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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모델'을 지키려는 열망의 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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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모델'을 지키려는 열망의 표출

[분석] 스웨덴 총선 결과의 진정한 의미

정부와 보수언론 간의 '스웨덴 논쟁'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 논쟁은 지난 17일 스웨덴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이 패배하자 국내 보수언론에서 높은 사회복지 지출을 바탕으로 하는 '스웨덴 모델'의 실패가 드러났으며, 이를 모델로 삼은 노무현 정부의 '비전 2030'도 폐기처분돼야 한다고 성토하고 나서면서 시작됐다.
  
  정부는 처음에는 "우리는 스웨덴과 다르다"면서 일단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지만, 곧 이어 공세적으로 복지 선진국인 스웨덴과 복지 후진국인 우리나라를 수평적으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국정브리핑>은 20일 "복지정책이 과도해서 다이어트를 해야 할 처지인지, 복지의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영양실조 수준인지를 찬찬히 들여다본 후에야 생산적인 논의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의 사설을 내놨다.
  
  사실 이번 스웨덴 총선 결과는 과거에 스웨덴 모델의 장점을 거론한 전력이 있는데다 최근 '비전 2030'이라는 국가 단위의 장기적인 사회복지 청사진을 내놓은 노무현 정부만을 긴장시킨 것이 아니다. 유럽의 많은 정치 지도자들 역시 이번 스웨덴 총선 결과가 스웨덴 모델의 실패로 해석될까봐 속앓이를 해야 했다. 이들 역시 '무덤에서 요람까지'로 표현되는 높은 복지수준을 유지하면서도 견고한 경제성장을 해 온 '스웨덴 모델'을 칭송하며 이를 본받으려 해 왔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다행한 일이지만, 스웨덴의 총선 결과가 나온 지 나흘이 지난 현재 구미 대부분의 언론은 이번 스웨덴 총선에서 사민당이 패배한 것이 결코 스웨덴 모델의 실패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 구미 언론은 오히려 이번 총선 결과는 스웨덴 모델이라는 원칙에 대한 스웨덴 국민들의 '애착'이 다시금 천명된 것이며, 스웨덴 모델을 잘 운용하지 못한 사민당이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훌륭한 경제성적표' 받은 사민당, 도대체 왜 패했나?
  
  지난 17일 스웨덴에서 실시된 총선에서 중도우파 성향의 4개 야당이 연합한 '새 온건당(New Moderate)'은 48.1%의 표를 얻어 46.2%의 표를 얻은 좌파 성향의 사민당-녹색당 연합을 박빙의 차이로 물리쳤다.
  
  이로써 지난 1996년부터 12년 간 집권여당으로 군림해 온 사민당은 내년 3월에 야당 신세로 추락하게 됐다. 스웨덴에서 지난 74년 간의 기간 중 65년 동안 좌파 정부가 집권해 왔다는 점에 비춰볼 때 이번 총선 결과는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 놀라움을 안겨줬다.
  
  게다가 스웨덴은 최근 몇 년 간 5%대의 경제성장률, 6%대의 실업률 등 건전한 거시경제 펀더멘털과 함께 국제시장에서도 높은 경쟁력을 바탕으로 양호한 수출실적을 올려 왔다는 점에서 여당인 사민당의 이번 선거 패배는 그 충격이 더 했다.
  
  여당의 경제운용 성적에 대해 스웨덴 국민들이 그렇게 불만스러워 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한다면 결국 '성장과 분배의 동시 추구'를 핵심으로 하는 사민당의 경제정책 방향 자체에 대해 스웨덴 국민들이 불신임을 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적어도 겉보기에는 가능했던 셈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평범한 교훈
  
  하지만 대부분의 구미 언론은 스웨덴 사민당의 패배를 '스웨덴 모델의 실패이자 좌파의 패배'가 아니라 '오랜 집권으로 관성에 젖은 정부의 비전 부재가 빚어낸 사민당의 패배'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스웨덴 일간지 <다겐스니히터>는 이번 총선 결과를 분석하며 "요란 페르손 총리는 지나치게 자기 입맛대로 내각을 구성했다"고 비판했다. 스웨덴 지방지인 <시드스벤스칸>도 "의회가 드디어 사민당 시대의 거만함과 권위에서 벗어나 일할 수 있게 됐다"고 이번 총선 결과를 평가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스웨덴 소데르톤 대학의 니콜라스 아일롯 교수(정치학)와의 인터뷰를 인용해 "정부가 노쇠했다는 인식이 있었고, 실제로 정부는 표류 중이었다. 사민당은 스웨덴을 어디로 이끌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10년 간의 집권 후 그(요란 페르손)의 얼굴에서는 반짝이는 미소 대신 무엇이든 자기 입맛대로 통제하려는 거만함이 훨씬 더 강하게 풍겼다"며 "(이번 총선 결과의) 교훈은 정부가 노쇠한 상태에서 신선해 보이면서도 (현 체제에) 위협적이지 않은 새로운 반대편이 등장하면 선거에서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스웨덴 국민들은 높은 세금과 최소한의 불평등을 특징으로 한 '스웨덴 모델'이라는 원칙 자체를 문제 삼은 것이 아니며 오히려 스웨덴의 복지모델에는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면서 "하지만 스웨덴 모델에는 분명 결함이 있었고 스웨덴 좌파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이밖에 지난해 아시아 지역 국가들을 강타한 쓰나미로 많은 스웨덴 국민들이 죽었지만 사민당이 이에 대해 무기력한 대처밖에 하지 못했다는 점, 상당한 인기가 있었던 아나 린드 전 외무장관이 살해당한 사건 등 총선이 열리기 전에 국민들이 현 정부에 대해 질린다는 느낌을 갖게 한 요인들이 상당히 많은 상태였다고 분석했다.
  
  중도우파의 승리, 스웨덴 모델 보장하며 '우에서 좌로 한발짝' 옮긴 덕분
  
  물론 스웨덴 국민들이 현 정부에 정나미가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정권교체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스웨덴 국민들은 이번 총선에서 '스웨덴 모델의 생존'을 보장하면서도 동시에 '스웨덴 모델의 개선', 특히 모델의 효율성을 제고하겠다고 나선 '뉴 페이스'에 기대를 건 것이라고 구미 언론은 분석하고 있다.
  
  이번에 총선에서 승리한 중도우파 연합은 지난 2002년 총선에서 94억 파운드의 세금 삭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가 무참하게 패한 바 있다. 이 경험에서 '스웨덴 유권자들은 세금 삭감과 복지정책의 후퇴를 원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은 이들은 이번에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우에서 좌로 한 발짝 옮겨 '스웨덴의 경제모델은 자신이 집권해도 안전할 것'이라는 점을 적극 선전했다.
  
  스웨덴의 사회 모델은 개혁돼야 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체돼서는 안 된다고 느꼈던 스웨덴 유권자들에게 '젊고 유능해 보이는' 라인펠트를 거부할 유인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도 바로 이 점이 라인펠트가 이번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도 라인펠트가 스웨덴 사회복지 시스템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미세조정하는 수준에서 고용을 늘리는 데 주력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그가 이번 선거에서 승리한 배경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스웨덴 모델은 한층 더 강화될 수도
  
  그렇다면 라인펠트가 공약으로 내건 '복지정책의 미세조정'이란 무엇일까? 스웨덴의 골칫거리인 실업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총선 당시 공식적인 실업률은 6%대였지만 스웨덴 사람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실업률은 20% 수준이었다. 장기병가를 낸 사람도 실업률 통계를 내는 데 포함되는 등 이른바 '숨겨진 실업'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높은 실업률은 스웨덴 안에서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다. 한편에서는 높은 실업수당 때문에 일할 능력이 충분한 사람도 놀고 먹는다는 뜻의 '복지병'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실체가 없는 복지병을 거론하기 전에 고용을 늘리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동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런 논란은 오랫동안 지속됐지만 사민당은 침묵만을 지켰다. 스웨덴 일간지 <괴테보르그-포스텐>은 "지난 74년 간 단 9년을 제외하고 계속 집권해 온 사민당이 고용과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차일피일 미뤘다"면서 "그들이 이 문제의 중요성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들의 손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무런 프로그램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과 실업수당을 조금씩 조정해 국민들의 노동의욕과 기업들의 고용의욕을 동시에 고취시키는 것을 핵심으로 한 정책공약을 내놓은 라인펠트는 '실업문제를 선거의 전면으로 끄집어냈다는 점'만으로도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저임금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2년에 걸쳐 32억 파운드의 세금 삭감 △실업수당은 기존 80%에서 65%로 축소 △앱솔루트 보드카 등 별 관련이 없는 일부 공기업의 민영화 등 스웨덴 복지정책의 원형을 해치지 않은 선에서 다양한 '미세조정' 정책들을 제시해 스웨덴 국민들로부터 환심을 샀다.
  
  일부 구미 언론은 이번 총선 결과로 스웨덴 모델이 오히려 더 튼튼해지게 됐다는 전망까지 했다. 이는 새로 집권하게 된 중도우파가 지난 10년 간 별로 변하지 않은 복지정책의 일부 비효율적인 부분들을 걷어낼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기존 좌파들 역시 이번 패배를 교훈 삼아 '보다 나은 복지정책'을 들고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한 전망이다.
  
  스웨덴 일간지 <시드스벤스칸>은 "이제 중도우파 연합은 왜 그들이 선출됐는지를 국민에게 보여줄 차례"라며 "2010년에는 이번 선거에서 교훈을 얻은 사민당이 더욱 강력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리하자면, 이번 스웨덴 총선의 결과는 정부의 오만함과 비전 부재가 스웨덴 모델의 앞길을 방해하고 있는 데 대한 스웨덴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노무현 정부는 이번 스웨덴 총선의 결과가 '분배보다 성장'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준다는 우리 보수언론들의 '황당한' 해석에 일일이 반박하기에 앞서 '비전이 없는데다 오만하기까지 한 정부가 어떻게 심판 받았는지'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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