국들에게 '정치적 때가 덜 묻은 아시아계'라는 명분을 세울 수 있었다. 한편 세계은행이 신자유주의를 퍼트리는데 일조했다고 비난하는 진보 진영에도 빈곤국 질병퇴치 운동의 권위자를 내세울 수 있었다.

그러자 진보 진영의 지지를 바탕으로 총재직 출마 선언을 했던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도 김 총장에 대한 '100% 지지' 의사를 밝히며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전개를 보면 '김용 총재'가 오바마 대통령과 진보 진영, 개발도상국 모두 '윈-윈'하는 카드로 비춰질 수 있다. 세계은행 총재를 노리는 또 다른 후보들이 개도국 출신임을 봐도 세계은행의 모습이 과거와는 다를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FPIF)의 선임 연구원 마크 엥글러는 28일(현지시간) 미 정치·문화전문지 <디센트>에 쓴 글에서 세계은행 총재직을 놓고 전례 없이 벌어진 논쟁 과정을 정리했다.

엥글러는 제프리 삭스가 2000년대 들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기 전에 한때 개도국들에 신자유주의적 처방을 내리는 경제학자였다는 이유를 들어 '삭스 총재론'에 부정적이었던 인물이다. 엥글러는 그러나 김 총장에 대해서는 과거 저술에서 성장일변도 경제정책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는 이유로 세계은행을 개도국 지원에 보다 힘쓰는 기관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인물이라는 기대를 드러냈다.

반면 미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공동소장이자 <가디언>에 정기 칼럼을 연재하는 마크 와이스브로는 여전히 제프리 삭스를 지지한다. 그는 신임 세계은행 총재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히는 것만큼나 세계은행 내에서 개도국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미국·유럽 주도의 의사 결정 과정을 바꿀 수 있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세계은행의 '1대 주주'인 미 정부가 추천한 김 총장보다는 제프리 삭스에 더 무게가 쏠린다는 것이다.

당선이 확실시되는 김용 총장에 대해 진보 진영의 경제전문가들이 이처럼 기대와 우려를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김 총장은 자신에게 제기된 반신자유주의 논란에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2000년 자신이 썼던 <성장에 목숨 걸기: 글로벌 불평등과 빈곤층의 보건>(Dying for Growth: Global Inequality and the Health of the Poor)에서 성장 위주 정책이 수백만 명의 삶을 악화시켰다고 쓴데 대해 29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를 통해 "경제 성장은 의료, 교육, 공공재 투자를 위한 재원 마련에 있어 필수"라고 해명했다. 엥글러의 글은 이같은 김 총장의 공식 대응이 나오기 이전에 쓰여졌다.

다음은 엥글러가 쓴 28일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원문 보기)

▲ 23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세계은행 신임 총재 후보로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왼쪽 두 번째)을 지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친구'도, 전범도 아닌 세계은행 총재?

오바마 대통령은 의사이자 다트머스대 총장인 김용을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지명했다. 이 결정은 기업의 글로벌화를 오랫동안 비판하던 많은 이들로부터 동의를 얻었다. 이 결정은 '누가 세계은행의 차기 총재가 되어야 하나'에 대한 전례 없는 논쟁 끝에 나왔다.

전통적으로 세계은행 총재는 백악관이 지명한 정치적 색깔을 띤 인사가 맡아왔다. 대신 유럽은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유럽 출신 인사로 채우는 전략을 따랐다. 미국과 유럽을 제외한 나라들에 대해 말하자면, 음, IMF와 세계은행은 전통적으로 남반구에 속한 국가들이 생각하는 의제에 많은 비중을 두지 않았다.

올해는 상황이 약간 다르다. 먼저 후보 지명 절차에 개입해 '친구'에게 왕관을 씌워주려는 걸 막으려는 단합되고 효과적인 노력이 있었다. 결국 많은 개발도상국과 진보 인사들은 최근 수년간 빈곤퇴치의 투사로 자신을 재포장한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를 후보로 지지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삭스를 후보로 미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삭스가 지금은 부패퇴치 활동을 강조하려고 노력하지만 1980~90년대에는 볼리비아, 폴란드, 러시아 등에서 '경제 안정화' 프로그램에 자문을 하던 신자유주의자로 유명했다. 이러한 과거로 인해 그는 나오미 클라인의 저서 <쇼크 독트린>에서 주요 악당의 위치에 오른다.

삭스는 결코 사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필자와 같이 라틴아메리카 정치를 연구하는 많은 이들은 볼리비아에서 그의 역할이 큰 문제를 낳았다는데 대해 그가 후회하지 않았다는 걸 안다. 그러나 <네이션>을 통해 벌어진 삭스에 대한 논쟁에서 라틴아메리카 신좌파(New Left)의 노골적인 옹호자이자 진보 경제학자인 마크 와이스브로는 삭스를 방어하는 글을 썼다.

"삭스에겐 세계은행의 개혁에 대한 의제가 있다. 그 의제는 전염병의 치료와 예방, 소농과 교육, 1차 진료, 화석연료에 반하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지를 포함한다. 그는 부채 탕감(debt cancellation)을 위해 싸워왔다. 그는 또 세계은행이 1차 진료 과정에서 환자에게 비용을 부과하지 않게 하고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한 '국제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기금'(GFFATM)을 지원하며, 필수 약제품에 대한 접근성을 늘리기 위해서도 싸워왔다. 전쟁에 앞서서 반대하고 미 정부가 힘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다른 일들에 대해서도 저항했다."

와이스브로를 비롯한 이들은 또 전략적 차원에서 몇 가지 주장을 폈다. 먼저 삭스가 김용 카드가 나오기 전 후보로 거론되던 래리 서머스보다는 훨씬 나은 인물이라고 주장했다.(이 점에 대해서는 거의 논박할 수가 없다)

둘째로 그들은 대항마를 내세우는 것이 보통 폐쇄적으로 진행되어 오던 후보 선정 절차를 개방시키고, 미래에 보다 진보적인 성향의 후보가 나올 수 있는 길을 트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삭스 총재론'이 호응을 얻자 남반구 출신 후보 2명이 경쟁에 끼어들었다. 전 콜롬비아 재무장관이자 유엔(UN)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와 나이지리아의 재무장관이자 세계은행에서 일했던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다.

결국 오바마는 서머스를 지명하지 않았다. 그리고 김용은 세계은행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현실적으로 바라는 어떤 이보다도 나은 선택이 될 것 같다. 김용의 진보적 성향에 주목하게 만드는 측면은 폴 파머 하버드대 의대 교수와 함께 세운 의료봉사기구 파트너스인헬스(PIH)의 상임이사로 재직한 경험에서 나온다. 트레이시 키더가 파머에 대해 쓴 책 <작은 변화를 위한 아름다운 선택>(Mountains Beyond Mountains)을 아직 사지 못했다면, 더 이상 늦출 필요가 없다. 세인들의 말에 따르면 파머의 업적은 매우 뛰어나고, 해방신학에 기초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미국식 개발모델) '워싱턴 콘센서스'에 대항해 세계 빈곤층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김용은 파머보다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세계은행 총재직에 대해 전임자들과 매우 다른 관점을 보여줄 것이라는 좋은 신호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현재 우파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는 그의 2000년 책 <성장에 목숨 걸기>에서 "국내총생산(GDP)과 기업 이익의 성장을 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수백만 명의 삶을 악화시킨다"라고 쓴 것이다.

한편으로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쓴 것처럼 "다트머스대에서 보낸 3년 동안 그는 고등교육계의 폴 라이언(미 공화당의 차세대 정치인)이라는 점을 입증했다. 그는 전임자로부터 넘겨받은 대학의 재정문제를 교수들의 반대를 극복하고 예산 삭감을 통해 단호히 해결했다."

필자는 마크 와이스브로에게 전화를 걸어 김용의 지명 건과 삭스를 둘러싼 논쟁, 그리고 신임 세계은행 총재가 만들어낼 차이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의 대화 일부를 발췌해 싣는다.

엥글러 : 김용이 지명되어 좋은가?

와이스브로 : 응, 대단하다고 생각해. 보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총재가 된다는 건 완전히 다른 거야. 역대 11명의 총재를 봐. 모두 은행가들이었고, 전범이었어. 내 식당의 운영을 맡기고픈 유형의 사람들이 아니지.

엥글러 : 전범이라니, 누굴…

와이스브로 : (로버트) 맥나마라랑 (폴) 울포위츠. 울포위츠가 기술적으로 전범인지 아닌지는 몰라. 하지만 그는 이라크 전쟁의 설계자 중 하나였어. 상상이 가? 좌파들이 삭스를 놓고 불평할 때 난 이런 것 때문에 짜증이 났어.

엥글러 : 나도 삭스가 별로라고 한 사람 중 하난데. 맞아, 그는 래리 서머스만큼 최악은 아냐. 하지만 난 네가 삭스를 지지하는 걸 보고 놀랐어.

와이스브로 : 난 세계은행이 없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존중해. 그런 주장을 펼 수도 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삭스와 오바마가 지명하는 그 누군가와의 차이는 (브라질의 전 대통령) 룰라와 전임자 사이의 차이보다 더 클 거야. 삭스와 서머스 사이에는 정말 엄청난 차이가 있어. 그게 내 판단 기준이야.

엥글러 : 특히 너처럼 라틴아메리카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겐 그렇겠지. 난 삭스가 그의 과거를 뉘우치지 않는게 부적절한 것 같아.

와이스브로 : 난 그의 본성이 무엇인지는 하나도 신경이 안 쓰여. 그건 교황 같은 사람들이나 판단할 문제야. 그건 내 역할이 아니지.

엥글러 : 세계은행 신임 총재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만들어 낼 것 같은데?

와이스브로 : 흥미로운 질문이다. 우리는 답을 몰라. (미국의) '친구' 말고는 총재직을 해본 사람이 없잖아. 우린 김용이 바꿀 수 있는 것을 알게 될 거야. 그는 대중들을 상대로 영향력이 있어. 삭스가 더 많이 갖고 있다고 봐. 그리고 그런 영향력 때문에 그가 잘리기는 힘들거야. 난 김용이 (변화를 위해) 그런 영향력을 발휘할지는 모르겠어.

엥글러 : 보다 독립적인 세계은행 총재가 그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안이 뭐가 있지?

와이스브로 : 세계은행은 '세계전망보고서'(GEP)를 발간하고 또 세계 경제에 대한 코멘트를 해. 그래서 세계은행 총재가 G20가 다음 번 세계 경제위기를 어떻게 다룰지, 유로존 위기는 어떻게 할지에 대해 큰 의문을 던질 수 있어. 왜냐면 그런 것들이 개도국들에 영향을 미치니까. 그들은 세계은행 자체의 지출 우선순위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어.

하지만 김용이 무엇인가 바꾸길 원한다면 그는 싸워야만 할 거야. 그는 일을 처리하기 위해 세계은행 이사회를 넘어서야 할 거야. 그리고 그 이사회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게 장악되어 있지.

그건 투표에 대한 문제 뿐만은 아니야. 개도국들이 싸우지 못하는 건 사실이야. 그들은 단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하는 방식으로 IMF와 세계은행에서 싸우지 못할 뿐이야. WTO에서 그들은 연합을 형성하고 싸우고, 이기지. 그리고 그들은 IMF와 세계은행에서도 그런 방식에 익숙해져야 할 거야.

난 그게 개도국들이 삭스를 지원해야한 긍정적인 이유라고 봐. 삭스가 아니면 누구를 지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는 통상적인 절차를 날려버릴 수 있는 인물이야.

엥글러 : 속으로 생각하는 세계은행의 지출 우선순위가 있어?

와이스브로 : 난 그들이 질병 치료나 예방 같은 할 수 있는 일에 더 많은 돈을 썼으면 좋겠어. 김용은 그렇게 할 거야. 그가 다른 일을 벌이지 않는 걸로도 여전이 큰 진전이지. 난 세계은행 사람들이 교육 분야에서 더 많은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소규모 농업을 지원하는 일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한 번 그들의 경제 논리에 익숙해지면, 보통 나쁜 결과가 오지. <파이낸셜타임스> 기자가 오늘 나한테 물어보더라고. "만약에 김용이 개발 경제학에 대해 많이 모른다면 어떻하죠?"라고. 난 이렇게 대답했어. "그게 핸디캡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난 세계은행이 그런 경제논리에 휘말려야 한다고 보지 않아요.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두세요. 그들은 보통 경제학에 대해 잘못 이해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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