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골목'의 진화…"약자들의 '통큰 반격'이 시작된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골목'의 진화…"약자들의 '통큰 반격'이 시작된다"

['3S'로 풀어본 2010 한국경제] 세 번째 키워드 '스몰(Small)'

- '3S'로 풀어본 2010 한국경제

첫 번째 키워드 : '스마트(Smart)'
'룸살롱 비즈니스'의 나라, '아이폰 혁명'은 사치일 뿐

두 번째 키워드 : '소셜(Social)'
"<프레시안>은 왜 삼성만 비판합니까?"
올해 유통업계의 최대 화제는 단연 '골목'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일 유통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2010년 유통업계 10대 뉴스'를 조사한 결과 88%(복수 응답)가 '기업형 슈퍼마켓(SSM, Super Supermarket) 갈등'을 가장 큰 뉴스로 꼽았다. 지난해 유통업계의 화두 역시 SSM이었다. 1년 전 대한상의가 같은 설문을 했을 당시에도 'SSM 갈등'은 1위에 올랐다.

SSM 논란이 그렇게 복잡하고 지난한 해결 과정을 거쳐야 하는 문제였을까? 처음 논리는 간단했다. 영세 상권의 생존권을 보장하자는 것이었다. OECD 국가 중에서도 자영업 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다. '사오정', '이태백'이란 말이 난무하는 고용 불안 사회에서 일치감치 퇴직금을 받아들고 회사를 나온 이들이 많은 자본과 경험 없이도 먹고사는 길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이 자영업이다.

하지만 SSM 논란은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와 기업들의 편법출점, '큰 경제'만을 생각하는 통상 관료들의 이해관계 속에 휘말려 느릿느릿 전개됐다. 지난해부터 마련된 SSM 규제 법안은 올해 내내 국회에서 표류하다 지난달에야 통과됐다. 그 사이 전국의 SSM은 800여 개를 넘어섰다. 법안 자체에 구멍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후약방문'을 만든 책임이 누구에게 있을까. 기업들은 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작은(small) 것'들에 주목했을까.

'구멍가게', 경제적 약자인가 경쟁자인가

통계청이 지난 27일 발표한 '2009년 기준 서비스업부문 통계조사'를 보면 SSM 논란의 출발점이 보인다. 대형종합소매업의 지난해 매출액 성장률이 4.1%인 반면 슈퍼마켓(매장면적 165~3000㎡)은 12.5%나 늘었고 사업체 수도 6.5% 증가했다. 체인화 편의점 역시 매출액이 11.3%, 사업체 수도 10.7% 늘어났다. 핵가족화가 진행되면서 대형마트보다는 접근이 쉬운 인근 슈퍼에서 소량으로 구매하는 경향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대형 유통업체가 '골목 상권'에 눈을 돌릴 게 당연하다. 유통망과 서비스 경쟁에서 한발 뒤질 수밖에 없는 영세 슈퍼는 SSM에 밀릴 수밖에 없다. 165㎡ 미만 소매점의 지난해 매출액 성장률은 5.1%에 그쳤고 사업체 수는 2008년 8만7227개에서 지난해 8만3954명으로 3.8% 줄어들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SSM 논란이 가열돼 올해까지 이어진 점을 감안하면 하락세는 더 커졌을 가능성이 높다.

SSM을 찬성하는 이들은 산업 논리를 든다. 물건이 저렴하게 공급되면 소비자들의 후생이 증가한다는 얘기다. 자영업 과잉 사회에서 구조조정은 불가피하고 경쟁은 필수하는 말도 덧붙인다. 논리는 맞다. 문제는 '골목'을 단순한 시장으로 바라볼 수 있느냐다. 경쟁에 몰려 골목을 떠난 이들의 '먹고사니즘'은 누가 해결할 것이냐에 대한 답도 나온 적이 없다.

별도의 소득원도, 사회 안전망도 부족한 상황에서 '골목'은 생활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피난처다. 골목을 골목으로 남겨놓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정부는 유통시장을 개방했다는 이유로 기업들의 '선제공격'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논란이 커진 지난해 중순 사업조정제도를 유통업에도 적용했지만 이마저도 '가맹 SSM' 등의 편법으로 비켜갈 수 있었다.

골목에 대한 관심이 없는 건 정치권도 마찬가지였다. 올해 상반기 여야는 유통법과 상생법 개정에 합의했지만 외교통상부의 개입으로 여당이 말을 뒤집었다.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김종훈 통합교섭본부장의 '소신'은 유럽 국가들이 FTA 협정문에 자국 유통업을 보호할 수 있는 조항을 넣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김 본부장이 '방패'가 된 사이, 대형 유통업체들은 좁은 골목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SSM에서 '통큰치킨'까지

ⓒ프레시안(자료)
대기업-중소기업 간 문제가 기업 간 힘의 차이에 따른 불공정행위라면 SSM 논란은 자영업자와 대기업 사이에 벌어졌다는 점에서 한층 더 심각하다. 1990년대 유통시장 개방 이후 대형마트의 난립에 크게 데였던 '슈퍼 주인'들이 SSM의 출현에 들고 일어난 건 무리가 아니다. 경제의 성장이 아닌 상권의 침식이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 시장이 포화된 상황에서 '작은 것'에 주목한 대형 유통업체의 형태는 SSM에서 끝나지 않았다. LG 서브원, 삼성 아이마켓, 포스코 엔투비 등 산업용재 및 공구 대행업체들이 구매 대행을 넘어 직접 공구 유통에 나서면서 영세 공구상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신세계 이마트는 SSM 진출이 잠시 주춤했던 올해 상반기 중소기업청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도‧소매점 공급망 사업에 진출하기로 했다. 별책부록으로 '이마트 피자'도 내놨다. 영세 유통상, 피자업계가 발끈한 것은 물론이다.

압권은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사건이다. 50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출시된 통큰치킨은 한정된 물량에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영세 치킨점에 대한 폭리 의혹까지 불러일으켰다. 대형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의 담합 논란까지 겹치면서 치킨업계는 된서리를 맞았다. 신문 광고를 통해 원가를 공개하는 등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여론의 반응은 차가웠다.

'소비자의 후생'은 영세 상인의 생존권을 논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난제다. 싸게 팔겠다는 것을 마다하는 소비자는 드물다. 그렇다고 영세 상인을 대기업과 동일선상에 놓고 경쟁 구도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힘의 차이를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딜레마는 영세 상인을 단순한 생산자로만 보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영세 상인도 하나의 소비자다. '골목 상권'의 영세 점포들 사이에서 돌고 도는 돈이 만드는 작은 내수 경제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탓에 주목을 받지 못한다.

'공정 사회'의 '이념적 소비', 가능할까?

SSM이 출현하기 전까지 영세 자영업자들은 모래알과 같았다. 일부 중대형 슈퍼마켓만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규모를 갖춰나갔을 뿐, 하루하루 자신의 노동력과 자본으로 일한만큼 벌어들이는 전형적인 '서민'이다. 경기에 민감하기에 보수적이어서 정치권의 관심도 적다. 때문에 대기업의 '먹잇감'으로 쉽게 노출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뭉쳐나가고 있다. 동네 상인들끼리 가게를 닫고 모여 SSM의 '도둑 개점'을 감시하기 위해 밤샘 농성을 했다. 6월 지방선거 때는 여당 후보 낙선 운동을 벌였다. 더 이상 무풍지대가 아닌 골목에서 밀려나면 혹한의 고용 시장에서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남거나 빈민으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을 자각했기 때문이다.(☞관련 기사:"아들이 일기장에 '홈플러스 나쁘다' 썼더라")

SSM 논란이 본격화 됐을 때는 공교롭게도 이명박 대통령이 '친서민'을 언급할 때였다. 올해는 더 나아가 '공정사회'를 천명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추린다는 계획도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방점은 '공정'이나 '동반'보다는 '성장'에 찍혀있다. '워킹푸어'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자영업자에게 성장을 요구하는 압박은 앞으로도 지속될 예정이다. 하지만 경쟁에서 밀려날 이들을 위한 대책은 여전히 요원하다.

소비자들은 제3자일뿐일까? 출발점이 다른 대기업과 중소상인들의 경쟁이 끝난 뒤, 독과점 시장에서 가격이 항상 저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역설적으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트위터에서 나왔다. 정 부회장은 '이마트 피자'를 계기로 네티즌과 벌인 설전에서 '이념적 소비'라는 말을 썼다.(☞관련 기사:"'이념적 소비'?…정용진 부회장에게 답한다") 이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지, '작은' 소비자들이 쥘 수 있는 힘으로 이해할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