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계기로 농민운동은 또 한번의 '결전'을 결의하고 있다. 하지만 농민운동의 미래를, 또 우리 농업의 미래를 낙관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도대체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박승옥 시민발전 대표는 13일 발행될 〈녹색평론〉 2006년 3~4월호(제87호)에 실린 '늙은 농민운동, 확 바뀌어야 농업 농민이 산다'는 기고를 통해 농민운동의 근본적인 변화를 주문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이 문제제기의 중요성을 감안해 필자와 〈녹색평론〉의 동의를 얻어 2회에 걸쳐 전문 게재한다. 〈편집자〉
***늙은 농민운동, 이대로는 곤란하다**
숱한 농민들이 목숨을 던져 농업 개방을 반대하고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집회와 시위를 되풀이하며 세계화와 세계무역기구(WTO)를 반대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는다. 때로는 소중한 쌀을 불태워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트랙터와 경운기로 고속도로를 막기도 하고 때로는 서울 시내 도로 곳곳에서 격렬하게 경찰과 대치하거나 거리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심지어 2005년에는 6·20 총파업 투쟁이라는, 노동자들이나 하는 듣도 보도 못한 농민 파업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농민이 아닌 일반 시민들은 그냥 힐끗 한번 눈길 주고는 이내 잊어버린다. 아니 이제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웰빙'인지 뭔지 무(無)농약의 건강한 먹을거리 찾는 데는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사람들이 정작 그런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민들의 절박한 처지에 대해서는 무관심을 넘어 무시해버리는 이런 비정상의 비정함과 철저한 배제는 도대체 어떻게 된 까닭인가. 도대체 이런 안타까운 죽음과 시위와 저항과 반대가 언제까지 그들만의, 농민들만의 피눈물로 이어져야만 하는가. 도대체 이런 농업 농민의 죽음과 소멸은 개방화 시대에 핸드폰과 자동차를 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만 하는 그들만의 운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인가.
그동안 역대 정부가 내놓은 농업 정책은 농업·농민 포기 정책이었다. 그것은 쉽게 말하면 농업·농민 안락사 정책, 대놓고 말하면 대기업 살려주기 위해 식량 안보 팔아먹는 농업·농민 아웃소싱 정책, 미국과 다국적 곡물 메이저 카길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는 한국 농업·농민 팔아먹기 정책이었다. 문제는 이 같은 농업·농민 몰락의 위기에 맞서 농민운동이 보인 대안제시의 능력이다. 과연 농민운동은 그동안의 격렬한 저항과 숱한 죽음을 통해 세계화를 저지했고 수입쌀 개방을 막았으며 농업 농민을 되살아나게 할 수 있었는가. 또 앞으로도 저지할 수 있고 되살아나게 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이런 물음에 대해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아무도 세계화를 막을 수가 없다는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아무도 농업과 농민을 살려낼 수 없다. 자본가가 그렇게 할 리도 만무하고 1사1촌이니 뭐니 반짝 캠페인을 벌이는 언론이 그렇게 할 리도 만무하다. 카길이 한국의 농업·농민을 특별 대우해서 종자 보관용으로 내버려둘 리는 더더구나 없고, 현대나 삼성이 농업과 농민의 회생을 위해 멸사봉공하거나 식량도 겸할 수 있게끔 씹어 먹을 수 있는 자동차나 핸드폰을 개발할 리도 만무하다. 농업과 농민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 살려내야만 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은 오직 농민들 자신뿐이다. 오로지 농민들 스스로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농민들이 스스로 대안을 찾아 나설 때 그제야 비로소 도시의 깨어 있는 인민들도 함께 나설 수가 있다.
지금까지의 농업·농민운동은 저항과 부정의 운동이었다. 그나마 이제 그런 저항과 부정의 운동도 활력을 잃고 힘이 빠질 대로 빠져버린 낡고 늙은 운동으로 전락해 버렸다. 농민운동은 이제 젊은이들이 거의 없는, 언제 수명이 다할지 모르는 암울한 운동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진정으로 농업 농민을 되살리기 위한 농민 스스로의 젊고 활기찬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근본에서부터 180도 전환이 있어야 할 절박한 시점에 도달해 있다.
지금까지의 농민운동은 솔직히 대안 운동으로서는 지극히 협소한 전망과 능력을 보여주고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농민운동은 곧바로 긍정과 대안 모색의 농업·농민운동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 농민운동은 이제까지의 낡은 운동 관행에서 과감히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농민운동은 이제 기존의 애벌레 껍질을 깨고 탈바꿈을 과감히 시도해야 한다. 날개돋이를 하지 못하면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냥 그 자리에서 마치 이제는 거의 멸종해버린 학생운동처럼 끝이 나고 말지도 모른다.
***끔찍한 식량재앙이 다가오고 있다**
대안의 농업운동, 대안의 농민운동은 무엇보다도 기존의 농업 관행 자체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공업화된 농업이 과연 우리가 추구해야 할 농업인지 재검토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화학농업은 엄밀하게 말해서 석유농업이다. 그것은 자원순환 농업이 아니라 자원약탈 농업이다. 물론 이 화학농업을 통해 지구의 식량 생산은 급속하게 높아졌다. 1950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전세계 곡물 생산량은 2.5배나 증가했다. 에너지를 그렇게 투입했는데, 그 정도의 에너지가 다시 나오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화학농업의 결과는 끔찍한 파멸이라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다. 그것은 지구의 저금통을 까먹는, 미래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도저히 지속불가능한 자살 농업이다.
무엇보다도 화학비료는 농토를 완전히 병든 산성 토지로 만들어 놓았다. 이로 인해 병충해는 더욱 극성을 부리고 더 많은 농약을 뿌려야 하는 악순환을 자초하고 있다. 게다가 농약은 벌레만 죽이는 게 아니라 사람도 죽이는 독약임이 명백해졌다. 녹색혁명 또한 이제는 불가능한 환상임이 드러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종자개량을 통한 농업생산량 증대는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른바 생명공학이 유전자 조작을 통해 농업생산량을 높일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더더구나 이는 환상이자 더욱더 위험천만한 자연파괴 행위임이 확연해지고 있다. 오죽했으면 영국의 환경부 장관이 지금의 농업구조는 지속불가능하다고 선언했겠는가.
오늘날 모든 나라에서 농지는 공장과 창고, 빌딩과 주택, 도로와 주차장, 그리고 초지 등의 용지로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전 세계 경지면적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감소로 돌아섰다. 전 세계 농민 가운데 5억 명은 먹고 살 경작지가 한 평도 없다. 흙이 1cm 만들어지는 데 대략 200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매년 약 240억t이 넘는 표토가 유실되고 있다. 표토가 유실된 농토는 곧바로 염분이 많은 불모의 땅으로 변하고 사막화가 진행된다. 거기다 중국과 인도를 필두로 전 세계가 경제개발과 급속한 산업화 정책을 취하게 되면서 곡물 소비 성향이 단순 곡물 소비에서 곡물 집약의 축산물과 물고기를 통한 단백질 섭취로 급속히 이동 중이다. 이에 비해 전 세계 인구는 유럽에서는 감소 추세라고 하지만 이미 65억 명을 넘어서고 있다. 세계 식량 생산량은 1996년 이후에는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인구는 늘어나니 당연히 1인당 곡물 생산량은 감소할 수밖에 없고 세계 곡물 재고량도 감소하고 있다. 밀과 쌀 가격이 2배로 뛰었던 1970년대 초 이래 세계 곡물 재고량은 60일분이 조금 넘는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화학농업의 근간인 석유는 그 생산이 정점에 도달하는 피크오일(Peak Oil)이 2007년에서 2010년일 것으로 석유가스정점연구회(ASPO)가 예측하고 있다. 석유 정점이 되면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갈 것이고 지금의 값싼 비료와 농자재, 농기계는 더 이상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20세기 후반기에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 사막화, 홍수 등 크고 작은 자연재해와 이상사태는 10배나 늘어났고 그 빈도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화라는 '리바이어든'이 출몰한 이래 단 200년 만에 2배나 높아졌다. 이제 다양한 생명체가 더불어 살아가던 지구라는 낙원은 불타는 지옥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멕시코난류(Gulf Stream)의 흐름이 3분의 1이나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유럽에는 조만간 빙하기가 도래하리라는 불길한 예측마저 나오고 있다. 이같은 기후변화는 곧바로 식량생산에 엄청난 혼란과 충격을 가져올 것이다.
한 마디로 끔찍한 식량재앙, 식량 전쟁이 바로 타이타닉 5분전처럼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에너지 재앙, 에너지 전쟁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함께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문제는 이런 거대한 악몽의 '쓰나미'가 바로 코앞에 닥쳐오는데도 누구도 아무런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있다. 사람들은 '에이 설마' 하거나 '그때 되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이른바 '설마' 의 맹목에 중독되어 있다. 그렇게 안전하다고 정부와 전문가들이 보장하는 원자력 발전소가 '설마 사고야 나겠어' 하고 잊고 지내는 것과 똑같다. 설마가 사람을 죽인다는 사실은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거나 체르노빌을 떠올리면 금방 알 수 있는데도 말이다.
사실 현재의 곡물 생산량은 지구상의 65억 명의 인구를 충분히 먹여 살리고도 남는다. 굳이 식량과발전연구소(Food First)의 주장을 되살리지 않아도 이는 상식이다. 지금 세계 곡물생산량의 40%가 가축 사료로 소비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곡물 생산량의 80~90%를 가축사료용으로 소비한다. 우리는 선진국의 비만과 다이어트, 제3세계의 굶주림과 기아사망이 공존하는 기이한 문명병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이같은 부조리와 불합리는 물론 식량의 불평등한 분배에 그 까닭이 있다. 굶주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배를 불리는 곡물 교역량 80% 점유의 미국계 카길,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와 프랑스계 드레퓌스(12%), 아르헨티나계 벙기(7%), 스위스계 앙드레(5%) 등 5대 곡물메이저들, 몬산토와 같은 유전자 조작 종자와 농약생산 다국적 기업들이 있는 한, 그리고 이들을 지원해 소농 중심의 지역 식량 자립을 무너뜨리고 있는 국가가 있는 한 이같은 어처구니없는 불평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굶주림은 분명히 식량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 체제의 문제이고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그러나 푸드퍼스트는 지금의 식량생산이 현재의 햇빛에너지만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석유라는 과거와 미래의 햇빛에너지를 약탈해서 이룩한 생산량이라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이런 생산량은 석유가 고갈되는 그 순간 거품이 빠지듯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속가능한 식량생산량이란 엄밀하게 말해 현재의 햇빛에너지로 생산되는 생산량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인구는 지구생태계 차원에서 명백히 과잉인구이며 이는 어떤 형태로든 조절과정을 거쳐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은 필연이다. 그것이 전염병이건 전쟁이건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몰살이건 그 중심에는 식량재앙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다만 그렇게 되지 않고 '현재의 햇빛에너지 자립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할 뿐이다. 적어도 인류의 멸종까지는 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 뿐인 것이다.
지난 50년 동안 세계 곡물시장은 늘 과잉생산과 과잉공급 상태였다. 물론 그때그때의 작황에 따라 일부 나라에서 대규모 수입을 하게 되면 곡물가격은 춤을 추었다. 1972년 구소련이 흉작으로 곡물을 수입하게 되자 국제 밀 가격과 쌀 가격이 단숨에 2배로 치솟았다. 한국이 1980년대 초에 200만t 규모의 쌀을 긴급 수입할 때도 곡물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1993년 일본이 쌀의 대흉작으로 말미암아 250만t 규모(전세계 무역량의 약 20%)에 이르는 쌀을 대량 긴급 수입하기로 하자 세계 쌀시장은 순식간에 큰 혼란에 빠졌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곡물시장은 공급과잉에서 공급부족으로 바뀌기 시작하고 있다. 2002년 9월 캐나다는 가뭄과 고온으로 수확량이 감소하자 다음해 수확기까지 밀을 수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2개월 후 이번에는 오스트레일리아가 생산량 부족으로 이전에 거래하던 나라에 한하여 밀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2003년이 되자 유럽에 찌는 듯한 기상이변이 강타했고 유럽연합은 곡물의 전면 수출중단을 선언했다. 2004년 초 중국이 마침내 밀 800만t을 수입해야 하는 식량수입국으로 전락했다. 이것은 21세기 식량시장에 지난 세기와는 전혀 다른 가장 큰 변수가 등장했음을 알리는, 그리고 세계 식량 사정이 이전과는 전혀 질이 다른 문제에 봉착했음을 나타내는 신호탄이었다. 그해 8월 중국은 베트남으로부터 쌀 50만t을 수입하고자 했으나 거절당했다. 국제 쌀 교역량이 현재 약 2500만t 규모인 것을 감안하면, 그리고 이 가운데 1600만t을 태국, 베트남, 미국이 수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의 식량수입국 전락이 미치는 앞으로의 국제 곡물시장 혼란을 짐작하게 한다.
미국은 농산물 수출로 매년 100억 달러 이상의 흑자를 내고 있다. 또한 곡물자급률 127%로 세계 곡물교역량의 35%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 미국이 경쟁력을 갖춘 산업은 군수산업과 농업밖에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본디 미국은 수십 년 동안 자국의 농업 보호를 이유로 농산물 수입을 철저히 제한해 왔다. 미국정부는 아직도 농장주들 순소득의 절반 이상을 직접지불금으로 보전해주고 있다. 현재의 WTO 협상은 이런 미국의 이익을 철저히 대변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제 미국은 식량을 무기로 자국의 무역적자를 보전하고 세계를 지배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한국은 이런 재앙의 위기에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있다.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27% 수준이다. 쌀을 빼면 그나마 5%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적색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인데도 우리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사회 또한 늑대 나타났다고 소리치는 양치기소년 쳐다보듯이 무심하게 흘려버리고 만다. 정부는 10년 후인 2015년에도 식량자급률을 그저 30% 수준으로 유지하겠다고 한다. 끔찍한 재앙이 다가오고 있는 것보다 더 끔찍한 것은 바로 이같은 맹목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식량자급률은 75%로 나머지 25%를 사올 돈이 없어 수십 수백만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비참하게 굶어죽었다. 돈을 주고도 식량을 살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그리고 돈을 주고도 에너지를 살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한국의 식량사정은 과연 어찌 될 것인지 그저 암담할 뿐이다.
2004년 말 현재 농민은 341만 명(총인구 4800만 명의 7.4%), 농가호수는 124만 호다.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기 전인 1960년 1460만 명(총인구 2500만 명의 58%), 233만 가구에 견주면 근 반세기만에 얼마나 농업과 농민이 파괴와 쇠락의 길을 걸어 왔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국민총생산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960년 32.9%에서 겨우 3.5%(2003년)로 줄어들었다.
〈표 1〉
또한 농민 인구 가운데 60세 이상이 137만4778명으로 자그마치 40%나 된다. 반면에 20대와 30대는 각각 8%, 7%로 다 합쳐야 50대와 60대의 절반도 채 안 된다. 이대로 가면 농민은 사라져가는 멸종 위기의 희귀종으로 분류되고 농업 또한 박물관이나 가야 만나볼 수 있는 희귀한 직종이 되고 말 것이 틀림없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한국 농업은 미래가 없다.
농업과 농민을 살리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다. 그럼에도 참여정부는 이제 민주화 잔치는 끝났다는 듯이 국토의 균형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아예 온 나라 땅을 부관참시하고 있는 중이다. 이 정부는 농지법을 개악해 농지소유 상한을 철폐하고 도시민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끔 문호를 개방했다. 농지를 다른 용도로 개발하는 투기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고 농업은 아예 그만두게 하겠다는, 농업 보조금조차 건설 산업 보조금으로 전환한 건설족 정부다운 발상이었다. 참여정부의 농업 농민정책은 명백히 대자본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살농(殺農)정책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논과 밭의 환경가치는 홍수 조절 효과 13조 원, 수자원 함양과 수질정화 효과 4조 원, 대기정화와 기후순화 효과 5조 원, 토양보전과 오염원 소화 효과 1조 원, 경관 가치 1조 원 등 연간 24조 원이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농지는 그런 생태기능뿐만 아니라 먹을거리 안전(food security) 기능, 고용유지 기능까지 갖고 있다. 실업자와 도시빈민, 비정규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바로 농업과 농지다. 그런데 그런 가치 있는 농지를, 마지막 남은 농토를 뜯어먹는 흡혈귀들이 다름 아닌 참여정부와 공무원과 토지건설 투기자본들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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