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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에게 기소권을 폭넓게 돌려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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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민에게 기소권을 폭넓게 돌려줘야

[민주적 사법개혁의 길(8)] 기소권 제도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불승인 남발에 항의하는 의미로 60여 명의 사람들이 영등포 근로복지공단의 담을 넘어 이 공단 주차장에 들어간 사건에 대한 공판이 얼마 전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렸다.
  
  검사 멋대로 죄명을 결정하는 현실
  
  이 사건에서 검사는 56명에 대해서는 훈방조치하거나 폭처법(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의 '공동'주거침입죄를 적용해 벌금 100만 원으로 약식기소하면서, 유독 4명에 대해서만은 더 무거운 죄이자 1년 이상의 징역에만 처하게 돼 있는 '집단'주거침입죄를 적용해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이에 대해 불운한 4명은 도대체 기준이 뭐냐며 법정에서 강력히 항의했다. 그러나 결국 검사가 뜻을 굽히지 않아, 이 4명은 직장에서 해고사유로 취급하는 집행유예 형을 선고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을 변론했던 나는 재판 내내 증거를 다투기보다는 검사에게 적용 법조문을 바꿔줄 것을 부탁하고 판사에게도 검사를 압박해 줄 것을 부탁했다. 판사도 적용 법조문을 바꿀 것이냐를 검사에게 물었으나 검사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들의 당일 행위, 전과, 수사기록, 노조활동 정도 등을 아무리 검토해 봐도, 똑같은 주거침입이 어떻게 해서 두 개의 죄명으로 달리 처벌받게 되었는지를 나는 여전히 알 수가 없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당시 공판검사에게 물어볼 참이다.
  
  도대체 검사가 똑같은 행위를 한 60명 중 4명만 골라 직장에서 잘릴 수 있는 처지로 몰아넣고 집행유예 기간 내내 몸조심을 하도록 만들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우리나라는 법원에 형사재판을 요구하는 권한을 검사만이 갖는 검찰 기소독점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검사만이 적용될 죄명을 정할 수 있고, 형사재판을 요구할지 말지, 즉 기소를 할지 말지도 검사만이 결정한다.
  
  이러한 제도, 즉 검사만이 기소권을 갖는 기소독점주의와 범죄혐의가 인정되어도 검사가 재량에 의해 불기소할 수 있는 기소편의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면서도 검사가 그런 권한을 남용해 불공평한 결과가 생기는 경우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장치를 우리나라처럼 마련해 놓지 않은 곳은 선진국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시민기소제의 도입도 검토 필요
  
  현행 형사소송법은 검사에게 기소권을 독점시킨 뒤 그 남용에 대한 견제책으로 두고 있는 것은 재정신청제도와 항고제도뿐이다. 재정신청제도는 검사가 '공무원의 직권남용죄'에 대해 불기소하는 경우에는 특별히 그 공익성을 생각해 고소인이 법원에 재정신청을 하고 고등법원이 재정결정을 하면 공소제기한 것으로 하여, 공무원 범죄에 한해서는 법원이 검사의 기소권을 견제할 수 있게 한 제도다. 그리고 항고제도란 일반적인 검사의 불기소에 대해서는 고소고발인이 그 검사의 상급 검찰청에 항고 또는 재항고하는 제도다.
  
  하지만 대부분의 범죄의 경우 항고제도밖에 구제책이 없는데다 항고제도 자체도 어차피 검찰이 재심사하게 돼 있는 것이어서 검찰이 스스로 기소의지를 갖지 않는 경우에는 큰 의미가 없다. 이런 이유로 인해 범죄피해를 당했는데도 기소를 해주지 않아 재판정에서 진술할 기회를 상실한 피해자들의 헌법소원이 헌법재판소에 제기되는 헌법소원의 대부분을 이루는 실정이다. 즉 위 두 제도는 근본적 해결방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외국의 기소권 제도를 보면, 미국은 재판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제를 운용 중이며 기소에 대한 승인 여부는 바로 대(大)배심이 결정한다. 미국은 연방재판소와 50개 주재판소 중 절반 정도가 대배심제 또는 이와 유사한 제도를 운용 중이다.
  
  이에 따르면 검사가 처리하는 사건 중 법정형이 사형 또는 징역형 이상인 사건의 경우 기소할 때 검사가 대배심에 사건을 회부하게 되고, 선거인 명부 기준으로 무작위 선정된 23명의 배심원 중 12명의 동의를 얻으면 기소가 승인된다.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항고제도가 없는 일본에서는 불기소 처리된 사건에 대해 고소·고발인 또는 범죄피해자, 유족 등의 신청이 있을 경우 사건이 검찰심사회에 회부되는데, 선거인 명부에서 무작위로 뽑힌 위원 11명이 기소가 타당함, 불기소가 타당함, 불기소가 부당함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심사회가 '기소 타당'이나 '불기소 부당' 결정을 내릴 경우에는 검사가 재수사를 해야 하나, 이런 결정이 검사로 하여금 반드시 기소하도록 하는 법적 구속력은 없다.
  
  또 독일과 프랑스도 일반인에 의한 기소를 인정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기소가 되어야만 할 범죄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해버린 경우 법원이나 국민이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적합한 제도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것이 우리나라 현실과 국민정서에 맞아야 함이 당연하다.
  
  대안으로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재정신청 대상범죄의 전면 확대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몇몇 범죄에 대해 시행 중인 재정신청제도를 보면, 이 제도에 따라 기소되어 재판에 부(付)해지는 부심판 사건은 불과 몇 퍼센트 되지 않는다.
  
  그리고 재정신청이 가능한 대상범죄를 모든 범죄로 확대하는 경우에도 근본적으로 법원은 국가기관 중의 하나로 국민의 직접적 의사가 반영되는 것은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 특히 정치사건의 경우 법원이 직접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독재정권 시절인 1974년부터 1987년까지는 공무원 범죄에 대한 총 655건의 재정신청 중에서 법원이 재판에 부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국민에게 기소권을 주는 제도인 시민기소제의 도입이다. 이에 대해서는 미국의 대배심 제도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다만 대배심 제도를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우리나라 특유의 제도로 적절히 개선해 시행해야 할 것이고, 더 나아가 예를 들어 노동사건에 대해서는 전문지식을 풍부하게 가진 노동조합원의 참여를 인정하는 식으로 해서 국민의 인식과 법조문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까지 좁힐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해볼 만하다.
  
  변호사인 나도 인정하기 어려운데…
  
  검사가 기소를 하지 않아 문제인 경우를 견제하는 제도들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해두자. 그렇다면 앞에서 본 사례와 같이 기소권이 불공정하게 행사되어 문제가 생기는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측면에서는 범죄의 객관적 혐의가 충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검사가 공소를 제기한 경우, 피의사건의 성질과 내용에 비추어 기소유예 처분이 상당함에도 불구하고 검사가 공소를 제기한 경우, 죄질과 범정(범죄의 정황)이 유사한 여러 피의자들 중에서 일부에 대해서만 불공평하게 공소를 제기하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기소유예를 하거나 전혀 수사에 착수하지 않을 경우, 공소제기 전의 수사절차에 함정수사 등 중대한 위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소를 제기한 경우 등이 문제가 된다.
  
  공소권이 남용되는 경우에는 법원이 재판을 하면서 재판의 내용으로써 이를 시정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는 판사의 1심 재판 내용에 대해 2심, 3심 판사가 견제하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대법원은 공소권 남용이 인정되는 경우 판사가 재판으로 아예 공소 자체를 기각해야 한다면서도, 공소권이 남용됐다고 하려면 검사가 일부러 남용했다는 증거, 즉 고의의 증거가 필요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실제로는 검사 내심의 고의라는 증명하기 거의 불가능한 요건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사실상 공소권 남용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 것이 대법원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검사의 기소 내용이 피고인에게 억울하고 부당한 경우에도 판사는 공소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유죄의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다. 변호사인 나도 이해가 안 되는 공소사실을 검사와 판사가 그대로 인정해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면서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범죄자를 재판함에 있어서 '공정'함을 요구하는 것은 어찌 들으면 사치스런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형벌권도 국가권력이니 문명국가라면 그것에 대한 견제와 통제가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하며, 범죄자도 국민이므로 적정한 수준의 처벌만을 받을 권리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검사 기소독점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불합리들을 적극적으로 개선해나가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이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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