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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웠다. 하지만…" 9명 다윗의 '대한민국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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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웠다. 하지만…" 9명 다윗의 '대한민국 지키기'

[화제의 책] 〈아름다운 왕따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우리는 역사 안에서 골리앗을 이긴 다윗을 간혹 만날 수 있다. 내가 만난 여덟 명의 민주노동당 여성의원들은 모두 그러한 인물들이다."

인터뷰 기사를 써 온 지 10년이 넘은 권은정이 8명의 민주노동당 지방의회 의원들을 만났다. 2004년 9월 과로로 갑작스레 세상을 뜬 경상남도의회 의원 고 이경숙은 삶의 흔적만 좇았다. 의원들을 만나고 급하게 책 한 권 분량의 기사를 쓴 지금, 그는 '감동먹었다',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도대체 무엇이 수많은 사람의 감동적인 사연을 글로 담아 온 그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이 '감동'이야말로 〈아름다운 왕따들〉(이매진 펴냄)을 여느 정치인의 구태의연한 책과 다르게 자리매김한다.

***"정말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야"**

"정말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야."

지방의회 비례대표 의원에 덜컥 당선돼 처음으로 각 시·도의회에서 생소한 풍경을 맞닥뜨린 9명의 민주노동당 여성 지방의원들의 마음은 정말 이랬다. '남들에게는 명예고 자랑이고 권력인 정치'가 그들에게는 '절박한 투쟁이고 책임'이어야 했다. 모든 게 달라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기꺼이 '왕따'를 자처했다.

'왕따'를 자처하는 순간 매순간이 결전이었다. 이 책은 '순정한 그 결전의 모습'을 담고 있다. "흔히 말로만 '일당 백'이라 하지만 이들은 실제 그렇게 살았다. 의회 안에서 그들은 '완벽한 혼자'였다. 혼자 싸우고, 혼자 항의하고, 혼자 목청껏 외칠 수밖에 없었다. 참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외로움에 지치지 않았다. 결코 지지 않았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수록 더욱 열심히 일했다. 모든 정치인들이 이들처럼만 한다면 국민들이 무슨 걱정이랴."

각각의 지방의회마다 '유일한' 민주노동당 의원이라고 해서 또 모두 '왕따'라고 해서 '아마추어'가 돼서는 안 됐다. '프로'가 돼야 했다. 하지만 '훈련되지 않은 왕따'가 한 순간에 '프로'가 될 수는 없었다. 그 간격을 매우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 시작됐다. 이 여성 의원들은 민주노당 내외에서 우려한 '무능'과는 정반대의 성과를 거뒀다. 이들은 대부분 해당 지역에서 최우수, 우수 의원들로 꼽혔다.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잇따른 학교급식 지원 조례 제정 움직임은 그들의 여러 가지 성과 중 하나일 뿐이다.

***성실한 작은 거인의 힘**

부산광역시의회 의원 박주미는 중학교 때부터 두통과 만성 피로를 달고 살았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가지 못한 중학교 교복을 입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던 게 엊그제 갔다. 이랬던 그가 전체 의원 44명 중 단 1명의 민주노동당 의원이 됐다. 4년이 지난 지금 그가 발언을 할 때마다 부산시 관계자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부산시의회 최다 시정 질문 의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다. '잘해봐야 얼마나 하겠느냐'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온 몸으로 느껴야 했다. 그는 '발로 뛰는' 것으로 그런 시선을 극복하고자 했다. 아직 세상이 채 잠에서 깨지 않은 어스름한 새벽, 그는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을 찾았다. 냄새도 고약한 음식물 쓰레기들을 덤프트럭이 처리장에 쏟아내고 있는 동안 그는 인부들에게 이것저것을 묻기 시작했다. 한창 설명하던 인부들이 오히려 되물었다. "그런데 댁은 누구시오?"

부산 시내 10여 곳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을 새벽마다 돌아본 그는 음식물 쓰레기 자원화의 실상을 상세히 알게 되었다. 민간 투자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도 궁금증이 일었다. 문제투성이였다. 그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대책 마련과 의혹 해소에 시당국이 나설 것을 호소했다. 그가 의회에 진출한 지 한 달도 안 돼 일어난 일이다. 4년이 지난 지금 가늘고 여린 체구의 그를 '무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저는 자주 생각합니다. 정치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하는 것이라고요. 저기 어디 높으신 분들이 하는 게 아니지요. 사회적 약자이며 바로 그들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의 힘, 그게 모여 정치적인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저는 늘 명심하고 있습니다."

***당당한 나 홀로 의원의 서울사랑**

지난 지방선거 이틀 전 막바지 유세가 한창이던 서울시 종로2가 국세청 사거리. 예순이 넘은 연세의 한 아주머니가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 도시 철도에서 청소하는 사람들은 하루에 14시간 뼈 빠지게 일하고 받는 돈이 한 달에 47만 원입니다. 서울시가 이리도 인색합니다. 그동안 언제 아이들 학비 걱정 안 해 본 적 없고 마음 편히 쉬어본 적 없이 살았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우리 같은 사람도 좀 잘 살 수 있도록 옆에 있는 이 후보를 당선시켜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주머니의 연설을 지켜보던 당시 지방의원 후보 심재옥은 끝내 눈물을 보였다. 처음으로 '당선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는 그 때 그 마음으로 4년을 달려 왔다. 지금 그의 서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서울시의회에서 그는 '가장 날카롭게 질의하는 의원'이면서 동시에 '대안을 제시해 주는 의원'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나 홀로 의원'인 그는 시민단체와의 연대에 발품을 많이 팔았다. '청계천연대', '교통연대', '시청 앞 광장 대응공동모임' 등의 단체와의 연계 활동을 통해 그는 안과 밖에서 동시에 압박을 가해 큰 성과를 거뒀다. 소수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 그가 택한 이 전략은 효과 만점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욕도 먹었다. '과대망상증 환자, 인기영합주의자, 그저 튀어보려고 안달하는 의원.' 특히 다수당 한나라당 의원들이 힘으로 밀어붙이면서 툭툭 던지는 "정 그렇게 억울하면 다수당 되면 될 것 아니냐?"는 말에는 악이 받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꼭 다.수.당. 될 겁니다. 꼭이요."

하지만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심재옥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다른 그가 소속된 위원회의 다른 당 소속 위원장이 '심 의원은 우리 위원회의 보배'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을까? "모든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심재옥 의원만큼만 한다면 정말 서울은 발전하겠다", 이런 얘기들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2002년 크리스마스 이브, 한나라당 소속의 한 시의원은 손에 '비밀 쪽지'를 건네줘 그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따돌림으로 심신이 지친 그였다. "심 의원, 지난날 발언 잘 들었습니다. 항상 열심인 모습 보며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내놓고는 못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지지하고 있습니다. 힘내십쇼."

이제 서울시의회 의원을 물러나야 할 시점.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주민의 견제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서울시 행정과 의정을 감시하는 시민의 눈이 커져야 실질적으로 의회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실 이건 누가 다수당이 되는가, 그 문제가 아닙니다. (…) 지방의회 의원은 돈 있고 심심한 사람이 하는 정도로 여겼지만 그건 정말 잘못된 생각이지요. 우리나라 토지나 부동산 중심의 행정이 지방의회에서 비롯되는 것을 안다면 지방의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될 겁니다."

***한번 물면 놓지 않는 악바리**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우수의원(2003), 광주드림 광역의원 부분 베스트(2004), 〈시사저널〉 광주·전남을 움직이는 사람들(2005)에 선정, 제1회 장애인 인권상, 〈문화일보〉 한국지방자치학회 선정 우수조례 특별상(2005).

광주광역시의회 윤날실 의원의 화려한 이력이다. 하지만 4년 전 그의 별명은 '부결 의원'이었다. 그가 내놓는 안마다 모두 부결되는 바람에 붙은 별명이다.

그러나 윤난실은 쉬지 않았다. '한 번에 안 되면 다시, 혼자 힘으로 어려울 땐 뜻 맞는 사람들을 총동원해서.' 이렇게 매 순간 승부수를 건 끝에 결실을 맺은 일이 바로 광주의 대중교통 문제다. 의정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그가 가장 주목했던 것은 서민들의 발인 대중교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문제에 매달려 결국 버스회사 사업자 대표들로부터 "배차간격을 정확히 지키겠다. 서비스에 최선을 다하겠다. 교통카드를 즉각 시행하고 무료 환승이 이뤄지게 하겠다. 회계감사를 적극적 자세로 받아들이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악바리' 의원의 승리였다.

이런 윤난실에게는 유난히 서민들의 제보가 많이 들어온다. 전화도 걸려오고, 직접 의원실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다. 그는 민원은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려고 노력한다. 전화를 끊자마자, 민원인이 방문을 나서자마자 그는 전화통을 잡는다. "하루가 한 달 같을" 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는 까닭이다. 이러다보니 광주에서 그는 유명하다. 광주시 여론조사에서 광주사람 열 명 중 두 명이 그를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지방의회 의원으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상당한 인지도다.

4년간 윤난실 때문에 광주도 변했지만 그 역시 변했다. "그동안 노동운동이 전부, 계급운동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생활운동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됐어요. 일상에서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임하게 되면서 세상을 바꾸는 힘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생각합니다. 다양한 운동을 접하게 되면서 개미와 같은 노력으로 전진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왕따'들의 '우직한 어리석음'**

신영복은 그의 책 〈나무야 나무야〉(돌베개 펴냄)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당신은 기억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당신이 먼저 말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곧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고 내용입니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어리석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 '아름다운 왕따들'의 우직한 어리석음이 세상을 조금씩 나아지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두 달간 이들과 함께한 권은정은 이렇게 기록한다.

"흔히 말로만 '일 당 백'이라 하지만 이들은 실제 그렇게 살았다. 의회 안에서 그들은 '완벽한 혼자'였다. 혼자 싸우고, 혼자 항의하고, 혼자 목청껏 외칠 수밖에 없었다. 참 많이 외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외로움에 지치지 않았다. 결코 지지 않았다. 힘들다는 생각이 들수록 더욱 열심히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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