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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예술대상 최초 장애인 수상자, 그의 배우 인생이 '인정투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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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예술대상 최초 장애인 수상자, 그의 배우 인생이 '인정투쟁'인 이유

[장애 드러내는 사람들] ⑧ 뇌병변 장애인 하지성 씨

여전히 장애가 욕설로 사용되거나 약점이 될까 숨기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당당히 자신의 장애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드라마, 유튜브, 연극, SNS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중의 편견을 깨부수고 있다. <프레시안>은 장애를 소재로 대중문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살아온 과정, 활동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들었다. 편집자

2023년은 한국 장애인 배우들에겐 역사적인 해였다. 연극 <틴에이지 딕>에서 리처드 글로스터 역을 맡은 뇌병변 장애인 하지성(34) 씨가 제59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그간 무대에 오른 장애인 배우는 많았지만,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한 건 하 씨가 처음이다.

비장애인 후보 사이에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하 씨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치켜 올리더니, 휠체어를 타고 시상대에 올라서며 왼팔을 수 차례 흔들었다. 한 가지 흠이라면 시상대에 설치된 마이크가 휠체어 높이에 맞지 않아, 관계자가 직접 마이크를 잡아줘야 했다는 점이다. 시상식이라는 공간이 비장애인에게 맞춰져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 씨는 "마이크를 더 내려야 하는데 아쉽다"고 운을 떼며 방송·영화·연극 관계자들 앞에서 천천히 수상소감을 말했다. "연기하면서 많은 대사량과 3시간 가량 무대에 있는 것 자체가 무섭고 떨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출님·배우들이 힘듦을 알아주셔서 계속 연기를 했던 것 같다"며 공을 동료에게 돌렸다.

하 씨는 "이 상은 저에게 무겁다. 연기를 잘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데 무대에 서면 잘하고 싶다"며 열정을 드러냈다. 이어 가족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던 그는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콕 집어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이것도 현실이에요."

▲뇌병변 장애인 하지성 씨는 장애인 배우 최초로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을 수상했다.ⓒ본인 제공

하 씨가 아버지에게 한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지난 16일 서울 도봉구 소재 카페에서 <프레시안>과 만난 하 씨는 시상식에서의 발언에 대해 "그동안 아버지에 대해 마음 속에만 담아뒀던 울분과 속상함을 풀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 씨의 아버지는 평소 아들의 배우 생활을 탐탁지 않아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제가 연기를 좋아하는 걸 응원하면서도 직업으로 생각하지는 않으셨어요. 아들이 취미생활을 하나 보다 싶으셨던 거죠. '연기 활동은 지지하지만 직업은 공무원을 하라'고 하시는 등 다른 직업을 갖길 바라셨어요. 수상소감을 말할 때 아버지에게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얘기하고 싶었죠. 물론 상을 받은 이후로는 배우를 제 직업으로 생각하고 계셔요."

백상예술대상 수상 전부터도 하 씨는 10년 넘는 경력을 가진 베테랑 배우였다. 성인이 된 2010년 중증장애인 극단 '애인'이 재해석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로 데뷔한 이래 <인정투쟁>, <천만 개의 도시>, <여기, 한때, 가가> 등 다양한 연극에 출연했다. 백상예술대상 연기상을 안겨준 연극 <틴에이지딕>에서는 뇌병변 장애인 리처드 역을 맡아 비장애인 중심 학교에서 학생회장이 돼가는 과정을 그렸다.

하 씨가 배우의 길을 걷게 된 이유는 '장애로 인해 겪게 된 외로움을 연극을 통한 소통으로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선천적 뇌병변 장애인인 하 씨는 발과 손이 안으로 휘는 증세를 겪고 있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또래 친구들과 함께 축구하며 뛰놀 수 있었지만, 중학생 때부터는 보조기를 다리에 차지 않으면 걸어 다닐 수 없었다. 자율신경에 보톡스를 놓아 다리 근육을 펴거나 수술을 하는 등 증세 완화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장애는 하 씨 와 친구들의 거리를 점점 멀어지게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침묵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다는 욕구가 날로 커졌고, '대본을 매개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마음에 스무살 나이로 극단 '애인'에 입단했다.

장애인 배우로서 겪는 어려움은 분명 있다. 하 씨의 경우 리을(ㄹ) 받침을 포함한 일부 발음에 고충을 겪고 있다. 또 비장애인 배우와 함께 연극을 준비할 때는 연습 속도가 다르고 연기 호흡을 맞추는 데에도 고려할 점이 많아 장애인 배우끼리 준비할 때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장애인 배우의 전문성에 대한 부정적 시선 또한 큰 장벽이었다. 하 씨는 "연습 과정부터 무대에 오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예술인으로서의 '인정투쟁'"이라고 했다. 비장애인 배우에 견줘 장애인 배우는 연극 관계자에게, 관객에게 공동체 일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더욱 자신의 역량을 증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배우 하지성 씨가 참여한 '틴에이지 딕' 공연ⓒ국립극장

이런 어려움이 하 씨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 씨에게 연극은 동료와 만나 호흡을 맞추고, 관객 앞에 나서 주목받는 등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첫 공연을 마쳤을 땐 정말 꿈만 같았죠.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관객 앞에 서는 모든 과정이 행복해요. 도전을 거듭하면서 '갈수록 연기가 어려워진다'고 생각하지만, 연기가 싫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계속해서 연기를 하고 싶어요."

하 씨에게 주어진 백상예술대상 연기상은 그의 끊임없는 노력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는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내가 상을 받았다는 게 너무 놀랍다. 그간 연기를 계속 해왔기 때문에 상을 주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다만 "시상식 현장은 장애인 접근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었다. 대기실조차 계단을 올라가야만 해서 휠체어를 탄 나는 동등하게 쉴 수 없었다"고 했다.

▲배우 하지성 씨ⓒ프레시안(박상혁)

백상예술대상 수상 이후로도 장애인 배우를 향한 편견은 여전하다. 일례로 서울연극협회는 지난해 12월 협회 정회원 가입 심의 과정에서 장애 차별 요소가 있었다며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그해 9월 극단 '창작공동체 무적의 무지개' 진준엽 대표의 협회 가입에 대한 면접이 이뤄졌는데, 면접관이 장애인 배우 중심으로 구성된 연극을 두고 "전문 연극이 아닌 것 같다"고 하고, 장애인 인권운동가의 삶을 다룬 음악극 자료를 보며 "여기 있는 사람들은 연극인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한 일에 대해서였다.

그래서 하 씨는 여전히 '인정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는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연극계 문제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서울연극협회에서 벌어진 장애인 배우 차별 사건은 물론 웹진 <연극in>의 무기한 휴간을 결정한 서울문화재단을 비판하는 성명도 공유했다.

하 씨는 "장애인보다 비장애인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울연극협회 사건이 발생한 것"이라며 "장애인 배우 또한 각자의 삶과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보지 않고 '전문성'이란 잣대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배우의 정상성을 평가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웹진 <연극in>은 장애 구분 없이 연극인들이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창구였다. 이를 연극인들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무기한 휴간 조치를 내렸다는 점에서 아쉽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하 씨의 최종 목표는 "분리된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회를 연결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연기를 통해 끊임없이 장애를 드러내며 대중의 인식을 바꾸고, 자신을 포함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욱 어우러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는 하 씨가 처음 연기를 시작한 마음과 맞닿아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우리(장애인)가 살아왔던 몸이 아니라 사회가 정상적으로 생각하는 몸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를 바꾸기 위해 저는 제 방식대로 정상성에 맞서고 있어요. 장애를 구분하는 사회가 아니라, 예술의 본질을 함께 찾아가고 모두가 어우러지는 사회가 되면 좋겠어요."

박상혁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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