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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국회에서 기자회견도 못 하나"

이정희 의원·쌍용차 노조 "쌍용차 파업 1년, 당시 합의 이행해야"

1년 전 오늘인 2009년 8월 5일,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은 해고 노동자 파업이 76일째 진행되고 있었다. 이날 경찰의 2차 도장공장 진입 작전에서 저항하던 조합원 2명이 옥상에서 추락했고, 화염병과 새총을 들고 버티던 조합원 16명이 연행됐다. 공장 곳곳에서 화재가 발생해 위험천만한 상황을 연출했고, 국회의원과 기자까지 사측 직원에 폭행당하는 등 '산자'와 '죽은 자' 사이의 갈등이 빚은 폭력이 최고조에 달했던 날이다.

이날 진압작전 이후 100여 명의 해고자들이 농성장을 이탈했고, 긴 파업과 잇따른 교섭에 지친 이들은 다음 날인 8월 6일 농성참여 인원의 48%를 무급순환휴직으로 남기고 나머지를 사실상 해고하는 협상안에 합의했다. 77일간의 파업은 그렇게 끝났지만 격렬한 갈등이 남긴 상처는 컸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의 현실은 암울하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조합원 등은 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쌍용차 해고자들이 파업 이후 극심한 경제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며, 1년 전 합의한 내용조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 대표는 "눈물을 삼키고 만들어냈던 합의안에는 노동자들이 최대한 양보하고 어려움을 참아갔던 정신이 담겨 있었다"며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지켜지고 있지 않고 누구의 생활도 보장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파업 후 1년, 우울증에 자살까지…합의 내용 제대로 안 지켜져

쌍용차 파업이 남긴 후유증은 깊다. 파업을 전후해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이나 심근경색, 자살로 4명의 노동자가 숨졌고 이에 충격을 받은 조합원 가족들도 6명이나 숨졌다. 파업 중 먼저 나와 경찰조사를 마치고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며 자살을 시도한 이들도 있었고 파업 이후 정신분열 증세를 보여 집에서 홀로 파업 준비를 이어가고 있는 조합원도 나타났다.

금속노조가 전문가들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파업기간 동안 노동자 81.9%의 채무가 평균 1400만 원씩 증가했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비율도 다른 직종 종사자보다 7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조는 상급단체 및 전문기관을 통해 집단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생계 등의 이유로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법적인 절차도 끝나지 않아 파업참가자 중 12명이 아직도 구속 상태에 있으며 한상균 쌍용차지부장을 포함 21명에 대한 항소심 공판도 진행 중이다. 정부와 사측이 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및 가압류 청구 금액은 현재 120억 원에 달한다. 사측은 파업을 주도한 노조 간부들에 대한 민형사상 면책에 합의했지만 지금까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다른 합의내용도 마찬가지다. 정리해고대상자 974명 중 합의에 따른 무급휴직 전환자 468명에 대해서 1년 내에 복직시키겠다고 약속했지만 사측은 지금까지 별다른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합의 당시 포함된 비정규직 19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평택을 고용안정특별지구로 지정해 재취업보장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도 쌍용차 출신이라는 '멍에'가 재취업을 가로막는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이 노조 측의 주장이다.

이날 국회에 모인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정부와 사측에게 구속 노동자의 조기석방을 위해 노력하고 무급휴직자의 복직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진행 중인 쌍용차 매각 과정에서 고용안정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며 경제적 고통과 실업 상태에 모인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마이크 끄겠습니다"…노동자에 문턱 높은 국회?

이날 기자회견에는 해프닝도 있었다. 국회 사무처에서 구호가 씌여진 조끼를 입은 노조 간부들과 해고자들의 출입을 막아섰기 때문. 이들은 국회 정문과 본청 출입문 등을 지날 때마다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금속노조의 한 관계자는 "(사무처에서) 조끼에 부착된 구호를 떼거나, 아예 조끼를 벗고 들어가라고 하더라"고 했다. 다른 한 관계자는 "국회의 문턱이 참 높더라"고 꼬집기도 했다.

실랑이는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가 현장에 나타난 뒤에야 가까스로 정리됐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기자회견을 시작한 이들의 수난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단상에 선 이정희 대표가 기자회견의 취지와 내용을 알리는 발언을 시작하자 국회 측에서 마이크의 전원을 꺼버린 것. 한 국회 사무처 직원은 이정희 대표의 발언을 자르며 "규정상 기자회견에는 9명만 참석할 수 있다"고 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민노당과 진보신당, 금속노조 관계자 등 약 20여 명이 참석했다.

이에 이정희 대표는 싸늘한 목소리로 "마이크 없이 하겠다"면서 기자회견을 계속 진행했다. 사무처 측과 금속노조 측의 협의로 곧 마이크는 복구됐지만, 원내정당 대표가 직접 주최하고 참석한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해프닝이 벌어지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금속노조 측은 "국회에서 일하는 분들의 고충은 이해하지만, 국회의 문턱이 유독 노동자들에게만 높은 것 같아 씁쓸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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