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완전한 승리'로 자부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5년만에 그야말로 '완전한 착각'에 불과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태가 반전되고 있다.
지난 7월 미국으로부터 작전권을 넘겨받은 나토(NATO)군 스스로 "이라크 사태보다 심각하다"고 할 정도로 탈레반 반군이 치열한 공세를 펴고 있기 때문이다.
제임스 존스 NATO 최고사령관은 작전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서는 추가 병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지난 8일 폴란드에서 개최된 회의에서 회원국들이 2000명의 병력을 추가로 파견해줄 것을 요청했다. 또한 나토군은 탈레반과의 전투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지난 2일부터 '메두사'라는 이름의 대규모 작전에서 거둔 전적을 신속하게 공개하고 있다.
미덥지 않은 나토군의 탈레반 소탕 전과
나토군은 10일에도 성명을 통해, 칸다하르주의 탈레반 거점인 판즈와이 일대에서 9일 밤과 10일 새벽에 걸쳐 전투기를 동원한 공습과 지상공격으로 반군 94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나토군은 '메두사' 작전으로 지금까지 400명이 넘는 탈레반을 사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탈레반은 나토군의 전적 자체를 부인하고 있고, 반군 사망자 중에 민간인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한 나토군 측의 인명 피해는 공개되지 않고 있어, 나토군이 발표하는 '전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실정이다. 오히려 탈레반의 게릴라 전과 테러 공격에 나토군과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심리적으로 초조감을 드러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동부 팍티카 주의 압둘 하킴 타니왈 주지사는 10일 주도인 가르데즈의 저택을 나서다 몸에 폭발물을 두른 자살폭탄 테러범의 공격으로 숨졌다고 주 경찰이 밝혔다. 이에 앞서 수류탄과 AK 소총으로 무장한 100여명의 탈레반 무장세력들이 10일 새벽 서부 파라주 칼라이가르의 관공서들을 기습 공격해 경찰 두 명을 살해하고 일부 건물에 방화를 했다고 현지 경찰이 밝혔다.
지금까지 탈레반은 주로 남부 지역에서 활동해 왔으나, 서부에서도 탈레반의 공격을 받기는 칼라이가르가 처음이다. 탈레반의 활동이 이제 남부를 넘어서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데이비드 리처즈 아프간 주둔 나토군 사령관은 최근 "6개월 안에 탈레반 반군을 제압, 탈레반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약화시키거나 재건 노력을 중단시킬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최근 반군의 전력을 볼 때 이같은 목표는 달성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토 동맹국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지난 5일 프랑스의 싱크탱크 '센리스위원회'가 발표한 '아프가니스탄 반군 평가 보고서'는 이같은 우려를 뒷받침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탈레반은 아프간의 절반에 해당하는 남부를 장악하고 있으며, 매일 같이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보고서는 "탈레반은 헬만드, 칸다하르, 헤라트, 난가르하르 등 남부의 모든 주를 포함해 아프가니스탄 절반을 휩쓸었다"고 전했다.
"군사작전이 아니라 빈곤해결이 최우선 대책 되어야"
보고서는 탈레반이 이처럼 급속히 세를 확장할 수 있는 요인으로 미국과 영국이 주도하는 대마약류 근절 정책과 군사 활동으로 우선적으로 지목했다.
센리스위원장 에마누엘 라이네르는 "칸다하르 일대에서는 사람들이 굶주리고, 아이들은 거의 매일 같이 죽어가고 있는 '인도주의적 재난'을 목격할 수 있다"면서 "이같은 극도의 가난이 탈레반이 민심을 다시 얻고, 아프간을 다시 장악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양귀비 재배를 근절하겠다는 정책이 재난을 일으키고 있다"면서 "이같은 정책이 농부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탈레반은 농부들에게 "우리가 난폭하고 잔인한 사람들일지 모르지만 우리가 보호해주면 가족들을 먹여살릴 수 있지 않느냐"면서 필요한 서비스를 공급함으로써 민심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센리스위원회는 "미군이 주도하는 국가 건설 노력은 비효율적이고 분노를 일으키는 군사 작전과 대마약 정책 때문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센리스위원회는 구호 및 개발 프로그램에 자금 지원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국제사회의 자금 지원이 부족해 아프간 정부와 유엔세계식량계획(UNWFP)이 아프간의 기아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센리스위원회는 "구호기금에 대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는 대부분의 구호자금을 군사 및 치안 활동에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라이네르 위원장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지난 2001년 침공으로 파괴하려고 했던 테러리즘에 근거지를 재창출해주었다"면서 "그 결과 국제사회는 아프간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전투에서 패배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1년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가 설정한 아프간 정책의 우선순위는 아프간 주민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었다"면서 "그것은 적이 누구인지 제대로 모르는 '고전적'인 군사적 오류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2002년 이후 아프간에서 미국이 군사 작전에 뿌린 돈은 825억 달러인데 비해, 개발 프로그램에 들어간 자금은 73억 달러에 불과했다. 또 7월 한 달 동안에만 104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무분별한 군사작전이 민심의 불신과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라이네르는 "지금은 긴급 빈곤구제 프로그램이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면서 "그런 연후에나 국가 재건과 복구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탈레반은 이제 고립된 소규모 테러집단이 아니라, 개발 정책의 실패로 인해 아프간 인구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집단이 되었다"면서 "1년 내에 아프간 정부가 통합된 나라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정통성이 약화되는 상황이 닥칠 것" 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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